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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안배-30화 (30/60)

30화

어찌 되었든 다행히(?) 황제의 관심이 신전과는 멀어졌다.

황제 또한 더는 화를 내지 않을 즈음 시종장이 들어왔다.

“식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그래, 짐승도 으르렁대는 것은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황제의 예민함 또한 배에 뭐가 들어가면 누그러들 것 같아 서둘러 황제를 식당으로 이끌었다.

“배가 많이 고팠나?”

황제가 걱정스레 물었다.

사실 전혀 안 고팠다.

하지만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황제는 세상에 다시없을 귀여운 생명체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는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안아 들고 힘차게 걸어갔다.

나는 기겁한 채 소리 질렀다.

“무슨 짓입니까? 내려 주십시오.”

“괜찮다.”

“제가 안 괜찮습니다. 떨어지면 무슨 망신입니까?”

“절대 안 떨군다. 그러니 그대는 얌전히 있기만 하면 돼.”

미친…… 원래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니 실수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황제가 저렇게 장담하는 꼴을 보느니 안 떨어지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황제에게 최선을 다해서 매달리는 것,

“안 떨군대도.”

황제는 기분 좋은 목소리를 내며 앞으로 걸어갔다.

건장한 사내를 품에 안은 것이 뭐 그리 좋나 싶겠지만 이럴 때마다 황제가 나에게 얼마나 빠져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곤 했다.

“식사하러 가십니까?”

황제가 멈춰 선다 싶었는데 가녀린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아차 싶어서 내려가려고 했지만, 황제가 더욱 팔에 힘을 주는 통에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대가 여긴 어인 일이지?”

비꼬는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와 저녁이나 함께 들까 해서 연통을 보냈습니다만 연락이 없으셔서 제가 이렇게 직접 걸음 했습니다.”

“연락이 없으면 거절이구나 하고 궁에나 처박혀 있을 것이지 굳이 이렇게 왔다는 건 내가 하는 경고를 무시한 거라 봐도 되나?”

무슨 경고? 혹시 두 사람이 대화를 한 적이 있나? 궁금증이 일었지만 당장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제가 어찌 그리하겠습니까? 그저 저도 폐하가 품어야 하는 한 명의 후궁이지요. 그러니 안고 계신 30번째 후궁이나 저나 총애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뜻입니다. 안고 계신 후궁이 방자하게 논 것을 눈감아 주신다면 저 또한 그리해 달라 청하는 것이에요, 폐하.”

목소리가 어찌나 나긋나긋한지 악을 쓸 때보다 지금이 더 무서웠다.

나는 황제의 목에 둘렀던 팔을 풀고 내려 달라 황제의 귀에 속삭였다.

황제의 몸이 굳어지는 듯 보였으나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 없어 다시 한번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내려 주십시오.”

황제가 한숨을 쉬면서 굳게 힘주고 있던 팔을 풀었다.

그리고 나는 황제의 품에서 내리자마자 곧 후회했다.

나에게는 가시를 세우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처연미를 내보이는 1후궁이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향한 눈빛은 형형하기 그지없어 나는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나 이러다 독살당하는 거 아니야?

속으로는 목숨 걱정을 하면서도 나는 다정한 웃음을 장착한 채 1후궁에게 인사했다.

“요새 자주 뵙습니다.”

최대한 호의를 담아 인사했건만 날아오는 것은 싸늘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모시는 지아비가 같으니 질투심에 자주 보지 않을 법도 한데 총애를 이토록 혼자 독차지하시니 자주 뵙게 되는 것 같군요.”

하하하, 어색한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뭐 황제가 게이인 걸 나보고 어쩌라고! 남자인 나를 좋아하는 것을 보니 황제의 성적 취향이 여자가 아니라고 확정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여자인 1후궁이 남자인 나를 이기려면 우선 그가 다시 태어나 남자가 되는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저는 자주 뵈니 좋다는 말씀이었습니다만 1후궁께서는 아니신 것 같습니다.”

그녀의 눈초리가 매워졌다.

딱히 공격할 의도는 없었지만 반응을 보니 공격이 먹힌 것 같았는데, 반격은 오히려 애먼 데서 날아왔다.

“연, 아직 여인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나? 아니면 내가 부족한가?”

하……. 황제의 말도 안 되는 생떼에 한숨이 나왔다.

당연히 1후궁도 곧장 경멸하는 눈빛을 보냈다.

다행히 나 하나만 그것을 발견했고, 내가 쳐다보는 것을 눈치챈 그녀 또한 눈빛을 가다듬었기에 황제는 알 수가 없었다.

“폐하.”

“그래.”

“한마디만 더 하시면 전 제 궁으로 돌아갈 겁니다.”

황제가 곧장 불쌍한 얼굴로 변했다.

“불쌍한 척하셔도 소용없습니다.”

그러자 곧장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돌아온 황제가 다시 나를 자신의 품으로 이끌었다.

“키스하고 싶다.”

다행히 내 귀에 대고 말해 아무도 못 들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얼굴이 달아올랐다.

부끄러움과 모두가 보는 앞에서 키스를 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화를 내겠습니다.”

다행히 이성적인 말이 나왔다.

“그래서 안 하고 있지 않나.”

그때 뒤에서 크흠, 하는 여인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안 갔나?”

“식사를 함께 하자는 청을 안 들어주셨습니다.”

황제가 피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궁전마다 책정되는 예산이 그대가 식사를 마음껏 할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적나 봐?”

“저는 음식이 아니라 폐하의 총애를 받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내 반려가 으읍.”

나는 황제가 미친 짓을 하기 전에 서둘러 그의 입을 막았다.

지금은 그나마 비공식적으로 후궁들의 적인데, 황제의 입에서 내가 유일한 반려라는 말이 나온다면 공식적으로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면 정말로 암살과 독살이 난무하는 삶을 살지도 몰라 나는 등 뒤로 소름이 끼쳤다.

그래. 내 목숨은 내가 지켜야지

“폐하.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주신다 약속하시면 손을 내리겠습니다.”

돌아보나 안 보나 모두가 경악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황제만을 바라보았다.

“손을 혀로 핥으시면 밤에 키스를 안 해 드리겠습니다.”

이번엔 황제만 들리게 조용히 말했다.

나의 손에 닿았던 황제의 혀가 쏙 들어갔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황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는 손을 내린 뒤 뒤돌아섰다.

“1후궁께서는 폐하와의 식사가 하고 싶다는 말씀이시죠?”

그녀는 나와 대화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지만 본인의 원래 목적을 언급하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우리 다 같이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후궁들 모두 함께요.”

“연.”

“뭐라고요?”

황제와 1후궁 둘 다 격한 반응을 내보였다.

“좋은 방법 아닙니까? 그렇다고 1후궁과 30번째 후궁만 함께 식사를 한다면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합니까? 뭐 한 명씩 함께 하는 거야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두 명하고는 또 다르지요. 저는 괜찮습니다. 폐하는요?”

황제는 이미 허락을 했던 터라 한숨을 쉬었지만 곧 허락한다고 했다.

황제가 허락한 마당에 1후궁이 싫다고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며 그리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나와 마주할 때마다 구겨지는 그녀의 치맛자락이 불쌍했지만, 그의 손아귀에 구겨지는 게 내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 듯 보여 우리는 잠깐 티타임이라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뿌린 폭탄이라 내가 거둬야 했다.

한 번도 다급함이 서리지 않았던 시종장의 포커페이스가 무너질 것 같아 실드를 쳐 주었다.

나의 말에 다시 표정이 돌아온 시종장을 보니 잘 대처한 듯싶었다.

“응접실로 모시겠습니다.”

과연 폭군 황제의 밑에서 지금까지 자리를 지킨 시종장답게 우리를 바로 안내했다.

유능한 그를 흐뭇하게 칭찬하며 나는 황제와 1후궁과 셋이 나란히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1후궁 마마와 차를 마시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요. 30번째 후궁께서는 폐하와만 함께 있었으니까요.”

괜히 말을 걸어 본전도 못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리하자 했다. 그대는 나에게 불만이 많은가 봐.”

곧이어 황제가 실드를 쳐 주었지만, 괜히 끼어들어 싸움을 더 부추길까 봐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황제의 미친 성정을 잘 알아서인지 1후궁이 공격을 멈추었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폐하께 그런 마음을 품겠습니까. 그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나온 말이니 용서해 주시지요.”

그녀는 황제 앞에서는 진짜 보는 사람도 흐뭇할 정도로 솜씨 좋게 말을 하곤 했다. 저런 것이 품위인가 할 정도로.

하지만 나와 대화할 때는 죽자고 덤벼드니 아쉬울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1후궁의 대답은 흠잡을 것이 없었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미친 황제한테는 좋게 들리지 않은 것 같았다.

서슬 퍼렇게 달려드는 것을 보면.

“뭐? 친해져? 연과?”

“폐하?”

1후궁도 놀랐는지 목소리가 떨려 왔다.

“감히 내 사람을 넘보는 것인가?”

황제의 호통에 1후궁이 눈물을 보였다.

“폐하, 저도 폐하의 사람입니다. 그러니 저한테도 그런 아량을 베풀어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감히 연과 그대를 같은 선상에 놓아 달라는 말인가?”

황제는 진심으로 어이가 없는 듯 물었다.

아니 같은 후궁인데 뭐가 다르다는 말이야? 물론 황제가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긴 하지만 그건 황제 입장이고, 대외적으론 절대 다르지 않았다.

“제가 못한 게 무엇이 있을까요? 말씀을 해 주셨으면 고쳤을 거예요. 그러니까 폐하. 한 번이라도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아량을 베풀어 주세요, 폐하.”

내가 아는 한 그녀는 단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

황제의 칼날 아래에서도 고고함을 유지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황제의 총애가 무엇이길래 저렇게 절박해지는지. 고작 정략결혼 따위에 마치 마음을 바란다는 태도인지 모든 것이 의문이었다.

“더 이상 착각하지 말란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해 주지. 그대들과 연은 같은 위치일 수 없다. 나는 연 이외에 그 누구도 내 옆에 둘 생각이 없다. 그리고 그대들이 안락한 삶을 사니까 잊고 있는 듯한데, 그대들은 인질이다. 그대들의 아비들이 목숨값으로 내놓은 인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그러니 기어오르는 것은 이쯤 하도록 해. 슬슬 짜증 나려고 하니까.”

그래. 이것이 황제였고 황제가 말한 인질이 내 위치였다.

나 또한 언젠가는 황제에게서 저런 말을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무섭고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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