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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여행사 : S급 먹방대모험 패키지-22화 (55/100)

⊹ 22화 ⊹

베리가 카드를 돌려주며 말했다.

“째발굽이 엄청 어렵떼여. 이져버리지 마세여.(카드 재발급이 엄청나게 어렵대요. 잃어버리지 마세요.)”

제법 진지한 어투로 충고해서 도아도 진지하게 되물었다.

“정말?”

“녜.”

베리는 모처럼 자기 지식을 뽐낼 때를 놓치지 않았다.

헛기침하고 다시 흥분을 가라앉히며 또박또박 말해 본다.

“구래서 카두 넣는 카두집두 판데여. 기여운 카드집 마나요.(그래서 카드를 넣는 카드집도 판대요. 귀여운 카드집도 많아요.)”

“어, 진짜? 나중에 같이 사러 갈까?”

“녜! 끈데, 쩌 아직 슉떼 덜 끝나서…….(네! 그런데 저 아직 숙제가 덜 끝나서…….)”

슬쩍 눈치를 보니 도아는 숙제를 봐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래, 그럼 나도 그사이에 어제 산 책이나 읽어야겠다.”

“녜…….”

베리는 슬그머니 다시 책상으로 돌아갔다. 도아는 쿡쿡 웃고 의자에 앉아서 책을 꺼냈다.

[용사 이슬에 대한 다면적 고찰]

책 이름부터 학구적이다.

‘어디 볼까.’

앞쪽에는 저자가 얼마나 많이 용사 박이슬과 그 파티에 대해서 연구했는지, 그리고 참고한 이야기가 무엇인지가 적혀 있었다.

‘상당히 진심인 분이군. 책을 잘 골라줬네.’

지금 도아에게 필요한 건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단서였다.

도아는 책을 펼치고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용은 흥미진진했다.

용사 이야기인 데다가 이게 실화라는 것, 그리고 박이슬이 현대인이라는 걸 알고 있는 도아에게는 더 그랬다.

그랬는데…….

그런데…….

도아는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아, 너무하네.’

도아는 마지막 장을 다시 열어보았다.

거기에는 삽화가 한 장 들어 있었는데, 설명은 단출했다.

[남쪽 에게레 해안 절벽에 남아 있는 ‘요르드’ 동상]

요르드는 지금 렌시아 대륙에는 남아 있지 않은 고대 정령족이었다.

정령족은 이슬이 여기 왔을 때도 희귀한 종족이었다.

아름다운 생김새와 섬세한 목소리는 지금도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는 용사 이슬의 파티 일원이었고 무엇보다 그녀의 연인이었다.

일이 전부 끝나고 이슬은 남대륙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반드시 돌아올게’라고 약속을 남겼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오지 못했다.

요르드는 500년간 그녀를 기다리다가 바닷가의 돌이 되었다.

정령족이 자연물이 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이로써 우리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확인을 할 수 있으며―

라는 게 이 동상에 얽힌 이야기였다.

‘반드시 돌아온다고 했지만.’

도아는 한숨을 삼켰다.

분명히 세계수 여행사를 통해서 왔을 텐데 어떻게 ‘반드시’라고 약속할 수 있겠어.

여행사에서 그녀를 현대로 돌려보내고 여행이 끝났다고 선언한다면, 여행은 끝이 난다.

‘어쩐지 같은 여행자로서 죄책감이……. 마음이 아픈걸.’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나중에 고객센터에 문의해 봐야겠다.

도아가 그렇게 생각하며 옆에 둔 종이를 들었다.

책을 읽으며 주요 정보를 적어 둔 종이었다.

이야기가 슬픈 건 슬픈 거고, 그녀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어디 보자…….’

그때 던전을 봉인한 후 세 개의 유물은 각각 파티원이었던 사람들이 나눠 가졌다.

주문은 마법사에게 넘어갔고, 유물은 ‘투아지트’, ‘마틸다’, ‘로고’에게 각각 넘어갔다.

‘투아지트는 지금도 있는 가문이니까.’

유물에 붙여진 이름도 어쩐지 낭만적이었다.

새벽의 열쇠,

한낮의 열쇠,

황혼의 열쇠.

각각의 유물은 어느 순간 소실되었는데, 소실된 이유는 소유자의 갑작스러운 사망 혹은 가문의 멸망이었다.

겉으로 유물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대략적으로 추측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마법사 링에서 ‘주문’을 가지고 있는 건 확실시되며 투아지트가 ‘유물’을 가지고 있는 것도 확실시되고 있었다.

도아가 읽은 정보에 대한 정리를 끝내자 알람이 울렸다.

메인퀘스트

챕터 2 [단서 추적]

세 개의 유물과 한 개의 주문에 대한 첫 번째 정보를 얻자.

방법은 자유.

새벽의 열쇠

▸ 마르그리트 가문이 멸문하며 사라졌다.

한낮의 열쇠

▸ 마틸다가 실종 사망하며 사라졌다

황혼의 열쇠

▸ 투아지트 가문에서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개의 주문

▸ 마법사 링에서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첫 번째 키워드를 채웠습니다.

보상 ‘세계수 진액’을 지급합니다.

두 번째 키워드를 채우면 보상 ‘정화석(S급)’이 지급됩니다.

‘오!’

이걸 첫 번째 키워드로 쳐줄 줄이야.

어쩐지 쉽게 얻은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더 좋았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받은 보상을 꺼내 보지 않았네. 한 번 볼까?’

도아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보상은 마법 주머니로 자동 지급된다고 했다.

‘어디.’

도아는 첫 번째로 받았던 정화석(A급)을 꺼냈다.

“와…….”

오팔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는 둥근 원반이었다.

가운데에는 도넛처럼 구멍이 나 있고, 크기는 검지와 엄지를 붙인 동그라미만 했다.

청량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마치 숲속에서 솟아나는 차가운 샘 곁에 있을 때 느껴지는 그런 공기였다.

서늘하고 투명한 공기가 정화석 주변으로 물결처럼 번져나갔다.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베리가 수염을 꼼질거리더니 고개를 돌려 물었다.

“또아 님, 구건 먼가여?(그건 뭔가요?)”

“응, 정화석이라는 건데… 볼래?”

베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쩡화석이여? 쩌 뗘음봐여!(정화석이요? 저 처음 봐요!)”

“베리는 정화석이 뭔지 알아?”

도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가 배운 지식에는 ‘정화석’ 이라는 게 없었다.

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꿉 이당대는 다연연 던전에더만 나어는 아이뎀이에여. 어염을 덩하해듀는 능역이 있데여.(A급 이상 되는 자연형 던전에서만 나오는 아이템이에요. 오염을 정화해 주는 능력이 있대요.)”

“아하.”

“까지구 있뜨면 어염에더 보호해 듀고요.(가지고 있으면 오염에서 보호해 주고요.)”

“그래?”

도아가 이리저리 정화석을 살피고 베리에게 내밀었다.

“그럼 이건 베리 줄게.”

베리의 꼬리가 펑 하고 부풀었다.

“아, 안대여! 이꺼 찐짜 히기한 거에여! 쩨가 머게 걸규 있는 거 버면 따들 쩔 쭉이려 할 거에여.(아, 안 돼요! 이거 진짜 희귀한 거예요! 제가 목에 걸고 있는 거 보면 다들 절 죽이려고 할 거예요.)”

“그 정도야?”

“네!!”

그게 얼마나 희귀한 고가의 물건인지 베리도 들은 게 있었다.

도아가 말했다.

“그럼 몰래 가지고 다녀야겠다. 로켓을 하나 맞춰야겠는데.”

너무 좋아 보이지 않게, 목제로 로켓 목걸이를 만들어서 로켓에 넣으면 되겠지.

“하, 하지만…….”

“베리, 이제 쿠낙이랑 다니게 될 거야.”

도아의 말에 베리는 폴짝 뛰었다.

“꾸, 꾸낙이랑여?”

“응.”

도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베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즉시 귀가 뒤통수 쪽으로 착 붙는 게 귀여웠다.

“쿠낙이 조심해도 오염은 흘러나올 수 있으니까. 베리가 보호구를 착용하는 게 좋겠어.”

“하…… 하디만…….”

우물우물하는 베리를 보고 도아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정화석에 그만큼 능력이 있으면 괜찮을 거야. 나도 좀 더 정보를 알아볼게.”

“녜.”

“그럼 일단 이건 베리가 가지고 있으렴.”

도아가 정화석을 내밀어서 베리는 양손을 벌렸다.

가볍게 손 위로 그게 떨어지자마자 기분이 풀어졌다.

따뜻하고 청량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고양이족인 베리는 그런 기운에 무척이나 민감했다.

마음속이 평온해진다.

이것만 있으면 이제 쿠낙도 무섭지 않을 듯했다.

“이따가 카드집 사면서 목걸이도 같이 주문하자.”

“녜.”

도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아이템을 꺼냈다.

‘세계수 진액.’

꺼내 보니 딱 뭔지 알 거 같았다.

호박(amber)이다.

엄청나게 짙은 숲 향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무척 투명하고, 색은 밝은 노란빛이었다.

마치 금처럼 환하게 빛난다.

베리가 분홍색 코를 발름거렸다.

“엄떵 둏은 냄새가 나여. 딘따 숩냄새여.(엄청 좋은 냄새가 나요. 진짜 숲 냄새요.)”

“응.”

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숲속에 들어가면 맡을 수 있는 모든 생명력 넘치는 향기가 여기서 나고 있었다.

‘그냥 보석은 아닐 텐데.’

도아는 크기가 엄지손가락만 한 진액을 이리저리 손안에서 굴렸다.

‘약을 만들 때 써 볼까? 그러고 보니 라크샤샤의 조제법 중에 이런 진액을 사용하는 약도 있었어.’

세계수 진액이라면 효과가 엄청날 터였다.

‘아! 이거 쿠낙에게 약 만들어 줄 때 쓰면 되겠다.’

정화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할 터.

쿠낙에게 써먹어 봐야겠다. 하고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진액을 조심스럽게 <약초사 세트> 안에 집어넣었다.

이 세계에는 세계수가 없으니, 세계수 진액도 당연히 없겠지.

‘엄청 조금씩 써야겠어. 약효가 너무 강해도 문제가 될 테니까.’

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똑똑

그때 정중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찾아올 사람이 있나? 하고 도아가 갸웃하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이런 추레한 곳에서 묵고 있었나?”

도아는 입을 떡 벌렸다.

베리는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났다.

“폐하!”

베리가 소리치자, 로베른이 싱긋 웃었다.

“내가 누군지 아는 자가 있군.”

“폐하? 내가 여기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어?”

도아가 당황해 묻자 그가 말했다.

“설마 짐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짐의 저택 현관문보다 작은 곳에서 묵고 있다니. B급다운 거처로군.”

그가 성큼성큼 들어가더니 가장 상석에 턱하니 앉았다.

멋지게 망토가 펄럭였다.

다리를 꼬고 그가 말했다.

“손님이 왔는데, 차 한잔 안 내줄 건가?”

도아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베리는 신이 났다.

그 증거로 꼬리가 멋지게 구부러져 있었다.

“얼릉 가뎌올게여!(얼른 가져올게요!)”

베리가 그러며 쪼르르 문을 열고 나갔다.

도아는 이상한 기분이 되어 로베른을 바라보았다.

“계속 서 있을 건가?”

“커피 좀 만들고.”

도아가 창문을 열고, 커피대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일단 카페인을 좀 빨고 시작해야겠다.

곧 짙은 커피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도아는 생각을 정리하고 물었다.

“폐하는 왜 나에게 관심이 있어?”

“짐이 관심을 가져주면 기뻐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 그런 관심이 아니잖아.”

“B급치고는 현명하군.”

“아니, 내가 B급이기는 한데, 자꾸 B급, B급하면 듣는 B급이 기분 나쁘지 않겠어?”

“하지만 B급은 B급이지.”

크윽.

도아는 억울해졌다.

물론 B급이지!

B급이지만!

‘뭐, 호칭은 됐다.’

그렇다고 내 이름을 불러줘, 하며 부탁하기도 귀찮았다.

도아가 천천히 커피를 태우는 옆모습을 로베른은 오래 바라보았다.

“짐이 마룡을 토벌한 건 3년 전이지.”

도아가 눈동자만 돌려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때 함께했던 동료의 절반은 죽었다. 남아 있는 동료 중에서도 멀쩡히 걸어 다니는 녀석이 많지 않지.”

도아가 자세를 바로 했다.

“그건, 유감이네.”

로베른이 싱긋 웃었다.

“짐에게 그리 말할 필요는 없다. 유감인 건 죽은 자들이지. 난 살아남았고, S급이 되어 명예와 권력을 독차지했으니.”

“어쨌든.”

도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로베른이 천천히 도아를 살피며 말했다.

“짐의 인생에 그런 파란은 두 번 다시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러면 남은 삶은 꽤나 지루하겠구나, 했는데.”

그의 시선이 도아의 눈에서 딱 멈췄다.

“이건 또 진귀한 이방인이 나타난 게 아닌가? 시야에서 벗어나게 두기에는 너무 아쉽지.”

“그러니까 인생의 신선한 자극이다?”

“B급치고는 나쁘지 않은 머리로구나.”

로베른이 하는 말에 도아는 어이가 없었다가, 곧 주요 퀘스트를 떠올렸다.

“그럼 계속 옆에서 자극받고 싶다 이거네?”

“가능하면.”

“그럼 나랑 같이 다닐래?”

“이유는?”

“이제부터 모험을 시작할 예정인데, 가능하면 빠르게 S급을 달고 싶기도 하고. 또 동료가 필요할 거 같아서.”

로베른이 그 말에 턱을 괴고 도아를 보는데 문이 열리고 베리가 돌아왔다.

베리가 조심스럽게 잔을 내려놓고 도아에게 가볍게 잔소리했다.

“됴아 님, 띡다도 안 하시구 까피 삐우시면 안 뎌야여.(도아 님, 식사도 안 하시고 커피 피우시면 안 좋아요.)”

“지금 카페인이 너무 필요해서…….”

도아가 변명을 중얼거렸다.

로베른이 찻잔을 우아하게 들며 물었다.

“그래서 B급은 어떤 모험을 할 작정인가?”

“응?”

“B급 수준의 모험이라면, 굳이 내가 합류할 필요가 없지.”

“일단 최종목표는…….”

도아는 말을 해도 될지 망설였다.

하지만 어쩐지 해도 될 거 같았다.

“‘비추는 샘’ 공략이려나.”

베리가 놀라 헉 소리를 냈다.

로베른도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휘둥그레진 푸른 눈이 그녀를 본다.

도아는 어쩐지 즐거워져서 씩 웃어 보였다.

S급을 놀라게 할 정도면, 나쁘지 않네?

로베른은 찻잔을 내려놓고 입가를 가렸다.

어깨가 떨린다 싶더니 그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하하.”

오히려 시원시원한 웃음소리라 듣기 거북하지 않았다.

한참 웃고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도아에게 다가와 그녀 손에서 커피대를 가볍게 당겨 빼앗고 말했다.

“그대의 그 미친 파티에 기꺼이 합류하고 싶군.”

그가 커피대를 입에 물고 연기를 뿜어내고는 웃었다.

“짐이 죽는 방식으로는 나쁘지 않아.”

도아가 뚱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내 커피야. 그리고 안 죽을 거고.”

“B급은 가장 먼저 죽을걸.”

“왜 그렇게 생각해?”

“B급이니까.”

싱긋 웃으며 하는 말에 도아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아, 그러네. 그럼 일단 빨리 S급부터 달아야겠네.”

“그럼 짐이 B급에게 명성을 빠르게 쌓는 법을 전수해 줄까?”

로베른의 말에 도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데?”

“아주 간단해.”

로베른이 히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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