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연회 기간 내내 신에 대해 생각하느라 하나도 즐기지 못했다.
그리고 연회가 끝난 후 신과의 접선을 유도했지만 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딜 간 거지? 이렇게 간절히 불러도 신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거의 처음이라 걱정이 되었다.
마지막도 대화가 끊겼었으니까.
“뭘 그렇게 생각하나?”
“그냥요. 조금 피곤한 것 같습니다.”
“그럴 만도 했지. 오늘은 일찍 잘까?”
황제는 은은한 눈빛을 보내면서 물었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건 이런 걸 보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피식 웃었다.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나는 그대가 어떻게 하더라도 그대의 말을 들어줄 것인데.”
큭큭큭큭, 나는 한참을 웃었다.
지금까지 걱정이 가득했는데 황제의 눈빛을 보니 뭐 어떠랴 싶었다.
“저는 키스하고 싶은데 폐하께서도 그러십니까?”
나는 제법 도발적인 눈빛을 보내며 황제의 목에 팔을 둘렀다.
당연히 하체를 부추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피곤하다며…….”
“네, 피곤합니다. 그만둘까요?”
나는 금방이라도 그만둘 것처럼 물러나는 제스처를 취했다.
당연히 황제는 그런 나를 덥석 품에 안아 들었다.
“아니.”
황제는 간단히 대답하고 그대로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눈은 흉포하게 이글대면서도 키스는 제법 부드러웠다.
너무 부드러워 내가 솜사탕이 되어 다 녹아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이성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키스를 퍼붓는 황제의 몸을 더듬거리며 겨우겨우 소리 내 물었다.
“키스만으로 만족하십니까?”
황제는 잠시 입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꼭 활활 타는 불꽃 같았다.
“그럴 리가.”
“그런데 왜 키스만 하시는 겁니까.”
“기다려 준 거였는데 그럴 필요가 없나 보군.”
대답을 하려던 나의 입을 황제가 다시 입술로 막아 버린 탓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어설픈 도발을 한 대가로 밤새 시달렸다.
내가 도중에 잠든 것인지 기절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아팠다. 확실히 황제와 몸을 섞는 것은 중노동이었다.
심지어 일어나니 황제가 없었다.
“이런 비매너적인 인간 같으니라고……. 일어났는데 옆자리가 비는 것은 무슨 매너야. 내가 남자였기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하…….”
그때 달칵하고 욕실 문이 열렸다. 황제였다.
설마 들었나 싶었는데 황제의 얼굴이 평온한 것을 보니 못 들은 것 같았다.
“정무 보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럴 리가. 나 때문에 기절한 반려를 두고 내가 나갈 리가 있나.”
자기 때문인 줄 아는 것을 보니 황제의 인성도 어느 정도 쓸 만해진 듯해 나는 속으로 칭찬을 해 주었다.
“움직일 수 있나?”
뭘 묻는지 모르겠다. 죽을 것만 같았으니까. 대답은 당연히…….
“아니요. 죽을 것 같습니다.”
황제는 미안한 얼굴로 나의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었다.
마지막은 농밀한 입맞춤이었지만 더 이상의 진도는 내 쪽에서 사양이라 밀어냈다.
“신전 것들과 만나야 해서 나는 나가야 한다.”
“오늘만 혼자 일 보러 가십시오. 나는 이곳에 있겠습니다.”
“하아……. 혹시 내가 안고 다니는 것은 안 되겠나?”
거절해야 하는데 그때 눈에 초점이 없었던 황제가 생각나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했다.
“언제 만나기로 하셨습니까.”
“오찬 때.”
나는 시간을 보았다. 그래도 아직 몇 시간은 있었다.
그동안 마사지를 비롯해 안정을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황제가 내 몸을 다른 사람이 주물럭거리게 가만히 둘 리가 없으니 방도는 의원을 부르는 것뿐이었다.
밤일을 견디지 못해서 의원을 부르는 것이 수치스러웠지만, 그렇다고 황제 혼자 보내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미친 폭군이라 불리는 것과 진짜 미친놈으로 보여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으니까. 아무리 황제가 신전을 배척한다고 해도 백성들에게는 태양신이 지엄했고, 황제가 미친 꼴을 보여 준다면 자칫 악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미친 황제라고 해도 백성들에게는 강대국으로 키운 황제였다.
그가 악이 된다면 황제의 자격, 즉 반란이 제기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쉽게 무너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황제에게 위해가 가는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음에도 방치할 수는 없었다.
“의원을 불러 주십시오. 방도가 나지겠지요.”
“그보다 빠른 방법이 있다.”
“어떤 방법입니까?”
나는 눈을 번쩍 뜨며 물었다.
당장의 고통을 없앨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었다.
물론 황제가 나에게 안 좋은 걸 시킬 리는 없지만, 점점 황제의 얼굴이 안 좋게 변해 가는 걸 보니 괜스레 찝찝해져 갔다.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러십니까?”
“신력이다. 말했잖나. 예전에는 신력으로 못 고치는 병이 없었다고. 근육이 뭉친 것은 빠르게 해결해 줄 것이다.”
“그런데 별로 내켜 하지는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거야…… 예전에는 신체 접촉 없이도 가능했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된대. 그만큼 뭐 남은 신력이 얼마 안 된다고 하더군.”‘
언제 저런 것까지 물어봤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아예 나를 앓아눕게 할 생각이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도발은 내가 했으니까 아니겠지, 라는 생각에 의심을 저 의식 저 너머로 보내 버렸다.
“뭐 폐하께서 함께 계실 거 아닙니까?”
“당연한 걸 묻는군.”
“그럼 괜찮을 겁니다.”
“나는 그대에게 나 아닌 다른 것이 닿는 것도 싫은데, 그것이 인간이라는 것에 더더욱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난다고 말하는 황제가 귀여워 보이니 나도 참 중증이었다.
“그럼 폐하께서 오늘 혼자 정무를 보셔야 합니다. 그것도 싫으시죠? 그리고 제가 하루 종일 아플 예정입니다만?”
“그러니까 내가 데리고 오긴 할 건데…… 그저 내 감정이 그렇다는 거지.”
어느새 자신의 감정을 입으로 표현하는 황제가 대견해 나는 황제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칼을 빼 들지 않고 아무의 목도 떨어지지 않고 이렇게 평화롭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몇 번 쓰다듬다가 팔이 아파 머리에서 손을 떼려고 하는데 황제가 내 손을 잡았다.
“더 해 줘. 그대가 쓰다듬는 것이 기분이 좋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이왕 아픈 거 다 아파 버리고 신관이 오면 한 번에 나아져야지.
그렇게 조금 있다 나는 신관에게서 신력으로 근육 치료를 받았고 생각보다 쌩쌩해진 몸으로 황제의 집무실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 정도의 신력을 가졌는데 왜 약하다는 말이 나오는지 나도 놀랐다.”
그렇다. 신력으로 치료한 시간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신력의 양에 따라, 부위의 넓이에 따라 치료 시간이 결정 나는데 나는 온몸이 아픈 상태였다.
고작 10분 남짓한 시간에 그걸 치료할 정도의 신력을 가진 신관이 남아 있다는 말은 못 들었다.
“뭐 신전에서도 황실과의 관계를 생각해 최고의 신관을 보낸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그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뿐.”
역시 황제는 달랐다.
그저 지나칠 수 있는 문제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모습이 나와 노닥거릴 때와는 딴판이었다.
저런 사람들이 나랏일을 하는구나.
“폐하. 교황 성하와 신관분들이 오셨습니다.”
“들라 해라.”
뭐야 교황이 왔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나는 당황한 얼굴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국의 태양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오는 데 불편함은 없었습니까?”
황제가 말을 높이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도 나름 자신이 먼저 손을 내민 것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있었다.
예전에는 황실과 신전의 영광이 똑같았는데 신전이 쇠약해지면서 신전의 영향이 약해졌으니까 신관들도 이러한 황제의 대접이 싫은 모양은 아니었다.
그때 교황이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황제에게도 눈인사만 했던 노인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때 교황의 입이 열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태양의 신 솔 님을 모시고 있는 교황 성 젤라피오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기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습니다. 폐하는 저쪽에 계십니다.”
“알고 있습니다. 방금 인사까지 했습니다.”
아…… 당황스러웠다.
그럼 혹시 나를 엿 먹이는 건가?
“그럼 왜 저한테 이렇게까지?”
“신의 음성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저희에게는 신의 대리인이십니다.”
하. 신 이런……. 신탁이 불가능하다며, 그런데 이걸 여기서 이렇게 깐다고? 황제의 얼굴이 볼썽사납게 구겨졌다.
내가 속인 건 아니다.
그저 말을 안 했을 뿐인데 왜 이게 이렇게 죄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아닌 척 당당하게 나갔다.
“신의 대리인이라니요. 무슨 큰일 날 말씀을! 대리인은 교황 성하이십니다. 저는 그저 30번째 후궁으로 폐하를 모시는 사람일 뿐입니다.”
머리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속으로 제발 교황이 눈치가 있는 사람이길 빌고 또 빌었다.
내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교황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제발 자신의 입이 방정이라 잘못 말한 것이라고 해 주세요.
“단장님, 신탁이 언제 내려왔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오늘 아침입니다, 성하.”
“그렇지요. 이 늙은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지요?”
“예. 신탁을 받으시는 것을 저의 성기사단장들과 신전에 남아 있던 신관들이 다 들었습니다.”
교황의 물음에 대답을 하는 사람은 딱 봐도 기사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절도가 온몸에 배어 있었다.
더더욱 말하는 내용으로 봐서 기사단장을 맡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하얀 성기사복이 너무 잘 어울리는 깔끔한 미남이었다.
황제가 퇴폐미가 있다면 앞에 있는 기사단장은 청순미가 흘러 서로 대조되는 얼굴이었다.
그때 교황이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지금까지는 신탁을 들을 수 있는 제가 신의 대리인 자격으로 있었다면, 지금은 신의 음성을 직접 듣는 이가 있는데 이 늙은이가 어찌 그 자리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그런 전례는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마마께서 신의 대리인이십니다.”
내 텔레파시는 교황에게 닿지 않았고 나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지읏 되었다,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