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다시 말하지만 이활은 남에게 지독히도 관심이 없다.
거의 매일 보는 게 아닌 이상 누군가의 얼굴을 기억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는 의미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익숙하나…….
순간, 지나가는 얼굴이 있다. 바로 오늘 보호 센터에서 본 다크서클이 심한 남자.
다크서클만 없으면 닮았나?
본 지 얼마나 오래됐다고, 벌써 흐릿해져 가는 상대를 어떻게든 떠올리려 하다가 그냥 바로 물었다.
“너 형제 있어?”
너처럼 머리가 모래 색깔이고 좀 싸가지 없게 생겼는데, 라는 뒷말은 삼키고.
포획당하고 갑자기 호구조사를 받게 된 신입, 임단명은 땀을 흘리면서도 대꾸했다.
“아뇨……? 없는데요…….”
그때였다. 유성우의 목소리가 훈련실을 울렸다.
―보우 씨, 과장님이 찾으시네요. 지하 3층 A실입니다.
관리국과 훈련소에는 지하실이란 게 있다. 보통 불법 헌터들을 심문하는 공간이다.
“누굴 심문하는데?”
이활이 묻자 동행한 유성우가 유순히 대꾸했다.
“어제, 아니 자정이 지났으니 엊그제네요. 삼성동에서 버스 승객들을 인질 삼았던 그 헌터 있잖아요. C급 헌터.”
아, 그 새끼.
보호 센터에서 나온 지 얼마나 지났는지 시간을 확인하던 이활은 유성우와 함께 지하 3층 A실에 들어갔다가 멈칫했다.
피 냄새가 풍겼다. 방독면을 뚫고 풍길 정도면 양이 꽤 된다는 소리였다.
“뭐야.”
상대는 C급이었다. S급 최가영에게 충분히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상대.
유성우가 가벼운 어투를 지웠다.
“과장님. 괜찮으세요?”
“어. 야, 바우야. 와서 이 새끼 네 리스트에 있나 좀 봐라.”
책상에 앉아 바닥을 내려다보던 최가영이 이리 오라 손짓했다. 멀쩡해도 너무 멀쩡해 보이는 그였다.
이활은 의아해하면서도 그의 근처로 가 그를 따라 아래를 바라보았다.
……이 새끼 봐라?
분명 그 인질극을 벌인 C급 헌터가 맞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현재는 피로 물들어 있단 사실.
F급에게도 당하는 S급 최가영이 멀쩡한데 C급 헌터가 이 꼴이라는 건 한 가지를 뜻했다.
“이 새끼 설마?”
“어. 갑자기 주먹 갈기길래 맞아줬는데 알아서 뼈 부러지고 난리시네. 그 뒤론 뭐, 현실 부정하며 계속 공격하시다가 이렇게.”
지하실은 어둡다. 그 속에서 최가영의 붉은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모든 것을 압도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심을 들게 하는 눈.
최가영, 최초의 S급이라 알려진 각성자. 그에게는 각성하자마자 발현된 특성이 존재한다.
무엇인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특성으로 그야말로 극비.
다만 확실한 건 그 특성 때문에 최가영은 S급인데도 F급에게도 발리는 각성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영원히 비활성화할 수 없는 패시브 특성이라 최가영은 그것에 매번 발목 을 잡혀야 했다.
그래도 나름 공평하고 기준이 있다. 따라서 최가영은 웬만하면 특성에 순응했다.
그러나 차별하는 게 딱 하나 있었으니.
바로 살인자.
“그러게 살인을 하면 어떡해, 박영태 씨. 날 패고 싶으면 살인은 하지 말아야지…….”
주기적으로 대한민국의 헌터를 리스트에 등록하는 이활은 빠르게 박영태란 이름을 찾았다.
“박영태, 48세. 각성한 지 10년으로 1세대 각성자. 소속된 길드 없음. 전과 많네.”
“읊어.”
“각성 미등록 전적, 일반인 위협 다수, 헌터로 만들어주겠다는 식의 사기 다수, 최근에 인질극벌이셨고.”
“그리고 살인도 추가되겠네. 누굴 살해하셨고 언제 하셨을까. 몰래 하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뒷배가 있으세요, 박영태 씨?”
뒷덜미가 뻐근해졌다. 이활이 이를 악물며 주먹을 쥐었다. 이런 새끼가 이하늘의 머리채를 쥐었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화가 났다.
끄으윽.
최가영에게서 채찍처럼 뻗어져 나오는 압도적 기운을 고스란히 직격타로 맞은 C급 헌터는 끝내 기절했다.
후우, 최가영이 아직도 문가에 서 있는 유성우에게 말했다.
“성우야. 네가 맡아서 다 털어라, 먼지까지 전부.”
“예.”
“국장님은?”
“없던데. 부산 갔대요.”
이활의 대답에 최가영이 귓바퀴를 문질렀다.
“부산? ……아. 3월 모임 때문인가. 바우야, 너 갈―.”
“안 가.”
“성우야, 너는 갈―.”
“5대 길드 모이는 장소엔 별로 안 가고 싶은데요, 저.”
최측근이라 불리는 새끼들이 하나같이 거절하자 최가영이 이맛살을 구겼다.
이것들은 무슨 맨날 싫대.
짙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6. 화려강산 아니고 화려샘
보호 센터는 명성대로 정말 어마무시한 곳이었다. 부지런한 사람을 순식간에 나태하게 만들고 사람 대부분을 몇 킬로나 찌게 했다.
그러나 이하늘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니.
그 이유는 임여명이 사다 준 소설 때문이로다.
“이하늘. 오늘 퇴소하는 날인 거 알지.”
밤마다 어디 나갔다 들어오는 사람처럼 아침마다 눈을 거의 감고 있던 이활이 말을 걸었다.
하지만 이하늘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막 주인공이 탑의 최상층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보호 센터 입소 확인 증명서 받아야 하는 거 잊지 마라.”
“…….”
“듣고 있냐?”
“으응, 말 걸지 마.”
지금 주인공의 조력자가 최상층의 보스라는 최고의 반전이 드러났다고.
이하늘이 이럴수록 이활은 빡쳐만 갔다.
“야!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대체 이 망할 소설책 누가 사다 준 거야! 그 다크서클 놈이냐? 어? 소설 읽느라 밥은 거의 남기고 밤을 새우는 게 말이 돼?”
누구 닮아 저렇게 화가 많나…….
이하늘은 알겠다는 의미로 책갈피를 끼우고 책장을 덮었다. 이활이 끔찍하다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아니, 대체 이걸 왜 보는 건데? ‘재앙 전부터 있었던 미래 예지 도서, 탑등반성좌헌터물 <어느 날 게이트가 열렸다>로 공부하자’? 이걸 지금 이 책 광고 문구라고 적은 거?”
“응. 재미있네.”
“재미는 개뿔, ×발. 헌터라면 치를 떨면서 대체 뭐가 재미있는데.”
“음……. 이건 소설이잖아.”
이하늘의 대답에 갑자기 이활이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왜 저래? 인생 헛산 사람처럼.
이미 짐을 다 싸놨지만 혹시 안 챙긴 게 있는지 확인하려다가 이하늘이 멈칫했다. 그리고 갑자기 소설책을 다시 펼쳐 어느 부분을 가리킨다.
“근데 성신, 아니 여기 성좌 간접 메시지? 부분. 원래 이런 말투여야 해?”
현실은 현실이라서 싫고, 소설은 소설이라서 괜찮다니.
넋을 놓고 있던 이활이 홀린 듯 눈만 움직여 그녀가 가리킨 부근을 눈에 담았다.
/성좌,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습니다./
/이러려고 너와 계약한 게 아니라며 단호하게 이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