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계수 여행사 : S급 먹방대모험 패키지-64화 (11/100)

⊹ 64화 ⊹

“오오오오오오!!”

왁왁왁왁

“이런 게 있다니!”

찹찹찹찹

파드는 정신없이 알감자 버터구이를 먹었다.

식기는 했지만 삶은 햇감자다.

크기가 잔 건 그대로 쓰고, 아닌 건 적당히 크기로 잘랐다.

그리고 버터에 설탕과 소금을 녹인 다음 감자를 이리저리 굴려서 뭉근히 익힌다.

살짝 타서 갈색이 된 부위까지 나오는 게 포인트.

거기에 파슬리를 톡톡 뿌려서 마무리.

설탕이 적당히 타서 파삭파삭하게 씹히고 소금이 어우러져 단짠단짠의 정석이다.

버터 역시 푸르 누아제트―타지 않고 살짝 누른 헤이즐넛 빛 버터가 되어 풍미가 극대화되는 부분이 포인트.

간이 약간 과하다 싶은 곳은 포슬포슬한 감자가 중화해 준다.

“후하후하.”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

도아가 그에게 물을 내어주었다.

“에일이 땡기는데.”

“술은 없습니다.”

도아는 베리를 돌아보았다.

“베리는 어때?”

“마시떠요!(맛있어요!)”

귀를 연신 파닥거리며 베리도 알감자 버터구이에 집중했다.

산을 넘으면서 기수는 인간 따위 생각해 주지 않는다.

험한 길에서는 기승자도 함께 힘들었다.

도아는 저도 한 알, 쏙 입에 넣었다.

살짝 강하다 싶은 달콤 짭짤한 맛이 혀에 먼저 퍼진다.

그때 감자를 씹으면 입 안에서 담백하고 포슬포슬한 감자와 버터에 녹은 설탕, 소금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완벽한 하모니를 선사했다.

지친 몸에 완벽한 조합이었다.

"정말로 맛있었어.”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나중에 우리 요리사에게 레시피를 알려줄 수 있을까?”

“알려주고 말 것도 없는 간단한 레시피인걸.”

답은 간 조절이다.

도아가 뿌린 소금은 두 종류였다.

하나는 스며드는 가느다란 소금의 부드러운 맛.

다른 하나는 혀끝에 강렬하게 느껴지는 커다란 소금.

거기에 설탕이 어우러지면서 간간한 간과 강한 간 모두가 입맛을 잡아냈다.

처음에 강한 간은 금방 포슬포슬한 감자에 녹아서 사라지지만 간간한 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사실 처음에 찔 때부터 간을 해서 쪄야 했지만, 쪄서 온 거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찌는 시간은 없어도 되었으니 쌤쌤이라고 해 둘까.

거기에 버터는 절대로 태우지 않는 것. 순간의 타이밍을 잘 지켜야 한다. 더해서 설탕이 카라멜화가 잘 되면 보너스.

도아가 냉동 주머니에서 얼음을 꺼내 냉차를 만들어 내주었다.

파드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도아 님과 함께하는 여행은 호사스러운걸.”

“그래?”

“그래. 황제도 여행 중에 얼음은 못 먹을 거야.”

“그럼 호사스러운 거 맞네.”

도아가 차가운 차를 마시며 웃었다.

파드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갸웃하며 물었다.

“이건 무슨 차지?”

“보리차.”

도아가 차가운 보리차를 홀짝였다.

‘한국인이면 보리차 국룰이죠.'

“고소하고 괜찮네.”

“그렇지?”

도아가 싱긋 웃고 벨트에서 파이프를 꺼냈다.

보리차도 좋지만, 역시 아메리카노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한국인은 혈관에 카페인이 흘러야 하는 거 아닌가요.

도아가 커피를 피우기 시작하자 파드가 쩝 하고 말했다.

“커피라니. 너무 독한 거 하는 거 아닌가?”

“커피 정도는 괜찮아. 괜찮아.”

국가가 허락한 마약이라고.

이세계에서는 어찌 된 일인지 카페인에 눈을 부릅뜨지만.

선생님, 저쪽 세계에서 카페인은 대다수가 즐기는 음료였습니다.

도아 입장에서는 알코올이 카페인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는데, 여기 인간들은 도수 높은 알코올은 들이키면서 커피에는 발발 떤다.

도아가 생글생글 웃기만 하자 파드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제 컵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요리는 좋아하우?”

도아가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 ‘좋아하냐.’라고 묻는 점이, 뭐랄까.

독특한 배려가 있는 사람이다.

‘하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 간격이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어릴 때부터 혼자 살았거든.”

도아가 느긋한 목소리로 답했다.

베리는 처음 듣는 도아 님의 과거 이야기라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요리하기 시작했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요리를 해서 먹는 것은 혼자 사는 사람의 기본이다.

물론 사 먹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해 먹는 방법을 알고 사 먹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간격이 있었다.

게다가 ‘제대로 먹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첫 번째 걸음은 ‘스스로 잘 챙겨 먹이기’라고 생각한다.

거기다가 엘리바스에게 백 년간 요리를 배우지 않았는가?

대마법사의 유일무이한 요리 제자.

“그래서, 좋아하나?”

파드가 다시금 물었고 도아는 씩 웃으며 말했다.

“엄청 좋아해.”

❖ ❖ ❖

삼 일째 되던 날.

그러니까 인적 없는 숲으로 들어가기 직전 마을에 들렀을 때였다.

예상 외로 규모가 큰 마을이었다.

제법 번듯한 상가가 늘어선 마을 인구의 대부분은 고양이족이었다.

“숲에 마수가 많다고 그러지 않았어? 근처에 이렇게 큰 마을이 있어도 되나?”

“숲 가장자리는 괜찮아. 그리고 던전은 깨지 못해도, 마수 한두 마리 잡으려는 사람은 꾸준하니까.”

“아아.”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겪어 봤지만, 던전 아이템은 무지무지 비싸다.

운이 좋게 마수를 잡으면 적어도 한두 달은 먹고 놀 금액이 나올지 모른다.

초보 모험가나, 엽사라면 도전해 볼 만한 곳이었다.

‘던전이 넘친 곳에서도 다들 어떻게든 적응해 사는구나.'

덕분에 부적 ‘아주르 나자크’가 여기저기 걸려 있는 게 보였다.

돈이 된다 해도 마수가 무섭기는 무서운가 보다.

거기에 작지만 모험가 길드 지점도 번듯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특이한 건 테이크아웃 카페 같은 구조라는 거였다.

안에 사람이 많이 들어오지 못하니 그걸 벌충하기 위한 구조로 보였다.

의뢰를 걸어놓은 게시판도 바깥에 서 있다.

도아는 지점에 들러 카드를 제시하고 종이를 한 장 받았다.

게시판에 게시할 수 있는 종이였다.

뭐라고 써야 두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도아는 간결하게 적었다.

[두 분. B급은 먼저 들어갑니다.]

자세한 내용은 그녀의 이름을 댄 사람에 전해달라고 지점원에게 맡겼다.

“이제 3일간은 노숙이니 식량은 여기서 보충하고 가야 할 거 같아.”

파드가 그리 말하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그동안 도아의 솜씨를 실컷 맛봤던 터라서 오늘 뭐가 나올까,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맛있는 밥이라는 게 이렇게까지나 사람 마음을 풀어 준다는 걸 파드는 날마다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게. 베리는 뭐가 좋아?”

“뎌는 뿌렌띠 토스트여.(저는 프렌치 토스트요.)”

베리의 말에 파드가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거 진짜 맛있었지.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부드러운 게 크림 같은데도 크림은 아니고. 달달하고 따뜻해서 한입 입에 넣는 순간 모든 피로가 녹아버리게 맛있어. 충격적이었지.”

말하며 입에 침이 고인다.

“흠, 좋아, 그거랑…….”

도아가 노점상 앞을 지나다가 덜컥 멈춰 섰다.

“복숭아다!”

과일이 개량되지 않아서 많이 달지 않은 이 시대에도 복숭아는 맛있는 과일이었다.

“딱복이다!”

거기다가 딱딱한 복숭아.

파드가 옆에서 한 소리 했다.

“복숭아는 맛있기는 한데, 벌레도 워낙 많이 먹는 데다가 금방 상하잖우.”

파드의 말에 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복숭아는 밤에 먹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왜냐고 물었더니 답이 '그래야 벌레가 안 보여서 편히 먹으니까.' 였던가.

“괜찮아, 괜찮아, 깎아 먹을 거 아니니까.”

도아가 씩 웃고 말했다.

“이거 한 상자 다 주세요.”

머리 두건을 쓰고 있던 고양이족 아주머니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 상자를 다옹?”

“네, 다요.”

“들고 갈 건가옹?”

도아가 스윽 파드를 바라보자, 파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들고 갈 겁니다.”

“그럼 걱정 없겠네옹.”

아주머니는 안심하며 나무상자 하나를 내주었다.

파드는 별 힘들이지 않고 상자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노점상 아주머니는 “나도 곰족이랑 결혼할걸 그랬다옹.” 하고 깔깔 웃었다.

파드는 그 말에 “이미 결혼하셨다니 아쉽네요.” 하고 와하하 웃어 보였다.

노점상 아주머니도 “어머나!” 하고 다시 웃고는 덤을 마구 얹어 주었다.

‘뭐지, 이 하이틴 미드 쿼터백 같은 느낌은.’

도아는 어쩐지 머릿속에 해맑은 남주상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이 복숭아로 뭘 하려고?”

“복숭아 병조림 만들 거야.”

“병조림? 그거 맛있나?”

“맛있지.”

복숭아 과즙이 녹아들어 황금빛을 띠는 시럽까지 맛있다.

도아의 말에 파드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아는 피식 웃고 그 외 자잘한 장을 보았다.

이쯤 되면 냐냑세세를 만나는 게 목적인지, 먹방이 목적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다 이루는 거지, 뭐'

가볍게 생각하기로 하고 도아는 여관으로 돌아갔다.

“그럼 오늘은 복숭아를 다듬을 겁니다.”

껍질을 벗기고 다듬어서 이쪽 커다란 대야에 담아 주시지요.

“베리는 글자 연습하고 있어.”

도아가 그렇게 말했지만 베리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뎌두 더울게요.(저도 도울게요.)”

도아는 어린 아이에게 칼을 다루게 해도 되나 걱정되었지만, 아까 마을에서 보니 베리 또래의 아이들이 제법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툴레는 성장 속도가 빠르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내일 오두막을 꺼내야겠다. 댄버스 부인 레벨 오른 것도 체크해야 하고. 병조림을 해서 넣으려면 그게 좋겠지.’

힐끗

곁눈으로 파드를 보니 그는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과도를 들고 열심히 복숭아를 다듬고 있었다.

‘파드는 믿어도 될 거 같고.’

소문내지 말아 달라고 하면 내지 않을 사람이다.

앞으로 숲속에서는 만날 사람도 적을 테니 오두막 한 번 정도는 괜찮을 듯싶었다.

잘 자른 복숭아를 설탕에 버무린 후, 일단 이공간 가방에 넣어뒀다.

한겨울에 눈이 푹푹 쌓인 날에 벽난로를 활활 태우면서 복숭아 병조림을 하나 꺼내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아이스크림 위에 올려도 맛있겠지.'

도아가 “기대해.”라고 말하자 파드가 흐흐 웃었다.

“모험가도 하나 기대해도 좋아.”

“뭘?”

“그 숲에 특별한 곳이 있거든.”

“특별?”

파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특별한 곳이 있지. 가면 모험가라도 깜짝 놀랄걸.”

시원시원하게 그가 웃는다.

‘특별한 곳에 데려가겠다, 라.’

도아가 히죽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파드, 설마 날 거기로 데려가서 고백하거나 그러는 건 아니지?”

그 말에 파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충격받은 얼굴이다.

도아는 그 얼굴을 보고 “아, 미안.” 하고 사과했지만 그는 여전히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앞발, 아니,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하며 뒷목을 어루만졌다가 초조하게 양손을 비볐다가 했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그럴 의도는 결코……. 나 그렇게 보였나?”

인간이었다면 땀을 뚝뚝 흘렸을 거 같다.

“아니, 농담이었어. 정말로.”

도아 역시 더욱 당황해 손을 내저었다.

“빠빠하게 또아 님을 져아한 거 아녀여?(뻔뻔하게 도아 님을 좋아한 거 아니에요?)”

갑작스럽게, 고양이에게 무척 잘 어울리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한 베리가 둘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도아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펄쩍 뛰는 사람을 실제로 처음 목격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로! 좋아하다니 말도 안 되지! 아! 그, 도아 님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갑자기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빙글빙글 눈이 돌아가는 큰 곰을 보고 도아는 찬물을 따랐고, 베리는 귀를 뒤로 접으면서 더욱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파드, 괜찮아. 농담이었어. 그냥 좋은 곳이 있어서 보여주고 싶다는 말이지?”

도아가 컵을 건네주며 말하자 그가 한 번에 물을 다 들이켜고 휴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그게 미안하네. 아니…….”

파드가 제 눈가를 손으로 가리듯 누르며 말했다.

“레하가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갑자기 도아는 파드가 진국인 어쩌고 하던 레하의 대사를 떠올렸다.

‘아하.’

“그랬구나.”

도아가 중얼거리자 파드가 어이쿠, 하고 고개를 들었다.

“둘이 이런 이야기했다는 것도 기분 나쁘겠지. 말실수를 했네.”

“아니, 뭐. 친구 사이잖아?”

누구누구 괜찮더라, 잘해 봐라.

이런 거 그냥 흔해 빠진 친구끼리의 대화 아닌가.

도아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파드의 어깨 힘이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그렇게 당황했던 게 이제 와서 민망한 모양인지 그가 멋쩍게 변명을 덧붙였다.

“오래 한 짝사랑이 엉망진창으로 끝나서…….”

‘틸다 말이군.'

“레하는 그런 데 눈치가 없으니까, 혹시 도아 님에게도 이상한 소리를 했나, 걱정했어.”

“아니, 나도 그런 말해서 미안해.”

아무래도 클리셰다 보니 입 밖으로 터져 나와 버렸습니다.

파드가 큼큼 헛기침을 한 후에 말했다.

“그 특별한 장소는 별건 아니고 약수가 나오는 곳이야.”

“약수?”

“응, 몸에 좋은 약수가 나와서 효험이 있을까 하고 몇 번 퍼 날랐거든. 거품이 나는 약수야.”

“거품?”

무슨 말인가 하고 도아가 갸웃했다.

“그래, 안에서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거든. 손을 넣으면 따끔따끔하고.”

도아가 눈을 번득였다.

“탄산?!”

“응?”

“그거 마시면 엄청 목구멍이 따갑고, 트림도 나오고 그러는 거 아냐?”

“맞아, 맞아. 잘 아네. 남대륙에도 있나? 소화불량에 좋다고 하고, 피부에도 좋다고 하고, 안질환에도 좋다고 하고…….”

파드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혹시 디아르 병에도 효과가 있을까 해서 몇 통씩 지고 날랐어.”

“가는 동안 기포가 다 빠지지 않아?”

“약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디아르를 여기까지 오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의 말에 도아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활짝 웃었다.

탄산, 탄산이라니!

“엄청 기대된다!”

오랜만에 탄산음료였다.

‘현대 탄산이랑 맛이 비슷했으면 좋겠는데.’

숲에 들어가는 즐거움이 하나 늘었네, 하고 도아는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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