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와……. 이 끝내주는 정적을 봐.
친하지 않은 사람과 침묵 속에 있는 걸 굉장히 불편해하는 이하늘은 입술을 말고서 필사적으로 대화거리를 찾았다.
다행히 입을 연 건 최가영이었다.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네, 네. 말씀하세요.”
꼭 말하세요. 어떻게든 이 불편한 적막만 피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대답할 테…….
“그 모노클, 게이트에서 보상으로 받은 겁니까? 나 없었을 때?”
…….
전보다 심한, 죽음과 같은 싸늘함이 차 안에 가라앉았다.
조금 당황한 최가영이 마침 빨간 불에 걸려 브레이크를 밟고 옆을 보았다.
“…….”
“…….”
갑작스럽지만, 최가영은 인생을 되돌아봤다.
나 방금…… 이상한 질문한 건가?
그도 그럴 게 이하늘의 얼굴이 토마토보다 새빨갰다. 목부터 귀, 심지어 손까지.
급기야는 몸을 떤다.
“왜 그래?”
심상치 않은 모습에 그는 저도 모르게 의식적으로 고수하던 존댓말을 내던졌다.
그때, 이하늘이 덜덜 떨던 손으로 모노클을 잡아 뜯듯이 뗐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디 아픈 겁…….”
“모, 못 본 척해 주세요.”
뭐?
“아니, 하. 모노클, 아니. 머, 멋있어 보여서 착용한 건 아니고요…….”
횡설수설하는 이하늘을 보고 그제야 최가영은 깨달았다.
그러니까 지금.
‘부끄러워하는 건가?’
“보, 보상으로 나왔는데 제가 모노클을…… 그래. 처음 봐서요. 한번 써봤는데 쓴 걸 까먹어가지고…….”
“…….”
초록 불이 켜진다. 최가영이 다시 출발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이하늘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 미친, 이 미친 이하늘. 모노클을 쓴 채로 대체 몇 명을 만난 거야?
이활이랑 닮은 특진과 헌터, 최가영 헌터, 부담당 헌터. 거기서 끝이 아니다.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저를 보았을 수많은 사람.
그 사람들은 모노클을 쓴 자신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워메, 저 사람 봐. 저게 뭐야? 외안경? 모노클? 저걸 왜 쓰고 다녀?
오글거리게.
오글거리게…….
오글…….
멋대로 상상하고 멋대로 타격받은 이하늘이 두 번 다시 레바브의 모노클과 이어폰을 두고 다니지 않으리라 다짐한 찰나였다.
최가영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괜찮은데요? 안 이상해.”
“저기, 목소리에 웃음기가 있는데요.”
“그건 네가, 웃긴 짓을 하니까.”
“역시 웃겼구나…….”
가느다란 목소리에 최가영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왜 이렇게 귀엽게 굴어?
아무튼, 할 말은 따로 있었다. 최가영이 핸들을 두드리며 본론을 꺼냈다.
“게이트에서 얻은 부산물은 관리국에서 판매할 수 있으니까 한번 알아봐요. 보통 F급에선 하급품만 나오는데 모노클이라. 신기하네.”
“…….”
“귀에 꽂은 그 이어폰도 부산물인가? 처음엔 없었던 것 같은데.”
최가영이 입을 열수록 이하늘은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위기감인 든 탓이었다.
“무슨 기능이 있는지는 모르죠?”
“…….”
“내가 봐줄까?”
아냐. 그건 안 돼!
“아, 아뇨? 아니요? 아뇨! 저, 너무 예뻐서 안 팔려고요.”
“……아깐 부끄러워하더니?”
“아뇨. 제가 이런, 이런 유니크한 걸 사실 좋아해요. 그래서 안 팔 거예요. 제가 가질래요. 가져도 되죠?”
야. 그냥 저 수상해요, 라고 대놓고 말해라.
자신의 입을 꿰매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며 이하늘이 크흠, 헛기침했다. 슬쩍 보니 최가영은 크게 의심하는 것 같진 않았다.
뒤에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도 의심의 기색이라곤 없었다.
“뭐어, 일반인이 부산물 가지면 안 된다는 법은 없긴 한데.”
“그럼 제가 그냥 가질…….”
“하지만 그게 좋은 아이템이면 각성자한테 타깃이 될 수도 있어서.”
최가영이 차를 멈췄다. 벌써 이하늘의 집 앞이었다. 그가 이하늘을 돌아봤다.
현재 시각은 자정이 넘은 새벽. 당연히 사방은 캄캄하다.
차 내부도 마찬가지. 그러니 최가영의 붉은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검게 보여야 정상인데.
새빨갛다.
그 섬뜩한 눈과 마주한 이하늘은 자연히 침을 삼켰다.
아니구나. 의심하지 않은 게 아니라.
“제가 대신 확인해 드리죠. 어떤 아이템인지.”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확인하려고.
이하늘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그냥 넘길까.
그러게 멍청아. 왜 모노클의 존재를 까먹고 있었어.
이하늘이 한 번 더 침을 삼켰을 때였다. 한숨을 쉰 최가영이 그녀의 무릎 앞 글로브박스를 대뜸 열었다.
뭘 꺼내나 했더니 선글라스다.
“겁먹지 마요. 내가 눈 색이 좀 그래.”
중얼거리면서 선글라스를 쓰자 붉은 눈이 사라졌다.
“……아, 아뇨. 겁먹은 건 아닌데.”
“근데 F급에서 그런 류의 아이템이 나온 게 특이한 게 맞거든요. 그러니 줘요. 정보 창만 살짝 볼게.”
“…….”
“좋은 아이템이어도 준다고.”
아, 씨이……. 어쩌지?
저에게 내민 최가영의 손을 이하늘은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던 중 마침, 모노클과 달리 빼지 않은 이어폰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후 안 들렸던 목소리가.
〖괜찮으니 그냥 줘.〗
다른 누구도 아닌, 이 투명화도 안 되는 모노클과 이어폰을 복붙한 자다.
이하늘은 간지러운 귓가를 매만지면서 이어폰을 뺐다. 그리고 저보다 한참 큰 최가영의 손 위에 두 아이템을 올렸다.
각성자는 아이템과 접촉해야만 정보 창을 볼 수 있다. 보통 저보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이면 볼 수 없으나 최가영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S급.
그러니 그가 정보 창을 못 보는 일은 없었다.
<바쁜 늙은이의 모노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