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혀를 찬 그가 손을 흔들었다. 뭐가 됐든 잡고 어서 일어나라는 듯이.
그러나 아이는 홀로 일어났다. 그러고는 허리를 꾸벅 숙여 자리를 피했다.
“허.”
최가영은 갈 길 잃은 손을 거두었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º º º
“×발, 무슨 야밤에…….”
호출되어 로비로 내려온 이활은 욕을 하다가도 털을 바짝 세우고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주위를 살폈다.
“네 누나 없어.”
무심한 최가영의 말에 이활이 ‘그래요?’ 하고 경계를 풀었다가 날카롭게 노려봤다.
“뭐야. 어떻게 알아?”
“아까 봤어. 음료 하나 뽑고 올라가던데.”
“얘는 이 시간에 뭘 마시는 거야.”
최가영이 어떻게 이하늘을 아는지 알고 있으므로 이활은 더 묻지 않았다.
“왜 왔는데요. 아무 이유 없기만 해.”
“국장님이 부르신다. 가자.”
“아, 씨……. 귀찮게.”
“어쩌다 누나랑 게이트에 휘말렸냐?”
“그딴 게 왜 궁금해.”
“새끼, 말본새하고는.”
최가영이 다시 프런트로 갔다.
“저기, 이 친구랑 잠깐 면회 좀 하려는데. 병실 하나 좀 빌리고 싶습니다만.”
“혹시…… 각성하신?”
“각성했으면 제가 바로 데려갔겠죠.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서요.”
“원래 면회는 공개된 장소에서만 가능한데…….”
“부탁드립니다.”
최가영은 미소까지 지어가며 프런트 직원을 설득했다. 그 미소에 넘어간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병실을 안내했다.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혀를 찬 이활이 턱짓으로 구석에 있는 CCTV를 가리켰다.
최가영이 카메라에 찍히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무언가를 던져 CCTV를 부수었다.
“됐냐? 이제 가자.”
“위치.”
“속초.”
헌터지만 현재는 영락없는 일반인인 이활.
헌터이며 현재 어떠한 연유로 일반인인 척하고 있다고 말할 게 아닌 이상 몰래 보호 센터에서 나가야 했다.
그래서 번거롭게 사람 눈이 닿지 않는 병실까지 빌렸다.
왜냐하면 힘숨찐을 비활성화하자마자 바로 이렇게…….
“허이씨, 엄마약!”
최가영을 끌고 강원도에 위치한 훈련소에 올 생각이었으니까.
갑자기 구석에서 튀어나온 이활과 최가영 때문에 놀란 남자가 가슴을 부여잡았다.
“어우, 놀라서 죽을 뻔했잖습니까! 제발 멀쩡히 문으로 들어와요, 이 새끼분들아!”
언제 인벤토리를 열어 방독면을 쓴 걸까.
방독면을 쓴 이활과 최가영에게 와락 소리를 친 남자는 놀라면서 떨어뜨린 서류를 주웠다.
이 망할 직장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하고 중얼거리면서.
최가영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방의 한 면 전체가 창인 이곳은 훈련소 꼭대기 층, 국장실이었다.
창밖에 바로 보이는 우거진 나무들을 눈에 담고서 최가영이 중얼거렸다.
“여기에 있을 줄 알았는데 없네. 국장님 어디 계십니까.”
“올해 1분기에 채용된 특진과 신입들 훈련이 오늘부로 끝나거든요. 그분들 만나러 가셨어요.”
“아하. 소개해 주려고 부른 건가.”
“아뇨. 소개까진 아니고.”
국장의 비서인 남자는 국장이 이곳을 떠나면서 남긴 말을 전달했다.
“최가영 씨는 지하에, 보우 씨는 훈련실로 가시면 됩니다.”
“이유는.”
“직접 가시면 알겠죠?”
국장이 이런 식으로 구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최가영은 어깨를 으쓱이고 이활은 바로 사라지는 것으로 답했다.
“어, 보우 씨.”
아놔. ×이바알.
훈련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짜증 나는 얼굴을 봐버렸다. 금발의 사내, 특진과 소속 유성우가 반갑게 말을 걸자 이활의 표정이 썩었다.
마찬가지로 방독면을 쓴 유성우가 고개를 저었다.
“국장님은 어디.”
“한 5분 전에 부산으로 내려가셨어요. 요새 많이 바쁘신 것 같은데. 근데 이건 무슨 패션이에요?”
유성우의 고개가 위아래를 까딱였다. 대놓고 이활의 패션을 훑어보는 중이 되시겠다.
당장 침대에 누워서 자도 될 정도의 헐렁한 추리닝과 목이 늘어난 긴팔 티. 그런데 방독면이라니.
“알 바? 간다.”
남이 어떻게 쳐다보든 관심 없는 이활이 등을 돌렸다. 국장이 오래서 왔는데 당사자가 없으면 돌아가는 게 정답이니까.
그런 그를 유성우가 막았다.
“꺼져.”
“국장님이 보우 씨 오시면 신입 셋 훈련 맡아달라 하시던데요.”
“개소리 마.”
“개소리 아닌데? 왜 국장님이 보우 씨를 훈련실에 불렀다 생각해요?”
아, 진짜 왜 이렇게 짜증 나지. 이하늘이 일 관두라고 했는데 진짜 때려치울까, 걍.
그렇게 싫증을 내면서도 이활은 암석 지대를 빼다 박은 훈련실에 들어섰다.
분명히 실내지만 위를 바라보면 하늘이 보이고 바람이 분다.
실외 같은 이 훈련실에 존재하는 사람은 이활을 제외하고 총 열둘.
유성우가 말하길, 국장이 본부 특진과에서 노는 인원을 불러 신입 훈련에 적극 가담시켰다고 한다.
‘할 짓 없냐?’
물론 신입 셋을 제외한 아홉 명이 마냥 노는 인원이었던 건 아니다.
일주일 만에 집에 들어가나 했더니 불려 나오거나 며칠째 밤새웠는데 운 없이 호출된 사람도 존재했다.
아마 따지자면 근래에 가장 할 짓 없었던 건 이활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건 1도 신경 안 쓰는 이활은 특진과 왜 이렇게 한가하냐며 한심해했다.
―마이크 테스트. 아아, 보우 씨. 내 말 들려요?
“어.”
―훈련명은 술래잡기. 보통 술래잡기는 술래가 나머지를 잡는 거지만 우리는 술래를 잡는 거예요. 열두 명이 술래인 보우 씨를 죽이려 작정한 사람처럼 달려들 테니 잘해 봐요.
이활은 유성우의 설명을 듣는 체도 하지 않고 익숙하게 터치에 민감한 패드를 심장 부근과 등에 붙였다.
열두 명의 공격 중에 하나라도 유효타를 패드에 먹이면 이활이 지고.
반대로 이활이 열둘을 전부 제압하면 이기는 게임, 아니 훈련이었다.
―준비 다 되면 시작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보우 씨가 발렸으면 좋겠네요.
“어, 싸물어.”
위이이이잉, 버저 소리가 시작을 알렸다.
암석 지대, 몸보다 몇십 배 커다란 바위가 여기저기 박혀 있고 사위는 죽음처럼 조용하다.
바위 뒤에 숨어 기회를 노리고 있단 건 지나가는 어린애가 봐도 안다.
‘이런다고 뭐 훈련이 되나.’
이게 신입 훈련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활은 빨리 해치우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리고 딱 5분 뒤.
“아고고, 보우야. 형 힘들다. 형 지금 사흘째 밤새웠어.”
“어쩌라고.”
“그러니까 살살 묶어달라고. 아퍼잉.”
“안 자서 정신 나간 것 같은데. 좀 자라.”
열두 명 중에 총 열한 명을 잡은 이활이었다.
심지어 총 5분 중의 3분 정도는 포획하는 데에만 쓰였다. 즉, 한 명씩 잡는 데에 걸린 시간이 10초 안팎이라는 뜻.
특진과 톡방에서 이모티콘만 보내곤 했던 닉네임 ‘머선129’는 질린 어조로 중얼거렸다.
“괴물 같은 새끼……. 일단 나 잔다. 훈련 끝나면 나 들쳐 안고 휴게실에 넣어줘, 알았지.”
“봐서.”
이활이 다시 사방을 훑었다. 아직 잡히지 않은 한 명은 신입이었다.
신입의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마지막 차례로 미뤄진 것뿐.
이활은 기민하게 오감을 펼쳐서 인기척을 잡아냈다. 그리고 그 위치로 바로 이동해 커다란 바위를 넘었다.
“헉.”
바로 목표물이 보였다.
이활은 재빠르게 인벤토리에서 포획줄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이 망할 신입이 도망을 친다.
“야, 귀찮게 굴지 말고…….”
이활의 말은 끝맺어지지 않았다.
도망치는 줄 알았던 신입이 빠르게 달려 바위를 타더니 그대로 박차 텀블링을 해 이활의 뒤를 차지한 것이다.
휘익, 그대로 등에 붙은 패드를 공격하려는 게 느껴진다.
“귀찮게 굴지 말랬지.”
그러나 주먹은 패드에 닿기도 전에 멈췄다.
“윽!”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뒤돌아보지도 않고 신입의 손을 움켜쥔 이활은 그대로 그를 바닥에 메다꽂았다.
일주일도 넘게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던 ‘욜로인생’이 지켜보다가 말을 얹었다.
“보우 헌터, 살살 합시다.”
“이보다 어떻게 살살 해. 장난하나.”
투덜거린 이활은 포획줄로 신입을 묶었다.
응?
다 묶고 훈련도 끝났으니 가려는데 이활이 마지막에 잡은 신입을 들여다봤다.
단정한 모래색 머리카락을 하나로 질끈 묶은 신입. 방독면을 쓰지 않아 앳된 얼굴이 다 드러났다.
선배가 자신을 보니 긴장이 들 수밖에. 신입이 말을 더듬거렸다.
“왜, 왜 그러세요?”
“너 이름이?”
무심코 묻고 이활이 혀를 찼다. 특진과에 들어온 이상 이름은 같은 과라도 잘 안 알려주는 게 보통이었으니까.
“임, 임단명입니다.”
그런데 이 정신 나간 신입은 이름을 밝혔다.
“교육을 안 받았나…….”
물어봐 놓고 정신머리 상태를 의심하는 내로남불의 이활이었다.
그나저나.
‘임단명. 처음 듣는데. 왜 어디서 본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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