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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안배-53화 (53/60)

53화

황제와 나는 앉아서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 오순도순 이야기했다.

황제는 정말로 내가 다른 사람 몸에 들어와 있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어쩌면 귀신이나 같은 말인데 그가 나를 꺼려 하지 않는 것이 몹시나 다행이었다.

“그러면 내가 공작에게 검을 들이밀었을 때 그대는 왜 화냈나?”

정말로 어이가 없는 물음을 던지는 것을 보니 황제는 악마에 의해 미친 것이 아니라 태생이 미친놈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거야 나이 지긋하신 분께 어린놈이 검을 올리니까 그랬습니다.”

“뭐? 고작 그런 이유로 화를 냈다는 말이냐?”

고작이라니……! 유교 보이에게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하지만 신분 사회에서 그런 것은 하등 필요가 없었으니 다른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또다시 생긴 가족이잖습니까. 그러니 제게는 나름 소중한 분입니다.”

사실 거짓은 아니었다.

공작에게 당신을 용서하지 못하겠노라 말했지만, 그건 몸의 진짜 주인을 위해서 그랬던 것이지, 공작에겐 개인적으로 고마움이 많았다.

영혼과는 별개이지만 지금은 내가 이 몸의 주인이니 피가 섞인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물론 정신적으로는 피가 섞이지 않았으니 가끔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어쨌거나 지금 현재는 가족으로 받아들인 상태였다.

“그래, 그대는 늘 그렇게 마음이 여리고, 늘 그렇게 포용을 하지. 덕분에 나도 버림을 받지 않은 것이겠지. 나 또한 공작에게 예를 다하마. 진정한 장인어른이니까.”

장인……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고, 배에 애까지 품었는데 새삼스레 장인이라는 말이 부끄러워졌다.

정말로 내가 결혼이라도 한 것만 같았다.

“몸은 어디 불편하지는 않고?”

그러고 보니 황제가 온 다음부터 먹는 입덧이 사라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먹는 입덧이었기에 말하기도 민망했다.

뭐 몸도 조금 더 편해진 것 같았다.

황제의 페로몬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예. 몸은 좋습니다. 폐하께서 계셔서 몸이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황제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대는 그런 말을 참으로 아무렇지 않게 하는구나.”

사실만 말했을 뿐인데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그가 부끄러워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폐하는 너무 부끄러움이 많아지셨습니다.”

그런 나의 무심한 말에 황제가 버럭 했다.

“내가 부끄러움이 많은 것이 아니다! 그대가 그런 말들만 하는 것이지. 그리고…… 화낸 것이 아니다.”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만 혹시나 내가 화가 났을까 봐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듣고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해 주십시오.”

사실 이곳에는 태명이나 태교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에 나는 황제가 무슨 헛소리냐고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는 나의 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전에 아이 따위는 원치 않는다고 하셨는데 괜찮으십니까?”

전에 분명 그랬었다.

하지만 뭐 노팅까지 한 건 황제이니까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 모순이 있었다.

“너무너무 좋다. 그대와 나의 아이인데 싫을 리가 있겠나?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피임 자체를 왜 안 했는데, 나는 그대에게서 아이가 생기는 것을 원했다는 말이다. 혹시나 아이가 찾아오지 않을 것을 대비해 말을 하지 않은 것뿐이니까.”

허…… 결론은 계획적으로 생긴 아이였다는 말이었다.

물론 나는 그런 계획을 세운 적이 없으니 황제의 일방적인 계획이었다.

뭐 나도 피임을 하지 않았으니 계획에 일부분 가담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런데 신은 어떻게 만난다는 건가? 전에 교황이 그대에게 신의 대리자 같은 말을 할 때는 헛소리라고 생각해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정말로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나?”

“예. 듣고 볼 수 있습니다.”

황제가 무언가 눈치를 보고 있었다.

“무엇이 궁금한 것입니까?”

“그대가 신과 가까이하는 것이 그대에게 해가 되는 것은 없는 것이냐?”

아, 자신처럼 될까 두려운 것이었구나.

“예. 오히려 득이 됩니다. 폐하와 제가 관계할 때도 신의 신력으로 감싸 주어 버겁지 않았습니다.”

황제가 큼큼거렸다.

침대 위에서는 배려를 안 해 주면서 이럴 때만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벌게진 얼굴로 한마디 했다.

“참으로 꼭 필요한 능력이군.”

뭐 나에겐 정말로 필요한 능력이었기에 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고, 모습을 드러낸 이는 교황과 성기사단장이었다.

“일어나셨군요. 불편하진 않으십니까?”

교황이 나를 보자마자 한 말이었다.

어느덧 나의 안부를 묻는 것이 이 신전에서는 일상이 되고 있었다.

“덕분에 아주 괜찮습니다. 기도는 잘 드리고 오셨습니까?”

“예, 많은 이들이 찾아오셨습니다. 나날이 신도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게 다 성자님께서 신전에 오신 덕분입니다.”

교황은 나에게 많이 미안해 보였다.

하긴 미안해하는 것이 당연했다.

뭐…… 신전과 민심이 성자를 지켜? 황제가 함부로 신전에 못 쳐들어와?

물론 나도 황제가 성자가 나타나자마자 곧장 쳐들어오리라곤 예상도 못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있는 곳까지 그렇게 다이렉트로 길이 열릴 줄은 몰랐다.

그런데 성기사단장의 안색이 좋지 못했다.

“단장님께서는 안색이 안 좋습니다. 혹시 무슨 일 있으십니까?”

도저히 묻지 않을 수가 없는 상태이기에 물은 것뿐인데, 옆 사람이 더욱더 안절부절못하고 낑낑거렸다.

“폐하는 왜 그러십니까? 큰일 보시고 싶으시면 화장실로 가십시오.”

그제야 황제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그리고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때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변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도 사과를 충분히 했다. 그러니까 조금만 봐줄 수 있겠나?”

도대체 무슨 일을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는 황제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런데 새삼스레 무엇을 사과했다는……. 아, 혹시?

“폐하께서 성기사단장님을 다치게 하셨습니까?”

황제의 얼굴이 더더욱 창백해졌다.

그제야 자신의 입으로 자진 납세를 했음을 깨달은 것 같았다.

“뭐 어떻게 하셨기에…….”

대답은 교황의 입에서 나왔다.

“막아서는 단장님을 칼로 베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력으로 겨우 살렸습니다. 물론 아직 상태가 안 좋습니다.”

교황은 고자질하는 아이인 양 나에게 말했다.

나는 황제를 돌아보았다.

“연, 사과를, 사과를 했다.”

“사과로 다 되면 법이 왜……. 하긴 법을 고칠 수 있는 위치에 계시니 상관없으려나요?”

일부러 싸늘하게 말했다.

나를 위해 참으로 열심히 해 준 사람들이다.

물론 황제를 막겠다고 큰소리친 것치고 제대로 막지는 못했지만, 저렇게 창백할 정도로 아픈 것까지 바라진 않았다.

“예, 사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괜찮습니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치곤 너무 안 좋아 보였다.

“제가 신력으로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너무 당연히 받아들여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아니 황제가 온 지가 언젠데 아직 치료를 안 받고 있었다는 말이야?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황제의 업보를 처리해야 했기에 서둘러 신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기사단장의 안색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원망의 화살을 교황에게 돌렸고, 교황은 그러한 나의 눈빛을 외면했다.

“혹시 저에게 보여 주려고 지금까지 치료를 안 받은 겁니까?”

교황이 외면했으니 당연히 당사자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깔끔한 사과가 돌아와 더는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따지자면 사실 황제가 먼저 잘못한 일이기에 나는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뭐, 나를 위해 다친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까.

“폐하께서는 이젠 칼을 함부로 쓰시지 않을 거지요?”

이참에 확답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 절대로 그대와 가까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겠다.”

뭐 저 정도의 확답이면 충분하다.

황제가 아직까지 그렇게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그의 눈빛을 보니 왜인지 이번까지는 믿어 주고 싶었다.

“두 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교황이 우리 둘을 보며 물었다.

많은 질문이 내포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도 아직 정해진 바가 없기에 나는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일단은 솔 님과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있는 사실만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교황은 나를 정말 신을 보듯 바라보았다.

이젠 익숙해질 만한데도 좀처럼 교황의 저런 모습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신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면 항상 신은 기도가 끝난 후 시간이 흐른 좀 다음에 돌아오곤 했다.

교황이 이곳에 있는 것을 보니 기도는 한참 전에 끝난 것 같은데……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이제야 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뭐, 일단 오신 것 같으니 대화를 해 봐야 했다.

“폐하도 일어났고, 저도 괜찮아졌습니다. 어둠을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허공에다 말을 하는 내가 살짝 미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곳은 모두 그런 것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신을 모시는 교황과 그를 모시는 성기사단장, 그리고 악마를 품고 있던 황제까지 모두가 보이지 않는 이들과 접하거나 접했거나 접하는 이들이었다.

“어둠은…… 일단 찾아봐야 할 것 같구나. 최악은 면하겠지만 그가 계속 숨어 지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도 찾아보긴 하겠지만 일단은 어려울 것 같구나. 뭐 황제처럼 오랜 기간 교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금방 찾기는 어려울 듯싶다. 그나마 행동반경을 알아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뭐 신은 전지전능하다고 하더니 뭔 신이 이렇게 아는 것이 희박한지 나는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너무 불경한 표정이구나.”

신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오래간만에 엄한 눈빛을 보냈다.

“죄송합니다. 그러면 그 행동반경이 어디까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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