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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여행사 : S급 먹방대모험 패키지-31화 (64/100)

⊹ 31화 ⊹

감촉으로 봐서 가죽장갑을 낀 손이니, 쿠낙일 가능성이 높았다.

“쿠낙? 쿠낙이죠?”

도아가 그의 손을 마주 잡아당기며 말했다.

“얼른 여기서 나가야 해요.”

더듬더듬

쿠낙의 손이 그녀를 더듬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도아는 의아해하면서도 가만히 나눴다.

그의 손이 이제 그녀의 얼굴을 만지기 시작했다.

살짝 입술을 눌러 본다.

도아는 카운트를 곁눈질하다가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순간 깨달았다.

‘안 들리는구나.’

게다가 그녀를 더듬어 올라온 걸 보면 보이지도 않는다는 말인데.

도아는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어루만졌다.

버클을 풀어내고 장갑을 던져 버렸다.

맨손을 잡자 그가 움찔했다.

도아는 그의 손바닥에 글자를 썼다.

[도아 O]

길게 쓸 여유가 없었다.

그녀가 이제 탈출하자고 하려는데 그가 그녀의 손을 놓았다.

한순간 느껴진 기척에 도아는 기겁하며 그의 목에 양팔을 둘러 끌어안았다.

“아니, 이 양반이 미쳤나?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

도아가 큰소리로 외쳤다.

쿠낙은 그녀를 풀어내려고 애썼다.

“안 돼! 못 놔!”

장검으로 자해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이렇게 하면 목을 그을 수도 없고, 스스로 꿰뚫을 수도 없다.

그러려면 도아도 함께 베어야 한다.

“아, 힘든 거 아는데, 일단 여기서 벗어나면…….”

말하다가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남은 초가 얼마 안 된다.

그사이에 도망칠 수 있을까?

띠링띠링

마치 그녀의 걱정을 들은 것처럼 알람이 울렸다.

[아주르 나자크의 영향력으로 마검의 공명이 줄어들었습니다.]

카운트 시간이 30초 늘어납니다.

당장 탈주하세요.

금색 글자가 허공에서 비상을 알리듯 번쩍였다.

‘아니, 30초 늘어났어도 탈주하겠냐고. 하수구 안의 길도 모르는데.’

투덜거리다가 갑자기 머릿속이 차분해졌다.

이 어둠 속에서 짙은 커피향이 나는 거 같았다.

라크샤샤의 털에 밴 커피향이다.

―도아야, 누군가가 너에게 뭔가를 부탁하거나 시킬 때는, 왜 그걸 시키는지 잘 봐야 해. 결과는 중요한 게 아냐.

‘왜’가 가장 중요해.

도아는 어쩌지 조세핀도 떠올랐다.

조세핀이, 그러니까.

―쉬워 보이는 쪽으로 도망가지 마.

도아가 손을 뻗어서 쿠낙의 팔에 썼다.

[나 믿죠?]

망설임이 느껴졌다.

그러나 곧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아는 그의 손에서 마검을 잡아당겼다.

꺄아아아아아아!

예전에 들었던, 그러나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비명이 머릿속을 때린다.

도아는 고막이 터진 줄 알았다.

소음은 폭력이다.

진짜 폭력이다.

쿠낙은 순순히 검을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도망친다.

그래, 도망도 좋지.

하지만 상대가 쫓아오면 어쩔 건데?

계속 도망갈 건가?

퀘스트는 퀘스트일 뿐.

가이드 모드는 가이드일 뿐.

도움을 주는 건 좋지만, 가이드대로만 플레이하는 건 아니지.

도아는 씩 웃었다.

‘내 영향력으로 공명이 약해졌다면.’

도아는 마검을 제 이공간 가방 속에 넣었다.

가방 속은 이곳과 완전히 단절된 곳이다.

쿠낙이 컥 하고 숨을 삼키는 게 느껴졌다.

도아는 팔을 풀고 그에게서 훌쩍 물러섰다.

‘이러면 공명을 못 하겠지.’

거리가 가까워야 공명할 수 있는 거라면, 차원을 갈라놓겠다.

‘자, 어쩔 건데?’

마음속으로 아까 그 마검에게 마음속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려 준다.

도아는 눈앞의 어둠을 바라보며 할 수 있는 한 가장 높고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제, 마음껏 폭주해도 좋아요.”

마검과 쿠낙의 연결이 강제로 끊어졌으니, 쿠낙도 무사하지는 못할 터였다.

그렇게 많은 오염을 쌓아 두고도 멀쩡했던 건, 분명 마검이 숙주를 죽이지 않으려고 제어해 줬기 때문이겠지.

그럼 마검은 없다.

오염은 넘친다.

결과는 발산뿐이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다.

한순간 모든 어둠이 빨려 들어갔다.

시야가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도아는 허리춤에 ‘비상용 별조각 랜턴’을 걸었다.

희미한 빛 속에 쿠낙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오염을 전부 흡수했어?’

밖으로 내뱉는 게 아니라?

도아는 예상외의 움직임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 이상을 생각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콰앙―!!

무기가 없으니, 쿠낙은 주먹질을 해 왔다. 팔뚝으로 공격을 막은 도아는 지잉지잉 팔이 울리는 걸 느꼈다.

‘무, 거워―!’

주르륵

발밑의 돌들이 파이며 그녀의 몸이 밀려났다.

다음 순간 더 빠른 공격이 들어왔다.

도아는 비켜내고, 쳐내고, 튕겨냈다.

쾅!

쾅쾅!!

쿠낙의 공격은 어둠에 덮여 있었다.

마치 손발처럼 자유자재로 검은색 오염을 꺼내 쓴다.

바지직

그런데 그때마다 뭔가가 튀었다.

희미한 금색 불똥이 튄다.

‘오염? 단순한 오염인가?’

도아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마검이 가지고 있는 오염과는 좀 다른 거 같았다.

‘아, 근데 짜증 나네?’

“이쪽은 백 년 수련했는데!!”

도아가 그의 목을 노려 발차기를 했다.

발목을 잡혀서 그런 줄 알았기에 잡힌 쪽 무릎을 굽히며 그 속도 그대로 상대의 안면에 무릎치기를 박아 넣었다.

“아오! 쿠낙은 아무리 수련했어도 20년이나 됐을까 말까 할 거 아녀요!”

분명히 안면에 무릎치기를, 그 속도로 날렸는데!

이걸 피해?

“천재 짜증 나!”

물론 폭주하고 있다고 해도, 기본 실력은 그의 것일 거 아닌가?

도아는 억울함을 더해서 주먹을 연신 날렸다.

“아아, 키도 크게 해 달라고 할걸! 길이가 부족해애!”

이쪽과 저쪽의 팔 길이 차이는 너무한 거 같았다.

‘아, 진짜, 재능 넘치네. 부럽네.’

투덜투덜하면서도 도아는 연신 공방을 거듭했다.

‘안 되겠다.’

도아는 한숨을 삼켰다.

‘젊다고 얕봤는데…….’

조세핀이 자꾸만 그녀에게 ‘왜 이게 안 되지?’ 했던 기억이 나서 갑자기 또 울컥했다.

‘부상 없이 제압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겠네.’

도아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도 이쪽은 백 년 경험치가 있거든요? 이건 누구도 쌓을 수 없는 거니까.’

도아는 주머니에서 워터 크리스털과 세계수 진액을 꺼냈다.

‘애송이에게 질 생각이 없어요.’

S급을 애송이라고 부르는 패기로 스스로를 북돋우며 도아는 이를 악물었다.

❖ ❖ ❖

로베른은 짜증이 났다.

그가 이렇게까지 짜증이 나는 건 드문 일이었다.

무슨 일이든 유쾌하게, 비아냥으로 넘길 수 있는 게 그의 미덕 아닌가.

‘마검 크사툴이라.’

그의 망토가 바람에 크게 펄럭였다.

지금 그는 그랑 상공에 떠 있었다.

그의 망토에 새겨진 마법 덕분이었다.

로베른은 기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마검 소유자가 또 나타나다니.’

그 또래의 여성이었다.

까만 머리에 까만 눈동자.

육감적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외모였다.

어딘지 짐승 같은 느낌마저 풍겼다.

두세 번, 검을 부딪쳤을 때 그 느낌.

쿠낙과는 완전히 달랐다.

‘내가 상대하는 게 사람인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굉장히 흥미로워졌다.

그런데 그녀는 몇 번 그를 상대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사라졌어. 마검 공명이 끊어졌어. 제길. 죽였나?”

그 순간 로베른은 어쩐지 웃음이 흘러나왔다.

크사툴은 비웃는 얼굴을 했다.

“왜? 마검이 죽었다니까 기뻐?”

“아니, 재미있는 일이 생겼네 싶어서. 여기에 B급이 없는 걸 보면 알 수 있거든.”

“B급?”

“그래.”

남이 모르는 정보로 남을 약 올리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로베른은 B급이 어떻게든 이 일을 수습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그 인생에 있어서 매우 드문, 믿음이었다.

‘불쾌할 정도로 말이야.’

믿음을 줄 생각이 없는데, B급은 쉽게 그걸 얻어갔다.

크사툴은 고개를 흔들었다.

“B급이 뭐든, 내 일은 끝났군.”

로베른은 검을 고쳐 쥐었다.

마나관에서 마나가 회전하는 속력을 높인다. 마나 코어가 빠른 속도로 출력을 높인다.

마나가 빠르게 회전하며 특유의 마나음을 만들어냈다.

땅, 땅, 땅, 따닥

마치 누가 그의 달궈진 그의 검을 두들기는 것처럼 불꽃이 튄다.

“짐이 널 그냥 보내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 말에 크사툴이 웃었다.

“황제 로베른, 즐거웠어.”

그리고 마검을 휘둘렀다.

마치 공간이 찢어지듯이 검은 틈이 생겼고, 크사툴은 페가수스를 타고 그 틈으로 사라졌다.

로베른이 틈 사이로 불꽃을 때려 넣었지만, 그의 검보다 틈이 닫히는 순간이 더 빨랐다.

로베른은 제 애검을 바라보았다.

틈새가 닫히면서 꽂아 넣은 검이 반토막 났다.

‘불쾌해.’

정체불명의 뭔가가 그랑을 휘젓고 갔다는 것도, 그가 그에 대해서 전혀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것도 전부.

로베른은 근처 종탑 위에 내려앉았다.

바로 내려가 봐야 사람을 사이에 둘러싸일 테지.

하지만 지금은 생각을 좀 정리하고 싶었다.

‘B급이 나타나고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게 우연일까?’

아주르 나자크

신록의 눈.

숲에 들어간 사람의 반응은 다양하다.

놀라고, 경탄하고, 두려워하고,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경외한다.

그 초록색 눈 밑에 무엇이 있을까?

그는 궁금했다.

숲을 전부 불태워 버려서라도 알고 싶은, 그런 호기심이다.

우르릉

발밑이 울리기 시작했다.

땅속 깊은 곳이 울린다.

‘이런.’

로베른은 혀를 찼다.

아무래도 지하에서 일을 내고 있는 모양이다.

‘하수구를 걷는 건 취향이 아닌데.’

굳이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로베른은 차나 한잔하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 ❖ ❖

얀은 엄청나게 바빴다.

길드장과 시장, 평의회가 모인 회의도 열렸다.

하지만 다들 정보 부족으로 허둥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간신히 적당히 사람들을 추스를 내용을 만들어서 기사로 내보내기로 했다.

쿠낙을 그랑이 들어오지 못하게 추방해야 한다는 말이 평의회에서 터져 나왔다.

얀은 그게 모험가 도시에서 할 소리냐며 거절했다.

모든 동료를 사랑할 것.

하진 님은 그렇게 도시를 세웠다.

그 말에 ‘그게 동료인지 알게 뭐냐.’ 하는 답이 돌아왔다.

뭐라도 보고를 해야 할 로베른이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뒷목을 잡았고.

일이 끝났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경비가 강화되어 도시를 돌기는 했지만, 딱히 다른 움직임을 취하지는 않았다.

‘쿠낙…….’

제 동생은 어딜 간 건지.

얀은 걱정으로 속이 타들어 갔다.

‘죽은 건가? 정말로?’

폭주하느니 그 길을 선택할 거라는 걸 알지만.

얀은 피곤해졌다.

그때 문이 열려 그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

로베른이 웃었다.

“고민이 깊어 보이는군. 짐이 들어줄까?”

“그쪽이 더해 준 고민이라는 생각은 안 듭니까?”

“그다지?”

로베른이 그렇게 말하며 소파 가운데에 자리 잡고 앉았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이신지?”

“아니, 온다면 여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얀이 그 말에 퍼득 로베른을 바라보았다.

로베른이 제 잘 다듬어진 손톱을 한번 들여다보며 말했다.

“안 그런가? 마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창문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녹듯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쿠……!”

기쁨에 소리치려던 걸 얀은 간신히 눌러 참았다.

쿠낙의 품 안에 창백한 얼굴의 소녀가 안겨 있었다.

로베른이 물었다.

“죽였나?”

“…… 살아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쉬어서 허스키했다.

“죽이려고 시도했나?”

로베른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어느 쪽이 어느 쪽을요?”

쿠낙이 그렇게 되물으며 빛가로 다가와 도아를 소파에 내려놓았다.

로베른은 그 말에 "흠." 하고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군. ‘어느 쪽이 어느 쪽을’이라. 어느 쪽이 더 흥미로울까?”

얀이 다가와 속삭이듯 물었다.

“몸은 괜찮아? 왜 이렇게 흠뻑 젖었어? 도아 양도 그렇고. 게다가 음…….”

이런 상황에서 내뱉을 말이 아닌데, 향기가 엄청나게 좋았다.

달콤한 꽃과 꿀, 숲의 향이 났다.

향수를 뒤집어쓴 것도 아닐 테고, 향수는 그냥 독한 냄새만 나겠지.

쿠낙이 젖은 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말하자면 길어.”

“그 긴 이야기가 궁금한데.”

“아마 저보다 도아 양이 더 자세히 알 겁니다.”

“그런데 마검, 마검은 어디에 뒀나?”

로베른이 갸웃했다.

그 말에 얀도 놀라 그의 허리춤을 바라보았다.

그는 검대만 달랑 매고 있을 뿐, 검은 보이지 않았다.

쿠낙이 말했다.

“도아 양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에 둘의 시선이 동시에 도아를 향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 커다란 검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그 검을 도아가 가지고 있었다면 바로 알았을 터였다.

“쿠낙, 너―”

얀이 그의 팔을 잡자 쿠낙이 신음을 흘렸다.

얀이 놀라 손을 뗐다.

“다쳤어?”

“조금.”

쿠낙의 말에 얀은 놀랐다. S급인 그가 다쳐서 돌아오다니?

얀이 그를 보았다가 도아를 바라보았다.

로베른이 하하 웃고 말했다.

“B급에게 두들겨 맞았군, 마검.”

‘B급에게? S급이?’

얀이 놀라 이리저리 시선을 헤매는데 도아가 “끙.” 하는 소리를 냈다.

잠시 후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도아 양, 괜찮으신가요?”

도아가 멍하니 얀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몸을 일으켰다.

“아우…….”

그녀가 신음을 흘리고 몇 번 기침을 했다.

‘아, 팔뼈 부러졌나 봐.’

통증에 이가 악물렸다.

아무리 단단해도 S급과 주먹질을 주고받았으니 당연한가 싶었다.

여기저기 조금씩 조심스럽게 움직여 보던 도아가 쿠낙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가 히죽 웃었다.

“안녕, 쿠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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