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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여행사 : S급 먹방대모험 패키지-20화 (53/100)

⊹ 20화 ⊹

도아가 의아해하며 베리를 내려놓으려는데, 베리가 찰싹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슬쩍 베리를 내려다보니 귀가 찰싹 머리에 붙어 있었다.

도아는 ‘아, 맞다.’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베리가 마검을 무서워하는 걸 잊었다.

그녀는 베리를 안은 채로 물었다.

“쿠낙, 무슨 일 있어요?”

쿠낙이 그런 도아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얀이 다쳤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앗, 그건, 그, 얀의 말대로. 갑자기 쓰러져서…….”

“역시, 오염 때문입니까? 어떤 상태인지…….”

초조한 그의 말에 도아는 ‘아차.’ 싶었다.

얀이 쓰러진 게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오염 때문은 진짜 아니에요. 제가, 음. 제 눈을 걸고 보증할게요.”

도아의 말에 쿠낙은 빤히 그녀를 보다가 맥이 탁 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도아가 베리를 꽉 끌어안았다가 놓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성큼성큼 쿠낙에게 다가가 말했다.

“얀에게 다 들었어요.”

“……뭘 말입니까?”

“오염 때문에 걱정이 많다면서요? 생각해 봤는데, 수액을 맞으면 어때요? 몸속의 오염을 정화해 주는 수액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소용없습니다.”

“왜요? 맞아 보지도 않고. 제 수액은 진짜 효과 좋은데요?”

“저는 마검과 계약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일반적인 오염이 쌓이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도아가 “끙.” 하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럼 제가 진찰해 볼 수 있게 해 줘요.”

“왜요?”

“네?”

생각지도 못하게 튀어나온 ‘왜요’라는 말에 도아는 놀랐다.

“왜 신경 쓰십니까?”

“그야, 아는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신경 쓰이죠. 제가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면, 더욱요.”

도아의 말에 쿠낙은 입을 꾹 다물고 도아를 바라보았다.

검은색 눈동자가 고요했다.

도아는 제 진심이 전해지길 원하며 그를 마주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그의 눈동자에 온기가 번지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괜찮습니다.”

“안 괜찮은 거 다 알거든요.”

“얀이 너무 과장한 거뿐이겠지요.”

“아닌 거 같은데요.”

“나중에 한번 받겠습니다.”

“꼭이에요.”

“네.”

쿠낙은 대충 답하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내일 아침 9시에 여관 앞에서 보지요.”

“내일이요?”

“모험가 등록을 하러 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제 보증도 필요하고요.”

“아, 맞다. 네!”

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쿠낙이 저녁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도아가 휴 하고 베리를 돌아보며 웃었다.

“엄청난 하루였다. 그렇지?”

“또아 님가 가치 있뜨면, 매일매일 무떡 뜰거울 거 가타여.(도아 님이랑 같이 있으면, 매일매일 무척 즐거울 거 같아요.)”

베리의 말에 도아가 웃었다.

그날 하루는 베리와 이야기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내일이면 모험가다.

엄마가 이야기해 줬던 수많은 이야기 속의 모험가 무리에 자신도 합류하는 거다.

도아는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 ❖ ❖

“우와아아!”

베리가 탄성을 내질렀다.

도아도 감탄했다.

높고 커다란 건물이었다.

최소한 5층은 되어 보이는 높이었다.

모험가 길드라고 해서 나무로 된 목조건물이나, 낡은 펍 같은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크고 웅장한 공간, 세련된 로비.

그곳을 모험가 복장의 사람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벽에는 마법으로 만든 전광판이 붙어 있었다.

전광판에 번호가 반짝이고 호명된다.

판타지풍 호텔 로비 같은 느낌이다.

베리는 언제 가져왔는지, 입구에서 가져온 팸플릿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꺼 일거 주세여.(이거 읽어 주세요.)”

“응, 어디 보자. 전광판을 고안한 사람은 모험가 길드 창시자이신 유하진 님이래.”

“와아아.”

“고안할 때도 너무 앞서간 아이디어라서 이렇게 전부 마법화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고 하네.”

“와아아, 하진 님 때단해여!”

“그러네.”

‘아이고, 하진 씨.’

도아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뒤쪽 벽에는 금으로 새긴 듯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모든 모험을 즐기고, 동료를 사랑할 것]

어?

도아는 눈을 깜박였다.

‘한국어다.’

누가 봐도 한글, 한국어로 문장이 쓰여 있었다.

도아가 그 글씨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후드를 눌러쓰고 옆에 서 있던 쿠낙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진 님께서 오신 나라의 언어라고 합니다. 읽을 수 있으신가요?”

“네, ‘모든 모험을 즐기고, 동료를 사랑할 것’이라고 적혀 있네요.”

쿠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리가 “우와, 우와.” 하고 말했다.

“대단해요, 도아 님! 정말로 남대륙에서 오신 분이시군요.”

“음, 뭐어.”

도아가 하하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둘러보니 ‘신인 등록’ 코너가 따로 보였다. 벌써 대기자가 15명이 넘는다.

대기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각양각색이었다.

가운데 테이블에는 신상 명세를 적는 종이가 비치되어 있었다.

보니까 대신해서 서류를 작성해 주는 서비스도 있었다.

문맹인 사람들은 그쪽에 줄을 섰다.

도아가 물었다.

“저도 저쪽에서 줄을 서야 하나요?”

“아뇨, 이쪽으로.”

쿠낙이 그녀를 끌어당겼다.

한쪽 구석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세 사람은 길드장실로 바로 향했다.

경비병들은 쿠낙이 후드를 벗자 곧바로 피해 주었다.

길드장 실은 크고 심플했다.

장식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커다란 대리석으로 벽과 바닥을 채워서 고급스러움을 꽉꽉 주고 있었다.

“도아 양, 오셨습니까.”

밝은 얼굴로 얀이 그녀를 맞아 주었다.

어제와는 완전 다른 표정이었다.

얼굴이 깐 달걀처럼 반들거리고 눈도 반짝인다.

안색도 밝다 못해 환했다.

얀이 말했다.

“이렇게 상쾌하게 잠들고 일어나 본 건 처음입니다. 꼭 열두 살로 돌아간 거 같네요.”

“훨씬 좋아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얀이 헛기침을 하고 물었다.

“생각해 보니, 어제 값도 치르지 않고 나와서요. 제가 갚을 수 있는 금액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내가 대신 낼게.”

쿠낙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금화는 썩을 정도로 많으니까.”

“쿠낙, 누누이 말하는데 금은 안 썩어. 수업 시간에 졸았니?”

얀이 ‘저런’ 하는 얼굴로 쿠낙에게 인자하게 말했고, 쿠낙은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이 아니잖아, 형.”

말투에서 어린아이 같은 어조가 묻어나온다.

도아는 그게 어쩐지 흐뭇했다.

‘형제라. 좋구나.’

도아도 늘 형제자매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혼자라는 거.

철저하게 혼자라는 게 정말 사무치도록 서러울 때가 많았다.

도아는 씁쓸한 기분을 애써 지워내고 명랑하게 말했다.

“그건 길드장님께 청탁비로 드린 거니까 괜찮아요.”

얀이 고개를 돌렸다.

놀란 얼굴이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도아 양의 손해가 너무 큰 거 같아서…….”

“괜찮아요. 자, 얼른 제 명패를 주시죠.”

도아가 당당히 손을 내밀었고 얀이 웃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얀이 책상 서랍에서 벨벳 상자를 꺼냈다.

도아는 그가 내민 상자를 받아들고 슬쩍 열어보았다.

딱 신용카드만 한 네모난 은색 카드가 들어 있었다.

상당히 도톰한 플레이트였는데, 한쪽에는 가운데 커다랗게 ‘B’라고 쓰여 있었다.

가장자리에는 아름다운 문양이 있고, 위쪽 가장자리 가운데에는 북극성을 뜻하는 별 모양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아래쪽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아까 봤던 길드 표어가 한글로 적혀 있었다.

[모든 모험을 즐기고, 동료를 사랑할 것]

뒤로 돌려보니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고, 가운데에 마법진과 함께 아주 작은, 손톱만 한 던전 코어가 붙어 있었다.

“그 위에다가 손가락을 올려 주세요. 따끔할 겁니다.”

도아는 슬쩍 코어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따끔

통증과 함께 코어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주변의 마법진이 밝게 빛났다가 천천히 빛이 사그라들었다.

“이제 본인 등록이 완료되었고,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도아 양밖에 없습니다.”

원래 색으로 돌아온 카드를 도아는 신기하게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마법진이 무척 아름답고 세련되었다.

엘리바스에게 배웠던 기본이론을 생각하며 손끝으로 더듬어 본다.

‘정보를 전송하는 마법진인가?’

쾅!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도아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검 손잡이를 쥐었다.

하지만 문을 박차고 들어온 사람을 보자, 순간적으로 사고가 멈췄다.

“이런, 짐에게 연락도 없이 슬쩍 그랑에 들어온 건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당당히 길드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화려했다.

엄청나게 화려했다.

금색 머리카락은 어두운 데서도 환하게 반짝거리고, 눈동자는 형광빛 도는 푸른색이었다.

얼굴도 잘생겼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엄청나게 길고, 두껍고, 화려한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가장자리에 모피까지 둘러 있다.

심지어 안에 입고 있는 옷은 예식용 정장 같았다.

그 황족 가문의 초상화에서나 볼법한 차림새였다.

‘뭐지……?’

진짜 황족인가?

황족은 처음 봐.

도아는 검 손잡이에서 슬쩍 손을 뗐다.

황족을 위협하는 걸로 보일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황족은 평소에도 이런 차림으로 다니나?

불편하지 않나?

망토도 엄청나게 무거워 보이고.

남자가 빙긋 웃었다.

“머리가 아직 멀쩡해 보여서 다행이군, 마검.”

쿠낙은 그런 그를 완전히 무시하고 도아에게 말했다.

“도아 양, 이제 나가죠. 아래층에서 카드 사용법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며 돌아 나가려는데 화려한 남자가 잽싸게 앞을 가로막았다.

도아는 움찔했다.

‘어? 빨라!’

그런 무거운 망토를 걸치고도 움직임이 빨랐다.

‘이 사람 엄청 강한 거 같은데?’

“그 옆은 새로운 모험가인가? 못 보던 얼굴인데. 등급이 어떻게 되지? 짐에게 고해 보거라.”

“B, B급입니다.”

그 말에 남자는 재미있다는 얼굴을 하고 쿠낙에게 말했다.

“요즘 마검은 B급이랑 어울려 다니나?”

“그쪽이 신경 쓸 바는 아니지요.”

“짐에게는 모든 게 신경 쓸 일이다.”

한순간 크게 망토가 펄럭였다.

도아는 그의 검을 피했다.

남자는 “오호.” 하고 감탄했다.

도아는 입을 떡 벌렸다.

‘이 새끼가?’

가만히 있었으면 진짜로 베였다.

저 망토 때문에 발검하는 동작이 안 보였다.

아무래도 장식으로 망토를 입고 다니는 건 아닌 듯했다.

남자는 도아를 거만한 어조로 칭찬했다.

“진짜로 벨 생각이었는데, 피했구나. B급치고는 대단한데? 짐을 폐하라고 불러도 좋다.”

“뭐래, 미친놈이, 진짜.”

도아가 말을 던지자 순간, 세 사람 모두가 굳었다.

도아가 비딱하게 섰다.

그녀는 소중하게 카드를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첫 만남부터 시비를 걸어?”

“그대, B급, 설마 짐이 누군지 모르는 건가?”

남자가 중얼거리자 도아가 말했다.

“아니 쿠낙도 그렇고, 다들 이상한 스타병에 걸려 있나. 왜 자기를 모르면 안 돼?”

쿠낙이 그 말에 소소한 항의를 했다.

“도아 양, 저는 이 남자와는 다릅니다.”

“아, 됐거든요.”

도아가 손을 흔들자 쿠낙은 눈을 찌푸리고 뭔가 더 말하려 했다.

하지만 화려한 망토가 더 크게 팔락였다.

남자가 한 걸음 만에 도아 앞으로 다가왔다.

“그래, 짐을 모른다고?”

“그래, 모른다.”

도아가 그를 똑바로 쏘아보며 말했다.

아니, 여기 인간들은 왜 이렇게 키가 크담?

이 인간도 키가 거의 190cm는 되어 보였다.

도아도 키가 작은 편은 아닌데, 모험가들은 너무 키가 컸다.

이해한다.

키가 커야 팔다리가 길고, 팔다리가 긴 건 전투에서 상당히 유리한 점이다.

그러니까 강자들이 키가 큰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오, 키도 좀 키워달라고 할걸.’

도아는 이렇게 고개를 치켜들어야 하다니, 하고 아쉬워했다.

“잠깐, 두 분 다 그만두세요.”

중간에 얀이 끼어들었다.

얀인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도아 양, 이쪽은 S급 모험가인 로베른입니다. 그리고 로베른, 이쪽은 오늘 B급 모험가가 된 도아 양입니다.”

로베른의 얼굴이 더욱 흥미가 가득 들어섰다.

“도아? 이름이 특이한데…… 그렇군. 남대륙 사람인가? 그렇다면 무지한 이유를 알겠군. 좋다. 용서하마.”

도아가 떨떠름한 얼굴로 그를 가리키며 얀에게 노골적으로 물었다.

“이 사람, 뭐예요?”

“백성들은 나를 황제 폐하라고 부르노라.”

“진짜 황제가 화내지 않나요?”

“감히 짐에게?”

“아, S급 모험가라서?”

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를 가운데 두고 대화하는 현장이다.

“특이한 B급이로군. 짐의 백성이 되지 않겠는가?”

“나라는 있냐?”

“짐이 곧 국가다.”

“헐……?”

도아는 저도 모르게 그를 돌아보았다.

빤히 그를 보자 로베른이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도아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루이 14세예요?”

“남대륙의 유명한 왕인가?”

도아는 그가 그녀 같은 여행자인가 하고 유심히 보았지만, 그런 것 같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번 슬쩍 찔러보았다.

“코카콜라?”

그 단어에 셋이 멀뚱히 도아를 바라보았다.

“남대륙어인가요?”

순진한 질문이 돌아와 도아는 헛기침했다.

“아니, 음. 아닙니다.”

도아는 굉장히 멋쩍어졌다.

다행히도, 아니 ‘불행히도’ 인가?

그는 여행자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저 모습이 콘셉트가 아니라, 진심이라는 이야기인가.

하여간 굉장히 귀찮다.

‘얼른 피하자.’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익숙한 알림음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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