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계 멸망을 굳이 막아야 하나요 (26)화 (26/90)

<제26화>

제가 아는 누나 이하늘은 헌터를 안 좋아한다.

아니, 싫어한다.

그래, 싫어한다.

약 이십여 년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모를 수가 없었다. 이활이 괜히 힘숨찐 행세를 하는 게 아니다.

이하늘은 싫어하는 만큼 헌터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기피했고, 간혹 조금이라도 실수로 헌터와 관련된 정보를 접하면 웃다가도 정색하곤 했다.

어느 정도로 독하게 굴었냐면 한국사 과목에서 ‘각성자가 등장한 이후’부터는 일부러 배우지 않았을 정도다.

이하늘은 그런 사람이었다.

의도적으로 헌터를 멀리하는, 그래야 마치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구는.

‘근데 닉네임의 존재를 안다고?’

세계가 곧 멸망한다는 비밀을 들은 사람도 이 정도로 놀라진 않을 것이다.

이활은 끝끝내 대답하지 못했고, 결국 이 상황을 만든 거나 다름없는 유성우가 수습했다.

“아닙니다. 이 친구가 하는 짓이 개 같아서 저희 상사가 강아지 부르듯 바우라고 부르는 거랍니다.”

“아, 보우가 아니라.”

“네. 잘못 들으신 것 같군요.”

‘하는 짓이 개 같다니. 그것마저 활이랑 닮았네.’

이하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이활이 여전히 굳은 채로 있을 때.

“혹시…….”

조용히 이하늘을 바라보던 유성우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게이트 내에서 구조할 때 말고는 시민에게 좀처럼 말을 건네지 않는 그였음에도.

아쉽게도 유성우의 말은 끝맺어지지 않았다. 경찰차가 왔기 때문이다.

“경찰입니다. 관리국에서 연락받고 왔습니다. 관리국 특수진압과시죠?”

“아, 네. 빨리 오셨군요.”

유성우가 도로 산뜻한 목소리로 그들을 반겼다.

아무리 헌터 시대가 왔다지만 여전히 범죄는 경찰의 관할이었다. 다만 범죄를 저지른 게 헌터라면 말이 달라진다.

오늘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땐 범죄자 헌터, 그러니까 불법 헌터를 관리국에 데려가겠다는 수속 절차를 밟아야 했다.

“신고가 전혀 들어오지 않아 출동이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관리국 교섭이 목적이 아니었다면 저희도 늦게 알았을 겁니다.”

유성우와 경찰 둘이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창문을 연 채로 그것을 멀거니 지켜보던 이하늘은 다시 제 남동생과 똑 닮은 헌터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언제쯤 끝나나 기다렸다.

그 속에서 묵묵히 이하늘과 창 너머를 번갈아 보던 임여명이 그녀를 불렀다.

“김하늘.”

이하늘은 황당해서 그를 돌아봤다.

“이하늘이야…….”

“너 동생 있어?”

갑자기?

갑작스러운 질문에 더 황당했지만 대답 못 할 건 아녔기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임여명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는 무미건조한 새카만 눈을 굴려 창밖을 응시하다 그녀를 보기를 반복했다.

“왜 그래?”

“네가 제발 멍청한 짓을 안 했기를 바라는 중.”

대체 무슨 소리야.

이하늘이 미간을 좁히자 임여명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더니 덩달아 인상을 썼다.

“설마 집에 연락 안 해놨어? 2주 동안 못 들어간다고?”

“뭐어, 그렇지. 워낙 정신이 없었잖아.”

임여명이 골이 아픈 듯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연락할 휴대폰도 없었다. 그건 임여명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무슨 뒷말을 삼켰는지 눈치챈 임여명은 신경질적으로 패딩 주머니를 뒤졌다. 휴대폰을 빌려주기 위해서였다.

“아.”

그러나 망할 C급 헌터 때문에 휴대폰이 없었다. 느지막이 깨달은 임여명은 짜증스레 외마디를 뱉었다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몰라. 니가 알아서 해.”

‘뭔 대화야, 저건?’

그 시각, 두 사람의 대화를 빠짐없이 다 들은 이활은 말없이 얼굴을 구겼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기를 바랐으나 두 사람의 대화는 싱겁게 끝을 맺었다.

“저, 피해자분들과도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요. 진술서도 받을 겸.”

뭔가를 열심히 적던 경찰관 하나가 이활에게 다가왔다.

이활은 대답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꺼내면 안 됐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 있는 분들이 전부인가요?”

이활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이 있으면 알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특수진압과 과장이란 분이 다친 사람이 있다고 하셨는데, 누군지 아시는지.”

이활은 그제야 손만 뻗어 이하늘을 가리켰다.

임여명과 대화를 끝내고 다시 창밖을 멍하니 보던 이하늘은 갑자기 주목받아 눈을 끔벅거렸다.

경찰이 이하늘에게 물었다.

“어디 다치셨나요?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네? 저 안 다쳤는데요.”

“네? 하지만 이 헌터님께서…….”

둘의 시선이 이활에게 닿았다. 결국 이활은 경찰에게서 노트를 빼앗아 필담을 나눴다.

『헌터한테 머리채 잡힘요』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아주 날아가는 듯한 필체였다. 경찰이 그걸 열심히 해독했다.

그러나 먼저 알아본 건 이하늘이었다.

“머리채 잡혔긴 했는데 괜찮아요. 머리카락 좀 빠진 게 다인데요.”

“아, 아. 머리채군요, 이 단어가.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경찰이 다시 이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뭔가를 떠올린 듯 느닷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말하려던 것을 멈추기까지 하면서.

당연히 이하늘은 당황스러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일이냐고 되물으려는 순간.

경찰이 입까지 떡 벌렸다.

“혹시 서울시 마포구에 거주하시는 이하늘 씨?”

“……네?”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잠시 나오세요.”

경찰이 왜 자신의 이름을 아는지 의문이었다. 왜 저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는지도.

‘나, 나도 모르게 범죄를 저질렀나?’

이하늘은 과거를 되짚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경찰이 제 이름을 아는 이유를 설명해 줄 만한 건 없었다.

경찰을 따라 버스에서 좀 떨어진 거리에 도달했을 때, 드디어 그가 이야기를 꺼냈다.

목소리가 굉장히 작았다.

“동생분들이 이공 씨와 이활 씨죠?”

“네? 네. 어떻게 아세요?”

이하늘도 덩달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가 덜컥 놀라 호흡을 멈췄다.

“걔네한테 무슨 일이 생겼어요? 또 게이트에 휘말렸나요? 아니면, 아니면…….”

이하늘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찾았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 건 없었다. 왜냐하면 휴대폰을 잃어버린 지 오래니까!

‘멍청이 같아. 왜 안일하게 굴었지? 잃어버린 날 바로 살걸. 쉬는 시간에 나와서 사도 됐었잖아!’

이하늘이 덜덜 떨리는 두 손을 꼭 쥐었다.

“어, 어, 어디로 가면……. 어느 게이트에…….”

“아니, 아니, 아닙니다. 진정하세요. 그런 게 아니에요. 두 분이 신고하신 겁니다.”

“네? 두 분이라면 영, 아니 공이랑 활이가요?”

“네.”

“뭘…… 신고해요?”

“가출 신고와 실종 신고…… 말입니다.”

이하늘은 경찰의 말을 단번에 이해할 수 없었다.

가출? 실종?

오랜만에 듣는 단어에 일단 진정한 이하늘이 무미건조하게 대꾸했다.

“실종 신고는 이미 십 년 전에 했는데요. 무슨 착오가 있는 것 같아요.”

“네? 아뇨. 두 분이 이하늘 씨 실종 신고를 했다고요. 원래 성인 실종 신고가 간단히 되는 게 아닌데 하도 두 분이…….”

이하늘은 이제 ‘네?’ 하고 또 되물을 수가 없었다. 다만 이해하기를 포기한 것 같은 얼굴로 경찰의 말을 흘려들었다.

한참 후, 찬바람이 불어 마른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힘없이 흔들리는 나뭇가지, 마찬가지로 힘없는 어조로 이하늘이 물었다.

“제가 실종됐다고요……?”

º º º

뒤처리가 끝났다. 유성우는 불법 헌터를 끌고 가기 위해 경찰과 이야기를 끝내고 이활에게 다가갔다.

“어, 피해자분들은 다 가셨네요.”

버스가 텅 비었다. 버스 기사님만이 길거리에서 흡연하고 있었다.

이활이 한심하단 어조로 삐딱하게 대답했다.

“눈이 있으면 아는 거 아니냐?”

“음. 이젠 말하는 걸 보니 확실히 아까는 말하면 안 됐던 게 맞나 보네. 혹시 그 여성과 아는 사이예요?”

이활은 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간을 확인하며 혀를 찼다.

“최가영한테 이번 일 잘 끝내면 휴가 하루 연장해 달라고 했거든. 그러니까 나 먼저 간다.”

“무슨. 일은 마저 끝내고 가시죠?”

“바빠.”

“흐음.”

유성우가 생각에 잠긴 듯 이활을 바라보자 끔찍해하는 반응이 곧바로 튀어나왔다.

“뭘 꼬나봐?”

“이것만 알려줘요. 그 여성분과 아는 사이 맞죠?”

왜 이렇게 집요하게 굴지.

이활은 확 밀려오는 짜증에 한 가지를 새삼스레 깨달았다.

‘아, 이 새끼 원래 집요한 새끼였지.’

이활이 속으로 욕하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유성우가 재차 물었다.

“이름이 뭔지 알아요?”

“야.”

이상했다.

확실히 유성우는 집요한 사람이 맞았다. 한 번 문 것은 절대 놓지 않는, 자신만큼이나 추적에 능한 남자였으니까.

문제는 자신이 한정적인 주제에 화를 내는 것처럼 유성우도 물고 늘어지는 대상이 한정적이라는 거다.

예를 들어 불법 헌터 같은 것.

그러니 이활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자식이 왜 이하늘에게 관심을 갖는지.

“왜 이렇게 캐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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