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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여행사 : S급 먹방대모험 패키지-73화 (20/100)

⊹ 73화 ⊹

그 이후로 다시 동영상을 보려고 하니, 실시간이라 도망간 건지 동영상이 아닌 설명서로 대체되어 있었다.

1. 정화 모드를 켭니다.

도아는 정화 모드를 켰다.

그녀의 눈동자 테두리가 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2. 세계수 가지와 동조를 천천히 올립니다.

핏 하고 그녀의 눈앞에 막대그래프가 생겨났다.

기본 동조율은 15%다.

도아는 천천히 동조율을 올리기 시작했다.

20, 25, 30…….

어디선가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한 듯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희미한 아카펠라 성가가 들렸다.

70, 75, 80…….

그녀의 눈이 타오르는 듯이 뜨거워졌다.

도아의 몸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 뒤로 반짝이는 빛무리가 모이기 시작했다.

90%

그녀의 머리끝이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해서 완전히 흰색이 되었다.

95%

도아의 머리 뒤로 화려한 헤일로가 만들어졌다. 도아의 눈에서 생리적인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100%

로베른은 뒤로 물러나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써야 했다.

거기에는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인간의 형상 속에 강림해 있었다.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도, 어떤 감정의 기색도 없다.

빛나는 새하얀 손이 검을 뽑아냈다.

검은색 오염들이 견디지 못하고 지워지듯 밀려 나간다.

“컥―!”

숨이 막힌 듯 목을 감싸며 쿠낙이 주저앉았다.

그런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도아―인지 뭔지 모를 무언가는 작업을 계속했다.

쿠낙은 숨이 막혀왔다.

온몸이 뜯겨나가는 기분이다, 아니면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모든 혈관과 마나관, 세포 하나하나를 불로 지져대며 동시에 얼리는 기분이었다.

목에 핏대가 섰다.

그는 그저 엎드려서 덜덜 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박박 바닥을 긁지만 단단한 장갑 덕분에 손톱이 들리는 일은 없었다.

“컥, 쿨럭―!”

참을 수 없는 기침이 터져 나왔다.

새까만 액체가 입가에서 줄줄 흘러나왔다.

비명이 고막을 찢을 듯이 들려오고 그는 참을 수 없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다음 밀려온 감정은 분노였다.

쿠낙은 핏발 선 눈으로 서 있는 도아를 바라보았다.

화려한 헤일로와 무심한 눈동자.

새하얀 머리카락은 진줏빛으로 빛났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아름다움은 아름다움보다는 공포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그는 분노가 치밀었다.

치밀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전신을 불태우는 고통조차도 이겨내는 분노였다.

비틀비틀 일어나는 쿠낙을 보며 로베른이 천천히 도아의 뒤쪽에서 돌아 나왔다.

표정을 보면 정상이 아닌 게 보인다.

무기가 없지만, 무기가 없다고 싸울 수 없다면 S급이 아니지.

로베른은 힐끗 도아를 돌아보았다가 경악했다.

“김도아!”

저도 모르게 이름을 부르며 도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예상외로 그녀를 둘러싼 빛은 그를 튕겨내지 않았다.

빛이 그를 감싸며 그 당혹스러움과 경악을 뚫고 바늘처럼 안온함이 밀려 들어온다.

로베른은 그 안온한 기분을 뿌리쳤다.

그녀의 눈에서는 이제 눈물이 아니라 피가 흐르고 있었다.

파직

기묘한 소리와 함께 도아의 오른쪽 눈에 금이 갔다.

“도아 양!”

쿠낙, 그 자신의 경악이 오염이 만들어 내는 분노를 밀어냈다.

“컥, 쿨러, 이제, 그만―”

부탁이다.

부탁입니다.

이제 그만 해 주세요.

안 그러면 당신이―

파앙―!!

요란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한순간 모든 서광과 빛이 사라졌다.

헤일로도, 희미한 성가 소리도. 모든 게 뚝 끊어졌다.

빛이 사라지자 어두움과 정적이 찾아왔다.

로베른은 그대로 쓰러지는 도아를 붙잡았다.

“김도아!”

다시 이름을 부른다.

“도아 양!”

쿠낙도 달려왔다.

이제 그를 괴롭히던 모든 고통도 사라졌다. 그는 그 고통이 사라졌다는 게 오히려 두려워졌다.

혹시.

만약

어쩌면.

로베른이 조심스럽게 정신을 잃은 도아를 눕혔다.

그녀의 눈은 감겨 있었다.

단단히 감겨 있는 눈가에는 피눈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오른쪽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가 두렵다.

그는 자신이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놀랐다.

그때 도아가 왼쪽 눈을 떴다.

“아…….”

“정신이 드나?”

그녀의 눈이 이리저리 초점 없이 헤매더니 쿠낙에게 닿았다.

“도아 양. 괜찮습니까? 통증은―”

“…… 쿠낙, 눈이 금색이네요.”

즐거운 듯 도아가 웃었다.

충격을 받아 쿠낙은 말을 잃었고, 로베른은 저도 모르게 쿠낙에게 시선을 주었다.

마검의 눈은 이제 황금빛이었다.

도아가 말했다.

“아, 근데 전 이제부터 시작일 거 같거든요……? 죽지는 않을 거예요, 죽지는.”

다시 남자들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도아가 작게 숨을 헐떡였다.

그녀가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떨리는 손으로 도아는 긴급호출 버튼을 꺼내어 꾹 눌렀다.

거기까지였다.

그녀의 손에서 버튼이 떨어지고 도아의 몸이 축 늘어졌다.

“…… 도아 양?”

불안한 쿠낙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침묵을 채우고―

“컥! 쿨럭! 커흑!”

도아가 발작적으로 기침을 시작했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고통스러운 듯 허리가 크게 들렸다가 팔다리를 버둥거린다.

로베른이 그녀를 꽉 잡았다.

“컥, 헉, 하으으윽―!”

잡은 팔에 매달리듯 하며 도아가 격렬하게 피를 토해냈다.

한참 버둥거리더니 이제는 그 기운도 빠진 듯이 간헐적으로 희미하게 경련만 일으켰다.

입가와 코에서 피가 줄줄 흐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눈에서는 피가 흐르지 않는 점이라고 해야 하나.

그 와중에도 로베른의 머릿속은 냉정하게 돌아갔다.

그에 비하면 마검―아니 이제 마검이 아닌가.

아니, 그래도 아직 마검을 못 벗어났으니.

저 마검 놈은 당황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희게 질려서 벌벌 떨고만 있다.

짜증이 나서 로베른은 그의 얼굴에 주먹질을 하고 말았다.

퍽!

평범하게 휘두른 주먹인데도 그대로 넋을 놓은 채 얼굴을 얻어맞고서야 쿠낙은 그를 바라보았다.

얼굴이 아프다는 감각도 한 박자 늦게 찾아왔다.

로베른이 그에게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던전 코어를 뽑아. 당장 나가야 하니까. 안 죽는다고 본인 입으로 말했잖아.”

쿠낙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던전 코어로 달려갔다.

코어를 뽑자 한순간 모든 풍경이 바뀌었다.

폐허가 되었지만 고즈넉한 도시로 풍경이 바뀌고 하늘은 푸른빛으로 아름답게 빛난다.

쿠낙은 던전 입구가 생기는 걸 확인했다.

달려가 도아의 벨트 주머니에서 고형 포션을 꺼냈다.

그대로 도아의 입 안 핏물에 억지로 넣으며 그녀가 삼키기를 종용했다.

그때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비켜!!”

놀라 돌아보니 거기에는 새하얗고 털이 풍성한 고양이가 서 있었다.

등에는 고양이 발바닥 무늬가 그려진 약상자를 매고 있다.

약초사였다.

“이 빌어먹을, 무모하기 짝이 없는 제자 같으니라고!”

로베른과 쿠낙 사이를 파고든 라크샤샤는 도아의 상태를 살폈다.

약초 상자에서 꺼낸 주사기로 그녀의 팔에 일단 긴급투약을 한 후에 라크샤샤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당장 밖으로 나가지.”

로베른과 쿠낙은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도아를 살릴 수 있는 게 이 사람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로베른이 도아를 망토로 말아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던전 입구는 평이하게 생겨서 통과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푸른빛으로 바뀐 던전 표지를 보고 반가운 얼굴로 마중 나왔던 티하타는 도아의 상태에 놀랐다.

라크샤샤가 외쳤다.

“아무 곳이나 실내로! 누울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하게!”

명령인데도 그녀는 가타부타 말없이 길 안내를 시작했다.

로베른은 그 오두막이 열리지 않아 짜증 났다.

본인밖에 열 수 없다면, 본인이 죽어가고 있는데 무슨 소용인가?

라크샤샤는 때때로 도아를 살폈다.

“멍청한 제자야, 네가 이런 거 알면 조세핀이 울 거다.”

“제대로 정신 줄 잡고 있어. 내가 뭐라고 했었냐.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을 못 이긴다고 했지?”

쿠낙이 도아를 안아 들고 속도를 높였다.

피비린내가 느껴진다.

도아의 몸이 품 안에서 떨리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얕아지는 호흡소리와 느려지는 심장 소리가 너무나도 잘 들린다.

S급은 이럴 때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정보량이 너무 많았다.

태양 신전 근처에 도착하자 냐냑세세는 기꺼이 제 천막을 내주었다.

라크샤샤는 명령을 잔뜩 내리고는 도아를 데리고 천막 안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궁금해했다.

쿠낙은 주먹을 꽉 쥐었다. 로베른은 혀를 찼다.

무력감에 혀끝이 썼다.

❖ ❖ ❖

‘와씨. 죽을 뻔했네!’

[과부하의 위험이 있습니다!]

라는 경고문구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가 어? 중요하게 퀘스트하고 있는데 어?

설마 죽이겠어?

‘아니, 죽이지는 않았지. 죽이지는.'

도아는 제 몸을 조금씩 꼼지락거려 보았다.

온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무거웠다.

세포 단위로 작신작신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동조율이 점점 오를수록 도아의 마음에 드는 생각은 딱 하나였다.

‘와, 엿 됐다.’

어마어마한 힘이 쏟아져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게 무거울 정도였다.

부풀어 오르는 풍선에 한계 이상으로 계속 바람을 불어넣는데, 그 풍선이 나다.

‘이런데도 더 들어간다고? 이런데도? 터질 거 같은데? 터진다? 나 터질 거야?’

그때쯤 동조율이 100%가 되었다.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그대로 몸이 산산조각 날 거 같았다.

안구가 뜨겁다 못해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된 거 같았다.

이러다가 뇌수가 끓어올라서 뇌가 익어 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솔직히 쬐끔 무서웠다.

그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빨리 그냥 마검을 정화하는 것.

하지만 약간 아쉽다는 마음도 들었다.

어떻게든 라이트 크리스털을 보전해서 쿠낙에게 돌려주고 싶다, 라고 약간 욕심을 부려서 이 힘을 제어해 보겠다고 한 순간.

전신이 삐걱거리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잡아둔 균형이 깨어져 무너져 내린다.

몸속의 장기들이 소리를 지르고

두개골 안으로 소리가 울렸다.

자기 안구가 깨지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지?

아니, 근데 어떻게 눈에 금이 갈 수가 있지?

하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로베른이 어깨를 붙잡자, 그쪽으로 힘이 약간 흘러나가서 제어가 가능해졌다.

‘폐하, 고마워요!'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날린 후 도아는 필사적으로 이 힘이 자신을 부수고 나가지 못하게 하면서 마검에 힘을 전부 쏟아내기 시작했다.

팡―!

마검에 달려 있던 오염된 라이트 크리스털이 산산조각 났다.

동시에 그녀 몸 안에 꽉 차 있던 힘이 단번에 사라졌다.

순식간에 바람 빠진 풍선이 되었다.

터지는 것보다는 바람 빠진 풍선이 된 게 낫기는 했지만…….

도아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래도 쿠낙을 확인해서 좋았어.’

그 바람이 빠진 한순간 찾아온 안정.

그때 쿠낙의 눈을 봐서 다행이었다.

예쁜 금색이었다.

그리고 알았다.

‘이제부터 엿 될 거라는 걸.’

죽지는 않을 거라고 미리 이야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들 걱정했겠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고 쭈글쭈글한 풍선이 되어 버린 몸은 그때부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내장이 요동치고, 피를 토해내고, 확장되었던 마나관이 수축하며 비명을 내지른다.

도아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기절하니 차라리 편했다.

중간 과정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아는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손발을 꼼지락꼼지락하니까 어쨌든 전부 멀쩡한 게 느껴졌다.

‘오히려 마나관은 늘어났네.’

억지로 확장되었던 만큼 크기가 커져 있었다. 게다가 마나량도 엄청 늘어난 듯했다.

‘이게 새옹지마인가.’

눈을 더듬어 보니 붕대로 칭칭 싸매고 있었다.

‘안 보이는 건 아니겠지.’

정 문제가 생겼으면 고객센터로 가서 항의할 생각이었다.

“으그그극.”

일어나며 소리를 내뱉는데 목이 아프다.

‘여기가 어딜까.’

“멍청한 제자야.”

가르릉거리는 목소리가 부드럽다.

도아는 움직임을 딱 멈췄다.

“라크샤샤……?”

저도 모르게 약해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가르칠 때는 분명히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는데…….”

다가온 손이 도아 눈의 붕대를 풀어 주었다.

“천천히 왼눈 먼저 떠봐라.”

털이 보송보송한 손이 와 닿았다. 도아는 슬쩍 눈을 떠보았다.

풍성하고 매끄러운 흰털을 가진 아름다운 페르시안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라크샤샤아…….”

도아의 목소리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그럴 거면 왜 무모한 짓을 했어?”

“그치만…….”

도아가 우물거리자 라크샤샤가 물었다.

“오른 눈은?”

“조금 지끈거려요.”

“흠.”

라크샤샤가 능숙하게 커피대에 불을 붙였다.

익숙하고 좋은 커피 향이 난다.

“여긴 어디야?”

“냐냑세세의 천막.”

“아.”

도아는 다리를 끌듯이 움직여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라크샤샤는 딱히 움직임을 저지하지 않았다.

그때 밖에서 두런두런 목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왔다.

“자, 들어와 보게. 오늘도 쿨쿨 잠을 자고 있는 거지, 딱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니까.”

“그럼 옮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여기는 너무 외부에 노출이 되어 있으니까요.”

“짐도 마검에게 동의하네만.”

“안정되어 있긴 해도, 움직이는 건 무리가―”

지팡이로 천막 입구를 걷은 냐냑세세가 그대로 멈췄다.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던 도아가 “아.” 하고 일행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마치 조각상처럼 굳은 일행들 사이로 작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또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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