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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멸망을 굳이 막아야 하나요 (59)화 (59/90)

<제59화>

애초에 시초야는 보우와 무궁에 대해 잘 몰랐다. 무궁을 끔찍이 싫어하는 건 재수 없어서 그런 거지 뭘 알아서가 아니었다.

두 사람이 오죽 신상을 잘 감춰야지. 시초야도 나름 신상이 안 털리게 조심했거늘 3년 전에 앗, 할 틈도 없이 모조리 털렸다.

어쨌든 관심 무. 알아도 뭘 알아야 관심이 생기고 둘이 쌍둥이라는 거에 놀라는데 이건 뭐.

그런 시초야가 지금 놀라서 속으로 덜덜 떨고 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말이다.

맨날 얼굴을 처가리고 다니는 무궁의 맨얼굴을 보게 되어서?

아니다.

‘허, 참. 시바. 울 언니야(?)가 점마 누나라니.’

그랬다. 알아버렸다. 무궁이 이하늘의 동생이라는 것을. 보우 역시 이하늘의 동생이란 사실은 자연히 따라온다.

“여기 병원이라고? 왜……? 아니, 그리고 너는 왜 여기? 아. 보호자한테 연락이 갔나?”

“약속 장소가 마침 그 근처라서 누나가 쓰러진 걸 봤어.”

“아. 밥 먹었고?”

“응. 그럼.”

지이이럴한다. 밥은 개뿔, 약속 취소한다고 했음서.

아무튼. 이러고 병풍처럼 있는 건 시초야의 스타일이 절대 아니었다.

시초야가 큼, 헛기침했다.

“언니야. 둘이, 둘이 남매가? 그럼 언니야한테 S…….”

“저기요.”

저기요?

……저기요호……?

처음 들어보는 무궁의 존댓말에 시초야가 개극혐하며 두 어깨를 올렸다.

흡사 이해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미지의 존재를 만난 것처럼.

“웨, 웬 존댓말? 헉, 시댕. 소름 돋은 것 봐. 흐미, 돌 빨았나.”

응?

이하늘이 시초야의 극적인 반응에 고개를 기울였다.

“둘이 아는 사이야?”

“아니. 몰라.”

“근데 왜 반응이…….”

“내가 누나 쓰러진 거 보고 좀, 감정이 격해져서 예의 없이 굴었거든.”

“아하……. 사과했어?”

아는 사이긴 무슨 아는 사이냐고, 그렇게 표현될 관계 아니라고 득달같이 외치려던 시초야는 두 사람의 대화에 멈칫했다.

어라, 이것 봐라?

이 쉐이, 설마…….

시초야가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당장 물을 넣어도 될 정도로 깊게 볼우물이 파였다.

“언니야. 혹시 언니 가족 중에 헌터 있나.”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무궁은 제 누나에게 숨기고 있다.

본인이 헌터라는 사실을. 아마 보우 또한 그렇겠지.

허! 참! 내! 힘숨찐 놀이하는 쉐이가 또 있었다니.

무궁과 보우가 극도로 신상을 숨겼던 이유 또한 제 누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겠지.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다.

시초야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무궁을 협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그걸 놓치면 완전 등신 중의 상등신.

시초야가 흘깃 무궁을 보았다.

저 봐라, 저 봐라. 눈빛으로 조사버릴 기세네. 어? 하, 새끼.

어쩔까. 다음 탑 등반은 우리 길드한테 넘기라고 할…….

그러나 흘러나오는 이하늘의 대답에 시초야의 안색이 하얘졌다.

“아, 응. 있어. 10년 전에 실종됐지만……. 그건 왜?”

어?

아니.

아니, 젠장.

그런 딥한 사연을 가지고 계셨을 줄이야.

시초야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 근데 언니, 와 기절한 기고. 내 깜짝 놀랐다이가. 갑자기 소리를, 막. 욕까지 하면―”

“야.”

벌써 세 번째다.

이하늘이 깨어났을 때 한 번.

이하늘에게 S급 헌터 둘을 형제로 데리고 있는 거냐고 물어보려 했을 때 두 번.

그리고 지금.

무궁이 자신의 말을 자른 횟수. 이쯤 되면 시초야도 빡이 도는지라 그녀의 목소리에 가시가 마구 돋았다.

“뭐고, ×발. 아까부터 와 말 자르는데? 니 뭐 되나.”

“영아, 왜 그래. 초면에 그러면 안 되지. 저기, 죄송해요.”

“와, 언니가 사과하는데. 말이나 편하게 해라, 쫌. 글고 저기는 무슨 저기. 내가 무슨 시저기가. 시초야다, 마!”

S급에 대해 얘기 나왔을 때 말 자른 건 이해라도 한다. 정체를 숨기고 있으니까.

근데 언니가 뭔가를 막 외치면서 고래고래 욕을 한 건 왜 숨기는데?

고삐 풀린 듯한 시초야를 달래려면 뭔가 관심을 끌 법한 다른 게 필요했다. 이하늘은 머리를 굴리고 굴리다가 아, 하고 떠올렸다.

“초야야.”

이름을 부르자 시초야가 갑자기 잠잠해진다.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휴대폰을 건넸다.

“아까 거머리……? 그 사람한테 전화 왔어. 샘이 줄었다느니 뭐라느니 하던데…….”

시초야의 표정이 단번에 귀찮음으로 물들었다.

“아 씨. 또 지랄하겠네. 잠깐 통화 좀 하고 올게.”

시초야가 자리를 비키자마자 이하늘이 고개를 돌려 이공과 눈을 마주쳤다.

“나 왜 쓰러진 건지 알아?”

“……기억 안 나?”

사실 이하늘은 일어나자마자 물음표를 남발했다. 얼레, 나 왜 눈을 뜨는 거지, 하고.

이하늘이 눈을 가늘게 떴다.

“교통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해서 충격받았나?”

아니, 뭔가 더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하늘이 이마를 짚는 사이, 이공은 목울대를 움직이며 초조하게 이불자락을 붙잡았다.

이가을과 한패인 게 분명한 그놈.

경고만 하고 놔준 건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이기도 했으나.

이공의 눈이 움직여 구석에 가서 전화하는 여자를 담았다.

저 시초야가 바로 근처에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능력으로나 성격으로나 시초야처럼 성가신 애가 있는 이상 뭘 시도해도 불발에 그칠 터.

그래서 괜히 힘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가을에겐 어떻게 할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근처에 사람이 있든 없든, 시초야가 있든 없든.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아마…….

그런 생각을 한 게 허무하게도 이가을은 없었다. 찌를 듯한 마력도, 뒤에서 얼쩡거리던 새끼도.

그저 누나만이 쓰러져 있었다.

어쨌든 두 사람은 만났다. 만난 게 분명한데 왜 기억을 못 할까. 누나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럴 만한 이유도 없고.

‘그 새끼가 수작을 부렸나?’

“아무튼 빨리 나가자. 여기 응급실이지? 무슨 기절했다고 응급실을 와. 아,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망했네.”

지금 집에 가도 잘 시간이 얼마밖에 안 된다고 중얼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오려는 순간, 누군가 걸어오는 게 느껴져 이하늘이 고개를 들었다.

이하늘은 잠깐 흠칫했다. 마주친 눈동자가 새빨갰기 때문이다.

그걸 눈치챈 걸까, 정확히 이하늘을 보던 남자가 고개를 틀어 시선을 내렸다.

그렇게 지나칠 줄 알았더니 이상하게도 근처에 멈춰 선다.

“시초야는? 어디 있습니까.”

귀를 문지르며 낯선 남자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이하늘은 바로 시초야가 있는 곳을 가리키려다가 이공의 헛웃음에 실패로 그쳤다.

“알면서 왜 물어요.”

오늘따라 동생이 이상하다. 이렇게 모르는 사람을 삐딱하게 대하는 애가 아닌데.

이하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이공이 표정을 부드럽게 풀며 남자를 가리켰다.

“최가영. 헌터야. 저 시초야 헌터 때문에 동행하셨어. 원래는 떼어놓으려고 했는데 저 여자 되게 성가시게 굴더라. 그런데…….”

“최가영이라고?”

시초야와 어떻게 같이 있었냐고 물어보려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왜 최가영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

제가 아는 누나는 최가영을 기억하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다.

이공이 바로 물었다.

“알아?”

“어? 어. 어쩌다 보니 아는데. 근데 여자가…… 아니었나?”

이하늘이 아주 작게 읊조렸다.

마찬가지로 이하늘이 저를 아는 것처럼 반응해서 좀 놀랐던 최가영은 바로 울컥했다. 가능한 말을 섞지 않으려 했던 다짐이 산산조각 났다.

“남자입니다만. 그것도 건실한.”

“아, 아니. 죄송해요. 이름이, 그래서. 키 크고 목소리 굵은 여자인 줄 알았어요.”

이건 편견이 있다고 봐야 해, 없다고 봐야 해.

황당함에 최가영은 눈썹을 까딱였다가 그녀가 저를 완벽하게 기억 못 한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런 거라면 굳이 피할 이유도 없다.

“얼굴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을 텐데요.”

“네. 그래서 지금 알아차린 거긴 한데……. 죄송해요.”

“죄송할 것까지야.”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이름만 봤을 때야 여자라고 오해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키 크고 목소리 굵은 여자인 줄 알았단다. 얼굴을 본 지금에서야 남자인 걸 알아차렸댔고.

그 말은 얼굴을 가린 채로 본 적이 있단 뜻인가?

인터넷에 최가영을 검색하면 방독면 쓴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으나 그래도 가장 먼저 뜨는 게 제 민낯이었다.

그러니 인터넷으로 날 본 건 아니고…….

“우리 언제 만난 적 있습니까?”

10년 전 말고. 그건 네가 기억 못 하잖아.

뒷말을 삼키고 물었더니 이하늘이 입을 다문다. 그러고는 눈에 띄게 말을 돌리는 게 아닌가.

“아, 초야 보러 오셨댔죠. 초야 저기서 통화하고 있어요.”

그러면 안 되지, 이 여자야.

숨길 거면 제대로 숨기든가. 거짓말할 거면 제대로 하든가.

그렇게 행동할수록.

“모두 흥미를 느낄 텐데.”

가령 유성우나 시초야처럼.

물론 안달 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나나 얘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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