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
엄마는 아름답고, 다정하고, 늘 꿈꾸는 듯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으며 머리가 이상했다.
그래.
머리가 이상했다.
엄마는 자기가 다른 먼 나라에서, ‘렌시아’에서 왔다고 말했다.
어렸던 나는 꿈꾸는 것만 같은 먼 나라 이야기에 푹 빠졌다.
엄마의 이야기는 다른 아이들이 듣는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이야기와는 전혀 달랐다.
S급 모험가가 용을 무찌른 이야기나 오만한 S급 모험가가 실패한 던전 공략을, 견실한 B급 모험가 파티가 성공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런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했고, 나를 무척이나 행복하게 만들었다.
다섯 살 때, 내가 어린이집에서 만들어온 종이 모빌을 장식으로 달고 사교댄스를 추던 엄마가 생각난다.
난 엄마에게 우아한 궁정 예절과 춤을 배웠다.
선생님에게 그렇게 인사하는 게 금방 부끄러워지긴 했지만.
엄마는 늘 망상 속에서 사는 사람이었다.
그 때문인지 엄마는 생활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가난한 삶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날 사랑했고.
나도 엄마를 사랑했다.
엄마는 렌시아로 돌아가고 싶다고 가끔 울었다.
난 엄마가 날 떠날까 봐 울었다.
엄마는 늘 나를 ‘초록 눈 아가씨’라고 불렀다.
그래서 난 내가 초록 눈인 줄 알았다.
검은색이 초록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만나면서 그 생각은 완전히 깨졌지만.
난 학교에서 울며 돌아와 나는 검은 눈이라고, 초록 눈이 아니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런 내 뺨을 감싸며 말했다.
“아냐, 도아야. 도아는 당연히 초록 눈이지. 엄마 딸인걸. 그냥 검은색으로 보이는 것뿐이야.”
하지만 난 세상과 엄마의 말이 전혀 다르다는 걸 배워 나갔다.
등본상 엄마의 이름은 ‘김장미’였다.
렌시아라는 이름의 나라는 없었다.
현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내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엄마는 떠났다.
엄마가 왔던 나라로 돌아간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난 혼자가 되었다.
음.
그걸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설명하지 않겠다.
다들 날 불쌍하다고 이야기했다.
‘불쌍한 것.’
‘가엾은 것.’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불쌍해지는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불행하고 가엾은 일이, 나를 불행하고 가엾은 사람으로 만들도록 두지 않을 거야.
난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거야.
난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거야.
엄마가 이야기해 줬던 수많은 모험가들처럼.
절망에 빠졌던 영웅들처럼.
엄마는 사라졌지만, 엄마의 이야기와 엄마의 노래는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내 다리로 꼿꼿하게 서 있을 테다.
불행한 일, 지독한 일이 나를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으로 바꿔 놓게 만들지는 않겠어.
피해자가 되어 인생을 살아가게 놔두지 않을 거야.
그게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 ❖ ❖
렌시아 대륙에서 모험을 시작하세요!
아름다운 숲과 위험한 계곡, 태양이 떠오르는 곳에서 지는 곳까지 발 닿는 대로 여행을 떠나세요!
세계수와 함께하는 장대한 메인 퀘스트, 동료들과 함께하는 던전 공략.
당신은 모든 전투를 즐기며 대륙 최고의 모험가가 될 수도 있고, 유유자적한 음유시인이 되어 대륙을 가로지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사전 예약을 해 주시는 분께는 특별히 SS급 아이템 세트와 탈것을 드립니다.
“이 링크 보고 들어가서 사전 예약하시고 약관 동의하셨죠?”
바싹 들이민 패드 화면에서 동영상이 지나갔다.
도아는 그 박력에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랬죠.”
솜사탕 같은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활짝 웃었다.
“생과 사의 경계, 세계수 여행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와, 하고 여성이 작은 폭죽을 터트렸다.
팡!
종이 눈이 사방에서 반짝반짝 날리기 시작했다.
도아는 반짝이는 종이 눈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럼 저 죽은 건가요?”
교통사고 사망자에 +1을 해 준 건가?
“아뇨, 아직 안 죽었어요. 여행사에 예약을 해 주셨기에, 저희가 이렇게 마중을 나온 거랍니다.”
분홍색 눈이 반짝였다.
“물론 원하시면 지금 바로 저세상으로 가는 통로를 열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저세상 여행사를 불러 드릴까요?”
“아, 그건 좀."
"그렇죠? 그럼 저희 세계수 여행사와 함께 해 주세요. 약관에 적혀 있는 대로, 메인 퀘스트를 완주하시면 원래 삶으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그녀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저희 세계수 여행사는 여행자님의 즐거운 여행과 안전을 보장합니다. 안 돼도 원래대로 죽는 것뿐이에요.”
“오― 그게 안전 보장인가요.”
“그 외의 적극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습니다. 약속된 아이템과 탈것, 그리고 가이드를 통해서 여행자님이 메인 퀘스트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응원을 해 드려요.”
“아니면 지금 죽든가?”
“네, 고객님.”
“하.”
도아는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교통사고를 당한 건 기억이 난다.
사실 정신을 차렸을 때 당연히 병원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아프지 않아서 생각보다 심한 건 아니었나, 했는데.
‘바보같이.’
지나가는 사람을 엄마라고 착각해서 뛰쳐나간 게 사고의 원인이었다.
자기 과실 100%라서 차주에게 뭐라고 할 마음도 들지 않는다.
도아가 손을 내밀었다.
“패드 다시 한번 보여 주시겠어요?”
“네, 물론입니다.”
여자가 패드를 내밀었다.
도아는 다시금 동영상을 바라보았다.
‘렌시아 대륙.’
엄마가 말했던 대륙 이름이랑 똑같아서 홀린 듯이 사전 예약을 했었다.
게다가 모험이라니.
뭔가 연관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그 망상을 게임 개발에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역시 저 죽은 거 아닐까요?”
도아가 중얼거리자 상대방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죽지 않았어요. 아직이에요. 아직이요. 도아 님.”
그 단호한 말이 묘하게 현실감을 주었다.
도아는 패드 동영상을 다시 한번 감상하고 물었다.
“그럼 이 사전 예약 서비스는 유효한가요?”
“물론입니다.”
그 말에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겠어요.”
분홍 머리 여자가 활짝 웃더니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그럼 저는 오늘부터 도아 고객님을 담당하게 될, 담당자 메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메이가 명함을 꺼내어 내밀며 공손히 인사했다.
도아도 얼결에 마주 일어나서 명함을 받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몸에 밴 습관 덕분이었다.
[세계수 여행사, 과장 메이.]
분명히 판타지여야 할 텐데, 어딘가 묘하게 현실적이다.
‘그래도 과장이면 높은 건가?’
갸웃거리며 메이를 힐끗 바라보자 그녀는 솜사탕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복도 쪽이 유리로 된 사무실 안에 앉아 있었다.
처음에 병원이라고 착각했던 것도 이 현대적 구조 때문이었다.
메이가 유리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
“먼저 사전 캐릭터 생성을 해 주신대로 신체 조정을 할 예정입니다.”
도아도 자리에서 일어나 메이를 따라 나가며 물었다.
“신체 조정이요?”
“네, 물론 도아 님 원래 생김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도아 님의 세계와 이세계, 렌시아 대륙은 간극이 크니까요.”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는 산소와 질소가 혼합된 공기를 마시지만, 렌시아에서는 알 게 뭐람?
살던 땅만 떠나도 물갈이를 한다는데 이세계로 가는 거라면 그걸 위해서 몸을 조정하는 게 당연했다.
“알겠어요. 하러 가죠.”
앞서가는 메이를 따라가며 도아는 주변을 살폈다.
커다란 현대식 고층 빌딩 내부인 것처럼 보였다.
두리번거리는 도아에게 메이가 말했다.
“도아 고객님께 익숙한 모습으로 맞춘 거예요.”
“신기하네요.”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메이가 엘리베이터를 잡아 주었다.
위로 올라가는 건 느껴지지만 층수는 보이지 않았다.
문이 열리자 꼭 병원처럼 보이는 장소가 나왔다.
“신체 조정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가운을 입은 직원이 그녀를 맞아 주었다.
“이쪽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주세요.”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그녀는 나무와 투명한 유리로 만든 원통형 모양의 MRI 기계 같은 것에 누웠다.
나무라 그런지 촉감이 따뜻했다.
직원이 도아를 도와주며 재잘재잘 떠들었다.
“일단 렌시아에 완전히 적합한 몸으로 바꿀 거고요, 외양은 기본적으로 커스텀 하신 외모와 흡사하게 진행됩니다.”
도아가 말했다.
“그때는 헤어스타일이랑 머리카락 색, 눈동자 색, 피부색만 바꿨는데요.”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헤어랑 머리카락 색, 눈동자 색, 피부색은 사전 생성하신 캐릭터같이 진행되고요, 외모도 거기 맞춰서 조금씩 바뀝니다. 원하시지 않으면 바꾸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씩 바꿀 때마다 마이크로 설명을 드릴 거예요.”
“알겠어요.”
도아가 누워서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이 한 걸음 물러섰다.
소리도 없이 유리문이 닫혔다.
그때 마이크가 연결되어 있는 건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도아 고객님, 먼저 신체 조정하면서 최적화도 시킬게요.”
“네.”
약간 긴장이 되어서 도아는 뻣뻣하게 몸을 굳혔다.
“괜찮아요, 아프지 않으니까요. 어디 보자 일단 먼저 바디 체크할게요.”
삐빗
기계음이 나더니 마이크에서 “허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객님, 거북목이시네요?”
“네? 네네…….”
“이거 펴 드릴게요. 아, 말린 어깨도 조정하겠습니다. 어? 척추도 약간 휘셨네요. 이것도 펼게요. 아니, 손은 왜 이렇죠? 방아쇠 수지 증후군이 보이네요. 이것도 돌려놓을게요. 손가락 길이도 살짝 조정할게요.”
연신 이어지는 말에 도아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더니 갑자기 목이 편해지고, 어깨도 쫙 펴졌다.
저도 모르게 움직여 본 손가락도 불편함이 없었다.
현대인의 고질병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쩐다……!’
“음, 체지방량도 줄이고, 대신 근육량은 늘릴게요. 골밀도도…… 충분히 높여야겠네요. 어디 보자.”
삑, 삐삑, 삑삑
도아는 저도 모르게 팔을 들어 보았다.
팔이 가늘어졌다!
슬쩍 만져본 복부도 납작하고 단단해져 있었다.
옆구리 살도 더는 잡히지 않았다.
‘와.’
도아는 지금까지 시도했던 다이어트를 떠올렸다.
직원은 거침없이 ‘조정’을 이어 나갔다.
“왜 손목이랑 무릎도 안 좋으실까요? 뼈 상태도 최상으로 만들어 놓을게요.”
“일하다가……. 감사합니다.”
손목은 마우스 때문이겠고, 무릎은 전에 일하다가 호되게 넘어진 일 때문일 터였다.
“시력도 안 좋으시네요. 난시도 있으시고. 시력도 올릴게요. 동체 시력도 최상위로 바꿔 두겠습니다.”
삐빗
그 순간 세상이 환하고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와, 미친?’
목소리가 이어졌다.
“얼굴 윤곽이랑 좌우대칭도 살짝 손댈게요. 더 원하시는 거 있으세요?"
도아가 물었다.
“혹시 비염도 고쳐지나요?”
“아, 물론이죠. 그런 잔병들은 아까 전부 고쳤어요. 피부 톤도 조정할 건데 겸사겸사 피부 탄력이랑 수분량도 조정해 드릴게요. 잡티도 제거해 드리고요. 아, 혹시 골격도 조금 바꿔도 되나요? 비율을 아름답게 수정하고 싶은데.”
“네, 그럼요.”
저도 모르게 들뜬 목소리가 나왔다.
“위장장애도 개선했고요. 속눈썹 길이와 양도 늘리고, 모발 양도 조정할게요. 단발머리에 남색 머리카락을 선택하셨네요.”
“네, 맞아요.”
“이 색으로 계속 진행할까요? 눈동자는 녹색이시네요. 눈동자는 원래 색으로 가시나 봐요.”
“네? 네…….”
원래 설정한 색이란 말인가. 하고 도아는 대답했다.
“그럼 그대로 진행할게요. 치열도 고르게 만들 거고요, 단단하게 할게요. 치아 색도 조정하겠습니다. 반사 신경도 조정하고요. 목소리는 지금 목소리 괜찮으세요? 아니면 조정을 좀 해 드릴까요?”
“목소리는 괜찮은데, 아! 혹시 노래 잘하게도 되나요?”
“물론이죠. 그 부분도 조정할게요.”
별별 세세한 조정들이 전부 이루어진 후에 유리문이 열렸다.
도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렌즈나 안경도 없이 모든 게 선명하게 보였고, 팔다리도 길고 날씬했다.
‘너무 잘 보여. 안경 썼을 때 보다 더 잘 보여. 이럴 수가 있나? 세상이 이렇게 선명해도 되나?’
직원이 나와서 웃으며 거울 앞으로 도아를 데리고 갔다.
“혹시 더 조정하고 싶으신 곳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거울 앞에서 도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몸의 비율이 완전히 모델처럼 바뀌어 있었다.
팔다리는 길고 날씬했다.
키는 그대로였지만 비율 때문인지 키가 더 커 보였다.
피부도 이렇게 좋은 눈으로 봐도 희고 투명하고 탱글탱글했다.
‘와…….’
만져본 머리카락도 너무나 반짝이고 부드럽다.
색 역시 어둡다기보다는 푸른 기가 많이 도는 남색 단발머리였고,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이 얼굴이면 뭐든 다 어울리겠다.’
거기다가 초록색 눈동자는.
“와……. 초록색이 이런 초록색인지는 몰랐어요.”
아주 밝은 연둣빛 초록에서 밤의 숲 같은 깊고 어두운 초록까지.
눈동자 색이 이리저리 각도에 따라 바뀌었다.
눈 밑에 있는 그녀의 눈물점도 피부가 하얗게 되어서인지 예전보다 더 선명하게 보였다.
“본인 눈 색을 처음 보시나요?”
“네? 아뇨, 설정에는 그냥 ‘초록색’이라고만 되어 있어서.”
도아가 하는 말에 직원이 갸웃했다가 “아아.” 하고 말했다.
“검은색으로 덮여 있어서 모르셨군요. 도아 님 원래 눈동자 색이에요. 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