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오오.’
편해, 편해.
도아는 비둘기를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가며 물었다.
“이 비둘기는 날리면 어디로 가?”
“그 비둘기는 부상당한 비둘기야.”
“어?”
“부상당한 비둘기는 따로 표시를 해서 돌보고 있거든.”
“그래?”
하지만 단서 추적에는 분명히 날려 보라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도아는 슬쩍 말을 돌렸다.
“날렸다가 다시 돌아오게 부를 수도 있어?”
“새 피리로 다시 불러오면 돼.”
“그럼 날릴 테니까 한번 다시 불러줄래?”
“부상당해서 못 날 텐데. 이 붉은 표시는 부상이 심하다는 표시거든.”
“응, 그래도 일단은.”
파드는 눈을 찌푸렸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그가 범인이라면 굉장한 연기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엄청나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도아는 밖으로 나가서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
푸드덕
비둘기가 날개를 펴고 날아간다.
“잘 나는데?”
“어어?”
파드가 당황하며 새 피리를 불었다.
비둘기는 날아간다.
파드는 다시 새 피리를 불었다.
비둘기는 작아진다.
파드는 다시 새 피리를…….
“왜 안 돌아와?”
“저게? 돌아와야 하는데??”
비둘기는 이제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도아는 “허…….” 하고 말했다.
“미안해서 어쩌지? 나 때문에 비둘기를 잃어버린 거 같은데?”
“…….”
파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비둘기가 날아간 곳을 노려보았다.
“알고 날린 건가?”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고 도아는 그를 바라보았다.
“뭐가?”
“저 전서구. 우리가 훈련 시킨 게 아니야.”
“새 피리 소리를 못 들을 수도 있잖아?”
“그러면 우리 전서구가 아니지.”
“그렇구나…….”
범인이 저 비둘기로 연락을 취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도아는 저 비둘기를 바로 쫓아갔어야 했나, 고민됐다.
분명 그 죽은 마법사랑 연락을 취하고 있었을 테고, 그러면 그 장소로 저 비둘기가 자신을 안내해 주지 않을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단서 추적 라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 확인까지가 끝이라는 건가?’
그때였다.
“돌아온다.”
파드는 놀란 목소리였다.
날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비둘기가 빠르게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돌아온 비둘기를 도아가 받아들었다.
‘이 정도 시간이면 들키지 않고 비둘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겠어.’
도아는 비둘기장에 다시 비둘기를 넣었다.
파드가 화급히 물었다.
“뭔가를 달고 왔나? 무슨 쪽지라도 걸려 있나?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돌아온 거지?”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도아가 그에게 말했다.
“나라면 누가 이 비둘기를 날리는지 숨어서 지켜보겠어.”
“…… 그게 맞겠지…….”
그는 눈을 찌푸렸다.
이어서 도아를 바라보았다.
“묻고 싶은 건 엄청나게 많지만 지금은 참겠어.”
“하하.”
도아는 짧게 웃었다.
그가 비둘기를 비틀어 죽이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그렇다면 범인은 정해진 셈 아닐까?
‘일단 다음 단서를 따라 가 보자.’
“그럼 나중에.”
도아는 그에게 인사했고, 파드 역시 마주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비에나리에에는 고개를 숙이는 인사가 있나 보다.
도아는 다음 단서 추적을 따라서 옥상에서 내려왔다.
이번에는 쭈욱 아래로 내려온다.
도아는 슥슥 걸어서 1층에 위치한 나무 문 앞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문 안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어디 보자.’
도아는 안쪽의 기척을 살폈다.
방은 비어 있었다.
좌우를 살피고 도아는 문을 열려고 했다.
철컥
‘엥.’
철컥철컥
‘잠겨 있네.’
이럴 때는 자물쇠를 여는 마법 같은 게 부러워진다.
이세계에도 자물쇠를 여는 마법 같은 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물리력은 어디서나 통하는 법.’
도아는 슬쩍 검 손잡이를 잡으며 말했다.
“락픽(lock pick) 모드.”
도아는 열쇠 구멍에 락픽을 넣고 슬슬 돌렸다.
찰칵!
어렵지 않게 경쾌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도아는 살그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로 쓰는 방인 것처럼 서류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책상 위에도 일감들이 가득하다.
아마도 집사장의 방인 듯싶었다.
문을 닫고 도아는 재빠르게 단서 추적을 따라 일직선으로 향했다.
책상 서랍.
‘잠겨 있다.’
하지만 이것도 순식간에 해결.
‘고마워요, 조세핀.’
마음속으로 사부에게 인사를 보내고 도아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아.’
고급 종이다.
마법사에게서 나온 쪽지를 꺼내서 비교해 보니 찢은 부분이 매치됐다.
같은 재질의 종이.
도아는 고급 종이를 챙겼다.
‘범인은 집사장인가?’
갸웃하는데 다시 퀘스트 업데이트 알람이 떴다.
3. 찢어진 고급 종이를 찾았다.
도아는 종이를 들고 방 밖으로 나왔다.
단서 추적을 따라가니 어렵지 않게 집사장을 찾을 수 있었다.
꼬리가 긴 연미복을 입은 노신사였다.
‘인간이네?’
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대를 보았다.
노신사는 시종에게 뭔가를 지시하는 중이었는데, 도아와 눈이 마주치자 빙그레 미소 지었다.
손짓으로 시종을 보내고 집사장이 다가와 공손히 인사했다.
“안녕하십니다. 도아 님. 저택은 편안하신지요?”
“네, 레하 님 덕분에 편안히 지내고 있어요.”
“그거 참 다행입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설렁줄을 당겨주십시오.”
“설렁줄이요?”
“방에 벽난로 근처에 줄이 있지요? 그걸 당기면 사람이 올 겁니다.”
“오오.”
구조가 뭔지 궁금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도아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보다 저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무엇이신가요?”
도아가 고급 종이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이거 누가 쓰는 종이인가요?”
“어디…….”
집사장은 품에서 루페를 꺼내 도아에게서 받아 든 종이를 슥 살폈다.
“이건 제가 틸다 님께 사용하시라고 드린 종이군요.”
“틸다 님이시라면, 디아르 님의 유모 말씀이죠?”
도아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틸다 님 말고는 누가 쓰나요?”
“틸다 님 말고는 이 종이를 쓰시는 분은 없습니다. 평량 130g의 도톰함. 툴랑게에서 만들어진 매끈한 종이는 틸다 님 전용이지요.”
“정말요?”
“네.”
“그럼 이게 왜 집사님 책상 속에 들어가 있었나요.”
그 말에 집사장은 루페를 내리며 “호오라.” 하고 도아를 바라보았다.
“제 책상 속에 이 종이가 들어 있었다고요?”
“네.”
집사장은 왜 도아가 자기 책상을 열었는지, 어째서 이것저것 살피고 돌아다니는지 묻지 않았다.
단지 생각에 잠겨 루페를 만지작거리다가 도아에게 루페를 주었다.
“저보다는 도아 님께 이게 필요할 거 같습니다. 편안히 보시지요.”
도아는 루페를 받아들고 집사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빙긋 웃고는 도아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큭!”
도아는 머리를 감쌌다.
헷갈려!
뭐야, 그래서 뭔데?
누가 범인인 거야?
범인이 이 안에 있기는 한 거임?!
반짝반짝
퀘스트 업데이트 창이 떠서 도아는 얼른 창을 클릭했다.
3개의 단서를 모두 얻었다.
마지막 단서를 찾기 위해 틸다를 찾아가자.
‘흐음.’
도아는 단서 추적을 켜고 자리를 이동했다.
디아르의 방 앞에서 도아는 아름다운 암사슴과 마주쳤다.
쟁반을 들고 이제 막 방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갈색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커다란 눈에 속눈썹이 길다.
늘씬한 몸에 진녹색인 꼭 맞는 옷을 입고 있었다.
‘헉! 밤비!’
밤비는 수사슴이지만, 어쨌든 뿔 없는 그 사랑스러운 어린 밤비를 닮은 암사슴이었다.
진짜 예쁘다고 생각하며 도아는 조심스레 물었다.
“틸다…… 님이신가요?”
“네? 네, 제가 틸다입니다만.”
“저는 지금 이곳에 손님으로 묵고 있는 김도아라고 합니다.”
“아…….”
틸다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도아 님이시군요. 디아르에게 이야기 들었답니다.”
“디아르에게요?”
“네, 무척 용하신 약초사 님이시라고.”
후후 웃고는 이어 물었다.
“그런데 저는 무슨 일로…….”
“디아르에 대해서 물어볼 게 있어서요.”
그 말에 틸다가 쟁반을 내려다보고 말했다.
“그럼 제 방으로 가시겠어요?”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틸다의 방은 디아르의 방과 붙어 있었다.
쟁반을 내려놓고 틸다가 말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어수선하기는 하지만…….”
안은 아기자기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손수 수놓은 자수 물건들이 놓여 있고, 자그마한 석고 조각들이 놓여 있었다.
거기다가 동물 모양의 인형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소파에 놓인 쿠션도 가장자리에 레이스가 달려 있는 비싸고 사랑스러운 물건이었다.
도아는 그녀가 권하는 대로 일 인용 소파에 앉았다.
틸다가 둥근 사이드 테이블 위를 부드러운 동작으로 치웠다.
그리고 빠르게 차를 우려내며 물었다.
“그래서 저를 무슨 일로 찾으셨나요?”
“음…….”
도아는 단서 추적이 반짝이는 걸 바라보았다.
그녀의 왼손에 단서 추적 가이드라인―은빛별―이 이어져 있었다.
순간 도아는 그녀의 손이나 손바닥에 문신 같은 게 있나, 생각했다.
하지만 차를 따르기 위해서 움직이는 틸다의 손에는 아무런 흔적이 안보였다.
단지 인간과 꼭 같은 손가락 끝에 달린 손톱이 검은색이었다.
‘원래는 굽이었던 흔적일까?’
도아는 준비해 둔 변명을 내뱉었다.
“디아르의 상태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고 싶어서요. 언제부터 저런 증상이 일어났나요?”
틸다가 “아.” 하고는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디아르가 아프기 시작한 건 다섯 살쯤 되었을 무렵이었어요. 저는 그저 여름 감기라고만 생각했지요.”
그녀의 눈가가 아련히 떨린다.
“그런데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더군요. 여름 감기를 심하게 앓고 몸이 약해졌다고, 그렇게만 생각한 게 잘못이었지요.”
그녀는 목이 마른 듯 찻물을 마셨다.
“그래서, 디아르는 어떤가요? 나을 수 있는 건가요?”
“일단 상태는 지켜보려고 합니다.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네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도울게요. 아! 저 꾸준히 디아르의 병상 일기를 써왔어요. 이걸 가져가시면 도움이 되실 거예요.”
틸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둥지둥 책상 위에 쌓아 둔 병상 일기를 가져 왔다.
양이 상당했다.
도아는 병상 일기를 받아들고, 틸다에게 인사한 후에 방을 나섰다.
방으로 돌아간 도아는 병상 일기를 펴 보지도 않았다.
‘왼손잡이였어.’
도아는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쪽지를 꺼내고 루페를 꺼내서 찢어진 결을 살펴보았다.
역시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찢어진 흔적이다.
보통 오른손잡이라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찢을 것이었다.
병상 일기를 펴 보니 글씨가 기울어진 걸 봐도 그랬다.
‘현실 세계에서는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클리셰인데, 여기서는 아직 아니구나.’
뻘한 생각을 하며 도아는 루페로 글씨체도 관찰했다.
글씨의 기울기나 획이 삐쳐 나가는 부분이 일치하는 곳이 있었다.
‘아니 근데, 그렇게 오래 아픈 애를 돌보는 것도 힘들지 않나?’
그녀는 손안에서 루페를 빙글빙글 돌렸다.
한국에서 봤던 수많은 수사물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인가.’
뮌하우젠 증후군은 자신이 환자인 척하며 관심을 끌려고 하는 정신질환이다.
대리 뮌하우젠은 아픈 누군가를 극진히 간호하며 관심을 얻으려 하는 유형의 정신질환이었다.
‘아니면 마법사 일당?’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오래 사태를 질질 끌 필요가 있었을까?
어쨌든.
퀘스트 업데이트 알림 불이 깜박인다.
범인을 특정했다. 레하에게 이야기하자.
‘역시 답이 맞는 모양이네.’
도아는 커피 파이프를 꺼내서 불을 붙였다.
명탐정이 된 듯한 기분을 맛보며 도아는 후후 미소를 지었다.
물론 단서는 가이드라인이 다 모아줬고, 도아는 보태기만 한 거지만, 그래도 기분은 기분이다.
‘단서는 모였고,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어.’
“베리의 명예를 걸고! 범인을 잡아내겠어.”
“녜? 떼 명예여?(네? 제 명예요?)”
갑작스럽게 지명 당한 베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도아는 하하 웃었다.
❖ ❖ ❖
디아르의 상태를 확인하고 도아는 다시 처방을 내렸다.
디아르에게 식사도 허가되었다.
디아르는 이제 하나도 아프지 않다며 명랑한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옆에 선 틸다는 감격한 듯 눈물을 계속 닦아내고 있었다.
저게 연기라니, 대단한 사람이다.
“그럼 이제 아가씨는 나으신 건가요?”
“아직 확답은 못 드려요. 하지만 조금씩 움직이시는 게 좋을 거예요.”
도아의 말에 디아르의 밝은 호박색 눈동자가 별처럼 빛난다.
프릴 잠옷을 입은 새끼 곰은 정말로 귀여웠다.
“정말요? 나가도 되나요?”
“네, 천천히 산책하시는 정도는 괜찮아요.”
“와아!”
당장이라도 침대에서 뛰어내릴 기세인 걸 틸다가 저지했다.
“안 돼요, 아가씨. 일단 식사를 다 하셔야죠.”
목소리는 부드럽고 조곤조곤하다.
디아르는 “하지만―” 하고 틸다를 바라보았다가 얌전히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착한 아이다.
도아가 나가는 걸 본 틸다가 허둥지둥 따라 나왔다.
“도아 님.”
“네.”
“아가씨께 올릴 식사, 뭐든 괜찮은가요?”
“며칠 굶었으니 묽은 수프나 미음이 좋겠죠.”
“그렇군요. 그럼 정말 아가씨는 다 나으신 건가요?”
“아직 지켜봐야 해요.”
도아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틸다는 머뭇거리며 도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저러다가 갑자기 안 좋아지시진 않겠죠? 산책하다가 쓰러지기라도 하시면…….”
“물론 무리하게 움직이면 안 됩니다.”
도아의 말에 틸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틸다가 물었다.
“무슨 특효약 같은 거라도 있는 건가요?”
도아가 그녀를 바라보다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 던전에서도 그렇고.
도아는 제법 자신의 천연덕스러운 연기가 훌륭하다고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