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내가 임신했다.
황제에게서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왠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의 일이 되어 버렸다.
욕이 저절로 나왔다.
내가 아이를 낳음으로써 아이 아빠가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냐고!!
나의 이런 복잡한 마음과는 별개로 배가 고팠다.
계속해서 배가 고팠다. 정말 끊임없이 배가 고팠다.
어느 지경이냐면 자다가도 배가 고파서 나도 모르게 식당에 찾아가 아무거나 입에다 넣는 수준까지 왔다.
그러다 들켰을 때의 자괴감이란……. 당장 죽을까를 고민해 봤을 정도였다.
다행히 내 방에 음식을 충분히 넣어 준 교황의 배려 덕분에 지금은 이렇게 앉아 간식을 먹는 호사를 누렸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
“그저 이렇게 계속 먹고 자고 하다 보면 돼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신은 교황과 성기사단장이 세상이 떠나가라 운 이후 내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전보다 훨씬 빛나는 탓에 나의 눈 건강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신은 온종일 내 눈앞에서 알짱거렸다.
덕분에 심심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거 아느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요?”
“사실 오메가가 아이를 임신하면 아이의 아빠인 알파가 필요하단다.”
임신하면 태교할 때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줘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인가?
“아니, 보통 인간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려면 꼭 필요한 것이란다. 그저 남녀가 사랑에 빠져서 낳은 아이와는 차원이 다르지. 알파의 페로몬만이 아이를 편안하게 해 준다는 말이다. 그대가 지금 입덧이 안 멈추는 것도 그것과 관련이 있단다.”
그러고 보니 내가 먹는 입덧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많이 먹으면 안 좋은가?
“당연히 안 좋지. 그대가 먹는 것에 비해서 그대의 몸은 살이 찌지 않잖느냐. 그러면 먹은 것이 다 어디로 가겠느냐. 아기에게 가겠지. 가뜩이나 오메가는 아이를 출산할 때 매우 위험한데, 배 속에서 커다랗게 자라 버리면 과연 아이를 무사히 낳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구나.”
그러니까 신은 지금 내게 먹지 말라는 말을 돌려서 하는 것 같았다.
아니, 누군 먹지 말아야 한다는 걸 몰라서 먹냐고……. 안 먹으면 미쳐 버리겠는 걸 나더러 어떡하라고……. 순간적으로 짜증이 났다.
더더욱 이 사태를 진정시키려면 황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저보고 설마 황궁에 가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내가 관리자인데, 그대들이 말하는 신인데 큰일은 없을 거란다. 뭐 신력을 미친 듯이 쏟아부어야겠지만.”
새가 어깨를 으쓱했다.
결론은 자신의 자랑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황제에게 가는 것만 아니면 무엇이든지 괜찮았기에 신의 우쭐거림을 나는 묵묵히 들어 주었다.
“성자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교황의 목소리였다.
“예. 들어오셔도 됩니다.”
대답을 하자마자 문이 열리더니 교황과 성기사단장이 함께 들어왔다.
교황과 성기사단장이 함께 다니는 거야 이상하지 않지만, 늘 저렇게 붙어 다니는 것을 보니 꼭 세트같이 느껴졌다.
부자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네.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아주 좋아졌습니다.”
“다행입니다. 불편하신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최선을 다해서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애써 웃고 있지만 얼굴에는 초조함이 감돌고 있었다.
저번에 내가 던진 폭탄 발언 때문일 것이리라 짐작이 되었다.
“이런 일로 찾아오면 안 되는데 송구스럽게도 안 좋은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폐하께서 황궁으로 복귀하셨습니다.”
황궁으로? 그러면 전쟁은?
“일단 전쟁은 계속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자리를 비우신 지금은 그저 방어에만 주력을 다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좋은 거 아닌가? 멸망이 미루어졌다는 말이니까.
“좋은 거 아닙니까?”
나는 머리를 갸웃하며 물었다.
“예, 인류에게는 좋은 소식일 겁니다. 이대로 계속 있는다면 멸망과는 멀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성자님께는 안 좋은 소식입니다.”
내게 왜? 내가 이곳에 온 것 자체가 멸망을 피하기 위해서인데? 나에게 왜 안 좋지?
“폐하께서 황궁에 돌아오신 이유가 마마께서 없어진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아.”
나는 단말마만을 내뱉었다.
나 지금 도망친 거였지……. 깜빡 잊고 있었다.
충격적인 일의 연속이라 그저 하나만을 생각했다.
멸망…… 그랬더니 내가 황제에게 충격 먹고 이곳으로 숨어들었다는 것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지금 수도가 전쟁터보다 더 피가 낭자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아무도 함부로 밖을 나오지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금발을 가진 남성이라면 모두 황궁에 잡혀가서 모두 머리 색을 바꾸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황국으로 간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황제가 미친 거야 애초에 알고 있었다.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리고…… 나를 찾는 거는 거라면 저러다 말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을 모르는 인간이 사랑에 대해서 뭘 알겠나 싶어서…….
“그렇군요. 전장에서 피를 흘리지 않는 대신 자기 백성을 썰고 있군요. 제가 잡히면 저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겠지요?”
나는 해탈한 심정으로 내뱉었다.
“절대, 절대 그렇게 놔두지 않습니다. 성자님과 아기씨는 신전에서 지켜 드리겠습니다.”
성기사단장의 말이었다.
교황이 입을 열기도 전에 목소리를 높여 한 말이라 교황과 나 둘 다 놀란 눈을 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먼저 정신을 차린 교황이 흠흠하며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기사단장님의 말씀대로 될 것입니다. 감히 신이 사랑하는 이를 인간이 해할 수는 없습니다.”
뭐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이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이 신전 안에서야 신의 힘이 통할지 몰라도, 황궁 안에서는 미미했던 것이 사실이라 조금은 걱정이 들었다.
생에 미련이 남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황제에게 목이 썰려 나갈까 걱정이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홑몸이 아니니까, 나와 황제로 인해 세상의 빛을 한 번도 못 보고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냐고…….
그렇게 나는 황제에게서 제발 내가 잊히기를 바라며 조용히 숨을 죽였다.
그리고 나는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내 생각이 얼마나 안일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성자님…….”
교황이 내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왜요? 이번엔 제 눈 색과 같은 사람들을 잡아들인답니까?”
나는 수도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애도하며 물었다.
며칠 동안 황제에게 잡혀가 죽임을 당하는 꿈을 꾼 터라 기분도 좋지 않았다.
“예, 비슷합니다. 다만 그 범위가 전국이라는 것입니다.”
허……. 이러다 나라를 통째로 피바다로 만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교황도 딱히 무슨 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워낙 황제는 제정신이 아니니, 내가 그에게 찾아간다고 해도 달라질 것이 있을 리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도 막막한 것일 테니까.
“성자님이 오신 이후 저희들의 성력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갑자기 웬 성력 타령인가 싶었지만 나는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성기사들도 무력이 강해졌습니다. 저희들에겐 성력이 곧 힘이지요. 하지만 옛날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권력을 받쳐 주는 힘은 민심입니다. 황실은 지금 민심을 잃고 있습니다. 제국이 부흥을 일으키고 발전이 되었지만, 그에 비례하여 마음 편하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뭐 그렇기는 했다.
황궁은 폭력적이었고, 신전은 힘이 없어 황궁을 견제 못 했으니까. 하지만 힘이 돌아온 신전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랜 기간 힘이 없어서 민심을 잃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민심은 한 번 잃으면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꽤 필요하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민심을 다시 신전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그러면 황궁도 견제할 수 있고, 함부로 전쟁을 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애꿎은 사람들이 죽을 일도 없고, 사람들이 죽지 않는다면 어둠이 힘을 키울 일도 없을 것입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문제는 민심을 어떻게 가져오는가 하는 것이었다.
봉사야 신전이 늘 하고 있던 일이고……. 그럼 어떻게?
그때 교황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머리에 들어오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짐작하신 것이 맞습니다. 성자님을 정식으로 온 세계에 알리려고 합니다. 그러면 민심은 자연히 돌아올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성자님을 세상에 알려도 절대 위험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성자님의 생각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직 세상에 나오실 생각이 없으시다면 지금처럼 계셔도 됩니다.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알려 드린 것뿐입니다.”
그래 보였다.
하지만 방금 제시한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는 배를 두 손으로 꼭 안고 말했다.
나는 사실 내가 아이를 가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낳는 것은 물론 누군가 나의 아이를 낳아 준다는 것도 생각 못 했다.
나는 늘 불행을 몰고 다니는 아이였으니까.
나의 생일날 간 여행에서 사랑스러운 동생이 그렇게 된 것도, 지구에 핵이 터져 버린 것도, 다 내 불행 때문이라고 나는 줄곧 생각했다.
아니었다면 제가 배 아파 낳은 자기 자식을 우리 엄마는 버리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나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에게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진짜로 아이가 생기지 않았을 때를 말한 거였다.
지금 이렇게 내 배 속에 아이가 생겼으니 지금 나의 마음은 달라졌다.
원치 않은 아이였을지라도 처음으로 내 피를 이은 가족이 생겨나는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천륜을 나는 가져 본 적이 없었으니까.
당연히 나는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이젠 이 아이를 내가 지켜야 하니까…….
“아가야…… 아빠가 지켜 줄게. 절대 너를 잃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아가도 아빠도 힘내자.”
텅 빈 방 안……. 신도 지금은 이곳에 있지 않았다.
지금은 기도드리는 시간. 유일하게 신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곳을 향해 걸었다.
아이를 위해서 세상에 나아갈 시간이었다.
그래, 할 수 있다.
부모가 못 할 게 무엇이랴. 나는 다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