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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여행사 : S급 먹방대모험 패키지-44화 (72/100)

⊹ 44화 ⊹

“진짜 김도아다!”

“와, 저 악수 한 번 해 주시면 안 되나요?”

“제 아주르 나자크에 축복 한 번 부탁드려요!”

그때 나선 것도 베리였다.

“됴아 님은 아쁘세여! 다들 가여!(도아 님은 아프세요! 다들 가요!)”

손에 약초를 빻기 위한 방망이를 들고 베리가 까치발을 하며 위협했다.

무척이나 무해해 보이는 모습에 모험가들은 웃음을 참으며 뒤로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흥분해서.”

“나중에 봬요!”

꾸벅꾸벅 인사하고 마을회관을 빠져나간다.

베리가 팔짱을 끼고 흥 콧김을 내뿜었다.

“버는 눈은 이떠서.(보는 눈은 있어서.)”

도아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나흘이 지나자 도아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시력이 떨어져서 일반인 정도의 시력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시적인 것이니 곧 돌아오리라.

도아의 말에 쿠낙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아는 천천히 몸을 늘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아주 조금씩 가동범위를 늘려야 할 듯했다.

“그나저나 차원의 균열이라니…….”

왜 던전이 되지 않고 이렇게 어중간한 모습이 되었을까.

도아는 가벼운 스트레칭을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베리가 얼른 약초 차를 가져다주었다.

“고마워, 베리.”

천천히 차를 마시는데 로베른이 회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전히 변복 차림이라서 신기하다.

“B급, 몸은 어떤가?”

도아는 고개를 갸웃하고 답했다.

“거의 회복됐어.”

“그렇군. 그럼 잠깐 걷지 않겠나?”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끙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쿠낙이 도와줬다.

“고마워요, 쿠낙.”

“아닙니다.”

그의 손이 걱정스럽게 도아의 이마를 눌렀다.

“열은 이제 떨어졌네요.”

엄지손가락으로 안와를 쓸어내린다.

눈꺼풀 부분을 적당한 힘으로 누르자 기분 좋았다.

쿠낙이 가만히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말했다.

“색이 거의 돌아왔군요.”

도아는 그 말에 깜짝 놀라 물었다.

“색이 이상했어요?”

로베른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몰랐나?”

“전혀?!”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스스로 눈은 볼 수 없잖아.”

도아는 당황해 제 눈을 거칠게 비볐다. 그걸 쿠낙이 붙들어서 막았다.

“힘껏 문지르면 좋지 않습니다.”

도아가 휙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 색이 변했어요?”

“옅은 파스텔 톤으로 변했었습니다.”

“정말요?”

“네.”

쿠낙이 걱정스럽게 도아의 눈을 바라보았다. 도아가 눈을 크게 떠 보였다.

“지금은요?”

“원래대로 거의 돌아왔습니다.”

도아는 ‘휴.’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에요. 사실―”

도아는 자신이 아주르 나자크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했다.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굳이 숨길 이유도 없는 능력이었다.

앞으로 자주 써먹게 될 테고, 전투 방식에도 영향을 줄 터였다.

두 남자는 도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그 이전까지는 사실 몰랐거든요. 그런데 그때 그 오염이랑 싸우다가 방법을 알게 된 거예요.”

도아가 그러며 눈을 꾹꾹 눌렀다.

“그런데 쓰니까 눈이 너무 뜨겁고 아파오더라고요. 아무래도 무리하면 안 되겠어요.”

“눈 색이 연해진 것도 그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런 거 같지?”

도아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스스로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되니 좋네. 그럼 걸을까?”

로베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회관을 나와 마을 바깥으로 걸었다.

“엄청 빠르게 정리되는 거 같은 걸.”

“돈으로 인부를 샀으니까.”

“근처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온 건가?”

“그래.”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둘은 마을 외곽으로 빠져나왔다.

도아는 그가 은밀히 할 이야기가 있나,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마을 밖 가도로 오자 도아는 입을 떡 벌렸다.

“여기 왜 이래? 마수 떼라도 나타났나?”

강력한 힘으로 여기저기를 다 부수어 놓은 모양새였다.

아름드리나무가 꺾여 있고, 종종 일부는 뿌리째 넘어져 있었다.

바닥에는 뻥뻥 구멍이 파여 있다.

도아가 상황을 보고 당황하는데 로베른이 그녀의 발을 걸었다.

‘어?’

휘청 하면서도 균형을 잡으려 하는데 이어서 그가 그녀의 뒷덜미를 잡더니 그대로 그녀를 바닥에 처박았다.

“?!”

방심하고 있던 도아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일어나려는 도아의 등을 로베른이 무릎으로 눌렀다.

목과 등을 꽉 눌려서 도아는 바닥에 머리를 대고 엎드린 모양이 되었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일단 황당함이 더 컸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머리 위에서 로베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그럼. 이야기를 좀 나눠 볼까, 김도아.”

도아는 눈을 찡그렸다.

아프지는 않았다.

마나로 단련하면 살 거죽도 단단해진다고 이야기했던가?

로베른이 정말로 제법 강하게, 그러니까 땅에 도아의 얼굴이 파묻힐 정도로 눌렀다면 물론 아팠겠지.

하지만 그는 힘 조절을 했다.

그래서 아프다기보다는 역시 황당함이 더 컸다.

그녀가 물었다.

“하나 물어봐도 돼?”

“질문은 내가 하지.”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덜 회복되었을 때를 노렸어?”

“적당히 회복되었을 때를 노렸다고 해 주지 않겠나?”

“거참, 신사적이시네.”

도아가 바닥에 엎드려 투덜거렸다.

로베른은 그걸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부터 이미 노발대발하며 펄쩍 뛰어야 할 텐데 그녀는 이상하게 태평했다.

‘쯧.’

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일부러 화나게 자극해서 동요를 일으키려고 했는데.

그에게 꽉 붙잡혀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나불거리는 모습에 저절로 손에 힘이 빠지려는 걸 참았다.

“질문은 좋은데 꼭 이렇게 해야 해?”

“그대가 적인지 아닌지 판별하기 어려워서 말이야.”

도아가 눈을 굴렸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수상쩍기는 하거든. 하지만 수상쩍다고 꼭 적인 건 아니잖아.”

“남대륙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건너왔지?”

“우산 타고 날아서.”

도아가 투덜거렸다.

여기가 지구였다면 ‘네가 메리 포핀스냐’라고 했겠지만 여기는 렌시아다.

“그런 아이템도 가지고 있나?”

흥미진진함이 가득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몰라.”

도아는 뚱하니 대답했다.

목덜미를 잡는 손에 힘이 더해진다.

도아는 그가 그녀의 목을 쉽게 뚝 분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 근데 그게 뭐?’

도아는 배짱을 부렸다.

죽으면 세계수 여행사에서 회수하겠지. 아니면 여행사에서 다시 돌려보내 줄 수도 있었다.

퀘스트가 완료될 때까지는 죽지도 못합니다, 라든가.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도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어기이, 폐하. 그냥 얼굴 마주보고 이야기하면 안 돼? 나 도망가지 않아. 비추는 샘 공략이 내 여행의 목표고. 그냥 그것뿐이야.”

침묵, 침묵.

침묵 끝에 로베른이 손에서 힘을 뺐다. 도아는 슬그머니, 천천히 양손을 들고 바닥에서 빙글 돌아누웠다.

올려다보니 로베른은 뭔가 짜증난다는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짜증 내야 하는 건 내 쪽이거든?”

“그렇게 무방비하게 누워 있는 걸 보니 어지럽군."

“난폭하기는.”

“이 정도가 난폭하다고 할 정도로 B급이 약하지는 않지.”

도아는 로베른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미친 인간이라고만 생각했고, 흥미 위주로 산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나름대로 그는 S급으로서 여러 요소를 감지하고 있었다.

도아가 이 세계에 위험 요소인지 판별하는 걸 포함해서.

‘왜 S급에 인성이 중요한 평가 항목인지 알 거 같군.’

스스로 황제라고 칭하는 남자는, 황제가 될 만한 재목이긴 한 것이다.

로베른이 손을 내밀어서 도아는 순순히 그 손을 잡았다.

그가 혀를 차면서도 도아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휙 몸이 가볍게 딸려 올라간다.

그가 물었다.

“그래서, 남대륙에서 온 건 사실인가?”

“남대륙보다 더 멀리서 왔어.”

“비추는 샘은 왜 공략하려는 거지?”

“그게 여행 목적이니까.”

“이유는?”

“내 목숨이 달려 있다고 해 둘게.”

“그럼 공략이 끝나면 어떻게 할 거지?”

“고향으로 돌아가겠지.”

도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깔끔하게 돌아가서 다시는 렌시아에 발을 딛지 않을 거야. 그 점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도아가 강조하며 말하자 로베른은 점점 더 짜증 난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 뒤처리는?”

그 물음에 도아가 ‘어…….’ 하고 말을 골랐다.

사실 그녀도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뒤처리를 할 시간이 주어질지도 모르고, 아닐 수도 있다.

공략 완료하는 순간 빛과 함께 뿅 하고 여행사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은가?

“장담을 못 하겠네. 가능하면 뒤처리까지 하고 싶습니다. 네에.”

도아가 머뭇거리며 말하자 로베른은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짐은 B급이 여기 온 것과 지금 일어나는 이 소동들이 무관하다는 생각이 안 드네만.”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도아는 말을 멈췄다.

그녀가 로베른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날 여기로 보내준 사람이 있거든. 말 그대로 우산 타고 날아올 수는 없어서 말이야.”

도아는 메이 과장을 뭐라고 표현할까, 고민했다. 여행사 직원이라고 할 수는 없잖은가?

“우리 쪽에서는, 음. 연결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어.”

이쪽과 저쪽을 연결해 주니 연결자라고 하자.

“연결자?”

“응, 사람과 사람을, 세상과 세상을, 그리고.”

도아는 세계수를 떠올렸다.

이세계에서는 신이라고 해도 되겠지.

“신과 인간을.”

도아의 말에 로베른의 눈이 가늘어졌다.

“신관 같은 존재인가? 그래서?”

“그 연결자에게 부탁받은 거야. 나는 그래서 그 일만 해결하려고 왔지만, 연결자가 뭘 봤는지는 모르니까.”

도아가 손바닥을 휙 뒤집어 보였다.

“이 모든 일들이 연관되어 있는지, 아닌지 나는 모르지.”

“그렇군.”

로베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여기까지 해 두지.”

“망극합니다, 폐하.”

“불경하긴.”

“로베른은 꼭 내가 폐하에게 하듯 말해 주면 그러더라.”

“불경하니까.”

로베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도아가 픽 웃었다.

“뭐, 불경하긴 하지.”

그녀가 로베른에게 말했다.

“가서 쿠낙 좀 불러 줄래? 그걸로 내 얼굴을 바닥에 처박은 건 봐줄게.”

“얼굴에 상처 하나 안 났으면서. 마검은 왜?”

“솜털 몇 개 빠졌거든? 폐하에게 한 이야기를 쿠낙에게도 해야지.”

“같이 들어도 되나?”

“한 얘기 또 하는 건데?”

“짐에게는 묘한 확신이 있거든.”

“무슨 확신?”

“B급이 마검에게 상냥하고 다정하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 줄 거 같다는 확신.”

“왜 그런 생각을?”

“그대는 불경하니까.”

로베른은 그렇게 대꾸하고는 휙 사라졌다가 잠시 후 쿠낙과 함께 돌아왔다.

도아는 그사이 머릿속 이야기를 정리했다.

덕분에 쿠낙에게는 좀 더 매끄럽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었고, 보란 듯 로베른이 옆에서 코웃음을 쳤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쿠낙은 표정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질문도 없었다.

그저 브리핑을 받는 사람처럼 가만히 도아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오히려 도아 쪽이 당황해 작게 손을 들고 물었다.

“질문할 거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쿠낙이 딱 자르듯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너무 잘랐다는 걸 깨달은 듯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도아 양은 어쨌든 저에게 도아 양이니까요.”

도아는 그 말에 가만히 쿠낙을 바라보았다.

‘이걸 믿음이라고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일단 꾸벅 인사했다.

“믿어 줘서 고마워요.”

쿠낙이라고 바보는 아니고, 분명 로베른과 같은 의혹을 느꼈을 터였다.

‘그런데 전혀 상관없다, 라는 태도인가? 만약 내가 악당이에요. 했으면 어떻게 했을지가 궁금한걸.’

호기심은 일단 접어 두고 도아는 뺨을 긁적였다.

“그럼 슬슬 여기를 뜨죠.”

❖ ❖ ❖

“말도 안 돼요!”

레―소소가 빽 소리를 질렀다.

“아직 아무런 접대도 못 해 드렸는데, 이렇게 가시다뇨.”

“에이, 접대는 무슨 접대요. 다들 피해가 심각하잖아요.”

“그러니까 더욱 축제가 필요한 거예요.”

레―소소가 끙끙거리며 양 관자놀이를 양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깊이 생각 중입니다, 하는 귀여운 제스쳐다. 그러다 번득 고개를 들었다.

“오늘 저녁이요.”

“오늘 저녁이요?”

“추모식을 하고서 도아 님 송별회를 할게요. 빠르게 준비할게요. 그럼 있어 주시는 거지요?”

레―소소의 말에 도아는 뺄 곳이 없어졌다. 여기서 가겠다고 하면 너무 그렇지 않겠는가?

“알겠어요.”

“감사해요.”

레―소소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그녀가 종종걸음으로 프란츠에게 다가가는 게 보였다.

프란츠가 레―소소의 이야기를 듣더니 고개를 들어 도아를 바라보았다.

도아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늑대는 희미하게 웃고 다시 레―소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적당히 알아서 하겠지.’

도아는 하루 더 머물게 되었다는 말을 전하러 회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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