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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여행사 : S급 먹방대모험 패키지-23화 (56/100)

⊹ 23화 ⊹

다음 날 아침, 들뜬 표정으로 여관을 찾아온 쿠낙은 로베른을 발견했다.

그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왜 저 인간이 여기에 있을까요?”

도아가 말했다.

“쿠낙이 싫으면 빠지라고 할게요.”

쿠낙이 그 말에 도아를 바라보았다.

옆에서 로베른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쿠낙을 보았다가 도아를 보고 물었다.

“혹시 마검은 파티의 목적이 뭔지 아나?”

“아니, 아직.”

“아, 그럼 짐에게 처음 속삭인 거로군. 귀여운 맛이 있구나, B급.”

“아, 좀 관둬.”

“파티의 목적이라니요.”

도아 양?

쿠낙이 그녀를 불렀다.

도아가 손을 흔들고 말했다.

“폐하가 물어봐서 답해 준 것뿐이에요. 당연히 쿠낙에게도 말하려고 했어요.”

“…… 그래서 뭡니까?”

“‘비추는 샘’ 공략이요.”

“…….”

쿠낙은 잠시 침묵했다.

이어 물었다.

“그런데 그게 왜 저와 도아 양이 공개 대결하는 걸로 이어지는지 모르겠군요.”

“그야 B급인 제가 S급이 먼저 되어야 하니까.”

로베른이 끼어들었다.

“명성을 쌓는 데에는 기존의 강자와 붙는 게 가장 빠른 일이지.”

쿠낙이 눈을 찌푸렸다.

그는 뭔가 말하려는 듯 로베른을 보았다.

로베른은 어디까지나 재미있는 일을 벌였다는 듯, 싱글싱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쿠낙은 생각 끝에 답했다.

“알겠습니다.”

도아가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아요?”

“네, 그게 빠른 길이라는 건 사실이니까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아도 덩달아서 따라 일어났다.

“아주르 나자크와 마검 소유자의 대결이라면 더욱 흥미진진하겠죠.”

차가운 어조로 말하고 그가 문 쪽으로 걷기 시작해서 도아가 종종걸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쿠낙, 화났어요?”

“아닙니다.”

“화났지요?”

“아닙니다.”

도아는 ‘끙’ 하고 양손을 쥐었다.

‘조세핀이 엘리바스의 화를 풀어 줄 때 어떻게 했더라.’

그녀가 덥석 쿠낙의 허리를 양팔로 붙잡았다.

“도아 양?”

놀란 듯 쿠낙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미안해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 한번만 봐줘요.”

조세핀은 밥을 달라고 으헝으헝 울며 엘리바스의 허리춤에 매달리고는 했다.

엘리바스는 그런 조세핀을 허리에 매달고 질질 끌며 잘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용서해 주곤 했다.

도아는 부끄러워서 조세핀처럼 철썩 매달릴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쿠낙에게 매달렸다.

“다음부터는 쿠낙에게 먼저 의논할게요.”

도아는 이 방법이 쿠낙에게도 먹히길 바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쿠낙은 복잡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하.” 하고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그가 손을 뻗어 허리에 두른 그녀의 손을 떼어내고 싱긋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화나지 않았습니다.”

도아는 빤히 그를 바라보다가 순순히 손을 떼고 멀어졌다.

“알겠어요.”

도아의 표정을 보고 쿠낙은 피식 웃었다.

그가 말했다.

“그럼 그 일정은 나중에 잡기로 하고, 일단 기본적인 준비가 끝났으니 저와 함께 가시죠.”

“아, 쿠낙 벌써 준비 끝났어요? 전 아직인데―”

도아의 말에 쿠낙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야기할 준비가 대충 됐다는 뜻입니다. 일단 그랑에 도아 양 명의로 집 한 채를 구매해 뒀으니 거기로 향하죠.”

“네? 뭘 구매해요?”

“집이요. 남대륙에서 오셨으니, 딱히 거점도 없이 돌아다니게 되실 텐데, 그래도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편합니다.”

쿠낙이 도아를 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S급의 은혜 갚기를 만만히 보면 안 되지요, 도아 양.”

로베른은 킬킬거리고 웃더니 ‘바쁜 일이 있어서 가 봐야 한다.’ 하고 물러났다.

“다음에 집에 초대해 주게.”

이어 그는 도아의 손등에 입 맞추고 가 버렸다.

아무래도 여기 남자들의 정중한 인사는 손등 키스인가.

귀족적이라면 귀족적이다, 하고 도아는 살짝 뺨을 눌렀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덜 당황했다.

“그럼 이제 가죠. 짐은 이게 전부인가요?”

“아, 네네.”

쿠낙이 그녀의 배낭을 짊어졌다.

그녀에게는 딱 맞는 배낭이지만 쿠낙이 지니까 어린이용 배낭 같았다.

도아는 얼떨떨한 기분이 되어 베리의 손을 잡고, 해왕이의 고삐를 잡고서 쿠낙의 뒤를 따랐다.

베리는 정화석 덕분인지 쿠낙이 무섭지 않다고 도아에게 속삭였다.

그랑은 상당히 큰 도시였다.

그래도 나라는 아니고 도시다.

대여섯 시간 부지런히 걸으면 도시 끝에서 끝까지 닿을 정도의 크기였다.

하지만 그만큼 압축적으로 사방의 풍경이 천변만화했다.

고작 두세 블록 더 걸었을 뿐인데 순식간에 주변 분위기가 바뀌었다.

넓은 거리 좌우로 고급스러운 저택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쿠낙은 마치 적당한 집을 찾아서 들어가듯이 자연스럽게 어느 집 앞에 멈춰 서서 창살 문을 열었다.

안에는 사람이 없어서 고요했다.

“여기입니다.”

쿠낙이 그렇게 말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정원은 담장용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 외부인의 시선에서 보호되었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정원이었다.

작은 분수와 돌바닥, 파라솔을 펼치고 여럿이 티 파티를 할 수 있을 법한 공간을 지나면 저택이 나왔다.

일(一)자 모양으로 적어도 각층 마다 방이 여섯 개쯤은 있을 거 같은 크기의 저택이었다.

쿠낙이 말했다.

“급하게 구하느라 이 정도 저택밖에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묵직한 현관문을 열었다.

“필요한 대로 일단 쓰고, 다음에는 시간을 들여 더 괜찮은 집을 구해 보겠습니다.”

“이 집으로 충분해요!”

도아가 소리쳤다.

“아니, 이 집이면 넘쳐요. 쿠낙, 저 이 집은 못 받아요. 그랑에 얼마나 머물지도 모르고, 그리고……. 하여간 이렇게 큰 집은 필요 없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도아의 시선은 집을 이리저리 살폈다.

바닥의 나무는 종류별로 조합해서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벽에는 섬세한 벽지가 발려 있었다.

가구들도 하나같이 고상한 것뿐이었다.

“마음에 안 드십니까?”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이건 받을 수 없다는 거예요. 저는 사나흘 후면 그랑을 떠날 텐데요.”

“하지만 언젠가 다시 오시게 되겠죠.”

“네, 하지만 그때 여관을 빌려도 충분해요. 전 은편자 여관이면 된다고요.”

“제가 싫습니다.”

도아는 쿠낙의 말에 끙 하고 신음을 삼킨 후에 물었다.

“쿠낙은요?”

“저의, 뭐 말입니까?”

“쿠낙은 그랑에 집이 있나요?”

“…… 있습니다.”

“거짓말이네요.”

도아가 얼른 그의 말꼬리를 잡았다.

“아뇨, 정말로 있습니다.”

“있으면 지금 가 봐요. 당장. 쿠낙 집에.”

도아의 추궁에 쿠낙은 눈을 깜박였다가 냉큼 답했다.

“얀의 집이 저의 집이지요.”

“그건 지금 생각해 낸 변명이고요. 그렇다면 얀의 집은 있지만, 쿠낙의 집은 없다는 거죠?”

도아가 바닥을 가리켰다.

“그럼 이 집은 쿠낙 것으로 해요.”

쿠낙이 샀으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도아는 당연한 이야기를 제법 당당히 했다.

“그럼 제가 그랑에 올 때마다 여기서 묵을게요.”

쿠낙이 열쇠를 도아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럼 반반으로 하죠.”

도아는 열쇠를 받았다. 금색으로 반짝이는 커다란 열쇠였다.

그녀가 열쇠를 쥐고 쿠낙을 본 후에 웃었다.

그리고 이왕 받으니 솔직하게 말했다.

“집을 선물 받은 건 처음이라서 깜짝 놀랐어요. 정말 예쁘고 마음에 들어요.”

바닥도 예쁘고 벽지도 마음에 들고 유리창도 비싼 거죠?

사실 정원 있는 집이 꿈이었어요.

도아는 재잘재잘 말을 잔뜩 늘어놓았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으며 말했다.

“그럼 내 방은 내가 먼저 정해도 되나요?”

“얼마든지요.”

와, 하고 계단을 달려 올라가는 소리가 났다.

“베리, 해왕이도 얼른 와.”

“네, 가요.”

“컹컹.”

명랑한 웃음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쿠낙은 잠시 서서 인기척이 집 안을 채우는 걸 음미했다.

도아는 2층에 올라가 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베리도 신이 나서 그녀와 함께 여기저기 들여다보았다.

“또아 님, 이 방이 댜댱 됴은 거 같아여.(도아 님, 이 방이 가장 좋은 거 같아요.)”

“그래?”

“녜, 웅뎝실도 있거, 침실더 있거, 쩨가 댤수 있는 하인방더 달려 있고. 그리구 뎡언도 잘 보여여.(네, 응접실도 있고, 침실도 있고, 제가 잘 수 있는 하인 방도 딸려 있고. 그리고 정원도 잘 보여요.)”

창문에 붙어서 베리가 밝은 목소리로 빠르게 쏘는 말을 듣고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로 하자.”

“네!”

베리는 제가 짐을 가져오겠다며 나가다가 쿠낙과 마주쳤다.

쿠낙이 방 입구에 서서 배낭을 내밀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침대도 있고, 다 있는걸요.”

필요한 가구는 다 있었다.

침대 위의 나무로 만들어진 천 개에는 우아한 부조가 붙어 있고 여기저기 금칠이 되어 있었다.

시트는 서늘하고 매끄러운, 딱 봐도 300수는 될 듯한 천이었다.

바닥에는 폭신폭신한 카펫도 깔려 있고, 장미목으로 복잡하게 조각된 화려한 화장대도 있었다.

넘치면 넘쳤지, 부족한 건 없었다.

사나흘 묵는 데 딱히 더 필요한 것도 없다.

그때 도아의 마음속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그런데 이렇게 화려한 집이면 부엌도 끝내 주겠지?’

도아는 손이 근질근질했다.

엘리바스의 커다란 부엌이 늘 그리웠다.

풍미 가득한 롤빵을 구워낼 수 있는 오븐이 딸린 커다란 화덕과 널찍한 조리대.

한 번에 여러 요리를 할 수 있도록 화구가 많은 화덕.

부엌에 도착한 도아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새까만 무쇠 화덕이 반짝반짝하게 빛나고 있었고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조리대 옆에는 각종 구릿빛 조리도구들이 걸려 있었다.

그동안의 욕구불만을 해소할 만한 커다란 주방이었다.

통돼지 구이도 가능한 커다란 오븐과 빵을 구울 수 있는 빵 오븐이 따로 놓여 있었다.

‘이건 못 참지.’

도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은 다들 초대해요.”

❖ ❖ ❖

얀은 한 손에 값비싼 포도주를 들고 마차에서 내렸다.

‘쿠낙이 집을 샀단 말이지.’

그랑에 동생이 집을 사다니.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그를 사로잡았다.

거기다가 저녁 식사 초대라.

얀과 쿠낙에게 미래를 준비하는 일들은 금기시되는 이야기였다.

얀은 정원이 딸린 고급저택을 잠시 바라보았다.

불이 켜져 있는 게 정원 나무 사이로 보였지만 정문에 인기척은 없었다.

창살 문도 양쪽으로 활짝 열려 있다.

얀은 정원을 가로질러 가 어색하게 노커를 두들겼다.

문이 열리고 시선을 한참 아래로 내리니 툴레가 그를 맞이해 주었다.

“어떠 오세여, 길두장님.(어서 오세요, 길드장님.)”

“안녕, 베리.”

얀도 마주 인사했다.

“먕떠를 듀시겠어여?(망토를 주시겠어요?)”

발음이 약간 새기는 했지만, 얼마나 연습했는지 제법 매끄러웠다.

열심히 싹싹하게 집사 노릇을 하려 든다.

털 때문에 고양이족에게 옷을 맡기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런 상식을 기대하면 안 되겠지.

얀은 자신이 밝은 옷을 입고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베리에게 짧은 망토를 건네주었다.

“져떡이 웅덥실이에여. 짬시만 기다려 주떼여.(저쪽이 응접실이에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고양이족 특유의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후다닥 사라진다.

망토를 걸러 간 것이리라.

응접실로 걸어 들어간 그는 예상치 못한 사람을 보고 놀랐다.

소파에 앉아 있던 로베른이 손을 들어 보였다.

“길드장도 초대받았나?”

“폐하가 왜……?”

네가 왜 우리 동생네 집에 있어?

그런 물음이었지만, 로베른은 그의 궁금증을 풀어 줄 생각이 별로 없었다.

“오늘 저녁은 B급이 차린다는데, 짐의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군.”

“도아 양이?”

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건가.

얀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쿠낙이 나타났다.

“얀, 어서 와.”

“쿠낙. 집 산 거 축하해. 엄청 갑작스럽긴 했지만. 난 아무런 이야기도 못 듣기는 했지만.”

농담인 듯 진담을 던지자 쿠낙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 집을 산 게 아니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식사 준비가 됐으니까 와. 시간 딱 맞췄네. 그쪽도.”

로베른을 보며 하는 말에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얀은 어리둥절하며 다이닝룸으로 향했다.

커다란 10인용 식탁 위에는 음식이 잔뜩 놓여 있었다.

롤빵이 문자 그대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한쪽에는 잘 구워진 새 요리가 가득 차려져 있었다.

‘새가…… 스무 마리쯤 되는 건가?’

거기에 솥을 통째로 올려놨나 싶은 포도주 고기 찜이 놓여 있고, 그 옆에 바비큐 같은 고기 요리며 몇 가지 요리가 더 놓여 있었다.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엄청나게 맛있는 냄새가 났다.

“다들 자리에 앉으세요.”

격식 따위 없이 앞치마를 벗으며 도아가 나타났다.

얀이 가볍게 그녀에게 인사했고, 도아도 마주 인사했다.

“하인도 하녀도 없으니까, 각자 먹고 싶은 건 각자 알아서 잘 먹읍시다.”

도아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얀도 얼떨떨한 기분으로 자리에 앉았다.

베리가 낑낑거리며 손 씻을 물을 들고 왔다.

손을 씻고 나자, 베리도 자리에 앉았다.

도아가 “먼저 다들 롤빵 어때요?” 하고 빵을 권했기에 롤빵이 하나씩 각자의 접시 위로 돌아갔다.

얀은 스스로 물 잔을 채우고는 롤빵을 살폈다.

완벽하게 구워진 밝은 갈색 표면에서 윤기가 흐른다.

달콤한 버터 냄새가 흘러 넘쳤다.

살짝 손으로 만져보면 아직 따끈따끈하다. 바삭한 표면이 느껴진다.

침이 꼴깍 넘어가 얀은 롤빵을 쪼갰다.

단면은 촘촘하게 결을 따라 부드럽게 찢어지면서 뜨거운 김을 내뿜었다.

한 입, 입 안에 넣자 바삭바삭한 롤빵의 표면과 촉촉하고 풍미 가득한 내부의 맛이 춤추듯 엉켜왔다.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롤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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