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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안배-32화 (32/60)

32화

나는 내가 과연 저곳을 뚫고 지나갈 수 있을지 가늠했다.

하지만 딱 봐도 나 비밀이 많이 숨겨진 곳이요, 하는 곳에 괜히 들어갔다가 어떤 것을 보게 될지 두려운 나머지 뚫고 지나가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황제가 총애하는 후궁인 것이 내가 황제처럼 나대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황궁의 소문은 어느 정도 안다.

9후궁이 계속해서 어떤 방법이든 나에게 정보를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왜 그녀가 나에게 꾸준히 그런 짓을 하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그녀의 비밀을 본 것 때문에, 라는 것은 조금 이상했다.

보통은 누군가가 감추고 싶어 하는 일을 떠벌리고 다니진 않았으니까.

물론 악의적인 인간들이 있긴 했지만,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리했을 거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뭐 덕분에 방콕만 하는 나에겐 커다란 자원이 되고 있어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었다.

황궁에서 나의 소문은 한마디로 황제의 총애를 받는 후궁이었다.

하지만 남자였기에 후사를 생산할 수 없어 자리가 위태로운 반쪽짜리 총애 후궁. 그것이 내 위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궁의 절대자인 황제의 총애는 그 어떤 권력에도 가져다 대지 못할 만큼 두려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저 경비병들도 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몰라 곤란해하고 있겠지.

다른 후궁이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이곳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이 총애의 증거였다.

‘괜히 일 키우지 말아야겠다.’

나와 부딪칠 생각이 없는 이들에게 곤란함을 안겨 줄 만큼 내 성격이 모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나만 쓸 수 있는 황제 불러내기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페로몬이었다.

유혹하는 것은 아니되 황제에게 내가 이곳에 있다고 알리는, 그러니 어서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타다다닥.

곧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공격적이던 페로몬이 거둬들여지고 다급함과 갈급함이 느껴지는 페로몬이 나에게로 흘러 들어왔다.

황제구나.

“연?”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땀에 젖은 황제가 달려왔다.

피에 젖어 있을 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황제는 아주 멀끔했다.

“폐하.”

“자는 줄 알았는데?”

황제의 얼굴에는 미안함과 당황함이 서려 있었다.

“폐하가 없으니까 추워서 깼습니다.”

마음을 인정하니 저절로 솔직해졌다.

황제는 내 말에 얼굴을 붉혔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에 황제가 저 정도로 반응하니 나 또한 부끄러워졌다.

“미안하구나. 이제부턴 절대 자리 비우지 않겠다.”

당연히 그래야지. 앞으로 같은 일이 또 일어난다면 짜증 날 것 같았다.

그랬기에 솔직하게 내가 원하는 바를 나는 말했다.

“네, 그렇게 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밤에 깨는 것은 무척이나 피곤한 일입니다.”

황제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뭐 저렇게까지 미안해하니 이쯤에서 용서해 줄까 싶어 나는 손을 잡았다.

“아직 일이 남으신 게 아니면 돌아가실 거지요?”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단호함엔 일이 있더라도 없애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어 나는 황제의 손을 꼭 잡고 음침한 곳을 벗어났다.

“그런데 여긴 뭐 하는 곳입니까?”

황제의 눈이 둥그레졌다.

내가 직접적으로 물을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뭐, 불편한 화제라면 대답 안 하셔도 됩니다.”

뭐 나도 그 정도로 궁금하진 않았다.

혹시나 저 안에서 목을 몇 개 댕강댕강하는, 대외적으로 말 못 할 비밀의 감옥일 수도 있고, 괜히 알았다가 나중에 내 목숨도 왔다 갔다 할지 모르고…….

하지만 황제는 내 손을 꼭 잡더니 서서히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말 못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곳은 연무장이다.”

엥?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비밀의 감옥 같은 게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 왜 저렇게 음침한데?

나의 이러한 궁금증은 황제의 다음 말에 바로 풀려 버렸다.

“알려지지 않은 나만의 기사들이다. 이들은 제국이 아닌 나에게 충성하지. 그만큼 실력도 출중한 자들이고, 믿을 만한 자들이다. 하지만 밖으로는 내보낼 수 없는 이들이기도 하지.”

뭐 뻔했다. 신분을 감춰야 하는 자들일 것이다.

아니라면 명예가 없는 무명의 기사로 살지 않을 것이었다.

엄청난 것을 들었다.

황제의 비밀병기가 있는 곳을 알아 버린 것이니까. 과연 이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럼에도 황제가 이만큼 나를 신뢰하는 것은 너무나도 다행인 일이었다.

“저에게 이런 것을 말씀해 주셔도 됩니까?”

“당연하다. 그대는 내가 인정한 내 하나뿐인 반려이니까. 그대 것이기도 하지.”

지금의 황제는 나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어 하니까 저것은 거짓된 마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진짜로 준다는 것이 아닌 은유적인 표현임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황궁에는 내 것이라고 부를 만한 게 실제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황제의 말을 고깝게 듣지는 않았다.

황제가 늘 같이 있는 지금으로선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까 황제의 말이 막 편하게 들려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서둘러 대화의 주제를 변경했다.

“그럼 훈련하신 겁니까? 이 밤에요?”

“흠. 그건 아니고, 신전에 관한 보고를 좀 받느라.”

아, 아까 잘 넘어간 줄 알았는데 황제에게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저 진짜 그냥 한 말이었는데…….”

“그대가 처음으로 내게 원하는 걸 말했는데, 그거 하나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그건 내 자존심에도 문제가 있다. 그러니 그대는 부담을 안 느껴도 돼.”

말이 그렇지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어떻게 부담을 안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나오는 한숨을 억지로 참으며 부디 일이 잘 해결되었길 어디선가 듣고 있을 신에게 빌었다.

아, 맞다.

신!!! 신이 있었네. 계시만 내리면 되는 일을 내가 너무 어렵게 돌아왔나 싶어 이곳에 온 이후 처음으로 간절하게 신을 불렀다.

하지만…… 신은 묵묵부답이었다.

이딴 식으로 나오면 나도 모른 척합니다.

간절함을 담아 다시 협박의 메시지를 신에게 보냈다.

그때였다.

“내……가…… 못…… 이다.”

신의 목소리가 끊기듯이 들려왔다.

황제랑 있으면 신의 힘이 나에게 올 수 없는 것인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나는 혹시나 신이 쇼를 벌일 가능성을 염두에 둔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 왜 그러지?”

“아닙니다. 그저 피곤한 것 같습니다.”

그때 또다시 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연기…… 아니……. ”

‘진짜 연기 아니시라고요?’

“이상…… 전달…… 어려.”

‘전달이 어려우시다고요?’

알았으니까 힘 빼지 마세요. 그럼 계시는 통하신다는 말씀이시죠?

‘안 돼…… 미안…….’

뭐 저렇게 쓸모없는 신이 다 있지?

순간적으로 다 때려치울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신의 다급함이 바람과 함께 밀려오는 것 같아 그만두는 것은 일단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 황제가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대 상태가 이상한 것 같다. 의원을…….”

“아닙니다. 그저 피곤한 것뿐입니다.”

나는 이 야심한 밤에 자고 있는 황궁의들을 깨울까 싶어 황제의 목에 서둘러 팔을 둘렀다.

황제는 한숨을 쉬며 나를 꼭 끌어안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나는 얌전히 눕혀져 다시 꿈나라로 향했다.

아침에 일어나자 멀끔하게 차려입은 황제가 내 눈앞에서 서류를 들고 있었다.

“일어났나?”

“네, 혹시 안 주무신 겁니까?”

내가 놀라 묻자 황제가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주 잘 잤다. 그저 그대 옆에 있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저를 깨우시지, 괜히 불편하게 이러고 계십니까.”

“절대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그대와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으니까.”

뭐 그러시겠죠. 불편함은 오로지 아랫사람들 몫이니까요.

확실히 내가 그의 부하가 아닌 것에 감사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잠시 밖에 있는 이들에게 애도를 표한 뒤 일어났다.

“그럼 아직 식사 못 하셨겠습니다.”

“그대 깨어나는 대로 준비하라고 했으니 지금쯤 다 되었을 것이다.”

“금방 씻고 나오겠습니다.”

나는 서둘러 일어났다.

“그렇게 급히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도움이 필요하나?”

“씻는 것에 말입니까?”

“그대가 씻으러 가니 씻는 것에겠지.”

나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폐하께서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해 보신 적은 있으시고요?”

“음, 그대가 기절했을 때 닦아 준 적은 있다.”

뭐? 무슨 말이야?

“언제 말씀이십니까?”

“그날, 우리가 페로몬에 취했던 날, 그때 그대가 기절해 누워 있을 때 내가 닦아 줬다. 다른 이가 몸에 손대는 것이 너무 싫어서……. 그리고 그대 또한 몸을 씻는 것에 도움을 받는 것을 싫어한다 들었으니까.”

아, 그래서 깨어났을 때 몸이 지저분하지 않았구나.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혹시 기분이 나쁜 것인가?”

“아닙니다. 뭐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에 몸 닦아 준 것이 어때서요. 오히려 찝찝하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오늘은 정신이 살아 있으니까 제가 혼자 씻도록 하겠습니다. 아쉬워하지 마시고 하시던 일을 계속하십시오.”

“그래. 조심히 씻고 나오고.”

씻는 데 조심할 일이 뭐 있다고, 괜한 걱정 하는 황제를 뒤로하고 씻으러 갔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헤실거리다가 뒤통수를 욕조에 부딪칠 뻔했다.

황제의 염려가 현실이 될 뻔한 사실은 뒤로하고 말끔하게 씻은 뒤 사이좋게 식사까지 마치고 나서 여느 때와 같이 황제의 집무실에 자리했다.

“연, 아직 신전에 대한 신서는 구하지 못했다.”

“폐하, 정말 상관없다니까요. 바쁘신데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아니다. 사실은 신서는 못 구했지만 신전의 연락은 받았다.”

신전?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교류라니…… 너무 신기했다.

“뭐라고 왔습니까?”

“황실 방문을 요청한다고.”

우와! 대박 신기했다.

그런 내 맘을 알아차렸는지 황제는 싱긋 웃었다.

“오라고 하기를 원하나?”

“네, 궁금합니다. 오라고 하실 겁니까?”

“그러지, 뭐. 그대가 원하는데. 안 그래도 그러라고 했다. 올 때 태양의 신 솔의 역사서를 들고 오라고 말이다.”

사실 안 기다린다고 했는데 내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황제의 말이 매우 고맙고 기대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신전에서 사람들이 오는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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