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기도실은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대기도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아픈 사람들은 교황에게 나가 신력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때 교황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멀리서도 교황이 당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대기도실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교황은 나의 마음을 알아본 듯 나를 마중 나왔다.
마침내 나는 교황의 앞까지 걸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속에서 ‘금발이네…….’, ‘신전에 있어서 잡혀가지 않은 것인가’라는 수군거림 또한 들려왔지만 나는 교황의 앞까지 씩씩하게 걸어갔다.
내가 그의 앞에 다다르자 성기사단장이 한쪽 무릎을 굽힌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성자님을 뵙습니다.”
“성자님, 어서 오시지요.”
장내가 순간 조용해졌다.
그리 오랫동안 없던 성자가 나타났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혹시 나는 자격을 증명하는 의식을 치러야 하나 고민했다.
솔직히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신이 나에게 걸어왔다.
“결심이 선 것이냐?”
“예. 이제 숨는 것은 그만하려고 합니다.”
신은 내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지금은 완전한 신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신전이 신의 영역이라는 말이 이래서 나온 것이구나 싶었다.
“그래. 그대가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면 그렇게 해야지. 큰 결심을 했으니 선물 또한 줘야겠구나. 그저 이름뿐이 아닌 제대로 된 성자가 되어야지 않겠느냐?”
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금빛이 섞인 새하얀 빛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신력임을 알고 있었다.
그 신력은 지금까지 교황이 나와 아이에게 써 주었던 신력과 차원이 다른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원초적인 것 같은, 정제되지 않은 본래의 색, 이것이 신력의 근원이라는 것을…….
“성자님 만세!!”
“성자님이 우리에게 오셨다.”
큰 목소리가 신전에 울려 퍼졌다.
나는 굳이 자격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신이 퍼포먼스를 크게 해 준 덕분이었다.
“신께서 우리에게 돌아오셨다.”
사실 떠난 적이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졌을 터였다.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나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부름에 신력으로 응답했다.
금빛이 온 신전을 덮었다.
이윽고 신전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자신의 몸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 다 나았어.”
“와, 이것이 신의 힘.”
다들 입을 벌린 채 환호했다.
교황과 성기사단장을 필두로 모든 사제들이 내 발밑에 엎드려 있었다.
그들만이 신이 방금 신전에 강림했었음을 느끼고 있었기에…… 이것은 그들이 바치는 신에 대한 경배 그 자체였다.
“성자가 나타났음을 오늘 신전은 온 세상에 공표합니다. 병을 앓는 이들, 장애가 있는 이들 모든 이들의 신전 출입을 허용합니다. 힘이 닿는 한 모든 이들을 돕겠습니다.”
나는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실었다.
숨는 것은 끝이 났다.
고작 한 사람의 마음에 기대서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전전긍긍하던 지난날은 지나갔다.
나는 이젠 앞으로 나갈 것이었다.
기도가 끝난 후 많은 이들이 나와 말 한마디라도 나누고 싶어 했지만 홑몸이 아닌 관계로 교황이 그들을 돌려보냈다.
“오늘 신력을 크게 쓰셔서 다른 때보다 더 조심하셔야 합니다.”
교황이 사람들을 돌려보내자마자 한 말이었다.
사실 크게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그랬기에 신력이 많아서 그러나 싶었다.
“그저 더는 신력을 행하기 어려우면 신력 고갈 현상이 나타났다고 봅니다. 즉, 신력이 적은 이들은 그저 그렇게 느끼지만, 신력이 많은 이들은 몸이 버티지 못합니다. 특히 마마께서는 원체 체력이 약하시니 더욱 힘이 들 겁니다. 신력은 본래 몸을 치료하는 힘이라서 당장 느끼시는 것은 없겠지만 저녁쯤이 되면 느껴지실 겁니다. 기력이 쇠한 것처럼 말입니다. 특히 신력으로 인한 기력 고갈은 치료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처럼 무리하게 신력을 쓰시면 안 됩니다.”
요컨대 신력은 몸을 해치는 것이 아니니 다른 것으로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뭐 지금 당장 느껴지는 것이 없었기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신께서 따로 하신 말씀은 없으십니까? 그때 이후로 신탁이 따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태양의 신 솔 님이 강림하신 것이 맞으십니까?”
모두가 그렇게 느꼈으니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직접 듣고 싶어 했다.
“예, 저에게 축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교황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는 뭐, 지구에서는 신을 믿지 않았고 이곳에서는 그저 신이 존재하는구나, 라는 사실만 알 뿐 저렇게까지 경외하지는 않았기에 교황의 반응이 새삼 신기했다.
“그분은 어떤 모습이셨습니까?”
그는 모습을 마음대로 바꾸고 있었기에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문뜩 가장 처음에 만난 모습이 떠올랐다.
신은 자신이 인간이었다고 했었으니까 그때 강림한 인간의 형상이 신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거인이었지만 얼굴은 한없이 아름다웠었다.
그러고 보니 신전에 있는 신의 형상 조각상과 많이 닮기도 했다.
“조각상과 비슷했습니다.”
나의 대답에 교황이 또 한 번 황홀한 얼굴을 했다.
“초대 교황께서 신을 한 번 뵌 다음 그 모습을 본떠 조각상을 지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도 딱 한 번 뵈었고 너무 빛이 나 자세히 그분을 뵐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각상을 지을 적에 계속해서 걱정을 했었습니다. 혹시나 그분의 형상을 잘못 구현할까 봐서 말입니다. 성자님께서 뵌 모습이 조각상과 형상이 비슷했다니 이제야 마음이 놓입니다.”
뭘 또 저렇게까지……. 교황은 정말로 기쁜 듯이 보였다.
“그나저나 정말로 몸에 이상이 있으면 꼭 말씀을 해 주셔야 합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 그러면 제가 이제부터 뭘 하면 되겠습니까?”
교황은 잠시 나를 쳐다보았다.
“일단 성자님은 몸부터 추스르시고, 내일부터는 신자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성자가 나온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니까요. 거의 성자는 설화에서나 종종 등장하는 인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꽤 고되실 겁니다. 하지만…….”
교황은 초조한 것처럼 입술을 달싹였다.
“말씀하십시오.”
“걱정은 황궁에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미 알려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금발을 가진 성자는 폐하가 아시는 한 한 사람뿐일 테니까요. 그러니 폐하께서 이곳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에 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맞다.
황제가 있었지. 뭐 언젠가는 만나겠지 싶었다.
당장 황제가 쳐들어올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올 거긴 하지만 미리부터 걱정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몸만 추스르면 됩니까?”
“예, 지금은 그렇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교황의 말대로 나는 일단 몸부터 추슬렀다.
그 말인즉 계속해서 맛있는 것들을 먹었다는 뜻이었다.
고기부터 시작해서 과일까지 귀한 거란 귀한 것은 다 내 입으로 들어갔다.
태어나서 이렇게 신기한 음식이 있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다.
황실에서도 충분히 좋고 귀한 음식이 많았지만,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만 먹다 보니 새로운 음식을 접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를 가지니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입맛이 되어 버려 닥치는 대로 먹다 보니 정말로 산해진미를 다 맛보고 있었다.
“그렇게 먹다가는 배가 터져 버릴 것이다.”
신이 말했다.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임신부에게 너무 많이 먹는다고 하는 것은 반칙 아닙니까?”
나는 입에다 음식을 가득 넣은 채 말했다.
“그렇긴 한데 그대는 너무 많이 먹으니까 걱정돼서 그런다.”
걱정은 무슨, 그저 놀리느라 그러는 줄 누가 모르냐고……. 나는 인상을 팍 쓴 채 그냥 귀를 닫고 먹었다.
이 정도면 입맛이 없을 법도 한데 이놈의 입과 배는 끊임없이 먹어 댔다.
그리고 나는 신력 고갈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온몸으로 느꼈다.
처음에는 몸이 으슬으슬 떨려 왔다.
“방 안이 추운 것 같지 않습니까?”
“내가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보느냐?”
“당연하지 않습니까? 살아 숨 쉬고 계시니까요?”
그 말에 신이 피식 웃었다.
“나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이는 그대밖에 없을 거란다. 역시 그대는 참으로 신기해. 물론 나도 그런 걸 느끼기는 하지. 그런데 지금은 내가 직접 온 것이 아니지 않으냐? 그러니까 이런 몸으로는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방이 춥지 않다는 것은 느끼지 않아도 알 수 있구나. 밖에 있는 인간들은 가벼운 옷을 입고 있고, 그대는 침대에 누워서 이불까지 덮고 있으니까. 그렇다는 말은 몸이 안 좋다는 말이네. 괜찮으냐?”
“춥습니다. 그런데 땀이 납니다.”
“식은땀이니까 그건 더워서 나는 것이 아니란다.”
그걸 누가 모르냐고……. 나는 춥고 땀나고 의식까지 흐려지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저 옆의 줄을 흔들어 주마.”
신이라면서 인간 하나를 안 아프게 못 해 주나?
“당연하지. 그대는 신력을 처음 쓰는데, 갑자기 많이 써 버려서 아픈 것이니까. 신력 때문에 아픈 것인데 신력으로 치료하면 그거야말로 웃긴 것이지. 그런 것을 보고 절대 밀리지 않는 방패와 모든 것을 찌르는 창에 대한 이야기, 바로 모순이라고 한단다.”
그렇게 말한 후 신은 침대 옆의 줄을 건드려 주었다.
“그 정도의 신력을 쓰면 안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나는 입을 열지 않으면 이가 달달달 떨려 와 신에게 계속 말을 했다.
“아니, 앞으로는 이날을 덮을 만큼의 신력도 쓸 수 있을 거란다. 물론 그대가 훈련을 많이 해야만 가능한 일이지. 오늘은 갑작스럽게 그대가 신력을 사용했는데, 많이 사용한 것이 문제였다.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느냐? 무엇이든지 처음엔 살살 조금씩 넓혀야지 좁은 곳을 갑작스럽게 넓히면 상하기 마련이지 않으냐?”
그러니까 앞으로 훈련만 하면 이번처럼 아픈 일은 엎을 거라는 말이군.
신이 떠드는 동안 누군가가 방 안에 들어왔다.
나는 혼미한 정신을 겨우겨우 붙들어 나를 돌봐 주러 들어온 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만 이대로 정신을 놓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지금 쳐들어온 사람이 다름 아닌 황제였기 때문이었다.
망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