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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안배-41화 (41/60)

41화

“확실한 겁니까?”

지금껏 가장 중요한 걸 놔두고 쓸데없는 대화만 나누게 한 신려가 짜증이 났지만 그러도록 이야기를 주도한 것은 나이기에 짜증도 못 낸 채 물었다.

“제가 언제 공자님에게 허튼 소식을 물어 온 적이 있던가요?”

이젠 자신이 나에게 정보를 물어다 준 것이라고 숨기지도 않았다.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워 그랬습니다.”

나의 대답에 신려는 씩 웃었다.

그 눈빛이 왠지 섬뜩해 나는 눈을 슬며시 피했다.

“그렇지요. 너무 갑작스럽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성자가 나타난 타이밍이 황실과 교류를 시작한 바로 그때라지 뭐예요.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으신가요?”

너는 알고 있지? 라는 눈빛이었다.

사실 신전과 교류를 하는 자리에 황제와 유일하게 자리를 한 것이 나였으니까. 하지만 나 또한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글쎄요. 저도 처음 듣습니다.”

실망한 얼굴일 거라는 내 생각과 달리 신려의 표정은 처음 이 응접실에 있을 때와 똑같았다.

그러니까 매우 즐거워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래요. 뭐 모르신다니 어쩔 수가 없네요. 알게 되신다면 그때 다시 뵙죠.”

그녀는 그렇게 갑자기 들이닥친 것만큼이나 갑자기 가 버렸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 황제가 도착했다.

정말로 귀신같은 여자였다.

“다녀왔다.”

황제는 한 10년 만에 만나는 것인 양 반가운 얼굴을 했다.

그리고 나의 몸 이곳저곳을 만져 댔다.

뭐 분리 불안 걸린 개 같아도 나를 이렇게까지 좋아해 주니 나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

“가셨던 일은 잘되었습니까?”

황제가 멈칫했다. 하지만 곧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돌아갔다.

나에게 도대체 무엇을 숨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잘되었다. 하지만 몇 번은 더 다녀와야 할 것 같군.”

나보다 더 시무룩하고 아쉬운 얼굴이었다. 그러니 가지 말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황제가 전쟁만 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런데 폐하, 성자가 나타났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나의 질문에 황제가 짜증 난 얼굴을 했다.

나 뭐 잘못 말했나?

“그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내가 그렇게 할 테니까. 그저 내 옆에만 있으면 된다.”

아니 성자에 대해 물었는데 이 무슨 동문서답이란 말인가…….

나는 혹시 내가 질문을 잘못했나 싶어 되짚어 보았지만 잘못된 질문이 아니었다. 어려운 질문은 더더욱,

“혹 성자가 제가 아는 사람입니까?”

이번 질문엔 대놓고 한숨을 쉬는 황제였다.

“그대는 정말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내가 신전과 전쟁을 해서든 해결 볼 거니까.”

이쯤 되니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아니 내가 뭐 대단한 거 바랐냐고……. 그저 성자에 대해 물었는데 계속해서 몰라도 된다니, 이건 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작정하고 차갑게 대꾸했다.

“네, 저 같은 건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냥 궁 안에 처박혀서 신경 끄라는 말씀이시죠? 잘 알겠습니다. 오늘은 함께 밥 먹을 기분이 아니니까 폐하 혼자 다녀오십시오.”

황제의 말을 듣지도 않고 나는 바로 뒤돌아서 침대로 향했다.

보자 보자 하니까 사람을 보자기로 보는 것도 아니고…….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빠졌다.

“연…… 그대를 기분 나쁘게 할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뒤늦게 황제가 나에게 다가왔다.

“예, 그러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미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황제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허……. 지금 한숨이 나오는 게 누구인데, 내 앞에서 저런 태도란 말인가?

짜증이 나다 못해 분노까지 치밀었다.

나는 철통 방어를 할 기세로 이불을 꽁꽁 몸에 둘렀다.

나에게 다가오던 황제의 손이 이불 언저리에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머물렀다.

“사실은…… 신전에서 성자를 공표했다. 으드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신전에서 성자를 공표할 수도 있지, 그게 이까지 갈 일인가?

신전과 사이가 좋아진 덕분에 황실의 위신 또한 올라가고 있었다.

즉, 신전은 황실에 도움을 주고 있다.

“성자를 공표했는데…… 그게 그대야.”

“이름이 특이하네요. 그대라는 이름입니까?”

“아니…… 블리 연 가히 제나드 웰렌, 나 블랙온 제나드 웰렌의 반쪽 그대라는 말이다.”

뭐? 나? 이런 미친!!! 아니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성자가 되어 버렸다.

황제의 반응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쪼잔하게 화낸 것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그러면 그렇다고 말을 하셔야지, 제가 괜히 폐하께. 저를 무시하는 줄 알고……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다. 내가 솔직하게 말을 안 한 것이지 미안하다.”

훈훈하게 서로가 사과하는 이 모습…… 그간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것 같았다.

확실히 황제는 더디지만 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신전에서는 왜 성자를 발표했을까요? 아, 맞다. 언제 발표한 것입니까?”

“오늘.”

“예?”

“오늘 아침.”

아침이라면 성기사단장과 있을 때였다.

그러면 그도 알고 있었는데 나에게 말을 안 한 건가?

뭐 꼭 말을 해야 하는 의무는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당사자인데 허락도 받지 않고 저희들 멋대로 노는 건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그들은?”

정말로 궁금했다.

나는 분명 신의 대리인인가 뭔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

신도 뭐 딱히 신탁 같은 걸 내린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그럼 정말 나를 엿 먹이려는 의도인가? 이쪽이 훨씬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그대를 나에게서 뺏어 가려고 그러는 거지.”

저건 좀 너무 나갔다. 하지만 적당히 맞장구쳐 주었다.

안 그러면 또 이상한 쪽으로 대화가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뭐 그런다고 제가 갈 건 아닌 걸 아시죠?”

“그래. 안다.”

황제는 힘없이 대답했다.

아까는 화가 났었는데 또 이렇게 풀 죽은 모습을 보니까 안쓰러웠다.

한 번도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그의 마음이 얼마나 지옥일지 나는 결은 다르지만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마음의 지옥에는 나도 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제가 신전에 가는 게 싫으십니까?”

“그래. 왠지 그대가 그곳에 가면 안 될 것만 같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아…….”

“그래서 말인데요. 폐하, 그저 교황 성하를 황궁에 오라고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이번까지 안 만나 주면 또 다른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를 교황으로 발표할지도 몰랐다.

황제는 뭐 당연히 싫어하는 얼굴이었다.

“그대는 정말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때는 내가 정식으로 신전과 전쟁이라도 치를 테니.”

정말로 전쟁을 좋아하는 미친놈이었다.

가만……. 옛날에는 황실과 신전이 대등했다며. 그런데 폭군이 신서를 없애라고 했는데 신전이 과연 가만히 있었을까?

머릿속에서 아주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의 생각에 쐐기를 박는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에도 한 번 검을 들고 쳐들어간 적이 있다. 한 번 해 봤으니 두 번째는 더 쉬울 거다.”

하…… 역시 그런 거였다.

그러니까 신전과 황실은 이 황제가 있는 한 앙숙일지도 몰랐다.

지금도 틈만 나면 전쟁 소리를 해 대는 미친놈과 과연 친교가 가능하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전쟁은 안 됩니다.”

미친 전쟁광을 막는 방법은 내가 이렇게 제지를 해 주는 것이었다.

“나도 그냥 해 본 소리다.”

당연히 해 본 소리여야지 정말로 전쟁을 하러 간다면 신이 나를 통해서 황제를 죽일지도 몰랐다.

헉!!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신은 나에게 힘을 나누어 줄 수만 있다고 했는데 나는 왜 자연스럽게 몸을 뺏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야? 이지를 잃은 황제를 보기만 해서 그런가?

나는 올라오는 불안감을 애써 누르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압니다.”

“꼭 교황을 만나야 하겠나?”

“예. 그쪽에서 그토록 원하니 만나는 줘야지요.”

“그래…… 그렇게 하마.”

정말 싫지만 내가 원하니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도 황제만큼 싫었기에 그저 가만히 있었다.

황제의 몸이 슬금슬금 내 쪽으로 밀착해 왔다.

그리고 진한 나무 향이 났다.

그러고 보니 황제의 페로몬이 어느 순간부터 향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탄 나무 향이었다면 지금은 싱그러운 숲의 향이 섞여서 나고 있었다.

그전의 페로몬도 좋았지만 나는 싱그러운 쪽이 훨씬 좋았다.

유혹의 페로몬이 다가왔다.

나는 기꺼이 그 유혹에 반응했다.

다가오는 황제의 입술을 혀로 마중 나갔다.

내가 이렇게 조금만 반응하면 황제는 기어이 미친놈이 되었다.

허겁지겁 황제의 혀가 내 입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온 입 안을, 아니 목까지 다 헤집어 놓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러면 버겁긴 해도 마음속에 충만함이 차올랐다.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 다시 못 가질 것 같았던 사랑을 내가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차올랐다.

“폐하…… 하아.”

나는 숨이 쉬어지지 않아 황제를 불렀다. 이러면 황제는 잠깐 멈추어 주었다.

물론 나를 배려해서 입만 열어 두고 나머지를 물고 빨고 했다.

또한 이것이 신호라도 된 듯 그는 자신의 페로몬을 나에게 듬뿍 씌웠다.

온몸 구석구석, 이러면 솔직히 조금, 아니 많이 부끄러웠다.

직접적으로 온몸에 애무를 받는 것보다 페로몬이 구석구석 다가오는 것이 더 부끄러울 일이겠냐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랬다.

“연…… 그대는 정말로 나를 미치게 한다.”

황제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을 했다.

그의 눈동자 색이 더욱더 까맣게 물들어 갔다.

벌써 그때인가? 나는 검붉어지는 황제의 눈동자를 보며 생각했다.

하긴 그의 러트가 다가올 때가 되긴 했다.

이 말인즉슨 나 또한 히트가 올 것이라는 뜻이었다.

또 다르게 말을 하자면 나와 황제는 지금부터 이 방을 못 나간다는 의미도 있었다.

아…… 안 되는데 할 일이 많은데……. 교황도 만나야 하고, 맛있는 것도 먹어야 하고, 그리고 신전에서 보내 준 책들도 마저 읽어야 하는데…….

이러한 걱정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제의 행동은 점점 더 농밀해졌다.

그의 손이 어느새 나의 옷을 한 겹 한 겹 벗겨 내고 있었다.

나의 위에서 헐떡이는 황제를 보니 완전 야하게 보였다.

나는 거침없이 황제의 목에 팔을 둘렀다.

“연……. 나도 벗겨 줘.”

황제는 늘 내 옷을 벗겨 주었다. 자신의 옷도 물론 자신이 벗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리광이라도 부리는 듯싶었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그의 요청에 응해 주었다.

마지막 옷을 벗길 즈음에는 이성이 날아가 거의 잡아 뜯다시피 했다.

당연히 황제도 이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더 이상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

침대에서만큼은 기꺼이 짐승이 되기로 했다.

길고 긴 밤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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