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살벌한데요?”
도아가 중얼거리자 쿠낙이 답했다.
“이런 곳에 있는 마을이니까요.”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자 경비병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두 사람은 도아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쿠낙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맙소사…….”
“흑룡 쿠낙.”
“진짜인가?”
두 사람은 그렇게 수군거렸다. 도아는 놀라 작게 속삭였다.
“쿠낙, 정말로 유명하네요.”
이런 시골― 아니, 시골도 아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숲속?
숲속에까지 소문이 난 사람이었다니.
“나름대로요.”
쿠낙도 마주 속삭였다.
경비병들은 일단 입구를 막아섰다.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라 도아가 입을 열었다.
“저희는 안에서 식량도 좀 사고, 하룻밤 묵어가고 싶은데요. 마을 안에 들어갈 수 있나요?”
그녀가 목소리를 크게 내자 그제야 경비병들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머뭇거리다가 한 사람이 물었다.
“정말로 모험가 쿠낙입니까?”
“맞습니다. 원하신다면 모험가 카드를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쿠낙이 부드럽게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한 명이 먼저 그렇게 말하고는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저런.”
도아가 혀를 찼다.
두 사람이 문을 지키는데, 한 명이 저렇게 갑자기 사라져 버리면 2대 2였던 상황이 이제 2대 1이 되지 않는가?
남은 경비병은 몸을 움츠리고 두 사람을 번갈아서 바라보았다.
도아는 위압감을 덜기 위해서 해왕에서 내리려 했다.
등자에서 발을 빼는데 쿠낙이 손을 뻗어 그녀의 부츠를 잡았다.
“?”
의아한 표정으로 쿠낙을 보자 그가 미소 띤 얼굴 그대로 정면을 보며 말했다.
“아직 내리지 말아요.”
그의 목소리는 작아서 경비병에게까지는 들리지 않을 터였다.
그는 여유 있는, 태연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저쪽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모르니까요. 기수의 다리가 가장 빠르겠죠.”
도아는 등자 깊숙이 다시 발을 밀어 넣으면서 말했다.
“왜요? 갑자기 저 목책 사이로 사람들이 활시위를 당기면서, 우워어.”
말을 하다가 만 건, 정말로 목책 위로 활을 당긴 사람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불화살을 당겨서 저물어가는 숲의 푸르스름한 사이에서 화살이 무척이나 잘 보였다.
‘하나, 둘, 열. 아이고, 이 거리면 사정거리 안인데.’
도아는 픽 웃음이 나왔다.
위협적인 상황이겠지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백 년 수련의 내공이 어딜 가는 건 아니다.
도아가 이제 목소리를 죽일 필요도 없이 말했다.
“사람들이 쿠낙에게 늘 이렇게 성대한 환영회를 해 줘요?”
“불과 쇠스랑으로요? 흔한 일은 아니죠.”
그가 도아를 힐끗 바라보고 말했다.
“도아 양과 첫 번째 마을 맞이였는데, 이렇게 되어서 부끄럽군요.”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걸로 하죠. 저 사람들도 저 이쑤시개 같은 목책으로 S급 모험가를 막을 수 있다고 상상하는 어리석은 망상가는 아닐 거 아녀요?”
도아의 말에 쿠낙이 씩 웃었다.
잠시 후 마을 입구에서 한 남자가 자경단원들을 우르르 거느리고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목에 커다란 목걸이를 걸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아! 터키의 파란 눈 부적!’
손바닥만 한 동그란 부적을 다들 맸는데, 터키와 다른 점은 푸른 눈이 아니라 초록색 눈이라는 점이었다.
“저 사람들이 목에 걸고 있는 저게…….”
도아가 중얼거리자 쿠낙이 답했다.
“아주르 나자크죠.”
“아.”
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운데 선 남자는 희끗희끗한 회색 머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이 횃불을 들고 있어서 잘 보였다.
“저런.”
저도 모르게 도아는 두 번째 ‘저런’을 내뱉고 말았다.
누가 저격을 한다면, 아마 저 사람이야말로 바로 저격당해서 죽겠거니 싶었다.
“모험가님들, 이렇게 위협적인 만남이 되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특히 마룡 살해자, 흑룡 쿠낙 샌델님을 뵙게 되어서 크나큰 영광입니다. 저는 이 작은 마을의 촌장인 도론이라고 합니다.”
그러며 그가 가슴에 손을 대고 가볍게 인사를 해 보였다.
“물론 위대한 모험가분들을 저희 마을로 받아들이고 싶으나, 불행히도 저희 마을에 부상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촌장의 시선이 쿠낙을 향했다.
쿠낙과 도아, 두 사람에게는 이 정도 어둠은 큰 영향을 주지 않아서 촌장의 미세한 표정까지 볼 수 있었다.
“샌델님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다른 일행분만 마을에 들어오셔서 필요한 걸 구매해 주셨으면 합니다.”
쿠낙이 ‘어떻게 할래요?’ 하는 표정으로 도아를 돌아보았다.
도아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부상자가 있나요? 상태가 좋지 않나요?”
촌장이 머뭇거려 도아가 이어 말했다.
“전 실력 있는 약초사거든요. 봐줄 수 있어요.”
쿠낙이 그녀의 부츠를 다시 꽉 쥐었지만, 도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촌장은 잠시 뒤에 있는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이야기 역시 도아와 쿠낙에게는 훤히 다 들렸다.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 여자 하나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여자라고 방심하지 마. 저 마검이랑 같이 다니는 사람이잖아.”
“그럼 우리 애가 죽게 내버려 두자는 말인가?”
옥신각신하더니 결국, 촌장이 돌아서서 말했다.
“약초사님 한 분이라면 괜찮습니다.”
“도아 양.”
쿠낙이 짧게 그녀를 불렀고, 도아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걱정 말아요. 모험가 지망생이지만, 그래도 제법 하거든요.”
도아가 기수에서 내리며 배낭을 짊어지고 말했다.
“그리고 무슨 일 있으면 꺄악― 하고 소리 지를게요. 그럼 와 주는 거죠?”
“……도아 양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지요.”
쿠낙이 한숨을 내쉬며 한 손을 슬쩍 들어 보였다.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이지만, 이런 마을에 살려면 나름대로 마수에 대한 대비를 잘할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갑작스럽게 부상자가 생겼다고 하면 혹시…….”
“넘친 게 아닐까, 하시는군요. 살펴보죠.”
쿠낙의 말에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은 스페셜, 그러니까 S급 던전을 맨 상위로 두고, A부터 G급까지 위험도에 따라서 등급을 매긴다.
G급이야 마을 사람들끼리 쇠스랑을 들고 모여서도 처리할 수 있는 던전이지만 상위로 갈수록 다르다.
상위 던전은 아직도 공략을 하지 못한 곳이 몇 군데 더 있었다.
이렇게 공략을 하지 못하면, 던전 안의 마수 수가 점점 더 불어나서 던전 밖으로 마수가 나오게 되는데 이걸 ‘넘친다(over flow)’라고 표현했다.
끓어 넘친다는 표현과 연결해서, 마수가 아주 많은 던전을 ‘끓는 중’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렇게 던전이 마수로 넘치게 되면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 된다.
끓거나 넘친 던전을 확인하는 일은 모험가 길드 소속 모험가에게는 의무였다.
도아는 해왕이를 달래서 목책 입구에 세워두고 마지막으로 멀찍이 서 있는 쿠낙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 준 후에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띠링
‘챕터 1’
―여행의 시작
마을로 들어가서 사람을 만나라,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
정화석(A급)을 지급합니다.
‘정화석? 정화하는 데 쓰는 건가?’
도아는 쓸모는 나중에 확인해 보기로 했다.
자경단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제법 엄격한 표정을 하고 곁에 섰다.
다른 자경단원도 호위인지 아닌지 모르게 도아를 따라오고 있었지만, 도아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걷는 모습만 봐도 상대방이 얼마나 훈련되어 있는지 보이는데, 이 사람들은 아직 한참 멀었다.
“어떤 마수에게 당했나요?”
도아가 묻자 촌장이 신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랄바(ralba)에게 당했습니다.”
“랄바라…….”
랄바는 곰 형태의 마수인데, 일반적인 곰보다 더 컸다.
머리에 뿔이 나 있고, 발톱은 강철 같은 마수였다.
참고로 말하자면 지방이 엄청나게 맛있는 마수다.
우유 같은 고소한 향이 가득 응축되어 있는 동물성 지방인 데다가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서 깔끔하다.
혀에 남는 느낌이 전혀 없다.
엘리바스가 한 조각 맛보게 해 줬었는데 엄청나게 맛있었다.
‘그걸로 빵 구우면 진짜 맛있는데. 핫, 잠깐 이제 아니지.’
도아는 미식으로 넘어가려는 사고를 재빠르게 원래대로 돌렸다.
“랄바에게 당했는데, 살아 있어요?”
곰보다 빠르고, 힘이 좋고, 흉폭하다.
발톱은 강철 칼날 같아서 팔다리 정도는 가볍게 휙휙 날아간다.
이런 랄바가 나오는 던전은 대충 D급 미만 던전으로 취급된다.
“여러 명이서 나무하고 약초를 캐러 갔는데 한 마리가 나온 모양입니다……. 죽은 사람도 있지만, 산 사람도 있습니다.”
“알겠어요. 몇 명이나 되죠?”
“부상자는 총 여섯 명입니다.”
자경단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대신 대답했다.
도아는 그 말에 휙 휘파람을 불고 싶은 걸 참았다.
‘여기는 엄청 작은 마을이니까, 인구수에 비례하면 큰 타격을 입은 거네. 쿠낙을 경계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겠어.’
쿠낙이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아마 지금은 마을 문을 통과시키고 싶지 않을 터였다.
부상자들은 마을 회관에 모여 있었다.
도아가 들어서니 모두가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일어서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촌장이 말했다.
“지나가시던 약초사 분이시다. 이분께서 환자를 봐주실 거야.”
도아가 엄격한 표정을 짓는데 한 사람이 소리쳤다.
“아주르 나자크!”
그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눈물범벅이 된 아이 엄마가 도아에게 다가왔다.
“아아, 아주르 나자크인 약초사님이라니. 우리 딸은 살았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르 나자크?”
“진짜인가?”
“보여?”
“잘 모르겠어.”
“진짜 아주르 나자크셔!”
당황한 촌장과 자경단장이 도아를 바라보았고 도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 초록 눈인 건 맞고요, 환자를 볼 수 있게 비켜 주시겠어요? 상처를 정화할 수 있게 끓인 물을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약초도 구할 수 있나요? 세발초랑 끈끈점박이랑…….”
도아의 말에 따라서 사람들은 순식간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촌장이 모자를 벗어서 가슴 가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아주르 나자크이신 줄 몰랐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녀요. 어두웠잖아요. 전 저분이 알아보신 게 더 신기한걸요.”
도아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하나씩 환자를 보기 시작했다.
마수가 낸 상처에는 오염이 남고, 이 오염이 부패를 일으킨다.
상처가 괴사하거나 썩어서 합병증이 생겨서 죽게 된다.
그러니 정화용 약초를 사용해서 충분히 오염을 제거했다.
‘좋아.’
가장 맨 처음은 등이 크게 베인 여자아이였다.
‘척추를 건드려서……. 이대로 놔두면 아마 다시는 걷지 못할 가능성도 있겠는걸.’
어쩔 수 없다.
도아는 짐에서 분무기를 꺼냈다.
분무기에 고형 포션을 하나 넣고 약초 물을 일정 비율로 섞어서 흔들었다.
그리고 상처에 뿌리기 시작했다.
이런 넓은 외상은 분무기로 뿌리는 게 효과가 좋았다.
칙칙칙
깊은 상처가 천천히 아물기 시작한다.
도아는 뼈와 신경이 충분히 붙은 걸 확인하고 어느 정도 아물 때까지만 포션을 사용했다.
“포션……!”
“이 귀한 걸!”
도아가 아주르 나자크라는 걸 알아봤던 아이 엄마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촌장을 바라보았다.
“초, 촌장님…… 저희가 버는 돈으로는 도무지…….”
“괜찮아요. 돈으로 받지는 않을게요. 오늘 잠자리랑 식량으로 대신해 주세요. 그리고 쿠낙도 받아 주시고요.”
도아가 분무기를 계속 뿌리면서 말하자 촌장은 회관 안을 둘러본 뒤에 말했다.
“알겠습니다.”
“촌장님.”
자경단장이 당혹한 듯 촌장을 불렀지만 촌장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주르 나자크님이 함께 계시는데 무슨 일이 있겠어.”
“……알겠습니다.”
상처가 충분히 아물고 나자 도아는 다음 사람에게로 옮겨갔다.
그렇게 전부 처치를 마치고 도아는 이제 약을 달이기 시작했다.
심각한 상처를 입었던 사람들은 회복통에 시달릴 테니 그걸 달래 줄 약이었다.
“열이 많이 오르면 이쪽 약을, 고통이 심하면 이 약을 먹이세요. 하지만 너무 많이 먹이면 안 돼요.”
투약법 지시가 막 끝났을 때쯤 회관 문이 열리고 쿠낙이 걸어들어왔다.
사람들은 마치 어둠이 기어들어 오는 것처럼 주춤거리며 좌우로 피했다.
그 가운데에서 태연하게 쿠낙이 물었다.
“도아 양, 끝났나요?”
“네, 이제 다 끝났어요.”
도아가 그렇게 말하며 촌장을 보자 촌장이 얼른 손짓했다.
“오늘 묵을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자자, 피곤하시지요.”
빨리 쿠낙을 회관에서 내보내고 싶다는 몸짓이라 도아는 웃었다.
촌장은 자기 집, 자기 침실을 내주었다. 마을에서 가장 좋은 방이 여기일 터였다.
해왕이는 쿠낙과 함께 들어와서 촌장 집 뒤 편에 묶여 있었다.
촌장 부인은 이 마을에서 쥐어짤 수 있는 최대한으로 쥐어짠 재료로 만든 화려한 음식을 내왔다.
거칠지만 제대로 부풀려서 구운 커다란 빵, 말린 과일 약간에 맥주도 아닌 포도주가 나왔고, 오래되긴 했지만 치즈 조각에다가 신선한 산열매들이 잔뜩 올라왔다.
쿠낙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포도주를 바라보았다.
“식초가 된 게 아닐까요?”
“따 보면 알겠죠.”
도아는 까만색 동그란 열매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입 안에 넣었다.
‘음, 블루베리.’
도아의 손이 빨라졌다.
쿠낙은 포도주병을 딴 후에 맛을 보고 웃었다.
“위스키를 섞었나 봅니다.”
“포도주에, 위스키를요?”
“네, 보관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기도 하지요.”
나무잔에 쿠낙이 포도주를 따라 주었다. 도아는 킁킁 냄새를 맡고 슬쩍 한 모금 마셨다.
“!!”
도아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달아요!”
“그리고 독하니까, 천천히 마시세요. 그렇게 나쁘지는 않군요. 어쩌면 촌장이 감춰둔 비장의 한 병이었을지도요.”
도아는 작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