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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여행사 : S급 먹방대모험 패키지-62화 (9/100)

⊹ 62화 ⊹

레하는 도아에게 몇 번이나 감사했다.

도아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하며 손사래 쳤지만, 불을 끈 것도 도아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틸다에 대해서는 일부러 묻지 않았다.

레하도 별말 하지 않았다.

도아는 건조하고 사무적으로 마법사에 대해서 보고했다.

거대한 곰은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도아 님.”

“아니에요.”

“산―다르크가 도아 님께 큰 신세를 졌습니다. 부디 이걸 받아주십시오.”

레하가 은으로 만든 듯한 패를 내밀었다.

산―다르크의 문장인 벌꿀이 흘러넘치는 항아리가 그려져 있었다.

꿀벌 한 마리가 포인트다.

무척 귀여운 문장이었다.

‘당사자들은 곰이지만.’

“가문패입니다. 언제든 이 패를 내밀면 저희 가문에서 무슨 일이든 전력으로 도와드릴 겁니다.”

레하가 진지하게 덧붙였다.

“설령 그 일로 인해서 저희 가문이 망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엇, 이게 그런 거예요?”

“네.”

“와……. 어쩐지 부담스러운걸요.”

“그만큼 저희 가문에서 도아 님을 신뢰하고 있다는 표시로 받아주십시오. 참고로 말해서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셔도 됩니다.”

“진짜요?!”

“네.”

레하의 말에 도아는 ‘허’ 하는 소리를 반복했다.

레―소소에게 받은 산―모아의 가문패를 떠올랐다.

그것도 그런 거였나.

전혀 몰랐네.

그거 주면서 꼭 방문하라고 그래서, 초대장 같은 건 줄…….

“감사히 받겠습니다.”

“네, 그리고 이런 상황이지만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도아가 갸우뚱하자 레하가 웃으며 말했다.

“냐냑세세께서 어디 계신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중에 백백소나무 송진도 도착한다고 합니다.”

“잘됐네요!”

저절로 목소리가 커졌다.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레하는 멈칫했다가 그제야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 ❖ ❖

백백소나무 송진이 오길 기다리며 도아는 쿠낙과 로베른에게 편지를 썼다.

‘생각보다 많은 일이 있었네…….’

레하가 특급으로 편지를 보내주겠다고 해서 호의를 기꺼이 받았다.

저택의 사람들과도 무척이나 편하게 가까워졌다.

파드와는 몇 번 검도 섞었는데

진짜, 정말로.

곰의 근력은 깡패였다.

상대는 그냥 휙 휙 기본 근력으로 휘두르는 걸 도아는 마나를 써서 막아내야 한다.

여러 의미로 좋은 상대였다.

단지 대련에서도 도아는 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는 승부욕이 넘친다고 할까.

조세핀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고 스승을 향한 애정이 넘친다고 해야 할까.

파드는 커다란 손으로 뒤통수를 긁적이곤 했다.

대련을 끝내고 물 마시며 같이 수다를 떠는 일도 종종 있었다.

틸다에 대해서 그는 두서없이 몇 마디 말을 하곤 했다.

도아는 그런 말에 귀를 기울여주곤 했다.

아무래도 파드는 틸다를 좋아했나 보다.

‘어긋난 사랑의 작대기는 무섭구만.’

집사장도 도아를 무척 신경 써 주어서 저택이 무척이나 편했다.

‘부탁도 하기 전에 뭐든 준비되어 있는 게 무섭다…….’

심지어 일행인 해왕이와 베리에게도 무척이나 정중하게 대했다.

베리에게는 ‘도련님’이라고 불렀는데 베리 도련님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이상하게 되어서는 돌아다녔다.

싫다고 안 하는 걸 보니 ‘도련님’이라는 호칭이 좋은가 보다.

‘하긴, 도련님이라고 불릴 일이 언제 얼마나 있겠어.’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도 늘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고, 책상에는 종이와 필기구가 가지런하다.

음식도 무척이나 맛있었다.

틸다가 사라지고서 디아르는 무척이나 우울해 보였다.

레하가 사실을 이야기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틸다 이야기를 절대로 꺼내지 않는 걸 보면, 무언가 언질을 받긴 한 듯했다.

그러나 몸이 점점 좋아지자 디아르도 조금씩 우울에서 벗어났다.

제대로 잘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더 이상 아프지 않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게 디아르에게는 기적이었다.

사랑스러운 옷을 입은 작은 곰은 정말로 귀여워서 도아는 종종 디아르를 꽉 끌어안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물론 실례니까 안 되지.’

대신 그녀는 해왕이를 빗질해 주고 꽉 끌어안으면서 욕구를 풀곤 했다.

‘하…….’

“도아 님, 도아 님.”

이제 도아 이름은 제법 완벽하게 부르게 된 베리가 도아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응?”

“뎨 머리를 스다듬으져두 대여.(제 머리를 쓰다듬으셔도 돼요.)”

슬쩍 귀를 파닥이며 하는 말에 도아는 “크윽!” 하고 베리를 꽉 끌어당겼다.

품속에서 “우엥.” 하고 콱 안겨서 나오는 작은 고양이 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로 귀엽다.

털은 이제 얼마나 매끈하고 풍성한지.

도아는 베리를 몇 번이나 쓰다듬고 뺨을 비볐다.

정말로 마음속 깊이 치유가 되는 기분이었다.

시간은 여유롭게 지나갔다.

송진을 재가공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냐냑세세를 만나고 와서 약을 만들어야 하나?’

아니면 기다렸다가?

고민하다가 도아는 약을 먼저 만들기로 했다.

냐냑세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무슨 일이 또 생길지 모른다.

장대한 서브 퀘스트 같은 걸 받으면 어떻게 하나.

도아는 그런 내용까지 전부 합쳐서 편지를 썼다.

엘리바스를 짧게 만났다가 헤어져서 그런가.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었다.

‘가능하면 함께 이동해도 좋을 거 같네.’

하는 말을 덧붙였다.

❖ ❖ ❖

A급 던전 공략은 여유롭게 이루어졌다.

몇 번이나 던전 밖과 안을 오가면서 물자를 보충하고, 공략지를 늘려 나간다.

도아처럼 무모하게 보급 없이 단번에 던전을 공략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 슬슬 마지막 단계였다.

던전 밖에서 보급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쿠낙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앉아있었다.

아무도 근처에 다가오지 않는다.

멀찍이 서서 그를 향해 눈을 찌푸리고 종종 침을 뱉으며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마검 소유자.

A급 모험가들은 그를 멸시했다.

실력도 되지 않는 자가 마검 때문에 S급 모험가가 됐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던전 공략 시 가장 까다로운 곳, 위험한 곳에 일부러 그를 내세운다.

그가 위험한 곳을 처리해 주면 좋고, 죽어도 좋다.

대부분의 모험가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익숙한 일인데.

익숙한 일인데도.

‘도아 양과 다닌 건 잠깐인데.’

쓴웃음이 나와서 그는 더욱 깊숙이 후드를 눌렀다.

맛있는 냄새가 났다.

다른 A급 파티는 식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는 짐에서 건량을 꺼내어 씹었다.

마검 소유자인 그와 식사를 같이 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그의 미각은 무척이나 둔해져서, 맛을 느끼기도 어려웠다.

신기하게도 도아 양의 요리만은 모든 맛이 선명하게 느껴졌지만 말이다.

그때 긴 망토를 펄럭이며 로베른이 다가왔다.

다들 너덜너덜한 모습인데 로베른만큼은 먼지 한 톨 붙지 않은 산뜻한 예장이다.

로베른 역시 모험가들에게 안 좋은 시선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짐’이라고 자신을 호칭하며 황제라고 뻐기고 다닌다며 수군거린다.

하지만 그는 그런 소리는 불민한 자들이나 하는 소리, 라고 웃으며 말하곤 해서 상대방을 더욱 열 받게 만들었다.

쿠낙이 고개를 들었다.

로베른이 편지를 내밀며 말했다.

“특급 우편이네. B급에게서 편지가 왔어.”

쿠낙은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편지를 받아들었다. 한 통을 건네고 로베른의 손에는 여전히 한 통이 남아 있었다.

쿠낙이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편지는 무엇인지 묻자, 로베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건 짐에게 올라온 상소라네.”

도아가 그에게도 편지를 보냈나 보다.

쿠낙은 제 몫의 편지를 거침없이 뜯었다.

남대륙 출신에 물정 모르면서도 도아가 쓰는 공용어는 귀족 여성처럼 아름답다.

그녀가 받은 교육이 수준 높은 고등 교육이라는 걸 말해 주는 필체다.

내용을 전부 읽어 내린 후에 쿠낙은 나오는 한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B급은 매일 그런 사건 사고에 휘말리는 걸까?”

쿠낙이 할 말을 로베른이 대신해 주었다.

쿠낙은 다시금 글자를 훑었다.

마지막에 도아가 쓴 문장을 몇 번이나 곱씹어 보았다.

[시간이 맞으면 함께 움직이면 좋겠네요. 최대한 기다릴 수 있을 만큼 기다릴게요.]

누군가가 그와 함께하고 싶어 하고, 기다린다는 것.

달콤한 말이었다.

로베른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 슬슬 우민들의 비위를 맞춰 주기도 거슬리는데. 적당히 끝내 버리는 게 어떤가?”

“맞춘 적이 있기나 합니까?”

“없지.”

싱긋 웃고 로베른이 답했다.

쿠낙은 편지를 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끝내 버리자는 거에는 동의합니다. 오늘 끝내죠.”

도아 양이 기다린다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달려가야지.

로베른이 말했다.

“그럼 어느 쪽부터 끝낼까?”

“가까운 쪽부터 끝내죠.”

둘이 던전 입구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다른 파티 리더가 빠르게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짐에게 급한 일이 생겨서, 던전을 이제 깨려고.”

상대가 눈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파티는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A급 던전은 장난이 아닙니다.”

“그런가? 짐이 들은 바에 의하면 B급 모험가가 솔로 공략한다던데.”

“!!”

A급 모험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로베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대들도 규정상 부른 것뿐이지, 사실 짐의 위광에 힘들어하지 않았나. 그만 물러가게. 공략할 테니.”

“무슨 헛소릴……!!”

그런 그를 옆으로 밀치고 로베른은 던전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불만이 있다면 읍소해도 좋아.”

“이 새끼가―!”

울면서 빌어보든가? 하는 말에 모험가가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에게 눈을 찡긋하며 로베른은 던전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쿠낙은 한숨을 내쉬고 그 뒤를 따랐다.

파티 리더는 홱 자신의 일행을 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

“황제와 흑룡이 공략하겠다고 들어갔다! 따라 들어가야 하니까 빨리 짐 싸!”

❖ ❖ ❖

추출 기계에서 금색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진다.

마지막 방울이 떨어지자마자 도아는 잽싸게 밑의 시험관을 치웠다.

이제부터 나오는 증류액은 사용하면 안 된다.

베리는 옆에서 까치발을 하고 서서 도아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귀를 쫑긋거렸다.

“이 추출액은 엄청나게 독하니까, 절대로 단독 사용하면 안 돼. 반드시 푸른꽃버섯이랑 짝지어서 사용해야 해.”

도아는 베이비블루 빛의 파우더를 꺼냈다.

그녀의 손 안에서 약장 문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고 비커 안에 약들이 착착 쌓여 갔다.

도아는 마지막으로 약을 가열해서 녹이고 백백소나무 송진 추출액을 넣었다.

“봐봐 끈적끈적하게 엉기지? 이 정도 농도가 되었을 때…….”

도아가 가루를 바른 도자기 접시 위에 재빠르게 꿀처럼 농밀해진 약을 부었다.

넓게 퍼진 금색 약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완성이야. 이 과정을 빠르게 해 줘야지 아니면 비커 안에서 굳어 버리니까 조심해야 해.”

완전히 굳은 약은 툭툭 건드리는 걸로 쉽게 떨어졌다.

“쓰더라도 입에 넣고 녹여서 천천히 먹어야 해요. 하루 세 번 먹으면 끝이에요.”

도아의 설명에 디아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약을 받아들었다.

“정말로 이거 먹으면 낫나요?”

“그럼요.”

“그럼 참을 수 있어요.”

디아르가 굳은 결의를 보여주고 입 안에 약을 넣었다.

도아가 웃었다.

“쓰죠?”

입이 오그라들 만큼 쓴맛이지만 디아르는 뱉지 않고 버텼다.

레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딸의 등을 연신 쓸었다.

하루 세 번 약을 먹고서 디아르는 지친 얼굴로 잠들었다.

레하는 밤새 디아르를 지켰고, 도아도 환자의 상태를 지켜볼 겸 함께했다.

도아가 있으니 옆에 베리가 끼었고, 파드도 어쩐지 들어와 한자리 스윽 차지했다.

도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약이 잘 들었으면 디아르는 오늘 밤 잠을 못 잘 텐데요.”

레하가 그 말에 깜짝 놀라 물었다.

“지금 잘 자고 있지 않습니까?”

“네, 그러니까요.”

파드가 허겁지겁 잡아먹을 듯 도아를 추궁했다.

“그럼 뭐야? 약이 잘 안 들었다는 거우?”

“아니, 일단 지켜보자.”

도아가 파드에게 반말하는 걸 레하는 빤히 바라보았다.

파드가 야식이라도 가지러 가겠다며 자리를 비운 사이 레하가 도아에게 속삭였다.

“저 친구가 도아 님이 마음에 드나 봅니다.”

“네?”

도아가 놀라 묻자 레하가 멋쩍은 얼굴로 다시 소곤거렸다.

“예전부터 파드는 자기보다 연약해 보이는 상대를 좋아했거든요.”

‘아, 네. 그래서 상대가 틸다였을 듯.’

도아는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하고 허허 웃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 뚜쟁이 노릇 하시려는 거예요?”

레하가 뺨을 긁적였다.

“파드 저 녀석이 저렇게 보여도 참 진국인―”

남자가 남자를 괜찮다고 소개할 때 나오는 멘트 중에서 가장 안 좋은 멘트가 나오는 게 아닐까.

도아가 그런 생각을 할 때 디아르가 눈을 번쩍 떴다.

“디아르!”

레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괜찮니? 무슨 일이니?”

디아르가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빠? 그, 배 아파…….”

“배가?”

레하가 도아를 돌아보았고, 도아가 손으로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편안히 볼일 보렴.”

디아르는 끙끙거리며 배를 붙잡고 화장실로 호다닥 달려갔다.

다행히도 방음이 잘 되는 두꺼운 문이 달려 있는 건지 다른 소리는 나지 않았다.

‘흠. 파드드득이나 푸드드득 소리가 났다면 사춘기 소녀의 심성상 곤란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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