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계 멸망을 굳이 막아야 하나요 (51)화 (51/90)

<제51화>

이하늘이 기겁하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러나 커다란 선글라스를 낀 중학생은 발이 참 빨랐다. 거의 모터 달린 급이었다.

아니, 3월인데? 새 학기 시작했을 텐데?

“학교 안 가세요?”

“언니. 내가 서울 사람 같애? 경상도 사람이 서울에 어떻게 왔다 생각하는 거야. 당연히 현장학습 체험 신청하고, 어?”

학기 초에 체험학습 신청이 바로 가능한가?

알 길이 없었다. 이하늘은 중고등학교에 다닌 적이 없었으니까.

“저기, 이제 갈 길 가서 용건 보시면 되는데.”

“그냥 언니 따라갈래. 나 서울 온 용건이 사라졌거든. 시바, 내가 왜 그 새끼랑 밥 먹어야 해?”

그 새끼가 어느 새끼분인지 모르겠지만 모쪼록 화해하시고 그만 따라와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그러나 중학생은 따라가겠다는 말이 진심인지 짧은 다리로 이하늘을 계속해서 쫓았다.

아이러니한 건 비교적 키가 크고 다리가 긴 이하늘이 지쳐 헉헉거릴 때, 중학생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것.

‘역시 나이가 대수인가 봐.’

결국 역에서 빠져나온 이하늘이 백기를 들었다.

“저기, 보호자 없나요? 경상도에서 혼자 온 건 아닐 거 아니에요.”

“따돌렸어.”

왜……?

얼굴에 다 드러나는 의문에 중학생이 웃었다.

“방금 말했잖아. 용건이 사라졌다고. 근데 보호……자랑 있으면 그 용건 억지로 보러 가야 해서.”

무슨 말인지 납득이 안 갔지만 이하늘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사정을 말했다.

“그래도 그만 따라오시면 안 될까요. 제가 회사에 가야 해서.”

“아……. 글쿠나.”

뭐지. 저 표정은.

갑자기 그렇게 불쌍한 표정을 하면 내가 죄를 지은 것 같잖아.

황당함에 눈동자가 떨렸다. 선글라스 때문에 눈이 가려졌는데도 힘이 빠진 입꼬리가 너무나 처연해 보인다.

“나 서울에 연고도 없는데…….”

무슨 소리야. 그 연고를 따돌린 건 본인이잖아.

어폐가 있단 것을 스스로 깨달았는지 중학생은 말을 끌었다가 뻔뻔하게 나왔다.

“게다가 나 길치임. 언니가 여기서 나 놓고 가면 백퍼 길 잃은 양 됨. 메에.”

“휴대폰 있을 거 아니에요.”

이하늘의 날카로운 지적에 중학생이 메에거리던 입술을 멈추더니 갑자기 후다닥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마구 움직인다. 마치 뭔가를 붙들고 조작하는 것처럼.

그러더니 곧 휴대폰을 꺼내 들고.

“배터리 없어.”

헛소리를 하신다.

방금 네가 주머니 속에서 끈 거 아니고?

그걸 믿겠냐는 눈빛의 이하늘을 본 중학생이 입을 굳게 다물곤 갑자기 어딘가로 손을 뻗었다.

“어! 저기에 최가영이!”

짭스 최가영.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욕먹으면서도 팬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바로 얼굴, 그 잘난 얼굴 때문에.

중학생은 이하늘 역시 최가영의 팬일 테니 자신의 삿대질과 외침에 뒤를 돌아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게 무슨 일.

이하늘은 뒤돌지 않았고 오히려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 어디?’ 하고 시선을 돌렸다.

휘익, 파삭, 텅―

“…….”

“…….”

소음이 가득한 길거리인데 사위가 조용해진 양 침묵이 돌았다. 그 끝에 중학생이 자조했다.

저 언니야가 뒤돈 사이에 폰을 하수구에 던질라 캤는데. 허허, 보란 듯이 던져부렸네?

기나긴 침묵. 그 끝에 이하늘이 한숨을 쉬었다.

“대체 뭐 하고 싶은 건데요? 왜 하필 저를 따라오시는 건지.”

상대는 즉답했다.

“언니야가 맘에 든다.”

대체 왜, 어딜 봐서, 언제 봤다고. 우리 만난 지 한 시간도 안 됐어요. 알죠.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중학생이 턱을 짚고 왜 마음에 드는지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요상하게…… 재수 없는 새끼를 잘 조사줄 것 같은, 그런 요상한 기분이.”

“예?”

“하여간 느낌이 그래. 이렇게 초면에 마음에 드는 거 오랜만인데, 하여간 글타.”

“허…….”

“그러니까 오늘 내랑 놀자.”

“저 회사 가야 한다니까요.”

대체 결론이 왜 그렇게 나는 거지.

이하늘은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하이레가 준 휴대폰은 곧 있으면 8시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더 이상 중학생에게 할애할 시간이 없다는 뜻. 그렇다고 이대로 가면 어린애 혼자…….

물론 그런 건 다 이하늘의 알 바가 아니다. 그렇지만.

서울에 연고가 없다잖아(직접 따돌린 거지만). 휴대폰도 없고(자의로 없앴지만).

이하늘이 우물쭈물했다.

저보다 키가 십 센티는 작고 머리카락 길이가 어깨에 닿는, 딱 봐도 중학생.

그러니까.

딱 10년 전 자신의 모습과 유사하다.

‘그래. 나 호구다.’

이하늘이 고개를 옅게 끄덕였다.

아마 이하늘이 헌터였다면 특성, ‘호구(일반)’가 발현되었다고 메시지가 떴을 거다.

“저기. 이름이 어떻게 되죠?”

호구 이하늘이 물었다. 그러자 선글라스 낀 중학생이 씩 웃는다. 물처럼 아주 시원하게.

“시초야. 성이 시고 이름이 초야. 야까지 포함해서. 외자 아니고.”

몇 번이나 이름을 외자라고 오해받았는지 계속 강조하던 시초야는 이하늘이 순순히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이젠 눈까지 휘며 웃었다.

짙은 선글라스 너머로 무슨 색인지 알 수 없는 눈동자에 흥미가 그득히 실린 게 선명히 보였다.

“그런데 대부분 나를 쌤이라고 불러. 언니도 쌤이라고 부르든가.”

목소리에도 흥미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º º º

시솝 커뮤니티(SYSOP Community)

> 서버 | 대한민국

> 그룹 | 주간조방(7명)

[ 3 ] 닉넴결정귀찮 : 하늘아 커피도 마시고 오는 거?

[ 10 ] 가을하늘공활한데 : 아마 아닐 것 같아요

[ 2 ] 소문만복래 : 그럼 우리가 하늘 씨 커피도 사서 센터에 먼저 들어가 있을게 천천히 왕^^

[ 9 ] 돈많은백수가꿈 : 점심 맛있게 드세요~

[ 10 ] 가을하늘공활한데 : 네네 맛있게 드시고 커피는 감사합니다ㅠ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