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우와. 아주 예쁜 새로군요. 이렇게 영롱한 새는 처음 보았습니다. 마치 새 새끼 같습니다.”
“뭐?”
“아니, 그, 그러니까 새끼 새 말입니다.”
“욕하는 것 같은데…….”
“절대 아닙니다.”
“……그래. 당사자가 그렇다면야.”
“그래서 새 신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손바닥에 올린 새를 보며 물었다.
“나는 위대한 태양의 신 솔이다.”
“아, 왠지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태양의 신은 유명하거든요. 그리고 항상 따뜻함이 전해져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말에 새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왜지? 나 뭐 나쁘게 말한 게 없는데…….
“아, 맞다. 저 여쭤볼 게 있어서 사실 아까 찾았던 것인데 깜빡했습니다.”
신은 한숨을 쉬다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허락의 몸짓에 얼른 나는 말을 이었다.
“혹시 전쟁을 일으켜서 멸망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 맞다.”
“그럼 황제가 전쟁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왜 그러느냐?”
“아까 들으시지 않으셨습니까? 황제가 오래된 약속을 지키려는 것뿐이라고, 그 약속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글쎄다, 그것까진 잘 모르겠구나.”
“모른다고만 하시지 말고요. 혹시 황제가 끊임없이 전쟁을 하려는 이유가 혹시 누군가와의 약속 때문 아닐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생각해 보세요. 황제가 아무 일 없이 그냥 계속 전쟁을 하는 건 아닐 거예요. 황제도 목적이 있는 거예요. 맞아요. 미치지 않고서야 아무 이유나 목표도 없이 계속 전쟁을 일으키진 않을 거예요.”
나는 목소리까지 높여 가며 열변을 토했다.
“그대는 황제보고 자주 미친놈이라고 한 것 같은데…….”
당연히 신은 신이 난 나에게 초를 쳤지만 말이다.
나는 금방 시무룩해졌다.
하긴 다른 약속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들려오는 신의 목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아주 가능성이 없진 않은 것 같구나.”
“그쵸. 그럴 수도 있는 거죠?”
새의 모습을 한 신은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귀여움이 한도를 초과했지만 차마 신에게 귀엽다는 말을 할 수는 없는지라 나는 꾹꾹 참아 냈다.
이제부터는 황제가 도대체 누구와 약속이라는 것을 한 것인지 알아내야만 했다.
황제는 며칠 동안 계속 바빴다.
나에게 잠깐 왔다 일 보러 갔다.
정말 잠깐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황제에게 약속에 대해서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알아내지 못할까 조바심이 났다.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란다. 기다린다고 문제가 풀리는 것도 아니고. 무엇이든지 부딪쳐 보는 게 어떠냐?”
신이 창가에 앉아서 나에게 조언이랍시고 말했다.
“그런데 신님은 왜 이곳에만 계십니까? 바쁘신 것 아니었습니까?”
“바쁘지.”
“그런데 왜 안 가십니까?”
“그거야 이곳에서도 일은 할 수 있어서 그렇단다.”
“아, 네. 혹시 시간이 나시면 황제 폐하를 염탐 좀 해 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 허락받지 않고 감시하는 것은 안 될 일이지만, 나는 하루 24시간 신에게 관음당하는 처지라 전혀 위화감 없이 신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신이 갈 생각은 안 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혹시 새의 모습이라 어려우십니까?”
“그건 아니다.”
“그럼 왜 그러십니까?”
“사실은 황제의 기운은 느껴지는데 자세히 볼 수는 없다. 특히 황제의 궁이. 그러니까 이 황궁 안에서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그대가 있는 곳뿐이다.”
“예? 미천한 인간인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내 능력과 연결된 그대가 아니고는 내가 인간계에 머무르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다.”
정말 황당한 이야기였다.
내가 이곳에 온 지 언제인데 이제야 이 사실을 알았다니. 더더욱 내가 언제부터 신의 능력을 물려받았다는 말인가.
“무슨 말씀이신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에게 솔 님 당신의 능력이 있다는 의미로 들었는데 맞게 이해했을까요?”
“그래, 제대로 들었다.”
“아니, 언제 말입니까? 저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만?!”
“뭐 그대를 이 세계에 보낼 때……?”
“이 정도면 사기 계약 아닙니까?”
“계약이라니……. 그저 내 능력을 조금 준 것뿐이다. 그대에게는 나쁜 일이 아닐 테고.”
“나쁜 일이 아니라니요. 그 능력 때문에 제가 관음, 아니 감시당하고 있는 건데 좋을 일이 뭐가 있습니까?”
“그대는 이제 웬만한 병은 안 걸릴 것이고. 그리고 아프지 않을 것이고. 또…… 아픈 이를 치료할 수도 있겠지. 아, 그 관계할 때 여느 사람이라면 뼈가 바스러지는 고통을 느꼈겠지만, 그대는 쾌락만을 느꼈지? 이게 다 내 덕분이니라.”
사실 뭐 들어 보니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아픈 것은 질색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제야 알게 된 것은 매우 매우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삐졌느냐?”
“삐진 게 아니라 화가 난 겁니다.”
“그게 그거지. 내 기준에서는 똑같다. 화가 난 거나 삐진 거나 토라진 것은 같으니까.”
저 말에 더더욱 열이 받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을 들이받을 수는 없는 일이고, 그저 아까 하려던 일을 하려고 일어나는 것뿐이었다.
“어딜 가는 것이냐?”
“황제 폐하께 갑니다. 아까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기다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요. 그러니 부딪치러 가 보렵니다.”
새의 모습을 한 신이 내 어깨 위에 올라왔다.
투명하고 하얀 새는 나의 어깨에 스며들듯 모습을 감췄다.
내가 문을 열자 베스가 다가왔다.
“베스, 나 황제 폐하께 가야겠다.”
“네, 마마. 모시겠습니다.”
“폐하는 오늘도 집무실에 있나?”
“네, 마마. 좀 전에 시종으로부터 전달받았습니다.”
황제는 바쁘면서도 꼬박꼬박 자신의 위치를 나에게 알렸다.
뭐 휴대폰이 없는 세계에서 그렇게라도 상대의 위치를 안다는 것은 썩 나쁜 것이 아니었다.
문제라면 황제가 자신의 위치를 말하면서 나의 근황도 알아 갔기에 조금은 무섭긴 했다.
나는 힘차게 황제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입니다.”
문제는 중간에 방해물을 만나 버렸다는 것이다.
“네, 오랜만입니다. 1후궁 마마.”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시는지요?”
1후궁이 전보다 왠지 날카로움이 덜해진 것 같아 의아해졌다.
하지만 치마를 꽉 틀어쥔 걸 봐서는 나를 향한 증오가 그대로인데, 왠지 그녀의 살기가 나에게 와닿지 않았다.
그새 증오를 숨기는 법을 배운 것 같았다.
“폐하께 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외적으로는 감추었을지언정 공격력은 그대로 살아 있었다.
아니 더욱 세져 있었다.
“이런, 그러셨습니까? 후궁들의 친목 모임에는 나오시지 않더니, 바쁘신 황제 폐하께는 꼬박꼬박 가시는 모양입니다. 치마 두른 여인네보다 더욱 애쓰시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입니다.”
손 대신 입에 칼을 물고 덤비니 타격이 제법 셌다.
“치마를 두르든 안 두르든 폐하를 모시는 위치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애를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1후궁의 눈썹이 꿈틀대고 치마가 구겨지는 모습이 들어왔지만 모른 척했다.
나는 신사였으니까.
“그래요. 마음껏 애를 쓰세요. 그래야 후사도 생산하지 못하시는 30번째 후궁께서 오래 궁에 계실 수 있을 테니까요.”
“네, 뭐 응원 감사합니다. 이만 가던 길 가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1후궁은 휙 몸을 돌려 가 버렸다.
나는 여인과 궁중 암투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를 일이었다.
예전에는 마냥 억울했다면 지금은 황제를 좋아하니 억울해하면 안 되었기에 그저 한숨을 쉬고 가던 길을 걸었다.
“어머, 공자님.”
가는 날이 장날인지. 가던 길에 아홉 번째 후궁을 만나 버렸다.
1후궁을 보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다른 후궁인지……. 이러니까 내가 황제에게 좋은 맘을 먹었다가도 후회하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네. 어쩐 일이십니까?”
“저야 폐하를 뵙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자님은 여긴 어인 일이실까요? 설마 폐하를 뵈러 가는 길이신가요?”
장난스러운 말투가 들려왔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럼 혹시 저번에 제가 드린 부탁을 들어주시러 가시는 걸까요?”
내가 전쟁을 막으려는 것은 맞는데 그것이 이 앞의 후궁 부탁을 들어줘서는 아니었지만, 결론은 그렇게 되어 버렸으니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런, 너무 감사한걸요. 그럼 부탁 들어주셨으니까 저도 한 번은 공자님 부탁을 꼭 들어드릴게요. 이건 오직 제 이름으로 약속하는 거랍니다. 제가 이래 봬도 능력이 꽤 있답니다. 공자님께서 제가 부탁하실 일이 있으시다면 1순위로 들어드릴게요.”
뭐 공짜 찬스 건을 거부할 이유가 없으니 알았다고 대답했다.
9후궁은 기분이 좋은 듯 흥얼거리며 돌아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다들 마주치는지 모를 일이라며 나는 투덜거리며 걸어갔다.
뒤에서 9후궁이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을 나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