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계 멸망을 굳이 막아야 하나요 (55)화 (55/90)

<제55화>

지이잉―

이하늘의 휴대폰이 울림과 동시에 시초야의 스킬이 중단됐다.

이유는 한없이 명백했다.

죽기 직전의 사람이 살았으니까.

주변에서 쏟아지는 감탄과 환호 소리.

그 속에서 다른 종이에서 잘라 와 오려 붙인 것처럼 이질적으로 서 있었던 이하늘은 깨달았다.

‘헌터……였구나.’

그럼 혹시 스카우트인지 고용인지 한 건…… 길드려나?

지이잉―

아, 맞다. 전화.

이하늘은 겨우 시초야에게서 시선을 떼고 휴대폰을 봤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일단 받았다. 이하늘은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여도 무조건 받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왜 말을 안 하지?

갑자기 긴장이 몰려온다. 심장이 뇌까지 울릴 정도로 커다랗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들리는 목소리에 엄습하던 긴장도, 크게 들려왔던 심박 소리도 사라졌다.

―……우리 쌤 바꿔줘.

“네? 뭐라고요?”

―……쌤 몰라? 쌤이랑 같이 안 있어?

쌤?

대부분 자신을 쌤이라 부른다고 알려주던 시초야가 떠올랐다.

이하늘은 아, 하고 여전히 4차선 도로에 서서 부상자를 내려다보는 시초야를 흘깃 봤다.

“있어요. 근데 지금 바꿔줄 상황이 아니라서…….”

이 사람은 오늘 시초야가 낮에 통화했던 사람인가?

생각에 잠긴 탓에 상대의 말을 조금 놓쳤다.

―……력 썼어?

“네?”

―능력 썼는데 분명……. 샘이 줄어들었는데…….

목소리가 나른하다 못해 멍하다. 힘이 없는 것 같은데 또렷하게 들리니 아이러니했다.

그런데도 못 알아듣는 건, 이 사람이 하는 말의 앞뒤가 죄 잘렸기 때문이다.

“저기, 저기요. 제가 지금 정신이 없어서 말을 못 알아듣겠거든요.”

―…….

“저기요? 지금 시초야 씨가 바빠요. 시초야 씨 오시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누구라고 전해드릴까요?”

아, 멍청아. 점심에 통화했던 사람이 전화했다고 말해 주면 되잖아.

스스로 우문하고 현답하던 이하늘. 그녀의 귓가에 멍한 목소리가 울렸다.

―거머리가…… 전화했다고 전해줘, 그럼.

뚝.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가 끊겼다.

이하늘은 어처구니가 없어 화면을 봤다가 전화기를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시초야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향하려는 그때.

휙, 이하늘이 고개를 돌렸다.

어라, 방금 저기에…….

교통사고와 갑자기 나타난 다섯 번째 S급으로 인해 지독하게 쏠린 인파.

그야말로 길거리엔 사람이 미어터졌다. 아마 이 수많은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 있어도 미처 못 보고 지나갈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런데 이하늘은 그 수많은 사람 중에 어느 인물을 보았다. 목격했다. 눈이 마주쳤다.

갈색 머리카락의, 익숙한 얼굴.

“저기, 잠깐만요.”

이하늘이 다급하게 사람들을 밀면서 이동했다.

“잠시만요, 잠시만 지나갈게요! 비켜주세요……!”

“아, 뭐야.”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사람 좀…….”

이하늘의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눈이 마주쳤던 남자가 고개를 홱 돌리고 빠른 속도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닌데. 날 봤으면 눈이 마주치고도 그냥 돌아가진 않을 텐데.

아니지, 하늘아. 널 버린 사람이잖아. 그러니 마주쳐도 그냥 가버리지.

혹시 날 못 알아본 거 아닐까?

설마. 키만 큰 너를 어떻게 못 알아봐? 그럴까 봐 머리스타일도 안 바꾸면서.

그럼 정말 날 알아보고도…… 그냥 간 거라고?

쏠린 인파가 뭉쳤다가 살짝 벌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때마다 익숙한 갈색 머리의 뒤통수를 목격하거나 놓쳤다.

하지만 다시 찾아도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잡지 못할 게 분명한 거리.

“하하.”

그녀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조소였다.

10년 동안 이하늘이 무의식적으로 생각해 온 게 있다.

날 버리고 간 오빠를 다시 만나면 난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혐오하려나. 누구냐고 못 알아볼지도. 어쩌면 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억 못 했던 얼굴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떠올려냈다.

혐오감? 이상하게도 없다. 눈물을 당장 쏟아낼 만큼의 슬픔? 역시 없다.

이하늘, 그녀의 머릿속에 부유하는 감정. 심장에서 꾸역꾸역 박동하여 흐르는 것.

“야, 이가을 이 개×끼야아아!”

손이 덜덜 떨릴 만큼의 분노였다.

쩌렁쩌렁, 3월의 추위를 알리는 저녁의 차가운 공기 속에 날카롭게 울리는 목소리.

쏠린 인파가 깜짝 놀라며 이하늘을 미친 사람 보듯 피한다.

그 벌어진 통로로 이하늘은 보았다.

멍청한 얼굴로 저를 보는 이가을을.

이하늘이 빠르게 걸었다.

“너, 너 이 시바, 이 개새…….”

거기 가만히 있어.

“왜, 왜……. 왜 이 미친놈아…….”

왜 피해. 왜 그냥 가. 날 버렸으니까? 버린 동생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러는 건 아니지.

나한테 할 말이 없어? 너 나랑 그래도 13년을 살았어.

네가 날 뭐로 생각하는지 몰라도…….

거침없이 거리가 좁혀진다. 이하늘은 얼마 남지 않은 거리 너머로 손을 뻗었다.

막, 상대의 팔에 손이 닿기 전에.

상대가, 갈색 머리의 남자가, 10년 전과 다르게 키가 훌쩍 커버린 이 망할 놈의 오빠가.

이가을이.

선을 그었다.

“아직 안 돼, 하늘아.”

뭐가 안 돼.

가족이 모여서 사는 게 뭐가 안 돼.

우리 넷이, 우리 네 남매가. 좀 한데에 모여서 살겠다는데.

“뭐가 안 되는데.”

이가을은 대답이 없었고, 이하늘은 어째선지 졸음이 몰려오는 걸 느꼈다.

거부할 수 없었다.

º º º

“어.”

문득 정신을 차린 이하늘은 소파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옆에서 휴대폰으로 게임하던 이활이 혀를 찼다.

“이제 인났냐? 왜 이렇게 퍼질러 자?”

아오, 저 싸가지. 한 살 많은 누나가 참아줘야지.

이하늘의 속마음을 이활이 들었다면 한 살이 많기는 뭐가 많으냐고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다.

“나 언제 잤어?”

“한 세 시간 전쯤?”

“영이는?”

“영이는 개뿔. 이제 걍 이름 부르지?”

“그래서 어디 있어.”

“방에. 쟤 사춘기다.”

사춘기 뜻은 알고서 말하나.

이하늘이 몸을 일으켰다. 소파엔 그녀와 막내 이활밖에 없었다.

이하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 그럼 오빠는?”

“몰라. 도서관 간 거 아니야?”

조심스러운 이하늘의 질문과 달리 이활의 대답은 무심하고 명료하다.

이하늘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가 괜히 이활의 다리를 팍 찼다.

이활이 인상을 쓴다.

“아, 또 왜! 아 씨, 죽었잖아!”

“오빠 좀 본받아서 너도 공부해. 맨날 게임이나 하고.”

“지랄…….”

“지, 지랄? 너 지금 지랄? 이 미친 새끼가. 어디서 욕을 배워와서 하늘 같은 누나한테!”

진심으로 어디서 배운 것 같으냐고 이활이 눈으로 물었다. 잔뜩 흥분해 이활의 멱살을 잡았던 이하늘은 헛기침을 하며 놓았다.

어휴, 얼굴만 예쁘고 성격은 거지 같은 우리 막내. 아직 누나보다 키가 작으니 봐주마.

이하늘은 소파에서 내려와 이공이 있는 방으로 가려다가 잠깐 멈칫했다. 티브이 옆에 달린 달력을 보기 위해서.

이하늘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어? 잠깐만. 우리 생일 축하했나?”

“누구 생일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다 했는데. 너도, 이공도, 나도.”

“……아, 그랬지.”

이상한 반응에 이활이 아직 캐릭터가 죽지 않았음에도 휴대폰 화면에서 시선을 떼 누나를 바라봤다.

“왜 기억 안 나는 척?”

“아냐. 기억해. 잠깐 생각이 안 난 거야.”

“치매야?”

“……음, 그러게. 왜 기억이 바로 안 났지.”

이씨 남매 중에 셋째와 넷째는 쌍둥이지만 생일은 다르다.

하나는 1월 2일 23시 59분, 하나는 1월 3일 00시 1분.

그래서 이씨 남매는 매번 쌍둥이의 생일 땐 케이크 두 개를 사서 2일 자정 직전에 축하하고 3일 자정이 넘으면 또 축하했다.

이하늘이 웃었다.

“매번 같은 방식으로 축하하니까 헷갈렸나 봐.”

이활은 비웃었다.

“그래도 그거 문제야. 고작 13살이.”

“아니지, 해가 바뀌었으니까 14살이지. 이제 난 교복을 입는 중학생이거든?”

“졸업 안 했으면 아직 초딩이야, 멍청아.”

이활의 심통 난 말에도 이하늘은 마음 넓게 용서하며 달력 아래에 있는 펜을 들었다.

찌익, 찍.

그리고 오늘 날짜에 엑스 표를 했다.

1월 30일. 그리고 내일은 1월 31일로, 이하늘의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º º º

“아, 나 속이 울렁거려.”

아침부터 낯빛이 새하얘진 이활이 인상을 팍 쓰고 땀을 닦았다. 옆에서 이공 역시 마찬가지로 하얘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쌍둥이라서 그런지 아픈 것도 똑같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공은 크게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

“영아. 많이 아프지.”

“괜찮아.”

“활이처럼 아플 텐데…….”

이하늘이 입술을 깨물며 쌍둥이들의 이마를 만졌다. 얼음장 같았다.

이럴 땐 어떡해야 하지. 119에 전화해야 하나?

“저기, 오빠…….”

소파에 나란히 눕다시피 앉은 쌍둥이들을 뒤로하고 이하늘이 1층의 어느 방문을 두드렸다. 문이 바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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