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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화>
시스템 운영자는 열 손가락을 놀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정확히는, 헌터가 무언가를 행하면 시스템 운영자가 친히 ‘아이고. 헌터님, 지금 무슨무슨 행위를 하셨군요^^’ 하고 메시지 창으로 알려준다.
즉.
‘선후가 뚜렷해.’
헌터가 게이트를 닫아야 시스템 운영자가 게이트가 닫혔다고 메시지를 보낼 수 있고.
헌터가 코어를 손에 넣어야 코어를 습득했다고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이하늘의 초점이 흐려졌다. 좀 전에 들 듯 말 듯했던 기발한 생각이 드디어 떠올랐다.
‘이 선후를 뒤바꾼다면? 그러니까.’
시스템 운영자가 먼저 메시지를 보내면?
아직 헌터가 코어를 습득하지 않은 지금, 습득했다고 메시지를 보내면 어떻게 될까.
바람처럼 목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인과(因果)가 뒤틀리지.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게 기본 규율인데 결과를 먼저 도출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닌가 봐요.”
【아. 쓸데없는 설명은 됐으니 닥치고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나 말해라?】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성신은 그녀의 의중을 꿰뚫은 것처럼 답해 주었다. 그것도 듣고 싶은 말을.
【어떠하든 네가 하고 싶다면 해야지. 불가한 것도 가능케 하는 게 네 손끝인데.】
그 말이 어딘가에 시작을 알렸다. 숨결 같은 바람이 불고 청아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
숨이 트인다.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더위가 부서져 내렸다.
걷잡을 수 없이 환해지는 시야. 무겁게 짓누르던 압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하늘은 반사적으로 어딘가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손을 잡아주는 조심스러운 바람이 있었으니.
【능력을 십분 활용 못 하는 나의 주인공.】
【이런 모습도 꽤 흥미롭고 오래 지켜보고 싶다만.】
【또 너를 찾아다니기엔 내 참을성이 이제 바닥나서 말이야.】
바람이 그녀의 손을 멋대로 허공을 가르듯 움직였다. 그 손끝을 따라 자취처럼 허공에 새겨지는 푸른 물결.
정확히는 푸른 자판.
【그러니 하고 싶은 대로 해. 여기서 무너지지 말고.】
정체 모를 낯선 자의 불친절한 속삭임이다. 경계해야 했다.
그러나 이하늘은 손아래에 위치한 익숙하기 짝이 없는 자판을 보자마자 바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될지 안 될지.
이게 맞는지 안 맞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했으니 해야 했다.
º º º
〔당신의 언약성, ‘쓸데없는 악의 군주’가 꼴이 가관이라며 상냥하게 비웃습니다.〕
네 번째 S급이라고 알려진 헌터, 무궁. 본명 이공.
그는 제 언약성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만히 벽에 박힌 채 머리를 굴렸다.
‘차라리 여기서 죽은 시늉을 할까.’
거대한 악마의 덩치 때문에 제상 위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팔만 빼서 악마의 가슴을 꿰뚫었다.
가뿐히 뚫린 구멍 너머로 드디어 제상이 보였다. 그 위에 있는 자신의 하나뿐인 누나도.
쾅쾅쾅―
이지를 잃고 폭주로 인해 공격성만 남은 악마는 가슴이 뚫려도 주먹을 휘둘렀다.
이공은 일부러 피하지 않고 맞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어차피 누나는 내 등급 따위 몰라. 여기서 내가 죽어도 누나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겨우 몬스터를 죽여서 코어를 습득했는데 아쉽게 숨이 다해 죽은 거로 하자.
아무리 이 상황을 잘 넘긴다 해도 제 누나 이하늘은 쉽사리 의심을 거두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이름 모를 헬멧 헌터는 이 자리에서 죽은 거로 알게 한 뒤, 이공의 모습으로 그녀 앞에 나타나면.
‘의심을 거두겠지?’
사실 이공은 쌍둥이 남동생 이활과 다르게 그렇게까지 헌터라는 사실을 숨기려 노력하지 않는 편이었다.
왜냐하면 이공은 아니까.
이하늘이 헌터를 그렇게까지 혐오하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그저 10년 전에 받은 상처의 원인을 ‘한 사람’에게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사람이 ‘소속된 곳’에 돌리는 것뿐이다.
〔당신의 언약성, ‘쓸데없는 악의 군주’가 생각과 행동에 모순점이 존재한다고 친절하게 조롱합니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팔 년 동안 숨길 필요 없이 고백하지 그랬느냐고 묻습니다.〕
그건, 이활이 너무 애를 써서.
“장단 맞춰준 것뿐이야.”
이공이 드디어 움직일 준비를 했다. 게이트 폭주화로 인해 줄어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게이트 폭주화.
게이트에 진입하고 나서 받는 퀘스트를 제한 시간 내로 완수하지 못할 경우 받는 벌칙.
그러나 아주 가아끔, 제한 시간이 남아 있는데도 폭주할 때가 있다.
보통 등급이 변하고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들며 살아 있는 몬스터들이 거세게 날뛴다.
그야말로 폭주다.
‘그런데.’
이공은 좀 전에 게이트가 폭주하면서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정보 창을 떠올렸다.
스크랩―『폭주한 악의 지하굴』
∙이¿¿―그¿봤자 너 또한 악이거늘.
∙등급―¿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