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계 멸망을 굳이 막아야 하나요 (21)화 (21/90)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


<제21화>

이하늘이 떨떠름하게 되묻고 나서야 하이레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퍼뜩 깨달았다.

만일 이 자리에 이세현이 있었다면 이미 다 넘어온 사람한테 멍청한 짓을 왜 하느냐고 등짝을 때렸을 것이다.

“저, 대표님. 대표님께만 말씀드리는 건데요.”

이하늘이 목소리를 죽여서 속삭이기 시작했다. 하이레가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았다.

옅은 갈색의 눈동자에 흔들림은 없었다.

“사실 저 헌터 관련된 거라면 다 싫어해요.”

“……압니다.”

왜냐하면 처음 본 날 너무나도 티가 났으니까.

하이레의 짤막한 답변에 이하늘이 ‘어, 그래요?’ 하고 되물으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다가 곧 웃음을 슬쩍 지우고 조곤조곤 말하기 시작했다.

“속물적이지만 제가 이 회사, 라고 말해도 되나? 하여간 이곳에 입사하겠다고 결정한 이유가 돈 때문이에요. 헌터들을 돕자, 뭐 이런 정의로운 생각 때문이 아니구요.”

이하늘이 잠시 침묵했다. 스스로도 왜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는지 후회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녀는 한 번 시작한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 일을 하게 되면 그만큼 헌터에 대해 많이 알게 되겠죠? 입사하겠다고 결심해 놓고 이런 말하면 우습지만 저는 그마저도 싫어서요.”

이하늘이 헌터를 싫어하는 이유.

헌터 시대가 도래해 모두가 헌터에 열광할 때, 유일하게 눈살을 찌푸리는 이유.

그것까진 말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꺼리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퇴직할 때 시스템 센터 관련 기억을 잃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아요. 오히려 쐐기를 박아줬달까요?”

“쐐기라면, 어디에 말입니까?”

하이레가 묵묵히 물었다. 단조로운 질문에 이하늘이 웃었다.

“오늘까지 고민했던 건데요. 아, 대표님께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어요.”

“괜찮습니다. 말해 주세요.”

하이레의 강직한 대답에 이하늘은 입술을 물다가 겨우 포부를 알렸다.

“저 1년만 다니겠습니다.”

이하늘은 고민했다.

돈을 많이 준대서 덜컥 하겠다고는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헌터와 깊게 관련된 일이다.

‘나중에 후회하는 거 아닐까?’

후회라면 이미 지겹게도 했다. 헌터라면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지긋지긋하고 끔찍하다.

그럼 역시 포기해?

포기하기엔 연봉 액수가 굉장히 컸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 돈으로 동생들에게 당장 일 그만두라고 한 다음 못 다녔던 학교를 다니라며 지원할 수 있을 만큼이었다.

돈.

우습지만, 동시에 우습지 않은 이유.

‘그럼…… 1년만 다닐까?’

그리하여 닿은 생각이 1년이었다.

적당히 이타적이고 적당히 이기적인 이하늘은 타협점을 1년으로 잡았다.

그럼에도 오늘까지 계속 고민했던 이유는 이건 본인이 정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만일 레바브 센터에서 계약 기간을 오래 잡으면 이런 고민을 한 게 무색할 정도로 센터의 뜻을 따를 예정이었다.

“근데 들어보니까 20년 근무하는 게 의무는 아닌 것 같고……. 심지어 기억도 삭제해 준다니.”

더할 나위 없었다.

1년 고생하는 대신 그 기간의 기억을 잃고 돈도 왕창 번다.

괜찮은 거래이지 않은가.

‘혹시 그런 불순한 생각으로는 입사할 수 없다고 하면 어떡하지?’

이하늘이 너무 솔직하게 말했나 싶어 슬쩍 하이레의 눈치를 살필 때.

그녀는 볼 수 있었다.

하이레가 웃는 것을.

“그렇군요. 응원하겠습니다.”

“네?”

전혀 예상치 못한 표정과 답변에 이번엔 이하늘이 당황했다. 하이레가 조용히 속삭였다.

“저는 사람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망설임이 없고 의지가 확고하다면, 옆에서 응원해 주는 편입니다.”

그리 말하고는 손을 뻗는다.

이하늘에 비해 굉장히 커다랗고 마디가 두드러진 하얀 손.

이하늘은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말을 더듬거리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모르는 것이 있다면 주저 말고 찾아와 주세요.”

듣기 좋은 목소리가 한 번 더 울리는 그 찰나.

이하늘 위에서 폭죽 터지는 듯한 효과가 펑펑 뜨더니 반짝거리는 창이 커다랗게 떴다.

―채널 접속(CHANNEL ACCESS)의 개념을 알아라(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