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아니네, 너 지금 말하고 있는데 내가 못 듣는 거네.
뭐야.
그럼 너 지금.
누구랑 대화해.
“혹시 왜 물음표로 변했는지 알아?”
커다란 화면 속.
일부러 그러는지 몰라도 벽에 박힌 채로 나오지 않던 3절 길드장이 불쑥 육성으로 물었다.
대답해 줄까 말까 고민하던 성신이 흥미 가득한 어조로 말한 건 수 초 후였다.
【그걸 알려주면 이번엔 무엇을 내게 줄 건가요.】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게, 그러나 너무 길지 않게 적당히 문장을 입력한 임여명은 엔터를 누르자마자 화면이 꺼져 드물게 당황했다.
“이건 또 뭐…….”
마치 연결이 끊긴 것 같은 상황. 임여명은 곧바로 ‘쓸데없는’ 성신을 바라보았다.
검붉은 홀로그램은 처음에 미동조차 없다가 음산한 목소리로 분노를 표출했다.
【어떤 되바라진 놈이 감히.】
【레바브, 당신이 차단했습니까?】
【어디서 통하지 않는 거짓말을. 이 짓거리를 할 수 있는 건 이 세계에서 당신밖에 없을 텐데요.】
정중한 말투였지만 연달아 흘러나온 음성에선 살기가 묻어나왔다.
그 살기에 여과 없이 노출된 임여명은 오랜만에 느끼는 두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짜증 나게.’
성신들과는 오타 가득한 메시지 창을 안 보내도 대화 가능한 레바브였다.
그런 레바브와 몇 마디 주고받던 ‘쓸데없는’ 성신은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언약자를 자세히 관찰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지자 성신이 제대로 빡친 그때.
번쩍, 하고 큰 화면이 도로 켜졌다.
임여명의 눈이 바로 화면으로 향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누군가를 찾았다.
그리고 굳었다.
이하늘이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제상에 쓰러져 있었다.
“이하늘.”
무심코 불러본다. 그러나 제 말이 음소거라도 된 것처럼, 연결이 끊기기라도 한 것처럼 돌아오는 반응은 없다.
대신 임여명은 다른 것을 발견했다.
이하늘 근처에 둥실 떠 있는 어떤 창을.
그런데 왜, 내용이 안 보이지.
당연히 모노클을 착용한 상태. 그런데 창의 내용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곱씹기도 전에 언제 챙겼는지 헌터가 코어를 파괴하면서 게이트는 닫혔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가.
채널 접속이 끊기고 센터로 의식이 돌아오면서 임여명은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것을 묻기 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녔다.
겸사겸사 ‘게이트 도감’과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유명했던 현판 소설 몇 권도 전해주고.
하이레가 건넨 휴대폰도 전달하고.
또…… 멀쩡한지도 확인해 보고.
마지막으로.
그때 뭘 했는지, 뭘 봤는지 물어보려 한 건데.
‘그런데 말 안 하시겠다.’
말하지 않고 감추려는 사람을 탈탈 터는 건 임여명의 성격이 아니었다.
숨길 거면 숨기든지. 알 바 아냐.
그런데 왜 이렇게 짜증이 날까.
임여명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면서 침묵했다가 아, 하고 뭔가를 생각해 냈다.
“박하늘.”
“이하늘이라고 했잖아……. 너 일부러 그래?”
“나 동생 있어.”
“응?”
뭔 개소리야, 갑자기.
그렇게 말하는 듯한 얼굴로 이하늘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를 향해 임여명이 말을 추가했다.
“동생 없냐고 물었잖아. 나 동생 있다고.”
그러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신…….
그러다 이하늘은 불현듯 떠올려냈다.
‘아니면 뭐야. 너 동생 없어? 그래서 날 이해 못 하는……!’
이활을 살리기 위해 설칠 때, 가만히 있으라고 윽박지르던 임여명에게 했던 말.
동생이 없으니까 나를 이해 못 하는 거냐고, 당시에 정신없이 막 뱉은 말을 그는 마음에 담고 있던 모양이었다.
의도치 않게 패드립을 하게 된 이하늘이 새하얗게 질린 낯으로 곧장 사과부터 했다.
“미안해, 그때 내가 눈이 돌아가서…….”
“됐어. 간다.”
멀리서 캐리어에 담긴 음료 다섯 잔을 들고 오는 이세현이 보인다. 임여명은 그걸 확인하고 휙 가버렸다.
º º º
[바우 새끼 : 나 게이트 민간인인 채로 휘말려서]
[바우 새끼 : 2주 동안 센터에 있어야 함요]
[바우 새끼 : 마포구 신촌점]
[바우 새끼 : 면회 오라고 알려주는 거 아니고]
[바우 새끼 : 호옥시나 뭔 일 터지면 찾아오라고 보낸 거니까 쓸데없이 오지 마요]
[망나니 : 강아 일 끝나면 활이 데리고 속초에 와라^^ 거절은 죽음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