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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여행사 : S급 먹방대모험 패키지-10화 (43/100)

⊹ 10화 ⊹

‘오싹하지.’

우리 옆집이 원자력 발전소라고 하면 아마 이사 가고 싶어질 거다.

그런데 방사능이 언제 샐지 모르는 원자력 발전소라면 더욱 그렇다.

마검의 제어는 순전히 숙련자의 정신상태에 달려 있었다.

마검과 함께 있으면 계속해서 제정신이기 어렵다.

한마디로 쿠낙에게서 방사능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우라늄 목걸이 같은 걸 하고 다니는 미친놈이라는 건데.’

“왜 마검과 계약했어요?”

“살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쿠낙의 말에 도아는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다른 할 말은 없었다.

“그럼 저도 피폭, 아니 오염되는 걸까요?”

쿠낙은 그 말에 도아의 눈을 들여다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도아 양은 아주르 나자크이니 오염되지 않습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도아는 중얼거렸다.

쿠낙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전 지금까지 도아 양이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놀랍군요. 흑발 흑안은 마검 소지자의 특징이지요.”

“아.”

전혀 몰랐다.

새로운 상식을 하나 머릿속에 넣다가 도아는 문득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거 좀, 이천 년대 초반 장르소설 클리셰 아냐?’

검은색은 특수한 색이어서, 온갖 멸시 천대를 받는데 여자 주인공은 동양인이니까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의 남자 주인공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라든가.

혹은 검은 머리카락 때문에 성녀로 추앙받는다거나, 등등.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 클리셰가 있었는데 말이죠.

클리셰를 되짚어 보고, 도아는 솔직하게 말했다.

“난 쿠낙의 눈이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달빛이 반짝이는 밤바다 같은걸요.”

그 말에 그는 나른한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압니다.”

“엑.”

“그렇게 말해 준 사람이 이미 있거든요.”

“그래요?”

“그렇답니다.”

누가 나보다 먼저 클리셰 대사를!

‘쳇, 첫사랑 기믹은 물 건너갔나.’

마음속으로 혼자 농담을 투덜거리고 도아는 웃었다.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농담은 농담일까?’

하지만 라크샤샤라면 ‘농담이지’라고 대답했을 거라서 도아는 제 농담을 스스로 즐기기로 했다.

“그럼 도아 양은 어떻게 된 겁니까?”

“저요?”

쿠낙의 물음에 도아는 자신을 가리켰다.

쿠낙이 이어 말했다.

“이 숲에는 무슨 일인지요. 볼 일이 있었던 게 아닌가요?”

“아. 그게 길을 잃어버렸어요.”

도아가 뺨을 긁적였다.

쿠낙은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미소를 짓고는 물었다.

“길을 잃었다고요? 이 숲에서 말입니까?”

“네. 길을 잃으면 안 되는 장소인가요?”

“길을 잃어서 안 되는 장소는 없지만, 정말로 엉뚱한 곳에서 길을 잃었구나 싶어서 말이지요.”

“사실은, 제가 남대륙에서 온 지 얼마 안 됐거든요.”

그 말에 쿠낙은 ‘흐음’ 하는 표정을 지었다.

도아가 이어 말했다.

“거기다가 전 지도를 볼 줄도 모르거든요.”

“지도를 볼 줄 모른다고요.”

“슬프게도요.”

“모험가 지망생인데 말입니까?”

“앞으로 배울 예정이에요.”

“현명한 판단입니다.”

쿠낙의 말에 도아가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그래서 부탁이 있는데, 이 숲에서 절 데리고 나가 주실 수 있나요? 사람이 있는 마을까지만 데려다주시면 돼요. 그럼 그다음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도아의 말에 쿠낙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은인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지요. 모험가 길드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등록도 도와드리죠.”

“정말요?”

“네, 물론입니다.”

“감사해요!”

“저야말로.”

쿠낙이 빙긋 웃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을 치우려 했다.

그러나 그가 그릇을 치우기 전에 식기가 둥실 떠올라 설거지통으로 날아갔다.

“감사합니다. 댄버스 부인.”

쿠낙은 이미 익숙한 사람처럼 매끄럽게 인사했다.

“맞아. 정말 고마워요. 댄버스 부인. 덕분에 살았어요.”

도아도 인사했다.

요 며칠 사이 댄버스 부인이 없었다면 도아는 무척이나 바빴을 터였다.

댄버스 부인은 최고였다.

쿠낙을 간호하면서 나온 침대 시트나 수건도 깨끗하게 빨아서 보송보송하게 도로 말려 주었다.

종종 도아가 지친 날에는 간단하기는 해도 요리도 만들어져 있었다.

심지어는 옷도 수선해 주고, 구두도 깨끗하게 닦고 고쳐놔 주었다.

가죽으로 되어 있는 걸 어떻게 하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다!

‘댄버스 부인 최고야.’

도아는 덕분에 편한 오두막 생활을 만끽할 수 있었다.

쿠낙이 도아를 돌아보았다.

“그럼 전 내일 아침 일찍 나갔다 오겠습니다.”

“무슨 일로요?”

“제 짐이 숲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기수는 아마 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짐이라도 찾아야죠.”

“그럼 같이 가요.”

“괜찮습니다.”

쿠낙은 고개를 흔들고는 도아를 보더니 덧붙였다.

“호의를 베풀어 주신 분을 내버려 두고 도망칠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걸 걱정하는 건 아닌데요.”

도아가 눈을 찌푸리자 그는 가볍게 웃었다.

“덕분에 몸은 완전히 회복됐습니다.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어, 그렇다면요.”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가려고 하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남에게 보여 주기 싫은 물건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럼 저 먼저 씻고 자러 갈게요.”

“도아 양께서 편하신 대로.”

도아는 욕실로 향했다.

밖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어색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오랜만의 목욕을 놓치기는 싫었다.

급수기에는 파이어 크리스털과 워터 크리스털 두 가지가 들어간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크리스털은 사용하면 할수록 색이 점점 옅어지고 완전히 투명하게 되면 사용이 불가능했다.

크리스털은 마법사들이 마법을 쓰는 데 사용하는 원료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마법 제품을 만드는 데 쓰이기도 한다.

던전에서 ‘엘리멘탈’이라는 마수를 잡아야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어서 가격이 무척이나 비쌌다.

‘이게 300포인트면 싼 듯, 안 싼 듯.’

알 수 없는 포인트 물가다.

커다란 나무통을 욕조 삼아 물을 가득 받은 후 도아는 모처럼의 목욕을 만끽했다.

언젠가 포인트를 많이 모으면 욕실도 업그레이드 시켜 주리라.

‘아, 진짜 좋다.’

욕실에는 창문도 나 있었다.

아무도 없는 숲속인지라, 도아는 창문을 살짝 열었다.

뜨거운 김이 빠져나가고 차가운 숲 향기가 밀려 들어왔다.

따뜻하게 욕조에 몸을 담그고 차가운 공기를 달아오른 뺨에 맞으니 무척이나 기분 좋았다.

정말로 호사스러운 캠핑이다.

손발이 쭈글쭈글해질 만큼 실컷 욕조를 즐기고 도아는 댄버스 부인이 놓아둔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잠자기 전에 인사라도 할까, 하고 거실로 나가니 쿠낙이 야전침대에 앉아서 검집에서 검을 반쯤 꺼내 살펴보고 있었다.

도아가 그의 어깨너머로 몸을 숙였다.

“이게 마검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쿠낙이 검집에서 검을 완전히 빼서 도아에게 보여 주었다.

완전히 외부에서 온 물질로 이루어진 검은 검신부터 모든 게 검은색이었다.

“검은색이라는 것만 빼면 평범해 보이는걸요.”

“원래 ‘마’란 그런 거지요. 겉보기에는 무척이나 평범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답니다.”

쿠낙이 그러며 검을 탁 소리 나게 검집에 꽂아 넣었다.

“그래도 아주르 나자크와 있으니 잠잠하군요.”

“그래요?”

“네. 머릿속의 시끄러운 소리가 덜 들립니다.”

“어― 그거 엄청 힘들겠네요.”

환청이라는 게 사람을 엄청나게 괴롭게 만든다는 걸 도아는 알았다.

예전에 엄마가 망상 속에서 산다고 생각했을 때, 그런 정신병에 대해서 찾아봤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큰소리로 떠드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보통 이러면 괴담일 거다.

그런데 그게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난다면?

나에게 말을 건다면?

남들은 아무도 못 듣는 소리를 듣거나,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사람 소리가 안 들릴 정도라면?

‘…….’

“이제 익숙해져서 나름대로 요령이 생겼지요.”

쿠낙이 그러며 고개를 돌렸다.

도아가 마검을 보려고 몸을 숙이고 있었던 터라 두 사람의 얼굴이 무척 가까웠다.

쿠낙이 물었다.

“아니면, 제가 도아 양에게서 아주 멀리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마주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십니까?”

도아는 그 질문에 마음이 아팠다.

아마 쿠낙이 살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그걸 바랐겠지.

그리고 그가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최대의 일도 그 사람을 떠나는 거였을 터다.

도아는 그래서 눈을 찡그리고 말했다.

“저는 쿠낙이 구명의 은혜를 다 갚을 때까지는 쥐어짜려고 옆에 있을 건데요.”

쿠낙이 검은 눈을 깜박이고, 이어서 부드럽게 웃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턱과 뺨을 감싸며 살짝 잡아당긴다.

그가 도아의 뺨에 입 맞추고 말했다.

“다시 한번, 목숨을 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도아 양.”

“별말씀을.”

도아는 눈을 굴리고 몸을 세웠다.

뭐, 문화차이일 수 있다.

게다가 조세핀도 얼마나 많은 뽀뽀 세례를 그녀에게 퍼부었던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럼 잘 자요.”

도아가 인사하자, 쿠낙도 “주무십시오.” 하고 마주 인사했다.

도아는 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푹신한 침대가 그녀를 완전히 감쌌다.

그렇게 잤는데도, 다시금 졸음이 몰려왔다.

어두운 방문 틈 사이로 바깥 불빛이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도아는 그 불빛을 바라보았다.

밖에서 걸음 소리가 들리고는 불이 꺼졌다.

쿠낙이 불을 끈 것일 터였다.

‘괜찮네.’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밤도 나쁘지 않았다.

탁탁 발톱 소리가 나고 해왕이 침대 위로 뛰어 올라와서 발치에 자리 잡았다.

“왜 다리를 쭉 못 뻗게 거기서 자는 거야?”

도아는 투덜거리면서도 옆으로 비켜났다.

도아는 베개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잘 자, 해왕아. 잘 자요, 댄버스 부인.”

따뜻한 바람이 커튼을 흔들고 지나갔다.

❖ ❖ ❖

도아가 아침치고는 좀 늦게 일어났을 때, 이미 쿠낙은 짐을 찾아온 후였다.

기수는 역시나 잃어버렸다며 담담히 말했다.

오늘 안에 근처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고 쿠낙이 장담해서 도아는 남은 식량을 다 털어서 아침부터 호사스러운 메뉴를 차렸다.

쿠낙은 자신이 요리하겠다고 했지만, 도아는 거절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것보다 맛있는 걸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면, 그냥 앉아 있어요. 난 맛있는 거 먹는 게 좋으니까요.”

그렇게 아침 겸 점심을 끝내고서 쿠낙은 도아의 짐을 가볍게 점검하며 말했다.

“이 오두막은 이제 쓰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너무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이런 아이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요.”

그가 도아에게 말했다.

“탐욕은 귀찮은 일을 부르니까요.”

“알겠어요. 텐트를 쓰면 되겠지요.”

“좋습니다. 같은 의미에서 배낭도 가능한 한 평범하게 보이게 하시죠.”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게를 줄여 주는 가방 안에는 잡동사니를 넣지 않는 게 좋습니다. 나중에 분명히 까먹을 테고, 그 잡동사니는 영원히 일정 분량의 무게를 차지하고 있게 되겠죠.”

도아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평범해 보이도록 그럴듯하게 정리해서 가방을 등에 멨다.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도아가 웃자 쿠낙이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가 우습습니까?”

“아뇨, 이 모습. 진짜 모험가 같지 않아요?”

도아가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진짜는 아니고, 아직은 지망생이죠.”

“상관없어요. 곧 진짜가 될 테니까요.”

도아는 어깨를 쭉 폈다.

“어쨌든 그 가방은 벗어서 안장에 올려두시죠.”

쿠낙이 해왕이를 가리켰다. 도아가 가방을 벗어서 안장 뒤에 올리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같이 타고 가면 되지 않을까요? 해왕이가 두 사람 정도는 가뿐히 태울 텐데요.”

쿠낙이 고개를 저었다.

“마검 소유자를 태우지 않을 겁니다.”

“어? 정말요? 전에는 태워 줬는데.”

그러며 해왕이의 눈치를 살폈다.

해왕이는 꼿꼿하게 쿠낙을 무시하며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쿠낙이 “괜찮습니다.” 하고 말해서 도아는 불쑥 답했다.

“그럼 저도 같이 걸어갈까요?”

그러자 해왕이는 배신당했다는 듯 휙 도아를 돌아보았다.

“낑, 끄응―”

도아가 걸으려고 하면 해왕이가 앞을 가로막으며 머리로 그녀를 밀었다.

쿠낙이 웃었다.

“타는 게 좋겠네요. 제가 더 미움받게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죠.”

“그냥 탈게요.”

도아는 한숨을 내쉬고 해왕이 위에 올라탔다.

해왕은 그제야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출발하지요.”

쿠낙은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해왕이 잽싸게 그 뒤를 따랐다.

도아는 그래서 그의 뒤통수만 바라보았다.

걷는 모습만 봐도 어쩐지 굉장히 노련한 모험가라는 게 느껴졌다.

리듬감이 느껴지는 걸음이었다.

저도 모르게 홀린 듯 걸음걸이를 관찰하는데 쿠낙이 말했다.

“마을에 가면.”

“응?”

도아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그의 뒷모습만 보인다.

“마을에 가면 저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도아는 메인 퀘스트를 떠올렸다가 고개를 흔들고 물었다.

“그럼 들르지 말까요?”

멈칫한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어쩐지 웃고 있었다.

“그럼 굉장히 불편할 겁니다. 아까 식량도 전부 먹어 치웠고요.”

“그야, 그렇지만요.”

“전 상관없지만, 도아 양께서는 불편하실 수도 있으니 미리 말해 두는 겁니다.”

“어, 괜찮을 거예요.”

도아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쿠낙의 말대로, 두 사람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 마을을 발견했다.

끝을 뾰쪽하게 깎은 목재 방책으로 둘러싸인 마을이었다.

정식 마을이 아니라 화전민 마을 같은 모습이었다.

마을 입구에 창을 든 경비병이 서 있었는데, 모습을 보니 자경단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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