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네? 네.”
“헉, 도아 님이래!”
“와, 쩐다!!”
“진짜 도아 님? 그 도아 님?”
꺅꺅거리는 ‘애들’을 바라보며 쿠낙은 이마를 짚고 싶은 기분이 되었으나 참았다.
그는 S급 모험가로서 어쨌든 의무를 다했다.
“그 마을에 생긴 일은 여러분이 감당할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푯말 의뢰를 끝내시고 길드로 돌아가는 게 맞는 거 같군요.”
완곡한 거절에 리더인 킨즈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쿠낙은 눈인사를 하고는 재빠르게 돌아섰다.
바로 확인해야 할 것이 생겼다.
쿠낙은 그가 왔던 길을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도아의 조명탄이 터진 장소라면 그 역시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길이 이상했다.
“제길.”
쿠낙은 혀를 찼다.
그녀가 체크해 둔 지점이 나오지 않았다. 그가 길을 틀렸을 리도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나 빙빙 돌아도 없다.
그는 눈을 찌푸렸다.
이런 현상이라면 몇 번이나 겪어본 적 있었다.
‘던전이라면.’
자연형 던전이 이런 식이다.
던전 입구를 넘어서면 숲이 펼쳐진다.
숲, 강, 호수, 계곡― 어쨌든 자연경관이 펼쳐지는 던전이다.
그곳에서는 이렇게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도는 일도 생기기는 했다.
‘하지만 여긴 던전이 아니잖아.’
쿠낙은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만약 원리가 같다면 같은 방식으로 상대해 주면 되지.’
쾅!!
숲 한가운데서 폭발이 일어났다.
나무를 부수고, 바위를 뽑아내고, 가도를 뭉그러뜨린다.
단순한 방식이지만 던전 안에서는 효과적이었다.
‘여기서도 효과가 있기를 바랄 수밖에.’
쿠낙은 그러며 나무를 하나 더 부러트렸다.
❖ ❖ ❖
아침을 든든히 먹고 도아는 포치에서 커피 한 대를 피웠다.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풀려 있었지만, 안개가 지독하게 짙었다.
시야가 너무 안 좋고, 해가 가려져서 어두웠다.
밤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낮인 것도 아니었다.
‘등불을 켜도 서로 안 보이겠어.’
카페인이 머릿속을 휙휙 돌아가게 만들고 있었다.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기는 해야 할 거 같은데.’
탈출한 사람이 있다면 어딘가 탈출구가 있다는 말이었다.
프란츠의 말에 따르면 한쪽 방향으로 계속 달려도 다시 마을 광장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마을 광장에 뭔가가 있나? 게다가 오염이 나타났다니…….’
뭔가가 이상했다.
‘으음.’
도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퀘스트 창을 열어보았다.
갇힌 마을
근처 마을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마을에 갇혀있는 ‘레’ 일행 중에 일부가 간신히 탈출했지만, 탈진 직전!
먼저 탈출자들을 찾고, 마을에 갇혀 있는 ‘레’일행을 구해내자.
보상
▸ 800 세계수 포인트
’레’ 일행을 찾아서 무사히 보호했다!
이제 아주르 나자크로서 공간을 왜곡시키는 물건을 찾아보자. 어쩌면 마을의 중심점에……?
‘아니, 언제 업데이트된 거야?’
도아는 어이가 없어졌다. 하지만 내용을 살피니 어느 정도 힌트가 주어져서 다행이었다.
‘공간을 왜곡시키는 물건?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게 마을에 있다는 건가? 중심점이면 역시 광장일까.’
도아는 퀘스트 창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마을을 한번 살펴봐야겠어요.”
“돕겠습니다.”
“혼자서 다니는 게 더 편할 거 같은데요.”
프란츠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적의 수라도 더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도아는 곰곰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원군이 있으면 편하긴 편했다. 게다가 마을 광장을 아주르 나자크로서 살펴보라고 했는데, 살펴볼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 ❖ ❖
도아의 검이 번득였다.
“캬악―!”
달려드는 고블린의 머리가 한 번에 날아갔다.
“하, 진짜.”
도아는 투덜거렸다.
마을 광장으로 가까이 갈수록 마물이 많아진다고 생각했는데, 광장에 가까워지니 무슨 고블린 밭이었다.
시야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 기척으로만 마물을 판별해야 할 지경이다.
화살이 떨어져서 주술사를 저격할 수도 없었다.
허리춤에 있는 비도는 전부 끌어 썼다.
‘보통 던전도 하룻밤 안에 마물수가 복구되지는 않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초록색의 파도―고블린 사이에서 도아의 움직임은 매끄럽고 지극히 효율적이었다.
극도로 단련된 정육업자처럼 그녀의 검은 정확하게 급소만 파고들었고, 뼈와 근육 사이만 갈라냈다.
마치 고블린이 스스로 뛰어들어서 그녀의 검에 차례차례로 잘려 나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검이 우아한 곡선의 궤적을 그린다.
그녀의 허리에 차고 있는 별조각 랜턴도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좌우로 흔들렸다.
그녀에 비하면 늑대족의 움직임은 난폭했다.
프란츠가 광장의 고블린을 유인해내고, 그다음 광장에 도아가 진입하기로 했었다.
프란츠는 괜찮다는 도아에게 엔과 니알을 붙여 주었다.
니알은 흰털이 아름다운 흰색 늑대였고, 엔은 그녀보다 덩치가 훨씬 커다란 늑대였다.
키가 적어도 2미터쯤은 되어 보였다.
사실 여자인 니알도 도아보다 훨씬 키가 컸다.
‘부러워라.’
도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블린을 쓰러트렸다.
두 늑대는 효율보다는 힘을 중시했다.
덩치가 큰 엔은 커다란 망치를 휘둘렀고, 니알은 대검을 쓰고 있었다.
둘 다 무게가 나가는 무기고 한번 휘두르면 타격이 크지만, 다음 동작까지 타이밍이 빈다.
그때마다 달려드는 고블린을 어디서 나타났는지 도아가 나타나서 베어 넘기며 스치듯 지나갔다.
덕분에 두 늑대족이 무자비하게 싸우는 모습이 더욱 부각되어 보였다.
‘뭐, 그런 무거운 무기를 쓰는 것치고는 타이밍이 짧게 비지만.’
초록색 피가 지면을 흠뻑 적신다.
도아는 초록빛으로 찰박거리는 지면을 밟고 서서 니알과 엔을 돌아보았다.
“대충 광장은 정리된 거 같죠? 프란츠가 유인을 잘해 줬네요. 얼른 살펴보고 합류하죠.”
니알이 도아를 멍하니 바라보고 말했다.
“도아 님, 정말로 B급이세요?”
“뭔가, 엄청 쉽게 싸워 이긴 거 같은 기분이 드는데?”
엔 역시 머리를 긁적였다.
도아가 고쳐주기는 했지만, 둘 모두 회복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니 어느 정도 몸이 둔해지는 것도, 적에게 당할 것도 각오했다.
그런데 너무 쉽게 이겼다.
늑대는 무리 지어 사냥하는 종족이고 그래서 협업의 위대함을 잘 알았다.
한번 손발도 맞춰 보지 않은 도아가 자신들의 수준에 알아서 맞춘다는 게…….
‘굉장해…….’
니알은 감탄했다.
그녀가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마치 그 동작의 궤적을 본 것처럼 도아가 들어왔다.
게다가 적당하게 도아가 적을 분배했다.
검을 휘둘러 니알이나 엔 쪽으로 고블린을 적당히 배분하고 자신이 처리할 건 처리했다.
덕분에 효율이 최소한 두 배는 올랐다. 만약 어쭙잖은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내가 이렇게나 훌륭한 실력을 가졌나? 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도아가 피식 웃었다.
“평범한 B급입니다. 그보다 어디서 고블린이 들어왔을까요. 아니, 이걸 들어왔다고 해야 하나…….”
도아가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화르륵
화르륵
그때 마치 거대한 횃불을 피운 것처럼 커다란 불덩이가 허공에 떠올랐다.
“까르르륵.”
“아하하하.”
남자도 여자도 아닌 웃음소리가 밤하늘을 채운다.
“아, 세상에.”
도아는 중얼거렸다.
“파이어 엘리멘탈.”
그것도 한둘이 아니었다. 숲 하나쯤은 가뿐히 잿더미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아가 둘에게 물었다.
“내화성 방어구 가지고 있어요?”
“아뇨, 없습니다.”
니알이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그럼 두 사람 다 물러나요. 프란츠에게 돌아가요. 이 녀석은 제가 처리할게요.”
“혼자 괜찮으시겠습니까?”
엔이 걸걸한 목소리로 물어 와서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파이어 엘리멘탈의 열기에 주변의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가요.”
도아의 명령에 귀가 쫑긋하고 섰다.
“무운을.”
둘은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등을 돌려 달아났다.
명령에 의문 없이 따르며 효율적 움직임을 보이는 게 늑대족 답다.
두 사람이 훌쩍 멀어졌다.
도아는 주머니에서 새 망토를 꺼내서 둘렀다.
“좋아, 그럼.”
우후후, 키득키득키득.
작은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도아의 검이 바닥의 포석을 보란 듯이 긁었다.
순간 불꽃이 튄다.
“와라.”
도아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파이어 엘리멘탈이 사방을 향해서 화염방사기처럼 불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끼를 덮은 지붕들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그러면 안 되, 지!”
도아가 점프하여 파이어 엘리멘탈을 향해서 검을 날렸다.
“꺄아아악!!”
비명을 지르더니 순식간에 불티가 수그러들었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붉은색 크리스털을 도아가 날렵하게 잡았다.
“어라? 왜 이렇게 약해?”
도아는 칼날을 바라보았다.
그을린 흔적도 없는 세계수의 축복을 받은 검이 희미하게 반짝반짝 빛난다.
“검이 너무 좋은가.”
도아가 중얼거리고는 검을 고쳐 잡았다.
화르륵
불덩어리들이 도아를 주목했다.
“좋아, 한 마리씩, 어라?”
불덩이들은 도아와 어느 정도 간격을 벌리고 멈춰 서더니 자기들끼리 합쳐지기 시작했다.
“어어어―?”
불꽃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숲이 아니라 성벽 도시의 돌벽도 녹여 버릴 거 같았다.
‘늑대들 보내서 다행이다.’
이건 쇠로 된 갑옷을 입고 있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불 가까이 가면 그냥 쇳물이 되어 녹아 버릴 거 같았다.
불꽃이 이제 푸른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치지직
도아의 망토가 견디지 못하고 끝부터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불꽃이 만들어내는 상승기류에 그녀의 망토와 머리카락이 크게 펄럭거렸다.
땅이 지글지글 끓어오른다.
광장의 안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파.’
가까이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이대로 놔두면 물집이 잡힐 거 같았다.
게다가 숨을 잘 쉬지도 못하겠다. 숨을 들이마시면 불을 마시게 될 게 뻔했다.
폐가 망가질 거다.
호흡마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싸움이다.
‘내화성 망토를 입고 있는데도 이 정도라니.’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이런 데서 나오기에는 지나치게 강한 놈들 아냐?
도아는 투덜거렸다.
“통각 오프."
아무래도 각오해야 할 거 같았다.
“좋아, 도아야. 죽지 말고, 팔 하나 정도만……. 완전히 재가 되진 않게 조심해서, 가자. 롱 소드 모드.”
어지간한 적이라면 원거리에서 사슬낫으로 저격했을 거다.
하지만 도아에게는 그렇게 사슬낫을 잘 다룰 재주가 없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사슬낫을 쓰기 어려워진다.
확실하게 검으로 처리하는 게 최선이었다.
다행인 점은 불꽃 사이로 핵이 정확하게 보인다는 거였다.
활활 타오르는 푸른 불꽃 가운데로 거무스름한 핵이 보였다.
‘좋아.’
푸른색 불꽃이 쏘아진다.
아무래도 덩치가 커져서 그런지 아까보다 느렸다.
도아는 지그재그로 달리며 불꽃을 피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과만 한 동그란 불꽃들을 주변으로 빠르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뭔 탄막 게임도 아니고.’
칙,
지직
불꽃에 스친 망토가 순식간에 너덜거리기 시작했다.
망토가 완전히 끝장나기 전에 승부를 봐야 했다.
머리카락이 오그라들었는지 단백질 타는 냄새가 났다.
도아는 순간 망토 줄을 잡아당기며 망토를 불꽃에 던졌다.
한순간 불꽃이 죽는다.
아주 짧은 사이었다.
그 틈에 도아는 모든 마나를 팔과 검에 둘렀다.
이어 핵을 찌른다.
찌른 순간 불꽃이 크게 타올랐다.
두른 마나를 뚫고 팔이 타올랐다.
후각에 지독한 냄새가 느껴졌다.
‘내 팔 타는 냄새라니.’
불꽃이 너무 뜨거워서 눈을 감았다.
속눈썹이 바지직 말려 올라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순간에 모든 게 깜깜해졌다.
기절했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환한 불꽃이 사라지자 모든 게 어둡게 느껴졌다.
“으으…….”
도아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검을 잡은 오른손은 차마 못 보겠다. 보기만 해도 아플 거 같았다.
그래도 힐끗 확인을 해 보니.
“으아아아아.”
보기만 해도 아프다. 그래도 제대로 팔은 붙어 있었다.
마나가 제대로 일한 것 같았다.
숯 덩어리가 되지도 않고, 재가 되어 사라지지도 않았다.
보기에는 엄청 끔찍하지만 그대로 전부 다 붙어 있었다.
‘이 정도면 포션으로 어떻게든 되겠다. 눈도 지금 뿌연 게 얼굴도 탄 거 같은데…….’
조세핀이 봤다면 잘했다고 웃을까? 아니면 이 미친 것아, 하고 소리칠까.
어느 쪽이건 잘 끝나서 다행이었다.
도아는 안도하며 왼손으로 주머니에 걸린 고형 포션을 꺼냈다.
‘회복통 미쳤겠는데?’
이 정도면 마나관이 심각한 손상을 입었을 터였다.
마나관이 회복되며 생기는 통증이 어마어마할 듯하다.
그때 비명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도아 양!!”
“헉.”
도아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