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계수 여행사 : S급 먹방대모험 패키지-9화 (42/100)

⊹ 9화 ⊹

도아는 천천히 그 손을 따라서 시선을 움직였다.

그녀에게 닿기 전에 손이 멈췄다.

손끝이 그녀와 사이의 허공을 어루만진다.

느릿하게, 그녀에게는 닿지는 않도록.

닿지 않게 주의한다기보다는, 뭔가 닿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뺨 가를 지나갈 때 도아는 에잇 하고 몸을 기울였다.

조세핀이 뭐라고 했던가.

친해지는 데에는 스킨십이 최고라고 하지 않았던가.

문화차이 정도야 받아들일 수 있다.

그의 손과 그녀의 뺨이 닿자마자, 남자는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굳었다.

도아는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도 그녀를 바라본다.

닿았던 손이 약간 움직인다 싶더니 그녀의 뺨을 살짝 쥐었다.

그러니까 검지와 엄지로.

‘꼬집나?’

그녀의 뺨이 말랑한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살살 그가 그녀의 뺨을 쥐었다.

몇 번 말랑말랑 그녀 뺨을 만지더니 조금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진짠가?”

“가짜도 있나요?”

도아가 물었다.

고열 때문에 그가 플래시백에 시달렸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안 돼, 가지 마.”

그는 신음처럼 내뱉었다.

도아는 그의 손을 잡고 “괜찮아요, 어디 가지 않아요.” 하고 몇 번이나 속삭여 주었다.

그녀 역시 같은 말을 엄마에게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의 고통이 마음속에서 공명하듯 울렸다.

‘열 때문에 봤던 환상 중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빙긋 웃어 보였다.

“환상이 아닙니다.”

도아의 말이 믿기지 않는 것처럼 그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도아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말했다.

“저는 김도아라고 해요.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날 모르나?”

“네.”

“…….”

남자의 표정이 조금 비딱해졌다.

도아는 머리를 굴렸다.

그는 S급 모험가다.

잘은 모르지만, S급 모험가는 무척이나 유명할 테고 그를 아는 사람은 무척이나 많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가 하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모르는걸!’

게다가 뺨을 꼬집다니.

도아는 뚱한 목소리로 물었다.

“알아야 해?”

도아가 다시 물었고, 남자는 그녀의 뺨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꽉 쥐었다가 놓아주며 말했다.

“아니, 알 필요 없겠지.”

그가 팔짱을 꼈다.

도아가 제 뺨을 문질렀다.

“그럼 이름이 뭐야?”

“알 필요 없는 거 아닌가?”

그가 틱틱거려서 그녀는 눈을 찌푸렸다.

아니 왜 애처럼 굴지?

도아도 그와 마찬가지로 팔짱을 끼고 말했다.

“내가 그쪽 생명의 은인인데, 지금 이런 시시한 걸로 심술을 부리는 거야?”

“시시…….”

그는 뭔가 말하려고 했다가 눈을 꾹 감았다.

뭔가 참아내는 얼굴이었다. 잠시 후 그가 눈을 뜨고 말했다.

“쿠낙 샌델.”

그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내 이름이야.”

그러며 그는 절실히 뭔가를 기대하듯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도아의 머리는 당연히 백지였다.

“만나서 반가워.”

도아는 처음 뵙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인사했고 쿠낙은 잠시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팔짱을 풀었다.

“그렇군. 이런 건가.”

그는 그렇게 말했다.

어딘지 서글픈 어조였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순식간에 감정을 정리하듯 그는 아까와는 다르게 붙임성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버릇없이 굴어서 죄송합니다, 도아 양. 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무례하게 굴었군요.”

손바닥 뒤집듯이 바뀐 태도에 도아는 눈을 깜박였다.

“어― 아녀요.”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프고 혼란스러우면 그럴 수도 있지요. 아, 일단 불부터 더 밝힐게요.”

그녀는 돌아서서 짐에서 별조각 랜턴을 찾아냈다.

기름 램프보다 훨씬 밝은 빛이 오두막을 밝혔다.

말 그대로 빛나는 별조각에서 톡톡 튀는 듯한 밝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에 별조각 랜턴을 걸 곳이 없나 두리번거렸다.

쿠낙이 다가와 그녀의 손에서 랜턴을 가져가서 오두막을 가로지르는 서까래에 걸어 주었다.

키가 크기에 쉽게 가능한 일이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생명의 은인이시니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괜찮아요. 그럼 일단 뭔가를 먹을까요? 배고프실 텐데. 저도 뱃가죽이 등에 붙겠어요.”

도아는 그러며 부엌으로 다가가 찬장에 남아 있는 식재료를 살폈다.

여행사에서 나올 때 식료품도 야무지게 이것저것 챙겼는데 슬슬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그래도 쌀은 남아 있네.’

세계지도를 보면 대충 나라가 일곱 정도 되어 보이는데, 그중에 한두 곳에서는 쌀을 재배하는 모양이었다.

기쁜 마음에 식량창고에서 쌀도 챙겼었다.

‘그런데…….’

사실 쌀이라고 하지만, 렌시아의 쌀과 지구의 쌀은 귤과 천혜향만큼 차이가 있었다.

쌀뿐 아니라 모든 게 다 그랬다.

비슷하다면 비슷하고, 다르다면 완전히 다르다.

인간도 사실 겉모습만 비슷하고 전혀 달랐고, 모든 생물이 다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게 편하니까.’

인식에 그게 편하니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도아는 능숙하게 흰죽을 끓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맛있는 요리를!

엘리바스의 모토처럼 도아도 일단 맛있는 요리로 기선 제압하기로 했다.

그냥 맹물에다가 끓이면 맛이 없을 거 같아서 말린 로로잎을 우려냈다.

말린 로로잎은 옅은 육수 같은 맛을 내는데, 식물이기 때문에 비린 맛이나 특유의 향이 거의 없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육수에다가 쌀을 넣어서 끓인다.

마지막으로 소금간을 절묘하게 맞췄다.

육수의 감칠맛과 소금간이 서로의 맛을 완벽하게 끌어 올렸다.

한입 먹는 순간 흰죽이 입 안에서 따뜻하고 순하게, 그렇다고 부족하지는 않고 꽉 찬 맛으로 넘쳤다.

‘내가 만들었지만 미쳤다.’

도아는 만족스러운 숨을 내쉬었다.

쿠낙이 자연스럽게 다가와서 접시를 건넸고, 도아는 국자로 죽을 듬뿍듬뿍 담아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살짝.

또르륵 작은 병에서 기름이 흘러나가고 곧바로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쿠낙도 뿌릴래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니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아는 그의 몫에도 참기름을 살짝 뿌려 주었다.

물론 해왕이의 몫도 잊지 않았다.

도아가 테이블에 앉아서 죽을 한입 가득 떠넣었다.

‘맛있다!’

다시 먹어도 맛있다.

그녀가 반응을 보려고 슬쩍 쿠낙을 보았는데 그는 천천히 죽을 먹고는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한 입 더 죽을 입에 가져다 넣더니만,

“하하하!”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도아는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웃어?’

그녀는 저도 모르게 죽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게 들어갔나?’

제 몫을 다시 한 입, 입 안에 넣어 봐도 여전히 맛있기만 할 뿐이었다.

어리둥절해서 그를 바라보니 그는 허리까지 구부리며 큭큭 웃더니 마지막으로 짧게 웃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정한 눈동자였다.

사랑스러운 것을 바라보는 듯한 눈이어서 도아는 어쩐지 순식간에 의기양양해졌다.

“맛있죠?”

도아가 묻는 말에 그는 다시 작게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척 맛있습니다. 도아 양은 훌륭한 요리사시군요.”

“얼마든지 있으니까 더 먹어요.”

세계수의 축복받은 냄비로 만든 요리는 남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언제나 정량을 지켜주는 소중한 냄비였다.

쿠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음미하듯이 죽을 먹었다.

도아도 오랜만에 맛있는 죽을 만끽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걸 먹으니 속이 편하고 기분도 느슨해졌다.

느슨해진 기분으로 도아는 재잘거리며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남대륙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모험가 지망생이라는 것,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것 등등.

“운이 좋았군요.”

쿠낙이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뭐가 말예요?”

도아가 묻자 그가 답했다.

“도아 양이 숲을 헤매고 있지 않았다면, 전 거기서 죽었을 테니까요.”

“아.”

도아는 순간 뭐라고 말해야 하나 싶었다.

‘무슨 말이 적절한지 모르겠어.’

고민하는데 그가 물었다.

“그런데 내 주변에 시체 하나 없었나요?”

도아는 거침없는 조세핀과 라크샤샤의 대화에 익숙해져 있어서 이런 대화는 편했다.

“목 없는 시체라면 하나 있었어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대로 놔뒀는데…….”

머쓱해져서 도아가 슬쩍 물었다.

“적이 아니었나요?”

“십년지기 친구였답니다.”

“엇.”

도아는 더더욱 당황했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으니 아마 야생동물이 시신을 가만두지 않았을 터였다.

“아니, 저는……. 일단 산 사람을 구하는 게 급해서……. 그리고 그 사람이 독을 먹인 건 줄 알고…….”

“그 사람이 독을 먹인 거 맞습니다.”

“십년지기라고 하셨죠?”

“그렇지요.”

“그런데 독을 먹인 건가요?”

“그렇습니다.”

“저런.”

아무 생각 없이 말이 튀어나왔다.

아차, 하는데 쿠낙이 웃었다.

“십년지기쯤 되지 않으면 제게 독을 먹일 수가 없지요.”

도아가 그 말에 죽을 내려다보고, 다시 그를 보았다.

시선을 눈치챈 쿠낙이 말했다.

“도아 양은 제 은인이시니까요. 도아 양께서 저를 죽이려 했다면, 이미 전 죽었겠지요.”

판단이 정확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며 배짱이 좋다고 해야 할까.

도아는 문득 아까 그가 막 웃었던 게 떠올랐다.

‘그래서 웃었나?’

독에 당해놓고선, 독 기미 없이 식사하는 자신이 웃겨서?

도아는 순간 ‘괜찮냐’라는 질문이 나올 뻔한 걸 눌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을 리가 없었다.

물론 ‘괜찮아?’라는 질문은 진짜로 괜찮냐고 묻는 질문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던질 질문은 아니다.

“음…….”

도아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유감이에요.”

“뭐가 말입니까?”

쿠낙이 되물었다.

도아가 덤덤히 답했다.

“십년지기 친구에게 독 먹은 거요.”

“별로, 도아 양이 유감일 건 없지요.”

도아는 뺨을 긁적였다.

“그래도…….”

사람이 그런 충격적인 일을 당했으면 그 충격을 주변에 발산하거나 불안정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는 침착했다.

‘당한 걸 생각하면, 나에게 틱틱거리는 정도야 양호하단 말이지.’

도아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역시 눈동자가 무척이나 예쁘다.

별이 총총하게 떠 있는 깊은 우물 같았다.

그 안에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얼마나 깊은지는 알 수 없지만, 찰랑이는 수면에서 별빛이 춤추며 유혹한다.

아니다.

유혹하는 건 별빛이 아니라 그 아래 깊은 어둠이다.

분명히 한낮에도 깊고, 어둡고, 끝을 알 수 없는 차가운 우물.

발돋움해서 들여다보다가 빨려 들어갈 거 같은…….

도아는 살짝 시선을 내려서 피하고는 말을 맺었다.

“어쩐지 미안한걸요.”

괜한 걸 물어본 기분이다.

“생명의 은인이신 도아 양께서 신경 쓰실 만한 일이 아닙니다.”

쿠낙의 말에 도아는 픽 웃었다.

“생명의 은인이니까 뭘 해도 다 된다는 건 아니지요.”

도아가 그러며 슬쩍 물었다.

“그 사람은 왜 그런 짓을 했을까요?”

직설적인 질문이지만, 필요한 질문이었다.

쿠낙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마검 소유자니까요.”

❖ ❖ ❖

렌시아 대륙의 사람들은 마나를 사용한다고 이미 이야기했다.

마나를 사용하고, 몸에 축적한다.

그러데 외부에서 들어온 마나가 있다.

이걸 렌시아에서는 ‘오염’이라고 불렀다.

렌시아 대륙에서 약 오천 년 전에 ‘대붕괴’가 일어났다.

대륙이 쪼개져서 남대륙이 떨어져 나간 것도 그때였다.

렌시아를 감싸고 있던 차원막이 깨지면서 외부의 마나가 쏟아져 들어오고 렌시아 내부의 마나가 빨려 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람들이 자랑하는 고대 도시들이 블랙홀 같은 차원의 균열로 통째로 빨려 나갔다.

동시에 외부 마나는 사람들을 오염시키고 수많은 마수들을 만들어냈다.

지진과 홍수, 가뭄이 동시에 생겨났고 하늘에는 불덩이 같은 우박이 떨어졌다.

세계수의 사도들은 남은 힘을 전부 모아서 쥐어 짜냈다.

그들은 차원의 균열을 ‘던전’이라는 모습으로 한정시켰다.

던전은 여기저기서 생겨났지만, 적어도 자연재해는 멈췄고, 도시와 사람이 빨려 들어가는 것도 멈췄다.

그러나 ‘오염’은 남았다.

사람이 숨 쉬며 자연스럽게 마나를 쌓듯이, 오염도 쌓이게 되었다.

오염은 병을 일으키고 사고를 일으키고 불행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 켠에 마법사들이 있었다.

마법사는 본래 외부 마나를 사용해서 렌시아의 마나에 간섭해 마법을 부리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차원 균열이 일어났고, 더 이상 외부 마나를 끌어 올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차원막이 비눗방울처럼 약해졌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다른 방법을 택했는데 ‘크리스털’이라고 하는 물질을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이 물질을 사용하면 몸에 오염이 축적되었다.

이 물질을 사용하고, 오염의 일부를 정화하고 배출하기 위해서 마법사들은 척추에 특별한 마법을 새겼다.

그래, 등뼈에. 직접.

그리고 그걸 감내할 만큼 마법이 대단하느냐?

정말 대단했다.

도아는 엘리바스가 마법을 사용하는 걸 보고 그냥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저걸 어떻게 이겨?’

그런 생각뿐이었다.

뭐, 조세핀 덕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게 됐지만.

하여간 그래도 마법사들은 기피의 대상이었다.

대충 비유하자면 작은 화력 발전소 같다고 할까.

어쨌든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자들이니 말이다.

그에 비하면 마검은?

마검은 걸어 다니는 원자력 발전소나 마찬가지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