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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여행사 : S급 먹방대모험 패키지-75화 (22/100)

⊹ 75화 ⊹

어느 쪽이 더 멋진 소식인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소식이지만, 그랑에서는 쿠낙이 메인 기사를 차지했다.

어쨌든 모험가의 도시.

욕이든 뭐든 쿠낙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가 더는 마검 계약자가 아니라는 소식에 도시는 과열되다 못해 터져버렸다.

쿠낙 샌델은 더 이상 마검 계약자가 아니다.

눈동자 색이 검은색이 아니라 금색이 되었다더라.

이 소식에는 얀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비에나리에로 가는 마차를 수배하려 했지만, 일이 그를 놔주지 않았다.

지금 당장 가서 동생을 만나고 싶다.

꽉 안아주고 싶다.

“으아아아아!!”

“길드장님!”

“안 됩니다! 못 가십니다!”

“지금 도시가 이렇게 난리 났는데, 길드장님이 도시를 뜨시다뇨!”

“길드장 관둘래!”

“무슨 소리를!”

말은 그렇게 해도, 실제로 얀이 도시를 뜰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떨어지는 태양의 도시’ 공략으로 인해서 모험가 길드에 각국의 시선이 몰려 있는 와중이었다.

모험가에게 무리하게 공략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얀은 혀를 찼다.

‘하고 싶으면 지들 군대로 할 것이지.’

던전에 기사단을 밀어 넣는 전통은 모험가 길드가 태어나면서 사라졌다.

아니, 그 기회를 틈타서 모험가 길드가 탄생했다고 해도 좋다.

각지의 던전이 터져 나오고, 각 나라의 군비가 던전에 쏟아져서 나라가 휘청할 때.

유하진이 등장했다.

그녀는 물리적으로도 강했지만, 외교와 정치에도 강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국가를 뛰어넘어 모험가 길드 같은 걸 만들지 못했으리라.

그 이후로 쭉.

모험가 길드장에게도 정치와 외교가 중요한 덕목이었다.

‘아, 진짜!!’

얀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서류를 움켜쥐었다.

외교적인 싸움을 할 때였다.

‘이게 쿠낙을 위한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잖아.’

입 안에서 몇 번이나 중얼거리는 길드장을 위해서 모험가 길드원들도 최선을 다해 소식을 퍼다 날랐다.

신문들도 연일 자극적인 기사를 실어댔다.

[B급 모험가 김도아 중태]

[의식불명?!]

[사망 사실을 숨기고 있어…… 진실은 무엇인가.]

[아주르 나자크의 힘으로 마검 정화?]

기사들이 터져 나오고 얀은 몇 번이나 편지를 휘갈겨 쿠낙에게 특급으로 보냈다.

동생에게 답장은 딱 한 번

[마검 계약이 풀렸어.]

라고 온 것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안도했다.

이어 다른 기사들도 흘러나왔다.

[마검 계약이 풀린 흑룡, S급 유지 가능한가?]

[실제 흑룡 쿠낙의 실력은 미지수…….]

쿠낙을 까는 기사였다.

얀은 그런 기사는 그냥 흘렸다. 거기까지 신경 써 줄 여유가 없다.

‘그보다 도아 양이…….’

그쪽이 훨씬 훨씬 더 신경 쓰였다.

도아 양이 그렇게 된 게 쿠낙과 관계있는 게 아닐까?

그럼 쿠낙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등등.

‘아, 진짜.’

그는 등을 의자에 깊이 기대며 눈을 꾹 감았다.

‘일만 소강상태에 들어가면 무조건 찾아간다.’

몇 번이나 얀은 깊이 결심했다.

물론 형제 걱정을 그만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에크하르드 도운 엘몬드 공작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그는 거칠게 재킷을 벗어 던지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이 빌어먹을 대회의!”

“각하!”

옆에 따라붙은 수석 시종이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왕궁, 듣는 귀가 있는 장소다.

“그래서? 다른 소식은 없나?”

“아직 다른 소식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빌어 처먹을.”

그의 시선이 신문 기사를 향했다.

도아가 의식불명이라는 기사였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심장이 덜컹하고 내려앉았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어.

간신히 찾아냈는데, 이렇게 얼굴 한 번 보지도 못한 채로?

목소리도 한 번 듣지 못하고?

부득부득 이가 갈렸다.

왜 모험가 따위 거친 일을 하는 걸까.

‘역시 우리 누나다.’ 했던 생각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일을 하게 둬서는 안 됐다.

좀 더 적극적으로, 안 되면 억지를 부려서라도 그녀를 데려왔어야 했다.

안락한 공작가에서 발끝에 모래 한 알 밟지 않게, 손끝에 이슬 한 방울도 묻지 않게 지내게 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와 자책, 걱정과 불안이 뒤범벅되어 그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커피가 당겼다.

‘당장이라도 비에나리에로 뛰어가고 싶다.’

하지만 대회의를 내동댕이치고 갈 수는 없었다.

“진짜 죽겠군.”

그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자, 차가운 유리컵이 그의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서기관인 쿠쿨레였다.

색조가 옅은 서기관이 낮게 말했다.

“지금 비에나리에로 달려가셔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다만?”

에크하르드가 잔을 받아서 이마에 댔다.

차가움이 기분 좋았다.

“돌아오신 도아 아가씨께서 가문을 재건하려고 고군분투하시게 되겠지요. 아니면 라텔 가문과 정략 결혼시키시렵니까?”

에크하르드의 얼굴이 완전히 썩어들어갔다.

“지금 내가 조금 더 화가 난 상태였다면 이 잔이 얼굴에 날아갔을 거야.”

“내일도 사람들 앞에 서야 하니 얼굴에 던지는 건 삼가주십시오.”

“짜증 나네, 진짜.”

어린아이같이 투덜거리고 에크하르드는 잔을 비웠다.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소파에 비딱하게 앉아서 그는 생각에 잠겼다.

엘몬드 공작가는 부유했다.

부유한 가신은 언제나 왕의 눈에 거슬리는 존재다.

‘그래서 잔뜩 처먹이고 있고만.’

그래도 왕의 눈에는 다르게 보이나 보다. 거기에 라텔 공작가 놈들까지 얽혀서…….

게다가 염료석 사업도 일단 난항에 부딪힌 상태였다.

‘이것만으로는 안 돼.’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빨리 끝내는 게 좋겠어.”

대회의가 길어져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그리고 겨울에는 내가 직접 누나를 찾아가겠어.’

그는 주먹을 꽉 쥐고 결심했다.

❖ ❖ ❖

냐냑세세의 비호를 얻은 아주르 나자크.

그건 비에나리에에서는 상당한 영향력 있는 호칭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떨어지는 태양의 도시를 공략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위험한 길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결국 검은 구름이 나서서 하악거리며 사람을 물려야 했다.

잘 훈련된 툴레의 하악질은 무서웠다.

로베른과 쿠낙에게도 관심이 쏠리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쿠낙에게는 더더욱 관심이 쏠렸다.

마검과 계약을 파기해?

어떻게?

쿠낙은 적당히 말을 얼버무렸으나, 아주르 나자크인 도아가 있다.

그녀가 마검을 파괴했을 거라고 다들 어림짐작했다.

이어 모험가 길드에서도 신변 보호(?)를 위한 사람을 파견해 주었다.

눈을 반짝거리는 C급 모험가들이 대부분으로 충실하게 자리를 지켜주었다.

어쨌든 도아의 몸이 무척 약해진 건 사실이다 보니 지키는 사람들은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도아가 따뜻한 차를 마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커피가 당긴다.

하지만 커피대와 원두 모두 베리에게 압수당해 버렸다.

울먹이며 “또아 님, 커피능 모메 안 좋대요.(도아 님, 커피는 몸에 안 좋대요.)” 하니 저절로 손이 움직였다.

냐냑세세가 말했다.

“어쨌든 여기를 뜨는 게 좋겠군.”

“그놈의 예언만 받으면 뜰 거거든요.”

도아의 말에 냐냑세세가 웃었다.

“안 그래도 오늘은 예언을 해 주러 왔네.”

도아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그냥 아무 때나 와요?”

“원래 그런 거 아니겠나.”

냐냑세세는 그렇게 말하고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첫 번째 열쇠는 용의 그림자 아래.

두 번째 열쇠는 열쇠 속에 있다.

세 번째는 춤추며 노래하는 불꽃 속에 있노라.

“…….”

도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종이쪽지를 바라보았다. 떨리는 손가락이 쪽지를 가리킨다.

“이거 실화입니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아니, 이딴 예언을 들으려고. 와, 진짜. 와. 이게 뭐예요?”

황당해하는 도아를 보고 냐냑세세 역시 당황한 듯 말했다.

“아니, 그래도 쉬운 예언인 편 아닌가? 목적어도 분명하고…….”

“이게 쉽다고요?”

도아의 말에 냐냑세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했다.

“아니, 세 번째는 누가 봐도 방랑의 투아지트아닌가?”

“어, 그래요?”

“그렇다네.”

냐냑세세와 도아는 마주 보았다가 둘의 문화권 차이를 여실히 느꼈다.

도아가 뒤에 서 있던 두 사람에게 쪽지를 내밀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쿠낙과 로베른이 쪽지 내용을 훑었다.

“첫 번째는 용뼈 능선을 뜻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쿠낙이 가설을 제시했다.

“두 번째는 애매하군. 후단의 속담이던가?”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자 도아가 슬쩍 물었다.

“그럼 세 번째는 투아지트야?”

“투아지트지요.”

“누가 봐도 투아지트로군.”

‘크윽.’

문화차이!

“어쨌든 알아보기 쉬운 예언이라서 다행이네요. 여기까지 오면서 했던 고생을 생각하면…….”

잠시 도아는 눈을 감았다.

진짜 짧은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어쨌든 단서를 건져서 다행이에요.”

그녀가 생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여길 떠날 수 있겠네요.”

냐냑세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밖으로 나갈까?”

“시선이 엄청날 텐데요.”

“그게 필요하다네.”

냐냑세세가 씩 웃었다. 천막밖에는 사람이 드글드글―하지 않았다.

모험가 길드와 검은 구름에서 열심히 정리해 준 덕분이었다.

그래도 멀찍이서 사람들이 이쪽을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냐냑세세가 그의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퉁 치고 말했다.

“나, 비에나리에의 냐냑세세가 B급 모험자 김도아 님께 빚을 졌습니다. 언제든지 청구하시길.”

그러며 허리를 숙였다.

여기저기서 비명 같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아는 당황해서 마주 허리를 숙였다.

‘와씨, 그러니까 이게 지금……. 교황? 교황이 고개를 숙인 거라고 봐야 하나?’

냐냑세세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비에나리에에서 상당히 높다는 건 안다.

등에서 땀이 흘렀다.

냐냑세세가 빙긋 웃으며 허리를 펴고 지팡이를 휘둘렀다.

금색, 초록색 빛 가루가 휘날렸다.

“부디 그대의 앞길에 세계수의 축복이.”

“와…….”

몸이 안쪽부터 따끈따끈해졌다. 빛무리가 기분 좋게 세포를 감싸는 듯했다.

“고맙습니다. 냐냑세세.”

“별말씀을.”

냐냑세세가 후후 웃음을 흘렸다.

❖ ❖ ❖

냐냑세세의 효과는 엄청났다.

그가 태양 신전을 비워달라고 하자마자 사람들이 사라졌다.

모험가 길드에서도 꼭 추후 연락을 달라고 하며 떠나갔다.

“그래도 귀찮은 놈들은 남아 있지만, 그 정도야 별거 아니지. 그래서 B급은 어찌할 건가?”

“응?”

“B급의 뇌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려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군.”

“욕하지 않기는 어때?”

“짐이 B급을 욕할 리가 있나.”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도아가 투덜거리자 로베른이 픽 웃었다.

“그건 B급의 자의식과잉이 아닐까?”

“아, 진짜 짜증 나.”

도아는 혈압이 오르는 걸 느끼며 뒷목을 잡았다.

“괜찮으십니까?”

쿠낙이 후다닥 다가와 도아를 살폈다. 도아가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요. 그냥 저 인간 때문에 열 뻗쳐서 그렇지요.”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라고 하며 쿠낙은 뒤로 물러났다.

도아의 시선이 그를 쭉 따라갔다가 다시 로베른에게로 돌아갔다.

‘요즘 쿠낙 이상하지 않아?’

뻐끔거리며 묻자 로베른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즐겁고 흥미진진하다는 웃음이다.

‘끄응.’

언제 쿠낙과 이야기를 하기는 해야 할 텐데 최근에는 정신이 없었다.

‘어쩐지 눈도 계속 피하고……. 말도 피하고……. 모습도 숨기려고 하고…….’

자베르의 눈을 피하는 장발장 같은 모습이라 도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로베른이 그런 그녀의 주의를 돌렸다.

“요양 말일세. 어디로 떠날 셈인가?”

“아.”

“그랑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B급의 깨진 유리 같은 몸이 견디지 못할 거 같군.”

“천천히 가면 가겠지만…….”

“가다가 겨울이 될걸.”

그나마도 그리핀으로 단축시킨 시간이었다.

지금 도아로서는 그런 비행을 오래 견딜 자신이 없었다.

아니, 견딜 수는 있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나관 파열을 담보로 잡고 싶지는 않다.

“그럼 이 근처에서 보내야 하나.”

“참고로 말해 두는데 비에나리에의 겨울은 혹독하다네.”

“산―다르크에게 말하면 신세 질 수야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사람이 질렸다.

거기 가면 또 피라냐 같은 사람들이 몰려올 게 뻔했다.

“가능하면 열기가 식을 때까지는 멀찍이 떨어져 있고 싶네.”

하지만 비에나리에는 잘 모르겠다, 라는 상담에 응해 준 것은 티하타였다.

라카냐 숲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레인저의 수장은 도아의 말을 듣고 아주 좋은 곳을 알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온천과 광천이 근처에서 동시에 솟아나거든요.”

“헉, 최고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죠?”

그게 지질학적으로 가능한 건가?

“아하하, 라카냐 숲에 물통 나무 덕분이지요.”

‘나무와 온천이 관계가 있는 건가.’

이럴 때마다 참으로 이세계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티하타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이어 말했다.

“하지만 묵을 곳이 없는 게 첫 번째 문제예요. 정말로 숲속 외딴곳에 떨어져 있는 장소라, 아무것도 없거든요. 물론 모험가분들이야 텐트나 장비가 있겠지만……. 한겨울에 장박이 가능할까요?”

“그건 문제없어요.”

그녀에게는 세계수 오두막이 있다.

집을 들고 다니니 상관없음!

당당한 도아의 반응에 티하타의 표정이 나아졌다.

“두 번째 문제는 근처에 식량을 구할 곳이 없다는 거예요. 겨울 준비는 단단히 하셔야 할걸요.”

도아는 그 말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저장소를 업그레이드 할 예정이니까요.

티하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장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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