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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멸망을 굳이 막아야 하나요 (46)화 (46/90)

<제46화>

【생각해 보니 여기서 나가면 한 보름은 못 만나는 거 아닌가.】

【나는 이제 정말 인내심이 메말라서 보름도 못 기다리는데. 그럴 바엔 여기서 나의 주인공을 조금 더 오래 보는 게 낫지 않나.】

“무……슨? 무슨 소리예요? 키보드 그쪽이 없앴어요?”

이하늘은 신경질적으로 외치면서 좀 전에 했던 대로 허공을 손으로 갈라보았다. 그러나 감감무소식.

“내놔요, 키보드!”

게임 오래 하는 딸내미 키보드 뺏어간 아빠도 아니고, 이게 뭐야.

이하늘의 생각이 황당한 것인지 귀여운 것인지.

바람의 웃음소리가 깃털처럼 닿았다 사라졌다.

【내 조건을 들어주면 돌려주지. 어때, 내 주인공의 생각은.】

“화나려고 그러는데. 개소리하지 말고 내놔요.”

【화? 화가 나면 앞뒤 안 가리고 욕을 뱉는 그거? 듣고 싶긴 한데.】

미친 새끼 아냐, 이거.

장난칠 때가 아니었다.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나기 시작해 이하늘이 주먹으로 제상을 쳤다.

“당장 내놔요. 이 개×끼야! 성신이란 새끼들은 무슨 신이라면서 씨―”

뒷말은 주인공의 이미지를 위해 자르겠다.

한 줄 요약하면 ‘위대한 성신님들, 왜 이렇게 제멋대로세요’다.

대미지를 전혀 받지 않은 낯선 목소리가 웃었다.

“웃어……? 웃어어? 처웃지만 말고 내놔!”

【고집부리긴.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돌려주겠대도.】

동생 같은 헌터는 벽에 박혀 나오질 못하고 용암은 빠른 속도로 차오른다.

조금만 시간을 더 끌면 헌터도 제상 위에 있는 모든 이들도 죽는 목숨.

마음은 급해 죽겠는데 성신이란 새끼가 이런 상황에서도 딜을 하려 해 이가 바득 갈렸다.

【애초에, 직접 나서려는 이유가 뭐지? 무엇이 나의 주인공을 조바심 나게 한 거야.】

이유를 말하면 키보드를 주려나.

조급한 이하늘이 빠르게 알렸다.

“저기 벽에 박힌 헌터가 제 동생일지도 몰라서 그래요! 애가 다치기 전에 빨리 게이트 닫아야 해요. 그러니까 이제…….”

【저게 동생이라고? 아니지 않나.】

아니라고?

‘어떻게 아느냐’는 건 알맞지 않은 질문.

누군지 모르지만,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지만 상대는 성신이다.

고귀하고 위대하시다는 그 성신.

별처럼 하늘에 박혀 있다는 그 성신.

그래서 인간들을 굽어보고 살펴본다는, 인간을 제 손아귀에 올려둔 것처럼 볼 수 있다는 그…….

“제 동생이 아니에요?”

그러니 동생이 아니라면 아닐 것이다.

이하늘이 묻자 잠시 침묵하던 바람이 의뭉스럽게 굴었다.

【글쎄. 대답해 줄까, 말까.】

“야, 이 미친 새―.”

다시 시작된, 주인공의 이미지를 깎는 엄청난 욕설들.

바람을 닮아서 제멋대로인 성신은 역시나 타격 제로인 듯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왜 동생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한걸. 얼굴도 안 보이면서.】

이하늘이 멈칫했다.

그건 본인도 궁금한 거였다.

왜 이렇게 저 헌터가 동생처럼 느껴질까?

동생은 저런 스타일의 옷을 안 입고 헬멧도 안 쓴다. 공통점이라곤 목소리와 키뿐.

그 두 가지 때문에 거의 확신하는 걸까.

가장 중요한 얼굴은 보지도 못했다. 누군가가 너무 오버한다고 평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냥, 그냥 알아요.”

동생이니까.

“얼굴을 가리고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알아볼 수 있어요.”

그래. 설령 한 삼천리 밖에 떨어져 있어도.

허무맹랑한 소리로밖에 안 들리겠지만.

알아본다.

【그것참.】

저 높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별.

그가 부럽다는 식으로, 동시에 안타깝다는 어조로 중얼거린다.

【무궁화가 기쁘게 피겠어.】

무궁화?

헌터의 닉네임이 ‘무궁’이라는 점에 생각이 닿기도 전,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바람이 거세졌다.

【좋아. 오늘은 이만 물러나지.】

【널 찾았다는 거에 의의를 둘 테니.】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던 푸른 자판, 키보드가 떠올랐다.

이하늘은 아주 잠시 넋을 놓았다가 빠르게 타자를 쳤다. 수신자는 ‘무궁’.

〔코어 습득 완료!〕

〔코어를 정화하거나 파괴할 수 있습니다.〕

한 몇 초는 됐을까, 빠른 타이핑이 끝나자마자 근처에 있던 코어가 사라졌다.

확인하지 않아도 코어가 어디로 갔는지 자명했다.

역시, 먼저 메시지 창을 보내면 이렇게 되는구…….

“으, 우윽!”

그때.

평생 겪어 본 모든 고통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통증이 온몸을 강타했다.

이하늘은 입을 틀어막으며 제상에 엎드렸다. 용암으로 인해 뜨거운 제상이 이마를 달궜으나 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저런, 처음이라 부작용이 어마어마하군.】

무감하게 말하면서 바람으로 이하늘의 등을 토닥이는 성신.

그와 동시에 경고처럼 알람이 울렸다. 그 소리를 향해 이하늘이 고개를 겨우 틀었다.

「‘절대율―극상’을 위반하셨습니다.」

「그에 따른 페널티를 부여합―」

「⚠경고⚠―오류 발생!」

「두 궁극적 존재의 개입으로 페널티를 최소화합니다.」

「페널티―정신력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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