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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여행사 : S급 먹방대모험 패키지-50화 (78/100)

⊹ 50화 ⊹

그래도 깨작깨작 곁들인 채소를 입 안에 꾹꾹 넣는 걸 보면 무척 착하다.

부풀어 올랐던 털이 얌전히 가라앉았다.

‘나중에 동그랑땡 같은 거 만들어야겠다. 채소를 잔뜩 다져 넣어야지.’

슬쩍 보니 댄버스 부인 앞에 놓인 음식도 아주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요정이니 혹시 식사를 하지 않거나, 육식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선이 줄어드는 걸 보니 괜찮은 모양이다.

“컹컹”

“해왕이는 벌써 다 먹었어? 그래, 더 줄게.”

넷이 함께하는 식사 시간은 즐거웠다.

식사 후의 정리도 다 같이 하니 금방 끝났다.

밤의 계곡 가에서 도아가 베리에게 손짓했다.

“저것 봐봐. 계곡 밑이 반짝반짝하지?”

작은 사금 알갱이들이 스스로 빛나는 것처럼 희미한 빛이 반짝거렸다.

베리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네, 예뻐여…….”

“저게 달빛조각이야. 낮에는 잘 모르니까, 밤에 건져내야 하지. 내일 밤에 같이 할까?”

오늘은 피곤하니 일찍 자자. 하고 도아가 베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베리는 도아를 올려다보았다.

그동안 자기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해서 이렇게 벌충하듯이 함께 해 주는 게 너무 좋았다.

너무 좋고, 너무 행복해서.

“흑, 으흑, 끅―”

“베리?”

놀라 도아가 베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왜 그러니?”

추궁하는 게 아니라, 다정한 목소리였다. 걱정이 듬뿍 담겨 있는 목소리다.

그러자 더욱더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낑, 응, 으아아앙.”

참으려다가 결국 크게 울음을 터트리자 도아가 그를 끌어안았다.

“무슨 일이야? 응? 무슨 일일까. 어디 아파?”

베리는 고개를 흔들고 도아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도아가 그를 안아 들고 등과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우리 베리 속상하구나, 왜 이렇게 속상하지?”

데이지가 생각나서요.

어디서 데이지는 고생하고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말해 봐야 도아 님을 속상하게 만들 뿐이다.

도아 님도 데이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까.

도아는 부드럽게 베리를 달래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데이지 때문에?”

도아의 품 안에서 베리가 움찔했다. 도아가 베리의 머리에 뺨을 비볐다.

푹신하고 부드러운 귀가 그녀의 뺨에 스쳤다.

“그래, 데이지가 걱정되겠구나. 일단 정보 길드에 의뢰를 넣기는 했는데……. 소식이 없네.”

베리의 귀가 쫑긋하게 섰다.

“끼, 낄두에 이래여……?(기, 길드에 의뢰요……?)”

“응. 앗! 일이 계속 겹쳐서 이야기 못 했구나. 당연히 넣었지. 베리가 계속 걱정했잖아. 돈 벌어서 의뢰 넣고 싶다고 그랬었고……. 지금은 내가 베리 보호자니까.”

도아는 중요한 사실을 깜박해 어쩔 줄 몰라 했다.

“계속 걱정했겠네. 미안. 일단 베리에게 들은 내용대로 의뢰를 넣었고……. 또 우리가 유명해지면, 베리도 유명해질 테니까. 그럼 데이지가 알게 되면 연락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구, 구럴까여……?”

쿨쩍쿨쩍 하면서 베리가 고개를 들었다.

“응, 그럴 거야.”

도아의 말에 베리가 그녀의 어깨에 이마를 꼭 붙였다.

도아는 가만가만 베리를 달래주었다.

밤이 깊어가고, 달님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 ❖ ❖

며칠 동안 두 사람은 쉬면서 신나게 시간을 보냈다.

베리는 도아에게 나무타기를 알려주었고, 둘은 같이 새집을 여기저기 털었다.

새알로 도아는 커스터드 크림을 만든 후에, 그걸 냉동 주머니에 넣어서 아이스크림도 만들었다.

그 충격적인 맛에 베리는 며칠 동안 아이스크림 꿈을 꿨다.

까치발을 하고 도아가 음식 다듬는 걸 지켜보기도 했다.

때때로 도아의 말에 따라서 여기저기 숲에서 잔가지를 주워오기도 했다.

모든 게 다 즐겁고 행복했다.

그중에서 제일인 건 밤낚시였다.

달빛조각은 손으로 건져낼 수가 없었다. 도아는 먼저 물가에서 자란 버드나무 가지를 엮어서 둥근 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둥근 체에 은거미 줄로 만든 실을 꿰어서 체를 만들었다.

이어서 그 실을 특수한 약초액에 적시고 나면 밤낚시가 가능했다.

물속에 둥근 체를 넣었다가 살살 건져 올리면 돌멩이는 거미줄에 걸리지 않고 동그란 달빛조각들만 마치 이슬처럼 달라붙어서 반짝였다.

“히야아아.”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걸 은으로 만든 대야에 받은 물에 넣어서 체를 살살 흔들어 떼어낸다.

그럼 그때부터는 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

은은한 달빛을 발하는 달 조각들은 동글동글한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도아는 깊은 곳을, 베리는 낮은 곳을 체로 훑었다.

사금같이 아주 작은 알갱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종종 큰 알갱이도 나왔다.

그러면 베리는 한 손에 체를 들고 도아에게 달려왔다.

“됴아 님, 됴아 님, 이것 보세요!”

“와, 큰 게 걸렸네?”

“그져? 크져?”

베리는 환하게 웃으며 커다란 달빛조각을 뿌듯하게 보았다.

“제가여, 체를 이케, 엄텅 깃게 박아써요.(제가요, 체를 이렇게. 엄청 깊게 박았어요.)”

“그랬어? 힘도 세네.”

그렇게 모든 걸 각자 병에 담았다.

유리병에 달빛조각을 담을 때마다 달 조각들끼리 부딪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났다.

베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삐시 뿌서지느 소리 가타여…….(달빛이 부서지는 소리 같아요…….)”

“응, 엄청 예쁜 소리가 난다.”

그렇게 해서 베리는 유리병 반만큼 달빛조각을 모았고, 도아는 한 병 가득 모았다.

베리가 제가 모든 달빛조각 중에서 가장 큰 조각을 도아에게 내밀었다.

“이건 됴아 님 드릴게여.”

“정말? 나 주는 거야?”

“네.”

수줍게 웃으며 베리가 말했다.

“됴아 님께 드리고 싶어요.”

“와, 너무 예쁘다. 정말 고마워, 베리. 잘 쓸게. 진짜 큰 도움이 될 거 같아.”

“에헤헤.”

베리가 쑥스럽게 웃다가 얼른 뛰어가 버렸다.

‘귀여워라.’

도아는 쿡쿡 웃고 받은 달빛조각을 바라보았다.

새끼손톱만 한 크기로 문스톤과 비슷한 빛깔이지만 은은하게 아름다운 빛을 내고 있다.

‘나중에 장신구나 만들까.’

도아는 조심스럽게 따로 커다란 달빛조각을 챙겼다.

나머지 달빛조각이 들어 있는 유리병은 약상자에 넣었다.

‘다른 약초들도 챙겨 넣어야겠는걸.’

라크샤샤 파는 반드시 약초를 생으로 쓰지 않고 가공한다.

그래서 약상자에는 은엽초니 뱀뿌리니 하고 이름이 써 있어도 열어보면 전부 가공된 물건이 들어 있다.

달빛조각도 정화 재료로 이대로 써도 되긴 하지만, 라크샤샤 파답게 한 번 가공을 거쳐야 했다.

‘보름달이 뜰 때만 가능하니까……. 나중에 이건 가공해야겠다.’

도아는 희미하게 미소 짓고 약상자를 닫았다.

밖으로 나오니 계곡에서 해왕이가 신나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덕분에 물을 정말 싫어하던 베리도 조금씩 헤엄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어린아이답게 며칠 사이에 그래도 제법 솜씨가 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가장 좋아하는 건 헤엄치는 해왕이 등에 올라타는 거였으니 말이다.

도아도 너무 깊은 곳에서 놀다가 물에 빠지면 물을 더 싫어하게 될까 봐 얕은 곳에서만 놀게 시켰다.

베리의 발음도 빠르게 좋아졌다.

오히려 언어 자극이 많은 곳보다 더 좋아진다.

여기에서 스트레스를 안 받아서 그런가?

도아는 커피대를 채우고 느긋하게 카페인을 보충했다.

청량한 물소리와 새소리, 나무 향기와 커피 향이 뒤섞인다.

도아는 낮은 의자에서 다리를 쭉 뻗고 앉아서 해왕이와 베리가 노는 걸 바라보았다.

‘진짜 좋다…….’

밤에는 책을 큰소리로 읽기도 했다.

그랑 서점에서 사 온 책들이었다. 이 세계의 문화 이야기는 몰라서 읽기 시작했는데 상당히 흥미진진했다.

해왕이도, 베리도. 그리고 댄버스 부인도 도아가 읽는 책 이야기를 듣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별조각 랜턴이 따뜻한 빛을 발하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원통형의 길쭉한 유리 랜턴에서 불빛이 흔들린다.

‘검은 나무 기름도 거의 떨어져 가긴 하는데…….’

물자를 보충하러 가긴 가야 했다.

도아가 그렇게 생각하며 페이지를 한 장 넘겼다가 멈췄다.

‘아…….’

위대한 모험가 이야기, 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위대한 기사, 조세핀 실버문>

‘우와. 우와. 우와.’

어쩐지 목구멍 안쪽이 꽉 조여왔다.

가장 앞 페이지에는 검을 든 조세핀의 옆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닮았나? 모르겠어. 안 닮은 거 같기도 하고.’

너무 정형화된 그림이라서 모르겠다.

그녀가 어머니에게 들었던 조세핀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건 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였다.

도아는 글자를 천천히 손으로 훑었다.

“됴아 님?”

도아가 읽기를 멈추자 듣고 있던 베리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도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응. 읽어 줄게.”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도아는 책을 나지막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조세핀 실버문의 자세한 신분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천한 신분이었다든가, ‘우리 집 농사꾼’ 같은 비하 표현을 드물락 백작이 썼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출생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이네.’

들은 이야기는 영웅담이니, 이렇게 일대기를 적어둔 건 처음이었다.

“다섯 살 때 낫으로 마수를 잡은 이야기는 유명하다. 가족을 해치려고 하는 마수를 헛간에 걸린 낫으로 일격에 해치웠다고 한다.”

“다섯 살에요?”

베리가 놀라서 물으니 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게 쓰여 있네. 대단한걸.”

조세핀, 천재였구나. 하긴 셋 모두 천재이기는 했어.

게다가 어쩐지 사슬낫을 잘 다루더라.

도아는 피식 웃으며 글을 마저 읽었다.

12세에 기사로 발탁되고

성을 하사받고

그녀의 기사단을 이끌게 되고, 수많은 위대한 업적을 쌓고.

읽어 내려가는 도아의 목소리는 높고 명랑해졌다.

그리고 몰락.

“조세핀 실버문의 죽음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이 있다…….”

도아는 거기서 멈췄다.

“왜 마물의 공세를 당하는 성에 보급을 끊었는지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왕이 아름답고 강한 기사가 자신보다 세력이 강해질 것을 걱정했다는 설, 혹은 자신의 구애를 거절한 그녀를 미워했다는 설, 아니면 참모진의 판단 실수 등…….”

도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라크샤샤, 진짜 너무 찔렀네. [그러니까 그렇게 죽지]는 너무하잖아.’

“그녀는 보급이 끊어진 성에서 단신으로 마물들과 싸움을 벌였고, 그레이트 엘리멘탈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부하들이 성 밖으로 뛰어나갔을 때 조세핀 실버문은 선 채로 사망한 상태였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얼굴이었다고 전해진다.”

저도 모르게 도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책 위에 물방울이 점점이 떨어져서 그녀는 화급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베리가 놀라 다가와 도아의 팔을 어루만졌다.

“됴아 님, 갠찬으세여?”

“응, 그냥. 얘기가 슬퍼서.”

“맞아요. 그 왕 나쁜 놈이에여!”

베리가 씩씩거렸다. 도아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네, 나쁜 놈이네.”

하지만 조세핀은 후회하지 않았을 거야. 알아.

누군가가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준다.

댄버스 부인이다. 해왕이도 걱정스러운 듯 다가와 그녀의 허벅지에 턱을 얹고 빤히 바라보았다.

도아는 작게 웃었다.

어쨌든 그녀는 소중한 존재를 지켰다.

누구도 달성하기 어려운 위업을 세웠다.

그러니 웃으며 죽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조세핀다웠다.

‘그레이트 엘리멘탈이라.’

도아는 얼마 전에 싸운 엘리멘탈을 떠올렸다. 아마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등급의 엘리멘탈이겠지.

‘그런 거랑 일대일로 어떻게 싸워서 이긴 거지……. 보급도 없는 상태라며.’

생각해 보면 백 년이나 함께 지났는데, 그 이야기는 못 들어 본 거 같았다.

엘리멘탈과 싸우는 법이야 배웠지만.

도아가 책을 덮자, 베리가 불쑥 말했다.

“됴아 님, 쩌두 검 배우고 시퍼여!”

“응?”

“저도 이뎌(이제) 일곱 살이에여!”

“으음…….”

도아는 고민했다.

사실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어리니까, 굳이 일정을 잡기보다는 조금씩 이것저것 놀이처럼 가르치면서 흥미를 얻기 원했는데…….

게다가 베리는 고양이족이다.

도아가 가르침 받은 대로 가르쳐도 괜찮은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고민하다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조금씩 가르쳐 줄게.”

“정말요?!(떵말여?!)”

깜짝 놀라 베리가 되묻자, 도아가 미소 지었다.

“왜? 막상 배우려니까 싫어?”

“아, 아녀! 구게, 구러니까…….(아, 아뇨! 그게, 그러니까…….)”

베리가 끙끙거리며 단어를 골랐다.

“검술은 아무나 가르텨듀지 않는다구…….(검술은 아무나 가르쳐주지 않는다구…….)”

“아…….”

도아가 뺨을 긁적였다.

“하지만 베리는 아무나가 아니잖아?”

도아의 말에 베리가 “됴아 님!” 하고 그녀의 무릎에 매달렸다.

“일단 지금은 자세 같은 걸 잡는 것부터 시작, 은 어렵고. 명상부터 시작하자. 하지만 베리, 배울 거 많은데. 글자도 익혀야 하고.”

“다 할 수 있어여!”

“그래, 그래.”

조금씩 쪼개서 가르쳐야겠다, 하고 도아는 웃으며 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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