3화
“무엇을 하고 있었지?”
황제는 얼굴을 와락 찡그린 채 나에게 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보시다시피 계속 침대에 머물러 있었던 터라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왠지 신조차 황제를 경계하는 느낌이 들었기에 미친놈을 자극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몸은?”
하나도 걱정스럽지 않은 얼굴로 황제는 잘도 물어 왔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피식.
황제의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그런 것 같군. 이곳으로 올 땐 삐쩍 말라 볼품없더니, 지금은 살이 오른 것을 보니 그대에겐 궁 생활이 제법 맞나 봐.”
고저가 없는 목소리였지만 내용에는 한껏 비꼼이 들어 있었다.
나는 순간 살찐 것이 불만이냐고 물을 뻔했지만, 황제의 인상이 제법 다정한 형상을 띠고 있는지라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왜 화가 났나?”
내가 입을 다물자 황제는 화가 났다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제가 어찌 고결하고 무결하신 황제 폐하께 감히 화를 내겠습니까. 착각이십니다.”
“고결하고 무결한 황제가 와도 반기지 않는 것은 그대였는데…… 왜 화가 났는지 모르겠군. 나에게 이렇게 오만방자하게 굴어도 목이 붙어 있는 이는 그대뿐이다.”
“네, 영광입니다.”
황제의 말이 거짓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몸의 기억에서도 황제에 대한 것은 늘 폭군 황제, 피에 미친 황제, 늘 귀족의 머리를 하루에 하나씩 베어 내는 미친 황제로 기억되어 있었다.
물론 대부분 소문이었지만 왠지 나는 소문이 진실의 10%도 못 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왜 그런지 나는 황제가 무섭지 않았다.
“그대의 입으로 영광을 입에 담으니 믿어는 주겠지만 왠지 진심이 안 느껴지는군. 나를 보는 모든 자들의 입에서 진실만이 나오게 했었는데, 왜 진심이 안 담긴 그대의 말엔 화가 안 나는지 모르겠군. 그대는 아나?”
염병 나도 마음이 하루에 열두 번도 변하는 저를 알지 못할 때가 많은데 하물며 미친놈의 마음을 알 턱이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생각과는 다르게 공손한 말이 튀어 나갔다.
왠지 신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은 다음부터 생에 대한 열망이 강해진 것 같았다.
그랬기에 기어오르는 나를 황제가 봐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 차차 알아 가도록 하지. 그대도 나도.”
황제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걸렸다.
지금껏 차디찬 웃음만을 흘리던 그가 눈까지 휘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쿵 쿵 쿵.
가슴 안쪽이 아프게 쿵쿵거렸다.
나는 손을 들어 아픈 가슴께를 꾹, 하고 눌렀다.
왜 이러지? 몸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부작용인가?
아무리 더듬거려도 통증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더욱더 커지는 심장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왜 그러지? 어디 아픈가?”
황제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러고는 더듬던 손을 내려 침대의 이불을 꽉 그러쥐었다.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이곳에 무슨 볼일이 있으신지 여쭤본다는 것을 깜빡했군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어져 나왔다.
황제는 갑자기 달라진 내가 걱정이라도 되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고, 나는 황제가 그럴수록 더욱 얼굴을 굳혔다.
“참 이상하지. 나는 그대에게 나쁘게 군 기억이 없는데 그대가 왜 나를 싫어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군. 나는 아직도 그대가 왜 나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소리에 호수에 몸을 던졌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이해가 되는데 황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단다.
이것이 정상인과 미친놈의 차이인가?
“네, 그렇군요.”
성의 없는 답변이 튀어나왔다.
황제는 그런 나를 이번엔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다 그가 벌떡 일어났다.
“식사나 함께 하지.”
황제의 목소리가 나직이 울렸다.
소름이 돋게끔 낮은 목소리여서 나는 황제가 화가 났다고 생각했다.
같이 먹으면 왠지 체할 것만 같아 거절하고 싶었지만, 괜히 화만 더 돋울 것 같아 얌전히 따라 일어났다.
식당은 생각보다 더 컸다.
물론 황제가 사는 궁의 식당이니 큰 것이 당연하겠지만 커도 너무 컸다.
그 큰 식탁에 황제와 나 달랑 둘만 앉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어느 자리에 앉을까 고민하면서 황제의 눈치를 봤다.
당연히 상석에 자리 잡은 황제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그의 입꼬리를 올린 채 나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황제가 가리킨 자리에 가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식탁에 갖가지 음식들이 올라왔다.
맛있는 냄새를 솔솔 풍기는 음식은 어느 것 하나 먹음직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딱 하나, 황제만 이 자리에 없다면 만족스러운 식사가 될 것만 같았다.
“그대가 즐겨 먹는다는 것만 차리라고 했는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황제가 내 앞에 고기 한 점을 올리며 말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픽.
순간적으로 황제가 나를 쳐다보았다.
“뭐라고 했지?”
황제가 쿡쿡거렸다.
음식이 먹음직스러워 그것만 쳐다보고 있었기에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두 눈을 깜빡이며 한참이나 기억을 되짚어 보았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모르면 되었다. 그냥 들지.”
황제는 아직도 얼굴에 웃음을 한가득 달고 나에게 식사를 권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인간이었다.
저 얼굴이 예전에는 비웃기만 했던 얼굴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나는 황제가 집어 주는 맛있는 음식을 곧잘 먹었다.
아주 배가 빵빵해질 정도로. 체할 것이라는 나의 우려와는 달리 아주아주 맛나게 먹어 버렸다.
확실히 미친 황제의 눈에 들려고 노력하는 주방장의 노고가 느껴지는 맛이었다.
황제가 내 그릇에 음식을 더 올리기 전에 나는 서둘러 수저를 내려놓았다.
“잘 먹었습니다.”
인사 또한 빠르게 해 버렸다.
“그렇게 적게 먹고 일상생활이 가능한가? 그대가 그렇게 새 모이만큼 조금만 먹으니 계속 아픈 거다. 조금 더 먹는 것은 어떻겠나?”
나는 정말 배가 찢어질 만큼 먹었다.
그런데 새 모이만큼이라니. 그러는 자기는 얼마나 많이 먹어서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황제는 지금껏 자신은 하나도 먹지 않고 나에게 음식을 나르기만 했다.
“저보다 폐하께서 드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는 배가 부릅니다.”
“나를 걱정하는 것인가?”
걱정? 아니 나는 나를 걱정하는 것이다.
그의 손안에서 배 터져 죽을지도 모르는 나를 말이다.
나는 절대 황제를 걱정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식사 안 하십니까?”
“그대가 이리 걱정하니 입맛이 도는 것 같군. 그럼 내가 먹을 테니 그대도 조금 더 먹어.”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놓았던 수저를 다시 들었다.
그제야 황제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는 아주 품격 있는 자세로 교양 있게 손을 움직여서 음식을 해치웠다.
그의 입은 계속해서 절도 있는 반복 동작으로 손에 들린 음식을 하나하나 받아먹었다.
마치 끊임없이 음식을 저장하는 아공간이라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황제가 음식을 다 해치웠을 즈음에야 멍하게 헤벌린 입을 다물 수 있었고, 왜 그가 나에게 새 모이만큼 먹는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많, 많이 드, 드시네요.”
황제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나는 혹시나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싶어 다시 물었다.
“왜, 왜요?”
“혹시 많이 먹는 거 별로인가?”
“네?”
“많이 먹는 사람 싫냐고.”
“아뇨. 딱히요.”
그제야 황제의 굳은 얼굴이 풀어졌다.
도대체 저런 쓸데없는 질문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저녁도 함께 들겠나?”
황제의 얼굴이 매우 굳어져 있었다.
그가 순간 긴장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무시했다.
체할지도 모르는데 하는 걱정도 떠올랐으나 금방 스쳐 지나갔다.
아까도 분명 체할 텐데, 라고 생각해 놓고서 아주 배불리 식사를 하지 않았던가.
또한 황제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도 제법 나쁘지 않았다.
“저에게 거부권이 있습니까?”
굳었던 황제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그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얼굴을 하더니 서서히 고개를 저었다.
“안 그러길 바랄 뿐이야.”
결국은 예스맨이 되라는 거였다.
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예스맨이 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이만 가 봐도 됩니까?”
황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문을 열고 사라질 때까지 황제의 눈은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문득 황제가 뒤에서 나를 쫓아올 것만 같은 소름 돋는 느낌을 받았으나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나가자 황제의 보좌관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황제에게는 세 명의 보좌관이 따라다녔는데 하나는 행정, 하나는 경제, 하나는 군부였다.
예전에는 통괄하는 재상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황제의 검에 이슬처럼 사라지자 누구 하나 재상이 되겠다는 이가 없었고 지금은 재상 없이 나라가 돌아간다고 한다.
정말 미친 황제 밑에서 미쳐 가는 제국이 아닐 수가 없었다.
방금 황제에게 향한 이는 군부 보좌관이었다.
그는 딱 봐도 군부 쪽에서 일하는 사람답게 인상과 행동이 매우 각이 잡혀 있었고 황제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았다.
후궁들에게조차 절대로.
나는 군 보좌관이 간 쪽을 보다 옆에 있는 이에게 물었다.
“저분은 군부에서 일하시지요?”
“네, 마마. 그렇습니다.”
“혹시 무슨 일 있습니까? 저렇게 급하게 들어가는 것을 보면, 아니 저는 다른 것이 아니라 평화가 좋으니까요.”
굳이 붙이지 않아도 무방할 사족을 덧붙이며 나는 말했다.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폐하께서 정복 전쟁을 하시려고 한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들었습니다.”
차분하게 말한 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미친 황제가 자신의 국민을 베다 못해 남의 나라를 통째로 베어 버리려 한다는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순간 눈앞이 핑 돌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나는 식당 문 쪽을 빤히 쳐다보다 그만 걸음을 옮겼다.
내가 지구에서 군사 쪽에 있었다 한들 인제 와서 군인이 될 것도 아니고, 만약 가능성이 있다고 한들 이 왜소한 몸이 견뎌 내리란 보장이 없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인 생활이 어려운 거야 불 보듯 뻔했고, 그게 다른 세계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터였다.
나는 금방 관심을 끄고 저녁에는 무슨 음식이 나올까 생각하며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곧 나는 아름다운 정원 한복판에서 펑펑 울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