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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여행사 : S급 먹방대모험 패키지-6화 (39/100)

⊹ 6화 ⊹

투명한 사각 수조를 푸른색 물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도아는 얼떨떨해졌다.

“물?”

“이 마수는 ‘디나담’이라고 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변신할 수 있는 마수랍니다.”

“오?”

“물론 제약은 있습니다. 통째로 먹어 치운 마수로만 변신할 수 있어요.”

통째로 먹어 치운다.

어딘지 오싹한 울림이 있었다.

“그렇군요. 그럼 슬라임 같은 걸까요?”

“비슷하네요. 본래는 물속에서 사는 마수인데, 육지로도 올라오고 싶어 해서 탈것으로 계약을 했지요.”

“이쪽도 사전 예약으로 낚았어요?”

도아가 농담인지 아닌지 모를 말투로 묻자 메이가 웃었다.

“비슷하지요. 도아 님께서 이름을 붙여 주시면, 도아 님의 탈것이 될 거랍니다. 일단 지금 기본 모습은 셋 중에 선택하실 수 있으세요. 먼저 이름을 지어 주시겠어요?”

“음.”

도아는 수조에 담긴, 아무래도 흔들거리는 푸른 물로밖에 보이지 않는 생물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해왕으로 할래요. 바다를 질릴 정도로 봤다면 해왕 정도는 되겠죠.”

“알겠습니다. 마수의 이름을 ‘해왕’으로 고정합니다.”

다음 순간 대야 속에서 푸른 물이 솟구쳤다.

도아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작은 대야처럼 보였는데 물이 끝도 없이 솟구쳐올랐다.

허공에 거대한 해파리처럼 푸른 물이 흔들렸다.

“해파리를 타는 건가요…….?”

중얼거리니 메이가 웃고 말했다.

“그럴 리가요.”

그러며 그녀가 세 개의 작은 동물 모형을 꺼내 보여 주었다.

“그럼 세 가지 모습 중에 어떤 모습을 기본으로 선택하시겠어요?”

첫 번째는 뿔 달린 늑대, 두 번째는 커다란 뿔이 멋지게 휜 아이백스(ibex) 비슷한 생물, 세 번째는 귀여운 노란색 오리 같은 것이었다.

한참 끙끙거리다가 결국 도아는 늑대로 결정했다.

메이가 늑대 모형을 집어 들어서 해파리에게 던졌다.

늑대 모형이 해파리 안으로 빨려 들어가자 해파리―아니, 해왕이는 몸을 휘리릭 움직였다.

모형이 녹아서 사라지고, 바닥에 떨어지며 해왕이는 모습을 바꾸었다.

푸른색 슬라임 같은 모습에서 늑대로 모습이 바뀐다.

커다란 늑대였다.

말처럼 높이 자체가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한 크기였다.

메이는 안장을 가져와서 채우는 법을 알려주고, 하네스 같은 고삐를 맨 후에 안장을 채워 주었다.

도아는 야무지게 안장 양옆에 안장 가방도 올렸다.

이것도 물론 이공간 가방이었다.

각각 다섯 칸씩 되는 물건이다.

활통도 안장 옆에 달았다.

“해왕아, 앞으로 잘 부탁해.”

도아가 인사하자, 늑대는 금색 눈을 깜박인 후에 가볍게 고갯짓을 했다.

“어? 말을 알아들어?”

놀라 묻자 해왕이 “컹!” 하고 짖었다.

도아가 메이를 돌아보니 메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봬도 천년은 살아온 마수랍니다. 당연히 지능이 있지요.”

“천년이요?”

“네.”

세상에.

“너 해왕이 맞구나?”

“컹컹”

해왕이 다시 짖었다.

메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완전한 지성체와는 다른 부분이 있답니다. 육지는 처음이기도 하고요.”

“알겠어요.”

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더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메이의 말에 도아는 끙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아이템 코너에서 가져가고 싶었는데 너무 무거워서 버린 아이템이 얼마던가.

“더 욕심내면 안 될 거 같아요.”

이민을 가는 것도 아니고, 여행자라면 가방을 가볍게 싸야 하는데.

아마 지금 가방을 탈탈 털면 엄청나게 많은 게 떨어질 거 같았다.

‘마법 가방이라 다행이야.’

일반 가방이었다면 이것의 절반―아니 10%도 못 가져갔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탈것도 이렇게나 마음에 드는데.

늑대는 크고 아름답고 균형도 완벽했다.

이 자유롭고 아름다운 짐승에게 안장을 씌우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안장하니까 뭔가 또 멋져.’

도아가 해왕이를 토닥거리니 해왕이가 축축한 코로 그녀의 얼굴을 킁킁거리다가 쿡 찔렀다.

도아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해왕아, 너 진짜 멋지고 예쁘다.”

“컹.”

해왕이 꼬리를 살살 흔들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늑대로 선택하길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어떤 모습으로든 변한다고 했잖아요?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죠?”

“먹으면 돼요.”

메이가 답했다.

“먹어요?”

“네, 통째로 디나담이 전부 삼키면 삼킨 대상을 해석해서 그 모습으로 변합니다.”

“그래요…….”

드래곤 같은 걸로는 못 변하겠네.

도아는 그렇게 생각하고 해왕이의 목덜미를 토닥거렸다.

“그럼 여행에 필요한 걸 전부 챙기셨으니까, 메인 퀘스트용 아이템을 가지러 이동할게요.”

“응.”

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창고형 마트여서 그런지 엘리베이터도 커다란 화물용으로 바뀌어 있었다.

해왕이와 같이 타기는 그게 좋았다.

다시 아래로 더 깊이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긴 복도가 이어졌다.

복도를 걷던 메이는 중간에 “해왕 님은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하고는 도아를 데리고 복도 끝의 문을 카드키로 열었다.

안은 깜깜하고 어두웠다.

방 가운데에 핀포인트 조명이 떨어지고 있었다.

금빛 조명에 먼지 같은 게 반짝였다.

어디 조명이 있나 하고 고개를 들어봤는데 엄청나게 까마득한 위에서 빛이 떨어지고 있었다.

“조명 아래로 가 주세요.”

메이의 말에 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명 아래 섰다.

그러자 화려한 조명이 그녀를 감쌌다.

“?!”

황금색 빛이 튀고 부서지며 도아를 밀어 올리고 스쳐 지나갔다.

빛이 어떻게 물리적 힘을 가질 수 있는지는 일절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랬다.

간지럽고, 따뜻하고, 다정한 빛무리가 그녀를 훑어서 도아는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웃는데 어쩐지 눈물이 났다.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듯한 따스함이었다.

그렇게 놀던 빛무리가 그녀의 앞에서 단번에 압축되더니 금색 나뭇가지로 변했다.

그게 무엇인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세계수의 가지…….”

홀린 듯 손을 뻗어서 가지를 집자, 황금빛은 사라지고 평범한 가지가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가지는 흰색이지만 잎은 초록이 무성한 싱싱한 나뭇가지였다.

팟!

방 안에 조명이 전부 켜졌다.

도아가 놀라 주변을 둘러보자, 그곳은 그냥 평범한 방이 되어 있었다.

“신기하네…….”

도아가 가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응?”

근데 가지 아래쪽에 위로 밀어 올리는 스위치 같은 게 있었다.

생물에 붙어 있으니 이질감이 들 법도 한데, 이상하게 자연스럽다.

“이게 뭐죠?”

그때 언제 다가왔는지 메이가 다가와 설명했다.

“가지에 있는 정화의 힘을 쓰실 수 있는 버튼이에요. 버튼으로 얼마나 힘을 쓰실지 조절하실 수 있어요. 끝까지 버튼을 밀어서 힘을 전부 다 쓰시면 비상사태라고 생각해서 고객센터로 연결됩니다.”

“고객센터?”

“네, 세계수 여행사는 언제나 고객님께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답니다.”

“흠…….”

어지간하면 쓸 일이 없어 보였다.

메이가 방 밖으로 나가자고 가리켰고, 도아는 방을 나섰다.

긴 복도를 걸으며 메이가 설명했다.

“그리고 가지를 꺼내 드시면 주변에 그 힘이 적용됩니다. 마수의 등급이 두 단계 하락한답니다.”

“완전 치트키네요?”

“네, 하지만 사용하고 나면 충전에 시간이 오래 걸리니 주의해서 사용해 주세요.”

“알겠어요.”

치트키를 남발하면 재미없다.

게다가 사부들의 제자인데.

이미 아이템으로도 충분히 치트를 얻은 거 같으니 이건 아껴두자.

도아는 주머니에 세계수 가지를 넣고는 메이를 돌아보았다.

“아 참.”

“네, 도아 고객님.”

“메인 퀘스트가 뭔지 아직 말 안 해 줬어요.”

“아, 메인 퀘스트는 여행을 시작하시게 되면 알게 될 거예요. 맞아. 가장 중요한 걸 깜박할 뻔했네요!”

메이가 양 손바닥을 팡 치며 말했다.

“가이드를 드려야죠!”

엥?

복도에서 갑자기?

도아가 당황하는데, 메이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쥐었다가 팟 뿌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금색 가루가 반짝반짝 도아의 주변에서 빛났다.

“가이드 모드, 버전 메이! 시작합니다!”

“우왓!”

갑자기 어디선가 레이저빔 같은 게 사방에서 쏟아져서 도아는 눈을 가렸다.

쿵짝쿵짝

업비트의 빠른 노래가 들린다.

번쩍

갑자기 빛이 번쩍이더니

[가이드 모드 업데이트 완료]

단조로운 목소리와 함께 모든 게 사라졌다.

“어떤가요? 평범하게 가이드를 드리면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르실 거 같아서, 특별히 앞에 이펙트를 넣었어요.”

“어……대단하네요…….”

어쩐지 빛에 노출된 눈이 간질간질해서 도아는 눈을 비비며 대답했다.

메이가 후후 웃으며 말했다.

“고객님,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돈?”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인맥이에요! 혹시 이런 이야기 아시나요?”

“무슨 이야기요?”

“무덤 사이에서 귀신이 떠드는 이야기를 듣고, 다음날 가서 김진사 댁 딸을 고쳐준 이야기요!”

“아…….”

도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런 옛날이야기가 있는 거 같다.

자기가 아는 이야기는 참새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거였는데, 아마 맥락은 같겠지.

김진사 댁 딸이 이러저러해서 아픈데, 요렇게 하면 고칠 수 있대. 근데 그걸 모르니 인간은 어리석지.

그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이 김진사 댁으로 가서 딸을 고쳐주고 그 딸과 결혼해서 잘 산다는 이야기였던 거 같다.

“비슷한 걸 들은 거 같은데……?”

“이 이야기의 교훈이 뭘까요?”

“그, 글쎄요.”

이게 교훈이 있는 이야기던가?

“인맥이 중요하다는 거죠! 귀신의 이야기를 들어서, 김진사 댁 딸을 고쳐줄 수 있었잖아요!”

“그게요?”

그게 뭔 인맥 이야기야?

도아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메이의 눈이 번득였다.

광기마저 비쳐 보이는 것 같다.

“이 가이드 모드는 그런 인맥 찾기에 활성화가 되어 있습니다! 아, 쓰러져가는 미청년을 구했다? 당연히 마탑주쯤은 되어야죠! 몸이 안 좋으신 할머니를 업어다 드린다? 그 할머니가 갱단 두목의 어머니여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음…….”

갑자기 수많은 클리셰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메이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

“그런 인맥들이 여행을 얼마나 쉽고 편하게 해 줄지 생각해 보세요! 현지인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그들과 어울리는 일이 여행의 질을 높여 준다고요.”

“어……. 그런 거 같기도 하고……?”

확실히 현지인의 안내가 있으면 다르지.

현지인만 아는 맛집이라든가, 숨겨진 장소라든가, 그런 검색어가 왜 있겠는가?

‘게다가 나쁘지 않아.’

클리셰투성이 좋아.

도아의 이번 여행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메인 퀘스트 좋다.

내가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거 당연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남이 준 목적만으로 이 모든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그녀의 목적이 필요했다.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기.’

그게 그녀의 목표였다.

삶에서 살기 바빠서 사실 친구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런 핑계도 있었지만 결국 떠나갈 사람이 무섭기도 했다.

엄마가 그녀를 떠났던 것처럼.

하지만 사부들과 지내면서 그런 생각이 옅어졌다.

‘난 사실 멋진 걸 놓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모든 관계가 다 아름답고 반짝인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바닷가에 모든 모래가 다 반짝이지는 않지 않은가?

하지만 분명히 반짝이는 석영 조각이 있을 텐데.

그저 무심히 지나친 게 아닐까, 하는 조그만 반성이었다.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른다.

그걸 위해서 바닷가에 모래를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가?

‘있다.’

그게 사부를 만난 그녀의 소감이었다.

그래서 도아는 처음으로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라크샤샤가 그랬지.

받고 싶은 대로 주라고.

도아는 사부들에게 받은 애정이 좋고, 즐거웠다.

그래서 그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똑같이 대해 주고 싶었다.

물론 부족한 게 많을 테고, 잘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라고 생각했는데.

메이가 준 가이드 모드가 거기에 딱 맞았다.

아니, 어쨌든 도와주는 거잖아?

도와주고서 친구가 되자고 하는 거잖아?

그럼 그냥 ‘친구 하자.’보다 훨씬 더 쉽게 시작할 수 있잖아?

“엄청 좋은데요?”

도아의 말에 메이가 환하게 웃었다.

“그렇죠? 역시, 도아 고객님은 알아주시는군요!”

메이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제가 고심해서 만든 가이드 모드인데, 다들 이 중요성을 모르더라구요!”

“아이고, 저런.”

도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훌륭한 가이드 모드의 중요성을 모르다니요. 현지인이랑 잘 알면 여러모로 편리하죠.”

“그렇죠?!”

메이가 잡은 손이 아프다, 싶을 때 메이가 작게 소곤거렸다.

“그래서 제가 가이드 모드를 서브 퀘스트에 연동해 놨어요.”

“?”

“서브 퀘스트를 깨면 세계수 오두막을 업그레이드하는 포인트를 주잖아요.”

“아, 그랬죠.”

“인맥도 얻고, 포인트도 얻고. 꿩 먹고 알 먹고. 일석이조가 이런 거죠.”

메이가 눈을 찡긋하고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도아 님은 모험가라는 직업을 선택하셨죠? 정식으로 모험가가 되시려면 모험가 길드에 등록하시면 됩니다. 후후, 좋은 인맥 잡으시길 바랍니다.”

“모험가 길드…….”

한숨처럼 그 단어가 나왔다.

모험가 길드.

굉장히 설레는 이야기 아닌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엄마의 이야기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모험가 길드에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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