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조세핀은 기사였다.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일을 하는 자다.
한마디로 숨죽이고 살금살금 돌아다니거나 암살을 하거나, 여하튼 그런 쪽과는 연이 없었다.
당연히 도아도 그런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추격훈련이야 했지만, 상대방 몰래 하는 은밀한 추격은 아니었다.
그냥 쫄래쫄래 금색 빛을 따라온 게 패착이다.
‘아냐, 괜찮아. 안 보이는 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되잖아.’
금색 빛이 있으니까 다시 쫓아갈 수 있다.
도아는 완전히 인파와 골목 사이로 들어가서 몸을 감췄다. 다행히도 더는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다시 돌아서 슬그머니 금색 빛을 쫓아갔다.
‘어? 어어?’
점점 수상쩍은 곳으로 빛이 이어진다 싶었다.
‘아래쪽?’
땅 밑으로 금색 빛이 이어진다.
‘아! 하수구 같은 데로 들어갔나 봐. 어떻게 하지??’
도아는 당황해서 주변을 살폈다.
“하수구, 하수구. 아! 하수구면 분명히 바다로 물을 버리겠지?”
허둥지둥 부두로 달려가니, 금색 빛이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나무로 된 선착장이 바다 위에 늘어서 있었다.
선착장은 한마디로 나무로 된 다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몇몇 비어 있는 곳에는 낚시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도아도 비어 있는 선착장 하나를 골랐다.
선착장에 엎드려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역시나 바닷물에 잠겨 있는 커다란 하수구 통로가 보였다.
그리고 그쪽으로 금색 빛이 이어져 있었다.
“아, 으, 진짜 세상에.”
도아는 입 안에서 온갖 욕설을 내뱉은 다음에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도 다들 각자 일에 바빠서 이쪽을 전혀 신경 쓰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도아는 “에잇!” 하고는 바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하수구 쪽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물이 더럽지는 않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수구에서 나오는 물은 깨끗했다.
정화시스템 같은 걸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진 씨는 현대인이니까.
‘다행이다.’
도아는 하수구 안으로 들어가다가 문제에 봉착했다.
이물질이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인지 철장이 있었다.
도아는 입으로만 웃었다.
‘조세핀의 말이 옳다니까.’
힘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도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양손으로 철장을 잡은 후에 벌렸다.
끼이익
철이 항의하듯 소리를 질렀지만, 도아는 제 한 몸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수 있었다.
하수구로 들어가서 도아는 다시 철장을 오므려 두었다.
약간 휜 흔적이 남았기는 하지만, 하여간 이 정도면 됐다.
도아는 하수구 안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점점 오르막길이었기에 금방 발에 바닥이 닿았고, 곧 완전히 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와……. 수영복 없이 그냥 옷만 입고 바닷물에 절여진 건 처음인데. 이 옷 댄버스 부인이 회복시켜 줄 수 있으려나?”
도아는 단발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금색 빛이 이어졌다.
도아는 불을 켜지 않았다.
빛이 조금도 없는 하수구 안이니 불을 켜는 순간 들킬 것이다.
찍찍
쥐가 그녀의 발등 위로 지나간 순간은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참았다.
대신 폴짝 뛰기는 했다.
‘좋아. 도아. 던전이야. 여기는 던전이다. 훈련받았잖아?’
눈을 감고, 시각이 아닌 다른 것에 의지한다.
순식간에 도아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머릿속에서 딸각, 전투 스위치가 켜졌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수십, 수백, 수천 번의 훈련이 자연스럽게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도아는 천천히 단검을 뽑았다.
‘숏 소드(short sword) 모드.’
이런 좁은 공간에서 긴 검을 휘둘러 봐야 날만 나갈 가능성이 높았다.
70cm 정도의 숏 소드가 적당할 터였다.
도아의 검이 원하는 만큼의 길이로 늘어났다.
어두운 던전을 공략하는 훈련이라면 수십 번 했다.
도아는 금색 빛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몇몇 벌레들이 갑작스러운 사람의 등장에 놀라 튀어나왔지만, 이번에 도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
그때 빛이 보였다.
도아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한데.’
도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마나로 청각을 강화하고 있고, 그러므로 상대방이 숨을 쉬고 있다면 숨소리가 잡혀야 한다.
‘숨소리가 안 들려.’
이럴 때 가능성 있는 것은 상대방이 숨을 안 쉬거나, 혹은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을 쓰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빛이 새어 나가는 건 신경 쓰지 않으면서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은 쓴단 말이야? 뭔 큰소리를 내나?’
큰소리.
비명?
번득 떠오른 생각에 도아는 눈을 찡그렸다.
주머니에서 도아는 손거울을 꺼냈다.
그리고 고전적인 방식으로 슬쩍 하수구 안쪽을 비추어 보았다.
‘아. 세상에.’
역시나 비명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하고 있었다.
‘좋아, 그럼.’
고문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이드 라인이 연결되어 있다면, 도아가 할 일은 간단했다.
‘상대는 셋이야. 한 명은 마법사인 거 같아. 무음 마법을 구사하고 있어. 다행이지. 셋 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니까.’
그럼 먼저 마법사를 죽이자.
엘리바스와 조세핀, 라크샤샤를 동시에 상대한다면 역시 엘리바스를 가장 먼저 죽이는 게 효율이 좋다.
도아는 허리띠에 달린 마법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동그란 유리공을 하나 꺼내어서 탄산음료 터트리듯 힘차게 흔든 후에 안쪽으로 던졌다.
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짙은 핑크색 연기가 터져 나왔고, 도아는 동시에 안으로 뛰어들었다.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기 전에 그녀가 깊숙이 목을 그었다.
할 거면 깔끔하게 한 번에.
마법사가 목소리를 내면 정말로 무서우니까.
기도와 성대까지 잘라내고서 도아는 돌아서서 공격을 막아냈다.
‘반응이 빨라.’
보통이라면 여기서 둘 정도는 금방 죽였을 거다.
그런데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반응이 빨랐다.
‘보통이 아닌 놈들인데?’
하지만 그래도 도아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도아는 ‘보통이 아닌 놈들’ 정도가 아니라 괴물을 상대해 왔다.
도아는 검을 내려치는 상대를 살짝 피하면서 그녀의 숏 소드로 상대의 손목 힘줄을 베며 쳐올렸다.
손목을 통째로 베면?
물론 뭐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겠지.
하지만 손목 힘줄을 베는 데 들어가는 힘이 1이라면, 손목을 통째로 잘라내기 위해서는 10의 힘이 필요하다.
이런 소소한 힘들이 모여서 마지막의 생사를 가른다는 걸 알아서, 도아는 필요 없는 동작은 하지 않았다.
이 정도 통증이면 움찔할 법 한데, 상대는 자신이 팔을 못 쓴다는 걸 깨닫자 소리쳤다.
아니, 치려 했다.
하지만 도아가 먼저 상대의 심장을 찔렀다.
갈비뼈 사이로 정확하게.
찌르고 뽑는다.
“커헉.”
숨 삼키는 소리만 났다.
여기까지 아직 5초도 지나지 않았다.
솔직히 도아는 세 번째 인간이 인질을 잡아 주길 원했다.
연기는 짙었다.
인질을 잡기 위해서 이동하며 시간을 보낸다면, 도아가 세 번째를 제압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 놈도 그걸 알았는지, 커헉, 하고 두 번째 놈이 죽는 소리가 나자마자 병뚜껑을 열었다.
도아에게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뭔가의 뚜껑을 열었고, 거기서 새까만 바퀴벌레 같은 게 떼 지어 퍼드득 날아올랐다.
“!!!”
아무리 훈련을 받았어도, 뭐랄까.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인륜적으로 이건 아니지 않아?!’
그러나 곧 도아의 훌륭한 동체 시력이 그것들이 벌레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렇게 보이기는 했지만 살아 있는 벌레는 아니었다.
푸드득 하는 곤충 특유의 겹날갯짓 소리가 나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새까만 알갱이 같은 거였다. 검은색 모래가 그런 형태를 갖췄다가 무너져내리고―
하수구 안을 전부 삼켰다.
마법 등의 빛도 완전히 사라졌다. 불이 없어서 어두운 게 아니라 공간이 물리적인 어둠으로 가득 찼다.
‘어라?’
도아는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이상하게 그녀 자신은 잘 보였다.
그보다는 그 어둠이 그녀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얇은 막이 그녀를 감싸고 있는 거 같았다.
세계수의 축복을 받은 검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가장자리에 어둠이 그 빛을 무서워하며 물러났다. 까만 알갱이들이 빛과 닿으면 사라진다.
도아는 정신을 차리고 얼른 길드장을 찾았다.
길드장은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있었는데, 그 검은 알갱이들이 그의 상처로 파고들고 있었다.
“아!”
그제야 도아는 이 어둠의 정체를 깨달았다.
‘오염이구나.’
동시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잠깐만. 지금 하수도에 오염이 풀린 거야?’
이 하수도는 분명히 도시 안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고, 그랑 내부에서 이 정도의 오염이 풀리면…….
아니면 상하수도를 함께 관리하는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거기가 공격당해서 상수도로 오염이 흘러나간다면.
도아는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집어넣어서 ‘세계수 가지’를 꺼냈다.
새하얗게 되어 있던 이파리는 다시 진녹색이 되어 있었다.
‘다행이다. 충전이 다 됐구나.’
일단 도아는 버튼을 반 정도로 올렸다.
우웅―
세계수 가지가 밝은 빛을 내며 희미하게 떨기 시작했다.
어둠이 순식간에 주변으로 물러났다.
하수구 안이 밝아졌다.
그냥 밝아진 게 아니다.
이상하게 밝다.
그림자가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림자 없는 빛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도아는 폭발에 대비하는 사람처럼 눈을 질끈 감고서 가지를 휘둘렀다.
핏
순간 모든 소리가 끊긴 거 같았다.
빛이 순식간에 한점으로 빨려들어 가듯 줄어들었다가,
폭발했다.
눈을 감았는데도 눈이 멀 거 같았다.
빛이 하수구를 가득 채우며 모든 통로를 내달렸다.
오염이 순식간에 증발하듯 사라졌다.
잠시 후 어둠과 소음이 찾아왔다.
도아가 눈을 떴을 때는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마법등이 희미하게 빛나고, 하수도를 지나는 물소리가 졸졸 흐른다.
도아는 뚜껑을 열었던 세 번째 사람을 바라보았다.
‘와.’
뼈만 남아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래된 시체마냥 뼈만 남아 있다.
그에 비해 나머지 두 시체는 멀쩡했으니 저 뚜껑을 직접 연 게 안 좋았던 거 같았다.
다른 두 시체도 세계수 가지로 깨끗하게 정화되었으니 언데드가 되어서 하수도를 돌아다닐 일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길드장의 부상은 저절로 치료되진 않았다.
‘어디 보자.’
이미 그에게 걸린 변신 마법은 깨졌는지, 아까와는 다른 얼굴이었다.
길드장은 나이 많은 할아버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었다.
이제 삼십 대 중후반 정도 되었을까?
갈색 머리카락에 단정한 인상이었다.
옷은 무척이나 허름했지만, 변장하느라 이런 옷을 입은 것일 터였다.
아직 기본적인 고문 행위만 당한 상태라 목숨에 지장은 없었다.
‘손가락은 부러지고, 칼로 몸의 표면이 좀 베이기는 했지만.’
그보다 아까 오염이 파고든 부분이 걱정되기는 했다.
빛이 닿는 곳은 정화가 되었을 텐데 닿지 않는 부분까지 스며든 건 조금 남았을지도 몰랐다.
도아는 상처를 유심히 살폈다.
‘음, 상처가 심하게 곪거나 덧날 정도는 아니네. 다행이다.’
며칠 동안 몸이 찌뿌둥할 정도로 보였다.
도아는 가루로 된 지혈제를 상처에 뿌리고, 정신을 잃은 틈을 타서 손가락뼈도 맞춰 주었다.
띠링띠링
서브 퀘스트 완료!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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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목숨을 구했군.’
도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갈까?’
길드장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여기를 뜨고 싶었다.
물론 목숨을 구해 준 건 훌륭한 일이지만, 대체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쫓아왔냐고 물어본다면 대답할 말이 없었다.
무척이나 수상쩍은 상황이었다.
‘하긴, 이 사람도 수상쩍기는 하지.’
모험가 길드장이면 그랑에서는 상당히 높은 직위다.
그런 사람이 호위도 없이 이런 곳에 쫄래쫄래 걸어와서 고문을 당하다니.
‘대체 뭘까?’
여기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지, 아니면 그저 비밀로 품고 자리를 떠야 할지.
고민하던 도아는 마음을 정했다.
아무래도 뜨는 게 낫겠다.
“으…….”
그때 길드장이 작게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도아는 깜짝 놀라 손을 뻗어 그의 눈을 가렸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침묵 끝에 도아가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고 말했다.
“여기서 제가 그쪽을 기절시키고 도망가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도망칠 만한 일을 하셨다면요.”
“한 건 아닌데요.”
도아가 중얼거리고는 한숨을 내쉰 후에 천천히 손을 뗐다.
길드장은 눈을 몇 번 깜박거렸다.
“손가락은 안 움직이시는 게 좋아요. 지금 맞춰 두긴 했지만, 움직이면 지금보다 아프실 거고. 부목을 댈 만한 건 없어서요.”
그는 빤히 도아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도아가 마주 인사하자,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눈을 찌푸리고 상처를 살핀 후에 한숨을 내쉰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러니까―”
말끝을 흐리며 이쪽을 봐서 도아는 상대의 의도를 쉽게 알아챘다.
“김도아라고 합니다.”
“얀 샌델입니다.”
그가 마주 인사하며 미소 지었다.
“악수를 할 수는 없겠군요.”
“두 번째 고문자가 될 수는 없죠. 그런데.”
도아가 갸웃했다.
샌델.
어디서 들어본 성이다 했더니.
쿠낙 샌델.
성이 같았다.
도아가 툭 하고 물었다.
“혹시 쿠낙이랑 아는 사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