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계 멸망을 굳이 막아야 하나요 (16)화 (16/90)

<제16화>

이하늘에게 있어 우선순위 첫 번째는 민간인들의 안전이다.

최가영 헌터는 영 못 미더웠지만 그 사람이 가진 보호의 분필은 믿음직스러웠다. 그것으로 어떻게든 민간인들을 구할 수 있을 터다.

그럼 여기서 이하늘의 우선순위 두 번째를 확인해 보자.

야근 안 하기!

그렇다. 대한민국 회사원이라면 모두 원할 그것.

그랬기에 최가영보다 먼저 운영자 넷을 찾아 대피시켜야 했다.

사실 어떻게 피신시켜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일단 먼저 만나기나 하자고 이하늘은 생각했다.

‘근데 저 사람 왜 저래?’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어느 성인 남자 한 명이 있다.

공처럼 쭈그린 채 어어엉 우는 소리를 내며 허공에 피아노 치듯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는 남자.

분명 시스템 운영자일 텐데 말 걸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퍼뜩 깨달았다.

‘아! 나 지금 남 눈에 안 보이잖아. 그럼 어떻게 운영자님들을 대피시키지?’

뒤에서 팔짱 낀 채로 가만히 있던 성신이 갑자기 뭐라 외쳤다.

【뭐 하느냐! 할 거면 빨리 하거라!〗

“아니, 하고 싶어도요. 말을 걸 수 없다니…….”

까요?

이하늘이 뒷말을 꿀꺽 삼켰다. 허공에 피아노 치듯 손가락을 움직이던 남자와 눈이 마주쳐서.

‘와, 진짜 눈 마주친 것 같아.’

그뿐인가? 자신을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남자의 울음소리가 뚝 멈춘다. 웬걸. 입도 벌어진다.

“누구세요……?”

이하늘은 놀랐다.

“어? 제가 보이세요?”

“어? 모노클 끼고 계시……잖아. 뭐야? 뭐예요? 혹시 그 신입이세요?”

남자는 동문서답을 했다.

남자가 어떻게 자신을 보는지 모르겠지만 이하늘은 일단 끄덕였다.

그의 입에서 나온 ‘신입’이라는 단어가 시스템 운영자 신입을 말하는 거라면 맞았으므로.

“네, 제가 그 신입…….”

“우와, 반가워요! 제 이름은 차한수예요. 시스템 운영자고, 그때 제가 보냈어요. 레바브 창!”

“네?”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에 이하늘은 뒤로 주춤 물러났다. 아까까지 울던 사람으로는 안 보였다.

“그, 기억 안 나요? 당신은 레바브가 원하는 인재상이 어쩌고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저쩌고. 그거 제가 보낸 건데?”

이하늘은 그제야 며칠 전 일을 떠올렸다.

게임하다가 키배 떴더니 시스템 운영자 자격이 주어졌다고 적혔던 레바브 창을.

“원래 시스템 운영자가 메시지 보낼 때 느낌표 여러 개 보내면 안 되거든요. 근데 제가 그날 너무 흥분해서……. 신입이 무려 10년 만에 최초로 뽑힌 거라. 그래서 느낌표를 남발했지 뭐예요, 하하하!”

차한수는 말이 정말 많았다.

‘우와, 감당 안 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하늘은 일단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 전 그것도 레바브가 보낸 줄 알았어요.”

“레바브는 복붙이 아니고서야 정상적인 한국어를 못 보내요. 아무튼 반가워요! 와하하! 채접하셨나 보네! 근데 왜 3D 버전으로 입장하셨지? 누구 채널에 접속했나요? 지금 헌터 누가 온 거예요?”

“최, 최가영 헌터요.”

“헉. 아, 그 사람 보기와 다르게 꼼꼼해서 이번에도 도망치기 영 어렵겠는걸. 근데 다른 사람들은요? 저 말고도 세 명이 더 휘말렸었는데. 그 셋이랑은 만났어요?”

우와, 진짜 말 많다.

그의 말을 반쯤 흘려들은 이하늘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다가 겨우 본론을 꺼낼 수 있게 되어 헛기침했다.

“아뇨. 근데 최가영 헌터 이야기 나온 김에 전해드릴 말이 있는데요.”

“네? 뭔데요?”

그때, ‘머리로 장난치는 자’가 끼어들었다.

【내 언약자 1분 뒤에 도착한다.〗

“예?”

“네?”

이하늘과 차한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이하늘이 하려던 말이 뭐였는지 차한수는 알아차렸다.

이하늘 역시 그가 알았다는 걸 눈치챘다.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뛰어요!”

그러나 그것은 지렁이가 꿈틀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뛴 지 1분이 딱 지나자마자 차한수는 최가영과 맞닥뜨렸다.

“히이이익!”

“왜 날 보고 놀랍니까. 불법 헌텁니까?”

【쯧, 쟤는 글렀다. 나머지 셋이라도 지키는 것이 낫겠구나.〗

사람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 헌터로부터 사람을 지켜야 하는 이 상황이 조금 이상했지만 이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셋한테 가요!”

이하늘은 또 자연스럽게 ‘머리로 장난치는 자’에게 다가가 팔을 뻗었다.

‘머리로 장난치는 자’가 그런 그녀를 어처구니없다는 식으로 바라봤지만, 이하늘은 성신의 표정을 볼 수 없다. 그의 몸은 전부 검은 홀로그램이었으므로.

쯧, 성신이 못마땅해하면서도 그녀를 안아 드는 순간이었다. 그가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어럽쇼.〗

‘어럽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마디에 이하늘이 물음표를 드러낼 때, 성신이 쯔쯔쯔쯔 혀를 차댔다.

【망했도다.〗

뒤이어서 하는 말이 망했단다. 황당해진 이하늘이 되물었다.

“망하다니요?”

【벌써 두 명이 잡혔다. 지금 가봤자 늦어.〗

이하늘은 이해할 수 없었다. 최가영은 저기 차한수를 붙잡아 뭔가 말하고 있는데, 대체 누구한테 잡혔단 말인가?

이하늘이 단번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몬스터는 아니죠?”

【아니다. 내가 싫어하는 새끼한테 잡혔다.〗

싫어하는 새끼?

위대한 성신이 싫어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이하늘은 의문을 갖다가도 미간을 좁혔다.

‘아니지, 이 성신이라면 싫어하는 거 엄청 많을 것 같은데.’

다른 의미로 뭐인지 알 수 없어졌다.

‘근데 잠깐만. 그럼 결국…….’

야근 확정인 거 아니야?

이하늘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곧 그녀는 성신의 팔을 붙들었다.

“성신님, 그래도 가요.”

【뭐라?〗

“그래도 가자고요. 두 명이 붙잡힌 거지 세 명이 붙잡힌 건 아니잖아요.”

남은 한 명이라도 구하자, 이거였다.

º º º

그 시각, 게이트에 휘말릴 때부터 차한수와는 떨어졌지만 셋이서 함께였던 시스템 운영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몬스터에게 쫓겨서?

아니다.

초반엔 분명 몬스터에게 쫓겼으나 지금은.

“×이이이바아아아알.”

헌터에게 쫓기고 있었다.

운동과 동떨어진 이들이었기에 그들은 달리면서 추임새처럼 욕은 할 수 있어도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대신, 채팅을 했다.

> 그룹 | 살기위해발버둥치는방(3명)

[ 3 ] 닉넴결정귀찮 : ♡♡♡♡♡♡♡♡

[ 9 ] 돈많은백수가꿈 : 저 헌터 누구예요?????

[ 9 ] 돈많은백수가꿈 : 아 엄친아구나

[ 3 ] 닉넴결정귀찮 : ♡♡♡♡♡♡♡♡♡♡

[ 7 ] 내가왜 : 나 먼저 갑니다요

[ 7 ] 내가왜 : 님들은 꼭 살아남아……☆

[ 3 ] 닉넴결정귀찮 : 야 이 ♡♡♡야 너 일부러 잡히는 거잖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