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의 안배-27화 (27/60)

27화

“으읍, 으브읍.”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너무 당황한 나머지 눈도 감지 못한 채 황제에게 입술을 거의 물어뜯기다시피 키스를 당하고 있었다.

힘은 또 얼마나 센지 아무리 밀어내려고 해도 밀려나지 않았다.

오히려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끌어당기는 힘이라도 있는 것처럼 더욱더 밀착될 뿐이었다.

내게 남은 마지막 수단은 어쩔 수 없이 바짝 붙여 오는 황제의 아랫도리를 무릎으로 걷어 올리는 것이었다.

빠각.

“흡!”

사실 그저 떼어 낼 목적으로 무릎을 올린 건 맞는데, 그의 소중이를 없애 버릴 작정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더더욱 같은 남자로서 저곳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입장에서…….

아니다, 같은 남자라면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죄송합니다. 폐하…… 많이 아프십니까?”

황제는 대답도 못 한 상태로 침대에 꼬꾸라져 있었다.

아까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는데 정말로 숨이 멎었을까 봐 걱정이 되어 그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등이 들썩거리는 걸 보니 숨이 넘어간 것은 아닌 듯하여 안도의 한숨을 쉰 후 천천히 다가갔다.

“제가 너무 놀라서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것은……. 네, 변명입니다. 죄송합니다. 그…… 많이 화나셨습니까?”

많이 화난 것은 아니어야 할 텐데……. 전처럼 무서운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아니.”

다행히 황제에게서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앗, 그럼 많이 아프십니까?”

질문을 하고 멈칫했다.

그때 황제의 대답이 작게 들려왔다.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래.”

그렇겠지. 당연히 아플 텐데 괜한 질문이었다.

그곳은 바람만 스쳐도 아픈 곳인데, 뼈로 아주 때려 버렸으니 아프겠지. 혹시나 터져 버린 것은 아니겠지?

나는 합리적 의심을 하며 혹시나 하는 얼굴로 황제의 아래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 혹시 의원을 불러야 하겠습니까?”

“아니.”

대답과는 다르게 황제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부르는 것이 맞겠습니다. 이건 나라의 중대한 일이니까요.”

후사가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막 일어나려고 하는 그때 황제가 내 손목을 잡아 왔다. 여전히 웅크린 채로.

“그냥 조금만 이렇게 있으면 된다. 그러니까 그대도 가만히 좀 있어 주겠나?”

황제의 귀와 목덜미가 매우 붉어져 있었다.

저러다가 살이 다 익어 버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붉었다.

뭐 황제라고 해도 저런 곳을 의원에게 보이긴 부끄럽나, 라는 생각에 나는 내 손목을 쥐고 있는 황제의 손에 다른 손을 올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폐하,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이 나라의 미래가 달린 일에 고작 부끄럽다는 이유로 아픈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혹시 터져 버렸을지도 모르니 의원에게 보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황제의 귀가 점점 더 붉어지고 있었다.

나와 있으면 항상 덮칠 생각만 하는 황제였기에 이런 모습은 낯설기도 하지만 신기하기도 하였다.

그때 황제가 내 손목을 그곳으로 가져갔다.

나는 화들짝 놀랐지만, 황제의 힘에 의해서 손을 뗄 수는 없었다.

왜 놀랐냐고?

자칫 그곳이 나 때문에 부러질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서 놀란 것도 있었지만, 충격이 가해지면 대부분 수그러들었을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아주 화가 나 있어서 놀랐다.

변태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혹시 맞는 것을 좋아하나. 물론 취향이니까 내가 뭐라고 할 수는 없으나…… 나는 과연 그의 취향을 맞춰 줄 수 있을까? 나는 때리는 것도 맞는 것도 싫은데…… 만약 황제가 요구한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 황제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태연한 척 말하고 있지만 얼굴이 붉어진 것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저 얼굴이 부끄러워서인지 아파서인지 이제는 헷갈릴 지경이었다.

“이제 괜찮다는 말을 믿어 주겠나?”

“네. 당, 당연합니다.”

나는 말까지 더듬었다. 쪽팔려 죽을 것 같았다.

황제는 그제야 내 손목을 놓아주었다.

“조금만 기다려 줘. 그럼 괜찮아질 것 같으니.”

“네, 알겠습니다.”

싫어도 기다려 줘야 할 판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픈 게 아니라면 저 기다려 달라는 말은? 혹시 애국가라도 부르나? 아니면…… 양을 세나?

이것저것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그가 얼마나 절륜했는가를 떠올리고…….

그러다 황제가 멍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것을 알아차렸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그대는 나에게 왜 그러나?”

“예? 혹시 제가 그곳을 때린 것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래. 아까 밀어낸 것이 아니었나?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나를 유혹하고 있고.”

제가요? 금시초문인데요……. 나는 당황한 얼굴로 황제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때 나무 향이 훅 끼쳐 왔다. 아니 나를 덮쳐 왔다.

지금까지 방 안에 꽉 차 있어서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나를 노리고 덮쳐 오니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이게 페로몬이라는 거구나…….

온몸이 예민해져 왔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저번과 같은 일이 벌어지겠구나, 곧 히트 사이클이라는 것이 오겠구나……. 그러면 어떻게 하지?

걱정에 머릿속이 하얘지는 그때 거짓말처럼 나를 덧씌웠던 향이 슬슬 물러났다.

그러더니 마치 사과라도 하는 듯 주변을 맴돌았다.

그제야 나는 멀찍이 앉아 있는 황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 그저 나도 모르게 그랬다. 아직 잘 조절이 안 되는 것 같다.”

“아까 제가 유혹한다고 하셨는데 혹시 제 향도 폐하를 덮쳤습니까?”

“아니. 그저 말 그대로 유혹했다. 나를 원한다고. 그러니까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고. 그저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그렇게 느꼈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그럼 왜 그만두셨습니까?”

“당연하잖아. 그대가 겁먹었으니까. 그대가 나를 무서워하는데 내가 그대를 억지로 어떻게 할 리가 없잖아.”

그렇구나. 그래, 황제는 나에게 늘 그랬다.

그게 바로 내가 황제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고, 어떤 모습이라도 사랑하리라 마음먹게 해 줬으니까.

모든 사람들이 황제가 폭군이라 무서워한대도 어쩌면 나는 이제는 전처럼 그를 무서워하지 않을 거 같았다.

오히려 안쓰러워할 것 같았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아직도 제가 겁먹은 것 같습니까?”

황제는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안아 달라고 하는 것 같은데 맞나?”

“네. 그러니 그만 멀찍이 앉으시고 이리 와 안아 주십시오.”

황제는 머뭇거리더니 더욱더 물러났다.

“싫으십니까?”

황제의 몸이 흠칫거렸다.

싫은 건 아니겠지. 온몸으로 좋다고 하니까. 하지만 대답을 들어야겠기에 다시 물었다.

“싫으십니까? 그렇다면 돌아가겠습니다.”

“아니, 아니다. 그저 멈출 자신이 없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런 오해는 하지 말아 줘.”

그래, 그는 항상 이렇게 솔직했다.

그러니 이번엔 내가 솔직해질 참이었다.

“장난이었습니다. 이렇게 온몸으로 저를 좋다고 하시는데 제가 몰라볼 리 있겠습니까? 그리고 멈추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금 제 상태를 폐하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실 텐데요.”

황제는 멍한 얼굴로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했다.

“허락이란 뜻인가?”

이렇게 사람을 못 믿어서야. 나는 쿡,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허락입니다. 폐하.”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황제는 언제 뺐냐 싶게 내게로 돌진하더니 다급하게 입술을 붙여 왔다.

이런 격정적인 것도 좋지만, 나는 좀 더 부드러운 것이 좋았기에 황제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아, 하아. 왜 허락한 것이 아니었나? 그렇다면 너무하군. 나는 멈출 수가…… 없다.”

황제는 숨을 급하게 몰아쉬면서 나를 탓하듯이 내려다보았다.

억울한 듯도 보였다.

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멈추라는 뜻이 아닙니다. 너무 급하지 않게 부드럽게 부탁드린다고 말하려 했습니다.”

부드럽게, 부드럽게. 황제는 몇 번이나 되뇌다 살며시 내게로 입술을 내렸다.

눈도 감지 않고 내 눈을 뚫어져라 보면서. 우리는 눈싸움을 하듯 누구 하나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황제는 입술을 살며시 빨다 허락을 구하듯 혀로 내 아랫입술을 슬쩍 쓸었다.

아, 나도 모르게 입술이 벌어졌다.

아까처럼 다급한 입맞춤도 아닌데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황제의 혀가 나를 침범하기 시작했다.

그저 입술만 비빌 때는 눈맞춤이 아무렇지 않았는데 혀를 섞으니 몹시 부끄러워졌다.

온 얼굴로 열이 집중되는 것같이 부끄러웠다.

나는 눈을 감았다.

황제가 눈을 감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내가 눈을 감는 순간부터 부드럽던 황제의 입맞춤이 더욱 농밀해졌다.

“힘들면 말해.”

황제가 헐떡이면서 나에게 동의를 구했다.

페로몬이 살랑살랑 나의 온몸에 감겨 왔다.

“멈출 자신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피식 웃으며 대답하자 황제가 곤란한 얼굴로 웅얼거렸다.

“노력이라도 하려고 그랬지. 연, 그대를 아프게 하기는 싫으니까.”

조금은 기분이 좋기도 하고 남사스럽기도 했다.

남자인 나를 여인처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본다는 게 예전이라면 기분이 나빴겠지만, 그 대상이 황제이니 다 괜찮아졌다.

“배려는 감사합니다. 하지만 침대 위에서의 배려는 그닥 매너가 아닙니다. 그러니 내일이 없을 것처럼 안으셔도 저는 좋습니다.”

황제의 눈이 깊어졌다.

그의 이성의 끈이 뚝, 하고 끊기는 소리가 들린 듯했지만 나는 정말로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왜냐하면 내 이성도 이미 저만치 날아가 버렸으니까.

진정으로 황제와 내가 몸도 마음도 하나가 되는 날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