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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여행사 : S급 먹방대모험 패키지-21화 (54/100)

⊹ 21화 ⊹

도아는 멈칫하고 눈을 찌푸렸다.

‘보상, 고대 미궁 열쇠.’

열쇠는 보통 꼭 필요한 아이템인 경우가 많았다.

열쇠로 열리는 문을 지나가야지만 퀘스트 아이템이 있는 식이다.

게다가 주요 퀘스트이니 이 열쇠는 유물을 찾는 데 필요한 물건일 터.

‘그런데 S급 파티라고?’

갑자기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눈앞에 저 황제 놈이 S급이다.

쿠낙이야 어떻게 설득한다고 해도, 저 사람.

‘아냐, 설마 S급이 이 사람밖에 없을 리가 없잖아.’

도아는 고개를 흔들고 얀에게 화급히 물었다.

“길드장님, 파티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얀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파티원들을 모아서 길드에 등록해 주시면 됩니다. 최소인원은 4명이고, 가장 낮은 사람의 등급이 파티의 등급이 됩니다.”

“으음…….”

도아는 제 카드를 바라보았다.

B급.

즉, 그녀가 S급으로 올라가야 S급 파티가 된다는 말이다.

“최소한 4명……. 지금 S급은 총 몇 명이라고 하셨죠?”

“일곱 명이지만, 활동하고 있는 건 다섯 명 정도입니다.”

“그렇군요.”

도아는 곰곰 생각에 잠겼다.

일단 S급 파티가 되려면 그녀가 S급이 되어야 한다.

다른 S급들을 모으는 건 천천히 병행하면서 진행해야 할 거 같았다.

“어떻게 하면 S급이 될 수 있나요?”

“글쎄요. 인간이 이루기 어려운 위업을 달성하면요?”

그는 가볍게 말했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도아는 끙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옆에서 로베른이 참견했다.

“무척이나 꿈이 큰 B급이군. 짐처럼 S급이 되고 싶은 건가?”

도아는 뚱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가 감탄했다.

어쨌든 잘생겼다.

눈매는 날카롭고 코는 오똑하다.

살짝 맛이 간 것 같은 광기가 눈에 있는데 그것마저도 잘생김에 플러스 요인이 되어주는 듯했다.

그 옆의 쿠낙은 검은 머리, 검은 눈이다.

게다가 실용성만을 강조한 쿠낙의 옷과 완벽히 대조되는 화려한 예장.

양극단의 삶을 보여 주는 훌륭한 예시 같았다.

도아가 쿠낙을 보았다가, 다시 로베른을 보았다.

얀에게 도아가 물었다.

“혹시 S급을 뽑는 데 외모도 평가에 들어가나요?”

얀은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웃기 시작했다.

“그건 아닙니다.”

“다행이네요.”

“만약 외모로 뽑는다 해도, 도아 양은 걱정하실 필요 없으신 거 같습니다.”

“친절한 말씀, 감사합니다.”

로베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B급치고는 나쁘지 않아. 보는 눈도 있고.”

도아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내쉬었다.

어차피 S급 파티를 만들어야 한다.

자신이 황제라고 자칭하는 게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어쨌든 S급이잖아?

콘셉트 놀이야 맞춰 주면 된다.

좋아, 이 사람은 폐하다.

이제부터 폐하다.

이름이 폐하인 거다.

“그런데 쿠낙이랑 폐하는 어떻게 S급이 된 거예요?”

질문에 로베른이 놀란 얼굴을 했다.

“정말로 무지하군.”

“남대륙에서 왔거든요.”

“마룡을 죽였지.”

“용이요?”

갑자기 신화급 마수가 나와서 도아는 눈을 끔벅였다.

엘리바스가 한번 환영으로 보여준 적이 있는데 날아다니는 범선이었다.

조세핀이 공략법을 알려줬지만 그녀 혼자서는 도저히 공략할 수 없었다.

조세핀도 기사단과 함께 공략했었다고 말하며 위로해 주었다.

‘불에 두 번 정도 타 죽었지.’

덩치는 큰 데다가 빠르고, 굉장히 똑똑하다.

용의 말에 속아서 ‘어어’ 하다가 꼬리에 납작하게 압사당한 적도 있었다.

“S급이 될 만하네요…….”

도아가 중얼거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 업적을 쌓아야만 S급이 된다면 길이 험난할 거 같다.

‘파티를 짜야 하나.’

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은 단서 추적을 먼저 해야 했다.

“하여간 고마워요, 길드장님. 그럼 전 이만 가 볼게요.”

도아가 나가려는데 로베른이 그녀의 앞을 잽싸게 가로막았다.

“B급, 계획이 있나?”

“무슨 계획?”

“남대륙에서 온 자들은 늘 파란을 몰고 오지.”

로베른이 그녀의 턱을 가볍게 쥐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감정하는 차가운 눈이었다.

“이방인 아주르 나자크가 어떤 파란을 일으킬지 궁금하군.”

파란.

도아는 생각했다.

확실히 그녀가 하려는 일은 파란을 일으킬 일임이 틀림없었다.

말마따나 B급이 ‘S급 던전을 공략하는 게 꿈이에요.’라고 하는 건 진짜로 장래희망을 이야기하는 거 같이 들린다.

게다가 봉인을 풀고 S급 던전을 공략하겠다는 게 인류에 재앙을 몰고 온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도아는 아직 거기까지 그를 판단하지 못해서 답을 미뤘다.

“있지만.”

도아가 어깨를 으쓱하고 그의 손목을 잡아서 떼어냈다.

“비밀이에요.”

도아가 그러며 냉큼 문 쪽으로 움직였다.

쿠낙이 차가운 눈으로 로베른을 한 번 바라보고 문을 열어주었다.

얀이 손을 흔들었다.

“그럼 즐거운 모험되시길.”

“고마워요, 길드장님. 그래서, 쿠낙이 카드 사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죠?”

조잘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문이 닫히자 사라졌다.

로베른이 팔짱을 끼고 그 문을 바라보았다.

자꾸만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남대륙의 파란.

남대륙에서 건너온 자들은 렌시아에 큰 흔적을 남겼다.

어떤 형태로든 그랬다.

저 작은 여자애도 분명히 큰 파도를 만들어내겠지.

몸속 깊이 떨림이 느껴졌다.

마룡을 죽인 이후로, 이런 떨림을 다시 느낄 거란 생각은 못 해 봤는데.

“아, 길드장. 인생은 늘 새로워. 안 그런가?”

중얼거리는 그를 보며 얀은 ‘왜 S급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인간들 뿐일까.’ 하는 고찰을 접고 말했다.

“맞습니다. 언제나 새롭죠.”

❖ ❖ ❖

“모든 던전은 모험가 길드에서 탐색합니다. 던전 코어를 아시죠?”

“네.”

도아가 쿠낙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코어.

차원 균열을 일으키는 핵.

각종 결정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던전이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힘이 바로 이 코어에서 나왔다.

이 코어를 분리해야, ‘던전 공략이 끝났다.’라고 할 수 있다.

“이 던전 코어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탐색해서, 자동으로 태그를 붙입니다. 던전에 들어갈 때는 그 태그를 카드로 터치하고 들어가게 되죠.”

“헐.”

생각과는 전혀 다른 첨단 마법 시스템이었다.

“엄청나네요.”

“복잡하지만 한번 해 보면 별거 아니라는 걸 알게 되실 겁니다.”

“그렇군요. 고마워요. 쿠낙.”

모험가 길드 입구에 나와 도아가 그에게 인사했다.

“여기까지 안내해 준 것도, 보증 서준 것도 다 고마워요.”

쿠낙은 도아의 인사에 멈칫했다.

그는 한참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결국 내뱉듯 물었다.

“약속한 진찰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 그건 언제든지 저에게 연락 주세요. 뭐하면 지금 함께 가셔도 됩니다.”

시원시원한 어조였다.

쿠낙은 그 말에도 여전히 침묵했다.

도아는 점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내가 뭐 잘못했나?’

그때 길드에서 나오던 사람들이 쿠낙을 발견했다.

“헉, 흑룡 쿠낙이다.”

“뭐? 진짜!”

“아, 안녕하세요. 저 팬인데요…….”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해서 도아는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계단을 통통 가볍게 내려오다가 슬쩍 돌아보니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뭘까.’

도아는 의아해하면서도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그때 뒤에서 쿠낙이 달려와 도아의 팔을 잡았다.

도아가 놀라 그를 돌아보았다.

주변의 시선이 이쪽에 주목되기 시작했다.

“도아 양.”

쿠낙의 눈이 어쩐지 이글이글했다.

“네?”

얼떨떨하게 도아가 마주 그를 바라보았다.

“예전에도 생각했지만, 너무한 거 아닙니까?”

“네?”

네? 하는 되물음이 뇌를 거치지 않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쿠낙이 눌러 참듯 말했다.

“생명의 은인이시죠.”

“그, 렇죠?”

내가 생명의 은인인 건 맞다.

“그런데 구해 놓고서 이렇게 가버리는 건 아닌 거 같지 않습니까?”

도아는 약간 얼이 빠졌다.

쿠낙은 그녀의 순진하고―그의 말을 전혀 이해 못 한 거 같은―멍한 표정을 바라보며 뭐라 말할 수 없는 충동에 휩싸였다.

“심지어 얀의 목숨도 구해 주셨죠.”

“어, 그랬죠.”

“빚을 지게 했으면 책임을 지셔야죠.”

힘주어 말한다.

“책임, 지라고요?”

“네.”

쿠낙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뻔뻔하게 대답했다.

녹색 눈이 혼란스러운 듯 그를 바라본다.

눈동자 색이 빙글빙글 돌듯이 변한다.

올리브에서 페리도트로, 페리도트에서 에메랄드로, 암녹에서 연녹으로.

쿠낙이 그런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다시금 말했다.

“이제 여행을 시작하시는 거 아닙니까? 분명히 제가 더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그거야, 그렇겠죠.”

도아는 이제 말이 귀에 들어왔다.

그야 확실히 렌시아에 대한 기본상식이 부족한 그녀에게 꼭 필요한 가이드였다.

“목숨을 빚졌으니, 갚아야겠습니다.”

쿠낙의 말에 도아는 ‘아하’ 하고 머릿속에 조명이 탁 들어오는 걸 느꼈다.

이게 그, 메이가 말했던 그거다!

인맥!

여행용 인맥!

쿠낙은 김진사댁 막내딸인 것이다!

현지인 안내자!

도아가 활짝 웃었다.

“쿠낙이 도와준다면 저는 환영이죠. 하지만 쿠낙은 S급 모험가고 오래 붙들어 둘 수는 없으니까……. 일단 일 년 어때요?”

베리와 똑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사이에 쿠낙에게 중요한 일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빠져도 좋아요.”

목숨을 빚진 것에 대해서 쿠낙은 그녀의 생각보다 더 부담을 느끼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사양하는 것보다는 적당히 받아 주는 게 좋으리라.

그녀로서도 쿠낙이 해 주는 안내가 기꺼웠다.

“일단 일 년. 알겠습니다.”

쿠낙의 얼굴에도 그제야 미소가 번졌다.

“그럼 간단한 준비를 해서 은편자 여관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여행 준비를 하려는 건가.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게 들르세요.”

“그럼.”

쿠낙은 도아의 손등에 허리를 굽혀 입 맞추고는 자리를 떠났다.

‘와악!’

남자에게 손등 키스를 당한 건 처음이었다.

당연한 게 현실에선 일단 당할 일이 없다.

어쩐지 굉장히 부끄러워져서 도아는 허둥지둥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 ❖ ❖

베리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석판에 글씨를 베끼고 있었다.

[공용어 첫걸음]

이라는 책과 까만 석판이 도아의 선물이었다.

‘잘 쓰게 돼서 도아 님께 큰 도움이 되어야지.’

발음도 열심히 교정하고 있었다.

이제 이런 발음은 너무 속상했다.

“똑땅해, 똑땅.”

말하고 베리는 씩씩거리며 다시 발음했다.

“똑당해, 똑당.”

다시.

“독당, 독당, 동당.”

크읏

“서. 서. 석상!”

하나는 발음이 잘 됐다.

“석상. 석상. 속땅!”

베리는 잠시 좌절했다가 입 안으로 다시 열심히 발음하면서 석판에 글씨를 적었다.

언젠가 말도 엄청 잘하고, 글도 척척 읽을 수 있게 되어야지.

그럼 도아 님이 ‘우리 베리 엄청 똑똑해! 이제 나랑 계속 함께 있어 줘. 베리 없으면 안 돼, 안 돼.’라고 하실 거야.

“히히.”

상상하니 저절로 뿌듯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상상 속의 자신은 어쩐지 똑똑해 보이는 안경까지 쓰고 있다.

배우는 건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배움에는 목말라 있었다.

모험가들의 미끼로 쫓아다니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알았다.

그래서 모험가들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모든 이야기를 몇 번이나 머릿속에 되새기곤 했다.

그랑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게 알게 된 거였다.

얼마나 설레던지.

거기다가 다른 모험가가 뭐 어떻게 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도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런 모험가들이 자신을 구해 주는 상상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했다.

그런데 정말로, 도아 님이 나타났다.

진짜 아주르 나자크가.

베리는 제 발음이 형편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게 정말로 속상했다.

자신이 너무 부족해 보이고, 어리게 보이는 게 아닐까.

그래서 베리는 열심히 발음 연습을 반복했다.

베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어서 최대한 느릿느릿, 또박또박 발음을 해 본다.

“다녀오뎠떠요? 어떠더떠요?”

도아는 웃으며 품에서 카드를 꺼내 보였다.

“짜잔.”

“와아!”

베리가 카드를 조심스럽게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반딱반딱해여. 찐짜 은이에여?(반짝반짝해요. 진짜 은인가요?)”

“응, C급은 구리판이고, 그 아래는 목판이래. B급은 은이고 A급은 금이라고 하더라고.”

“꾸럼, 에슈꿉은여?(그럼 S급은요?)”

“S급은 흑판이라더라. 던전에서만 나는 특수 광물로 만든대. 나중에 쿠낙에게 보여달라고 해 보자.”

도아의 말에 베리는 머뭇머뭇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쿠낙이 무서웠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S급을 한 명 더 만났어.”

베리의 금색 눈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에슈급! 어, 구랑이니까, 한데 폐아?!(S급! 어, 그랑이니까 황제 폐하인가요?)”

“맞아!”

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 자기를 ‘짐’이라고 칭하고, ‘폐하라고 불러도 좋다.’라느니.”

베리는 흥분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떵말러 하려한 옷 입어여?(정말로 화려한 예복을 입고 다니세요?)”

“응.”

“와아, 와. 쩌도 띨물러 버거 시퍼요. 버거 싶따.(저도 실물로 보고 싶어요. 보고 싶다.)”

베리는 아쉬워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도아는 ‘그러고 보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S급은 전대륙적인 스타다.

그런데 로베른은 그만큼의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아이돌 산업에서 중요한 건 콘셉트지.’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그만큼 유명하고 인기도 좋으리라.

생각해 보면 쿠낙도 마찬가지였다.

마검 소유자.

‘우와, 그러네. 유명할 만하네.’

다른 S급들도 그만큼 개성이 넘칠까?

도아는 어쩐지 다른 S급들을 만나는 게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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