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다음 날 도아는 상쾌한 기분으로 출발했다.
숲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도아 일행 말고도 여럿이었다.
새벽부터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종종 순례자 같은 복장을 한 툴레들도 보였다.
파드가 속삭였다.
“우리처럼 냐냑세세가 태양 신전에 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일지도 몰라요.”
“아아.”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리는 자신도 걷겠다며 바구니에서 내려왔다.
냐냑세세를 만나는데 바구니 안에 들어 있으면 실례라나?
도아도 그 말에 걷기로 했다.
‘태양 신전까지 3일은 걸린다고 하지만…….’
보니까 도아 외에 기수를 타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당나귀에 짐을 부려놓은 정도였다.
도아가 고삐를 잡을 필요도 없이 해왕이는 몸을 한 번 털고 느긋하게 걸어서 따라오기 시작했다.
파드가 해왕이를 힐끔거리고 물었다.
“이렇게 훌륭한 기수는 어떻게 얻은 거야?”
“운이 좋았지.”
도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하자 파드가 콧등을 긁적였다.
“만약 괜찮으면 나중에 나에게도 알려줘.”
“뭘?”
“그…….”
그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길들인 장소 말이야.”
도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주 속삭였다.
“사실 나도 받은 거라서 길들인 장소는 몰라.”
파드의 눈도 동그래졌다.
“정말?”
“응.”
“진짜, 운이 좋았네……. 아니. 대단한가?”
파드가 해왕이를 슬쩍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도아는 ‘이세계에서 기수는 어떻게 길들이는 거지?’ 하고 궁금해졌지만, 나중에 로베른이나 쿠낙이 오면 묻기로 했다.
여기서 더 몰상식한 인간이 되면 안 될 거 같다.
입구에서 중간 길까지는 함께 하던 일행들이 이제는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냥꾼들은 마수를 사냥하기 위해 떠났고, 순례자들은 아무래도 도아 일행보다는 걸음이 느렸다.
도아는 이때다, 싶어서 파드에게 물었다.
“지금 뭔가 보여줄 건데. 보여준 걸 적당히 비밀로 할 수 있어?”
파드가 눈을 찌푸렸다.
“비밀이면 비밀이지, 적당히는 뭐야.”
“아니, 죽어도 말하면 안 되는 비밀도 있지만, 이건 그 정도 수준은 아니어서.”
도아의 말에 파드는 턱을 긁적이고 말했다.
“뭐 알았어. 적당히 비밀로 하지.”
도아는 길가를 슬쩍 벗어나서 허리에 찬 오두막을 내려놓았다.
뒤로 슬슬 몇 걸음 물러선 후에 파드에게도 물러나라고 손짓했다.
“오픈.”
다시 봐도 놀라운 광경이다.
쑤욱!
오두막이 커지면서 차차착 모양이 새로 형성된다.
순식간에 중형 오두막이 생겨났다.
처음에 방 한 칸이었던 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러고 보니…….’
모아둔 포인트가 얼마나 되나?
“우와악!!”
파드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도아도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파드? 뭐야, 왜? 괜찮아?”
“괜찮냐니! 지금 이걸 보고 괜찮은 사람이 어디 있어? 이게 뭐야? 대체?!”
“어……. 커지는 오두막?”
로베른이나 쿠낙, 그리고 만났던 사람들의 반응이 담담했기 때문에 도아는 이런 반응이 오히려 생소했다.
“세상에, 진짜? 진짜 집이야? 들어갈 수 있어?”
허둥지둥 다가와서 그는 벽을 두들겨 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창문을 살피기도 했다.
“응, 들어갈 수 있지.”
도아가 현관 계단을 올라가 빙글 돌아 인사했다.
“파드를 초대할게.”
달칵
문이 열리자 오랜만이라는 듯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다.
도아는 작게 웃었다.
“댄버스 부인, 잘 지냈죠? 잠깐 병조림만 하려고 들른 거예요.”
파드는 눈이 화등잔만 해져서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진짜 집이잖아?!”
“진짜 집이지.”
베리가 엣헴 하고 파드의 다리를 툭툭 쳤다.
“뎌가 안내해 드릴게여.”
그러며 힐끗 도아를 보아서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리가 방을 안내하는 동안 도아는 장식장에 병조림 세트를 꺼내고 복숭아를 우르르 담았다.
설탕을 녹이기 위해 물을 끓이는 동안 도아는 댄버스 부인의 레벨을 확인했다.
아이템
댄버스 부인
▸ 레벨 : 15
▸ 스킬 : 가사, 수리, 천 제작
▸ 인연 레벨 : 1
‘아, 고작 2레벨밖에 안 올랐네. 게다가 인연 레벨은 여전히 1이잖아? 이거 어떻게 올리지…….’
도아는 일단 스킬 포인트 2개를 어디에 넣어야 하나, 고민했다.
‘일단 천 제작 레벨 3을 찍고.’
포인트 하나를 사용해서 일단 천 제작을 최대치로 올렸다.
‘청소도 하나 올려둘까?’
댄버스 부인이 청소 쪽도 관심이 있어 했지.
도아는 청소에도 포인트를 하나 주었다.
아이템
댄버스 부인
청소 레벨 2
▸ 무척 더러운 물건과 공간을 청소합니다.
▸ 일반적이지 않은 더러운 생물도 청소합니다.
‘좋아.’
도아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 넋이 나간 파드가 다가와 테이블에 앉았다.
어디까지나 베리는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때다나져?(대단하죠?)”
파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나도 모험가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런 건 처음 봐…….”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도아는 슬쩍 모인 세계수 포인트를 확인했다.
1300포인트.
제법 많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 말고 나중에 써야지.’
사실 하고 싶은 건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아이템
다락방 / 1500포인트
▸ 2층 지붕 밑을 다락방으로 개조합니다.
▸ 높이가 낮지만, 쾌적한 다락방을 다용도로 사용해 보세요.
▸ 4인용 세트와 요리도구 10종을 추가합니다.
중형 부엌 / 800포인트
▸ 좁은 부엌에서 요리하기 힘드시죠?
▸ 작은 기본 부엌에서 중형 부엌으로 크기를 키워 드립니다.
▸ 큰 오븐에 화구가 2개!
▸ 기본 요리 세트도 업그레이드!
▸ (2층 개축은 다락방을 지은 후에 가능합니다.)
지하 저장고 / 2000포인트
▸ 생물 음식들의 보관이 어려우셨나요?
▸ 천연 냉장고인 지하 저장고를 이용해 보세요!
▸ 한겨울에도, 한여름에도 신선하게 보관해 드립니다
▸ 유통기한을 최소 5배 늘려주는 지하 저장고!
▸ *저장용 선반 및 용기 포함
방3
▸ 세 번째 방을 만듭니다.
욕실2
▸ 두 번째 욕실 겸 화장실을 만듭니다.
그 외에도 ‘호화 욕실’이라거나, ‘전체 방 크기 늘림’ 같은…….
‘원하는 건 많은데 포인트가 부족하다. 어디 서브 퀘스트 큰 거 한 방 없나?’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도아는 포인트 창을 닫았다.
그 사이 댄버스 부인이 냉차를 내왔다.
둥실둥실 떠서 날아오는 컵을 보고 파드가 중얼거렸다.
“이제 놀라기도 지쳤어…….”
“고마워요, 댄버스 부인.”
“댄버스 부인?”
“응, 이 집에서 일해 주고 있는 집요정이야.”
“우와.”
파드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차를 마셨다.
그사이에 물이 끓어올라 도아는 설탕을 충분히 녹인 후에 복숭아를 넣은 병마다 설탕물을 부어 넣었다.
그리고 뚜껑을 닫고, 선반으로 착착.
복숭아 병조림이 나란히 늘어선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흐뭇했다.
“설탕물에 절이는 건가?”
“응.”
“엄청나게 호화롭군.”
“돌설탕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모험가의 특권이지.”
도아의 말에 파드가 피식 웃었다.
“네가 우리 영지에 와 줘서 정말 다행이야.”
“별말씀을.”
도아가 겸손하게 두 손을 모았다.
똑똑
그때 생각지도 못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베리가 높은 의자에서 뛰어 내렸다.
“데가 가 보게여.(제가 가 볼게요.)”
짧은 다리로 종종 뛰어서 베리는 읏차, 하고 높은 문손잡이를 돌려 열었다.
“두구세여?(누구세요?)”
현관 앞에 서 있는 것은 북실북실한 털을 가진 크고 위풍당당한 고양이였다.
‘노르웨이 숲?!’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다는 고양이종이 생각나는 모습이다.
한 손에 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었는데, 그걸로 현관문을 두들긴 듯싶었다.
큰 고양이는 베리를 한번 내려다보고 안을 바라보았다.
헉 하고 파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냐냑세세!”
“엉?”
도아가 놀라 그를 돌아보았고, 베리도 화들짝 놀라 꼬리를 부풀렸다.
냐냑세세가 씩 웃었다.
꼭 체셔캣 같은 미소다.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냐냑세세가 말했다.
“그럼 초대해 주지 않겠나? 이방인.”
❖ ❖ ❖
오두막 안은 달콤한 향기로 가득했다.
댄버스 부인이 도아가 허둥지둥 냉동 주머니에서 꺼낸 쿠키 반죽을 굽는 냄새였다.
고요함 속에서 차를 홀짝이다가 결국 파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혼자 오신 겁니까? 다른 호위들은 어떻게 하셨나요?”
“나 없어도 다들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아니, 냐냑세세가 여기 있는데 어떻게 잘 지내고 있겠습니까?”
파드는 답답한 표정이었다.
본인이 기사라서 그런가, 호위 대상을 놓친 호위들을 안쓰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냐냑세세가 그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이봐, 길잡이 청년.”
“네?”
“길잡이 아닌가? 이 사람을 내게 데려다 주려고 했지?”
냐냑세세의 말에 파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볼일 끝난 거지?”
“그…… 렇지요……?”
어색하게 파드가 말끝을 늘렸다.
냐냑세세가 찻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럼 나가게.”
“…… 네?”
“볼일 끝났으니, 나가라고. 난 저쪽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 말이야.”
“아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파드는 도아를 보았다가, 냐냑세세를 바라보았다.
도아가 눈을 찌푸리고 말했다.
“안 나가도 괜찮아요.”
“하지만…….”
파드가 말꼬리를 늘리고 망설이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냐냑세세의 말이 옳습니다. 제 일은 여기서 끝이죠.”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도아 님,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일이 끝나시면 꼭 다시 산―다르크에 들러주세요.”
도아도 따라 일어났다.
“정말로 가려고요?”
“뭐, 냐냑세세의 말에는 항상 이유가 있으니까요. 따라서 나쁠 건 없죠.”
파드가 속닥거렸다.
도아는 끙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특별한 장소에 못 데려다 드려서 아쉽네요.”
“저도요.”
도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탄산수.
기대했는데.
도아의 실망한 표정에 파드가 씩 웃었다.
“다음에 알려드릴 테니까 꼭 다시 저희 영지에 들르시는 겁니다.”
“네. 참, 이거 가져가요.”
도아가 그에게 복숭아 병조림 한 병을 안겨주었다. 같이 만들었으니 맛을 봐야지요.
“나중에 영지에 오셔서 주셔도 되는데요.”
“혹시 모르니까요. 그래도 들를게요. 레하 님께 부탁해 둔 것도 있고요.
어차피 마법사 링 리더인 바르샤와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도 할 겸 들려야 한다.
도아의 말에 파드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그는 공손하게 냐냑세세에게도 인사를 남기고 오두막을 떠났다.
도아는 도로 자리에 와서 앉으며 말했다.
“꼭 파드를 쫓아내지 않으셔도 됐을 거 같은데요.”
“길잡이가 있으면 이방인이 날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도아는 눈을 깜박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제가 왜 왔는지 아세요? 맞춰 보시겠어요?”
냐냑세세가 눈을 크게 떴다.
금빛 눈동자 가운데에 가느다란 동공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아하하하하.”
갑자기 호탕하게 웃어재끼더니 냐냑세세가 “후…….” 하고 숨을 내쉬고 답했다.
“나는 길거리에서 남자친구가 언제 생길지 알아맞히거나 연, 월, 시까지 내뱉으면서 종말을 이야기하는 싸구려 예언자가 아닌데.”
도아가 눈을 끔벅거리고 물었다.
“연, 월, 시까지 맞추면 싸구려 예언자가 아니죠?”
굉장한 예언자지.
냐냑세세가 킥킥 웃더니 푸른색 로브 소맷자락에서 커피를 꺼냈다.
“그걸 맞추는 예언자는 없으니까. 그게 가능하다고 말하는 놈들은 다 사기꾼들뿐이야.”
커피 연기가 퍼진다.
털이 풍성한 냐냑세세는 새하얀 페르시안 같던 라크샤샤와 다르지만 비슷했다.
도아가 물었다.
“왜 맞추는 예언자가 없어요?”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니까.”
“?”
냐냑세세가 커피를 깊이 빨아들였다.
불꽃이 바지직 하고 크게 번진다. 커피 향이 더 짙어졌다.
“신이 인간에게 자유를 부여했지. 신도 침범하지 못하는 자유를 말이야.”
냐냑세세가 빙긋 웃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의 행동을 읽어서 연, 월, 시를 맞추겠어? 그런 건 우연이거나 사기꾼뿐이지.”
“알쏭달쏭한걸요.”
도아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기울였다.
“하지만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그럼 제가 여기에 온건 어떻게 아셨죠?”
“오늘 중요한 손님이 올 거 같다는 느낌이 왔거든. 대충 이쪽이겠구나, 하고.”
“모르겠네요.”
“이건 내 감각이니 설명해 주기 어렵지. 그대는 그대의 마나가 마나관을 스치며 달리는 감각을 누군가에게 이해시킬 수 있나?”
“어…….”
도아는 잠시 후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사실 불가능할 거 같아요.”
“마찬가지라네.”
“알겠어요. 큼. 그럼 냐냑세세. 저는 B급 모험자인 김도아라고 합니다. 남대륙보다 먼 곳에서 왔어요.”
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인사했다.
“반갑네. 나는 냐냑세세라는 지위를 맡고 있긴 하지만, 세계수의 뜻일 뿐. 나 자신은 평범한 고양이족이라네.”
도아는 그 말에 새삼 냐냑세세를 바라보았다.
툴레에게는 아직 세계수 신앙이 많이 남아 있는 걸까?
냐냑세세가 도아를 빤히 보고 웃었다.
“내가 살아생전 아주르 나자크를 보게 될 줄이야. 길지 않은 고양이 생에서도 특이한 일이야.”
도아는 멋쩍어 눈가를 어루만졌다.
냐냑세세가 후욱 하고 연기를 내뿜고 물었다.
“자, 그래서. 먼 곳에서 왔으면서도, 세계수를 눈에 품고 있는 아이야. 무엇 때문에 날 찾아왔느냐?”
도아는 자리에 앉으며 답했다.
“비추는 샘의 봉인을 풀 열쇠를 찾고 있습니다. 부디 냐냑세세의 지혜를 빌리고 싶어요.”
하나의 주문.
세 개의 열쇠.
하나는 투아지트 가문에서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나머지 두 개의 열쇠는 어디에 있는 걸까?
“…… 흠…….”
냐냑세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럼 나도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될까?”
“뭔가요?”
“이 숲에 넘친 던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네, 들었어요. 아, 잠깐만요. 이거 설마…….”
질문 하나에 답을 얻기 위해서 끊임없이 퀘스트를 반복하는 퀘스트 굴레에 빠지는 시추에이션인가.
냐냑세세가 낄낄 웃었다.
“다 공략해 달라고는 하지 않겠네. 하지만 태양 신전 근처에 있는 놈은 처리해 줄 수 없겠나?”
“아, 여기 주변에 넘친 던전 등급이 뭐라고 했었죠? 던전을 깨려면 여러 가지 준비도 필요하고…….”
게다가 넘친 던전을 공략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냐냑세세가 빙긋 웃었다.
“내 생각에는 도움을 줄 사람이 근처에 있는 거 같은데? 그래, 아주 가까이에 있군. 허어, 거의 다 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