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계수 여행사 : S급 먹방대모험 패키지-67화 (14/100)

⊹ 67화 ⊹

치즈!

“아뇨, 아직이요. 그러고 보니 비에나리에에서는 제대로 시장이나 도시를 둘러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요.”

“그럼 수도에 꼭 들러 보게. 우리는 산이나 숲이 많다 보니까 목축이 발달되어 있거든. 산양 젖으로 만든 치즈는 최고지. 게다가 산에 풀어서 도토리를 먹여 키운 돼지는 정말 훌륭하지.”

“맛있겠다…….”

“거기에 겁이 없다면 ‘케를’에 도전해 봐도 좋아.”

“케를이요?”

“매운 고깃국이라고 할까. 지방마다 조금씩 다른데, 어떤 곳은 내장을 많이 넣기도 하지만, 주로 고기로 만들지. 고기와 감자, 당근……. 각종 뿌리야채와 토마토를 넣고 대량으로 푹푹 끓이면서 매운 고춧가루를 넣어. 고기가 야들야들해질 때까지 푹 끓인 걸 한입 먹으면 속이 뜨끈뜨끈해져.”

“우와!”

생각만 해도 입 안에서 침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비에나리에는 겨울이 길고 추우니까. 아무리 털이 두툼한 툴레라고 해도 몸을 따끈따끈하게 하는 요리가 많이 발달했거든.”

“꼭 시장에 들르겠어요.”

도아의 말에 냐냑세세가 낄낄 웃었다.

도아는 이야기 중에 베리가 점점 뒤처지는 걸 발견했다.

“베리, 이리 와.”

도아가 베리를 불러 안아 올렸다.

베리가 부끄러운 듯 몸을 움츠렸다.

냐냑세세가 그런 베리를 힐끔 바라보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 툴레 아이는 누군가?”

“제 짐꾼이에요.”

“짐꾼?”

냐냑세세의 목소리가 묘해졌다.

도아는 구구절절 베리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냐냑세세에게 하는 게 베리에게는 부끄러울 수도 있지 않은가?

“흐음.”

냐냑세세가 천천히 베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비에나리에의 아이인가?”

“제가 듣기로는요.”

도아가 대신 대답해서 베리는 도아의 품 안에서 우물쭈물하며 냐냑세세를 바라보았다.

“부모는?”

“없다고 들었어요.”

“그렇군.”

냐냑세세가 불쑥 베리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너, 내 시종으로 올 생각 없느냐?”

“엇.”

목소리를 낸 건 도아였다.

베리도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냐냑세세가 허리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나도 나이가 있으니 심부름꾼 정도는 필요해져서 말이다. 몇 살이지?”

“일곱 짤이여…….”

“일곱이면 괜찮군.”

냐냑세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쯤이면 이제 부모님과 떨어져서 일을 배워도 되는 나이지.”

“그런 거예요?”

오히려 도아 쪽이 놀라워했다.

냐냑세세가 웃었다.

“인간 아이도 열 살쯤 되면 그렇지 않나?”

“그래요??”

“남대륙은 다른가 보지?”

“아, 조금요……? 아니, 나라별로 다른 건가. 제가 살았던 곳은 안 그래서…….”

도아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대충 이해는 간다.

아이는 약하니까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상식이 된 것은 정말로 얼마 되지 않았다.

옛날에는 자식은 곧 노동력이었다.

즉, 부모의 소유인 물건이다.

특히, 농사를 짓는 상황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소중한 노동력이고,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제 몫의 일을 해야 한다.

먹고 사는 것은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일을 하지 않으면 제 몫을 챙길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도 당연히, 자연스럽게 일을 하는 세계다.

‘이런 사상적인 면에서 현대랑 괴리감이 엄청 심하다고 해야 하나. 노예제도도 그렇고.’

냐냑세세가 말했다.

“도아 님은 무척이나 과보호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나 보군. 아주르 나자크여서 그런가?”

도아는 순간 웃음을 터트릴 뻔해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놓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과보호하는 부모님이셨나 봐요.”

쿠낙과 로베른은 저도 모르게 힐끗 도아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 모두 대강 도아의 이야기를 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냐냑세세는 더는 파고들지 않고 베리를 보며 이어 말했다.

“B급의 곁에서 짐꾼으로 일하는 건 아무래도 힘들 수 있으니 말이야. 마음이 생기면 언제든지 알려주려무나.”

베리는 “녜에.” 하고 공손하게 인사했다.

갑작스러운 권유에 놀랐지만, 베리는 제 마음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도아에게 찰싹 더 붙었다.

도아는 피식 웃고는 베리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베리의 귀가 파닥거린다.

길은 마수가 튀어나오는 숲치고는 무척이나 잘 정돈되어 있었다.

냐냑세세가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여름도 좋지만 겨울에 다시 오라고. 겨울의 비에나리에는 정말 예쁘니. 숨결조차 얼어붙고, 눈이 엄청나게 내리지. 모든 게 환상적으로 빛나 아름다워.”

“그리고 인간은 얼어 죽을 거 같은데.”

로베른이 중얼거리자 냐냑세세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마나 사용자들은 괜찮지 않나?”

“짐 정도 된다면, 비에나리에의 추위도 문제는 아니지.”

“그 망토를 보니 그럴 거 같네.”

냐냑세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보는 눈이 있군.”

로베른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혹시나 로베른이 무례하게 냐냑세세를 부를까 봐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다행히도 없었다.

태양 신전 주변에는 여기저기 천막이나 텐트가 쳐져 있었다.

돌기둥 열두 개가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서 있는 게 보였다.

생각보다 돌기둥이 무척 커서 도아는 깜짝 놀랐다.

“와아…….”

커다란 크기의 조형물은 위압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사람들도 많이 보이네요.”

도아의 말에 쿠낙이 답했다.

“이 주변은 마수가 나오지 않거든요.”

“아, 진짜요? 신기하네요.”

“네. 덕분에 여기가 라카냐 숲의 주요 거점이 되었답니다.”

“뭔가 있는 걸까요…….”

도아가 신중하게 돌기둥을 바라보았다.

“학자들이 연구했지만, 아직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흐음…….”

도아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저쪽에서 검은색 고양이들이 달려 나왔다.

단단히 무장을 한 차림새였다.

“냐냑세세!”

“냐냑세세!!”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 순식간에 우르르 냐냑세세를 둘러쌌다.

“대체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호위는 어떻게 하시고요.”

“탐색 나간 2조와 3조를 불러들여.”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냐냑세세는 웃으며 모자에 붉은 깃털 장식이 달린 검은 고양이에게 말했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것도 내 수명 아니겠나.”

“냐냑세세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것도 제 수명이겠지요.”

검은 고양이가 딱딱한 목소리로 답했다.

새까만 털이 반지르르하고 레몬 색에 가까운 밝은 노란빛 눈동자가 들어온다.

베리가 호박색에 가까운 짙은 금색이면 저쪽은 데이지처럼 밝은 빛이었다.

“이쪽은 내 손님이네.”

냐냑세세가 도아 일행을 막대기로 가리켰다.

도아가 손을 가슴 근처에 대는 식으로 가벼운 인사를 하자 검은 고양이는 빤히 도아를 바라보다가 탄성을 내질렀다.

“아주르 나자크.”

냐냑세세가 싱긋 웃었다.

“이분들이 이 근처의 던전을 공략해 주기로 했다네.”

그 말에 검은 고양이들의 꼬리가 부풀어 올랐다.

그때 저쪽에서 “냐냑세세!” 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또 다른 검은 고양이다.

냐냑세세가 왔다는 소식이 전해진 건지 다른 텐트에서도 나온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이고.’

도아는 눈을 굴렸다.

아무래도 소동이 진정될 때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았다.

❖ ❖ ❖

[B급 던전 : 떨어지는 태양의 도시]

던전은 자란다.

한 번 넘친 던전은 같은 등급이라고 해도 수준이 다르다.

거기다가 넘친 채로 방치되어 있으면 던전 코어는 점점 더 강력한 에너지를 축적, 방출한다.

던전 코어가 강해질수록 던전 역시 강해진다.

그러니 오래된 던전은 자연스럽게 등급이 올라가기 마련이다.

B급 던전이라고 해도, 다른 B급 던전과 비교하면 안 된다.

하지만 얼마만큼 자라는지, 어떻게 자라는지 알 수가 없는 데다가, 이런 던전의 던전 코어들은 실제보다도 낮은 등급으로 측정된다.

가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새로 생긴 던전 코어와 자란 던전 코어의 에너지 축이 다르다는 가설.

던전이 오래될수록 던전 코어가 완벽해져서 방출 에너지가 적어진다는 가설.

단순히 던전 깊숙한 곳으로 던전 코어가 숨기 때문이라는 가설.

등등

‘뭐, 어쨌든.’

도아는 커피대를 손끝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중요한 건 오래된 던전은 성장하고 자란다는 거지.’

<오래된 던전만큼 교활하다.>

그런 속담도 있다나?

태양 신전 근처에 있는 ‘떨어지는 태양의 도시’ 역시 유명한 넘친 던전이었다.

레카냐 숲에는 이런 넘친 던전이 모두 셋인데 이름이 태양, 달, 별이라고 했다.

떨어지는 태양의 도시, 떨어지는 달의 도시, 떨어지는 별의 도시.

“이름이 있으니까 정보도 있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정보가 일절 없죠?”

도아의 물음에 로베른이 피식 웃었다.

“들어간 자 중에 돌아온 자가 아무도 없으니까.”

“으으으으……. 근데 B급 던전이면 A급 파티도 들어갈 수 있잖아?”

A급 파티가 못 깨는 B급 던전이 존재한단 말이야?

도아의 말에 쿠낙의 얼굴이 진중해졌다.

“여러 가지 패널티가 붙는 던전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던전도 있어요?”

“있지. 낮은 등급 던전이라도 종종 그런 일이 발생한다네. 이런 질문을 들으면 B급이 초짜인 티가 나는군.”

“그야, 초짜는 초짜니까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어떤 패널티예요?”

“저는……. ‘검이라는 무기를 쓰지 못한다’는 패널티에 걸린 적이 있습니다.”

“그거 엄청 미묘하네요.”

“짐의 경우에는 ‘물을 마실 수 없다’는 패널티에 걸린 적이 있다네. 만약 길이가 긴 던전이었다면 골치 아팠겠지.”

“물만 아니면 되는 거라면, 차는 되는 건가?”

“그렇다네.”

“진짜 미묘하네.”

불편하다면 불편하지만, 어떻게든 이겨내려면 이겨낼 수 있는 패널티들이다.

“만약 그런 패널티가 걸린다고 해도 던전에서 나와서 무기를 바꿔가거나 할 수도 있잖아? 나와서 물을 마실 수도 있고.”

패널티 때문에 B급 던전에서 한 번도 사람이 돌아온 적 없다는 건 이상하다.

도아의 말에 냐냑세세가 말했다.

“그래서 ‘떨어지는 태양의 도시’에는 한번 입장하면 공략 전에는 나갈 수 없다는 패널티가 걸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가설을 세우고 있지.”

“아.”

그럴듯한 가설이다.

냐냑세세가 이어 말했다.

“그리고 한 번에 공략을 불가능하게 하는 요소도 같이 존재하겠지?”

“그럼 준비를 엄청 빡세게 하고 가야겠네.”

한 달 치 식량과 물을 준비해 가야겠다.

아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두 달 치?

‘나야 이공간 가방도 있고, 냉동 가방도 있고, 오두막도 있지만.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던전을 공략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겠지.’

도아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일행은 냐냑세세의 천막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

냐냑세세의 천막은 오래되어 낡은 것을 정성스럽게 덧칠하고 수선한 천막이었다.

안쪽의 가구들 역시 이동하기 편한 접이식 가구들 위주였다.

검은 고양이 무리는 레카냐 숲의 레인저라고 한다.

“마수가 많은 숲인데, 레인저가 있어?”

“태양 신전까지는 길이 있으니까요. 그 길의 관리를 저희 ‘검은 구름’이 하고 있습니다.”

붉은 깃털 달린 모자를 쓴 검은 고양이가 대신 대답했다.

“하지만 여기는 누구의 영토도 아니라고 들었는데요.”

도아의 말에 그녀가 싱긋 웃었다.

“네, 저희 검은 구름은 그러니 자경단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순례자들의 후원금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자체적으로 마수를 사냥해서 자금을 벌기도 하고요. 저희만큼 숲을 잘 아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그렇겠네요.”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전 검은 구름의 리더인 티하타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B급 모험가 김도아라고 합니다.”

“다른 두 분은 소개받지 않아도 알 것 같네요.”

말하고 티하타가 경멸의 눈으로 쿠낙을 바라본 후에 발로 발밑의 흙을 뒤로 차는 듯한 동작을 했다.

쿠낙은 속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이럴 때 기분 나쁜 건 나뿐인가 봐.’

도아는 뚱한 표정을 지었고, 냐냑세세가 그걸 눈치채고는 말했다.

“그럼 던전 공략 준비를 하러 떠나야겠구만.”

“네, 그래야죠.”

도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티하타가 밝은 목소리로 도아를 향해 말했다.

“저희 검은 구름이 도와드릴까요. 아주르 나자크와 함께 던전 공략을 한다면 영광일 겁니다.”

“아니요. 검은 구름은 계속 레카냐 숲을 돌봐 주세요. 여러분의 전력을 빼앗아 갈 수는 없지요.”

도아가 정중하게 답하자 티하타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도아가 베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리 봐, 베리야.”

“뎌 덜을 수 이써여.(저 걸을 수 있어요.)”

씩씩한 목소리로 하는 말에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쿠낙이 천막 입구를 걷어 주었다.

‘와아.’

사람들의 이목이 단숨에 이쪽을 향해 집중되었다.

냐냑세세를 보러 온 사람들은 검은 구름에게 밀려나 있었다.

그런데 냐냑세세와 독대한 인간이 나왔으니 그리 달갑지는 않겠지.

도아는 사람들 사이를 성큼성큼 지나갔다.

해왕이의 고삐를 풀고, 베리를 바구니에 넣어주었다.

빠르게 이동하려면 이게 좋다.

도아가 준비하는 사이 사람들은 면밀히 도아 일행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세상에. 아주르 나자크야.”

“진짜인가.”

“쉿, 저것 봐. 마검 사용자다.”

“저주받은 자가 온 건가? 태양 신전에 감히?”

“아주르 나자크가 끌고 온 게 아닐까?”

“마검의 피를 바치기에 태양 신전은 훌륭한 장소이긴 하지.”

“처형식을 구경하게 되나?”

“그건 기대되는데…….”

“그런데 처형당하는 사람이 저렇게 침착할 수 있나?”

“마검도 아주르 나자크 앞에서는 힘을 못 쓰는 거지.”

자기들이야 소곤거리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모험가의 귀에는 다 들린다.

‘기분 나빠!’

도아는 멈춰 서서 찌릿하고 그쪽을 노려보았다.

눈이 마주친 사람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인다.

도아가 쿠낙의 손을 덥석 잡아 위로 치켜올렸다.

“친구예요!”

쨍하게 울린 말에 모두가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도아가 씩씩거리며 쿠낙을 잡아끌었다.

도아가 빠른 걸음으로 종종 걸어도, 쿠낙의 긴 다리는 그렇게 빠르게 걷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도 못 이기는 척 그녀의 뒤를 따라 걷는 게 좋았다.

다른 사람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붉은색 리본만 시선에 들어온다.

“……”

쿠낙이 갑자기 멈춰 서서 도아도 멈췄다.

그녀가 휙 하고 쿠낙을 돌아보며 물었다.

“왜 멈췄어요?”

“도아 양이 무슨 표정을 하고 있나 궁금해서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