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학교 출석 인정. 회사는 무급 휴가로 인정해 주고 무려 밥도 준단다. 게다가 나라에서 지원금도 주니 사실상 무급 휴가도 아니다.
그뿐인가? 센터에는 없는 게 없었다. 각종 오락 시설, 빵빵한 와이파이, 배달 음식도 되고 뭐…….
보호 센터에 가면 살쪄서 나오는 게 당연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각종 검사를 받아야 했다. 각성을 했는지 안 했는지.
보통 게이트에 휘말려 레바브 시스템의 눈에 들어 각성자로 선택받기까지 2주가 걸린다. 2주 후에는 레바브의 눈에 안 들어왔다고 봐도 무방.
그렇기에 격리 기간이 2주였다.
그래도 2주 격리해서 감시한다니 너무 심하지 않나요, 라고 묻는다면.
그도 그럴 게 한국엔 어설프게 힘숨찐하려는 자들이 너무 많았다.
각성해 놓고 했다고 말을 안 하는 자들이 그 예시다.
언젠가 힘숨찐에 질려버린 특수진압과 과장 최 모 씨(男)는 생방송 인터뷰에서 대놓고 이렇게 말했다.
“대체 각성한 사실을 왜 숨기는 겁니까? 힘숨찐 놀이하고 싶어서? 아니, 힘 숨겨도 좋아. 대신 익명으로라도 나라에 기여하라고. 레바브가 준 닉네임 시스템 적극 활용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하, 이해가 안 가네. 겉보기에는 일반인이지만 사실 엄청난 힘을 숨겼다, 이게 왜 멋있어 보이는 겁니까? 각성자 등록하면 나라에서 돈을 뜯습니까? 아니잖아. 그 반대잖아. 아니면 세금 때문에 그럽니까? 세금은 일반인도 내요. 사실 내 주변에도 힘숨찐이 있는데 걔네는 그래도……. 잠깐만요, 이것만 말할게요. 힘 숨기는 거 불법입니다. 좋게 말할 때 관리국에 와서 등록하세요. 애초에 힘 숨기려고 설치는 사람들 그렇게까지 숨길 만 한 힘도 없잖―”
[화면 조정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무튼 힘을 숨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정부와 관리국 때문에 보호 센터는 지금까지 잘 굴러가고 있었다.
오늘도 그렇다.
게이트에 인생 최초로 휘말린 이하늘은 보호 센터에서 눈을 떴다.
“이름 이하늘 씨. 나이는 24살. 지금까지 보호 센터에 입소하신 기록이 없군요. 게이트에 처음 휘말리셨나 봅니다.”
“네. 저기, 근데 저 말고 제 동생도 있을 텐데…….”
“일단 등록부터 마치시고. 제일 늦게 깨어나셔서 등록이 아직이라서요. 우선, 다니시는 회사나 학교가 있으신지? 있다면 퇴소하실 때 보호 센터 입소 확인 증명서 받아 가셔야 합니다.”
보호 센터 직원에게서 각종 설명을 들으면서 묻는 말에 대답하던 이하늘은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정오가 넘은 시간이었다.
이른 아침에 게이트에 휘말렸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정오가 넘었다는 건, 오래 기절해 있었다는 뜻이었다.
이하늘은 가늘게 한숨을 쉬며 아직도 착용하고 있는 모노클과 이어폰을 빼려다가 직원이 이상하게 볼까 봐 관뒀다.
대신 오른쪽 구석에 뜬 붉은 알람 표시를 슬쩍 보았다. 쌓인 톡이 또 세 자릿수가 넘었다.
어차피 나만 보일 텐데 볼까?
“어?”
갑자기 직원이 이하늘의 눈을 가리켰다. 이하늘이 놀란 눈을 했다.
“왜 허공을 보시지? 각성하셨나요?”
“아, 아뇨?”
각성 사실을 숨기는 자에게 질려버린 감시자다운 눈썰미였다. 이하늘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숨기셔도 어차피 검사받으시면 다 나옵니다. 각성했는데 그 사실을 숨기는 건 범죄예요.”
아니, 헌터가 아니고 시스템 운영자라서요.
사실을 말할 수도 없는 법이었다. 이하늘은 계속 고개를 저었다.
“헌터 아니에요.”
“흠.”
직원은 대충 넘어가겠다는 식으로 굴며 마저 설명했다.
“각성 여부 검사는 오후 다섯 시에 받을 겁니다. 그전에 가족한테 연락하셔서 2주 동안 생활에 불편하지 않도록 생필품 부탁하시는 게 좋아요.”
“네, 네…….”
“면회는 언제 어느 때고 가능하시지만 1층에서만 할 수 있습니다. 2층부터는 마력 감지 센서가 있어서 외부인이 올라오면 저희가 혼동할 수 있거든요.”
마력 감지 센서가 뭔지 알 턱이 없는 이하늘이었으나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특히 지인이나 가족 중에 헌터가 계시면 반드시! 기필코! 1층에서만 면회하셔야 합니다. 장난으로라도 2층 올라오시면 난리 나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하늘은 무심코 주변에 헌터가 없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동생 이공을 떠올렸다.
더불어 기절하기 직전에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도.
이하늘은 고개를 내려 자신의 손을 보다가 무심코 무릎 위 허공을 살짝 가로질렀다. 그러나 손을 따라 새겨졌던 푸른 물결은 더는 없었다.
마치 꿈처럼.
“입소하시는 동안 이 팔찌 빼시면 안 되고, 팔찌에 적힌 번호가 머무실 호실이니 확인하시면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이하늘은 드디어 병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게이트에 휘말려서 기절한 채로 보호 센터에 온 사람들을 위한 병실이라나.
‘시설은 참 좋네…….’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하늘이 병실에서 나오자마자 모노클과 이어폰을 빼려는데.
“이하늘.”
벽에 기대고 있었는지 벽에서 몸을 떼며 그녀를 부른 이가 있었다. 이활이었다.
휴대폰도 없는데 어떻게 동생을 찾아야 하나 막막했던 이하늘이 그를 반겼다.
“활아! 머리는? 괜찮아?”
“어어, 다 나았어. 다 나았는데……. 나 머리 깨졌던 거 알고 있었네, 쯧.”
그렇게 갑자기 기절했는데 어떻게 모르겠냐고 힐난하는 눈으로 쳐다보다가 이하늘이 손을 뻗었다.
이활이 익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손이 무리 없이 뒤통수에 닿게끔.
“기절할 줄 몰랐어.”
그러고는 미안하다는 듯이 속삭인다.
이하늘은 그의 뒤통수에 상처가 있는지 만져보다가 한심하다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피를 그렇게 흘리고?”
“그건 내 피가 아니었다니까.”
“근데 그 몬스터들은 대체 누가 죽인 거야?”
“…….”
“그나저나 정말 다 나았네. 그 헌터가 준 물약 때문인가 봐.”
이활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헌터? 혹시, 어, 검은 헬멧 쓴? 만났어?”
“응. 알아? 어떻게 알아?”
“그…… 뭐냐. 네가 본 몬스터 시체. 그거 그 헌터가 다 죽인 거거든. 응.”
아닐 텐데.
헬멧을 쓴 헌터는 임여명과 자신이 담당하는 성신의 언약자다.
그리고 임여명은 자신이 이활과 만나고 나서야 말했다. 헌터가 진입했다고.
그러니 시간대가 안 맞는다.
‘다른 헌터가 있었나?’
이하늘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관심을 꺼버렸다. 다른 헌터의 유무는 알 바 아니다. 현재 그녀의 최대 관심사는.
“그런데 나 그 헌터 좀 만나보고 싶은데. 혹시 센터에 있나?”
바로 헬멧 쓴 헌터다.
이활이 물음표 가득한 얼굴을 했다.
“엥, 왜?”
“뭔가…….”
“뭐가.”
“뭔가 이공 같아.”
“…….”
이활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으나, 이하늘은 동생이 그러는 게 한두 번도 아니라 뒤로하며 복도를 걸었다. 천장에 달린 안내판을 보니 앞쪽 코너를 돌면 바로 1층 로비였다.
‘일단 이공 좀 부르자. 그리고 모노클로 헌터 여부 확인하고…….’
확인하면? 어쩔 건데?
만약 동생이 헌터면 어쩔 건데.
이하늘이 걸음을 멈추고 목덜미를 문질렀다.
그러게. 영이가 헌터면 어쩔 거야. 헌터가 되는 게 뭐, 자유 의지도 아니고.
만약 그 헬멧 헌터가 영이라면 그는 각성 사실을 숨겼다는 게 된다.
그 이유가 뭐겠는가.
‘내가 헌터라면 질색을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저 때문에 비밀을 만들게 한 거나 다름없었으니.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나. 어쩌면 영이가 아닐 수도 있는데. 활이 닮은 헌터도 있었잖아.’
“야, 야. 야, 이하늘. 잠깐만.”
갑자기 이활이 그녀를 부르며 다가왔다.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가 눈가를 찡그렸다.
“그 헌터 닉네임은 알아?”
“알아. 무궁이래.”
“……바, 밝혔어? 닉네임을 밝혔어? 아니, 왜 밝혔지?”
“밝힌 거 아니야. 어쩌다가 알게 된 거야.”
“어쩌다가……?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왜 이러는 거야?
이활의 저의를 알 수 없어 이하늘이 그를 미친놈 보듯 쳐다볼 때.
이활은 자신이 이상하단 것을 깨닫고 헛기침하며 진정했다.
“게이트 닫은 헌터는 보호 센터에 안 와. 바로 관리국 가서 보고하는 게 원칙이거든.”
“그래? 잘 아네, 너.”
“…….”
“혹시 그것도 일반 상식이야? 모른다고 하면 또라이 취급받을 정도로?”
“뭐야. 어느 개×끼가 너보고 또라이래? 그래?”
자신을 또라이라고 부른 임모 씨를 떠올린 이하늘. 그녀는 잠깐 침묵하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앞을 보았다.
뭐가 됐든 로비로 가서 전화를 빌려 영에게 연락을 해야 했다.
‘아, 그럴 필요 없이 활이 폰으로 전화할…….’
이하늘의 생각이 멈췄다. 다시 움직이려 했던 발 역시.
그걸 의아하게 바라본 이활이 이하늘을 따라 앞을 보았다. 그는 이하늘과 다르게 입을 벌렸다.
저 씹새가, 왜. 드디어 미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