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티하타는 도아 일행을 안내했다.
제법 가파른 곳을 한참 올라가니 거기에는 독특한 나무들이 모여 있었다.
특이할 정도로 나무 둘레가 뚱뚱했다. 바오밥나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큰 나무들은 자연적으로 찢어진 건지 입구가 생겨 있었고 그 안에 물이 고여 있었다.
“헉, 진짜 나무에서 온천이 나오네?”
“그럼요. 저쪽은 광천수예요.”
안쪽에는 찰랑찰랑하고 맑은 물이 고여 있었다. 나무가 물을 끌어모으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왜 광천수가 되고 온천이 되는 걸까.
‘이세계는 진짜 알 수 없네.’
아직 작은 나무들은 입구가 열려있지 않았고, 큰 나무들은 입구가 시옷 자로 열려 있었다.
“마음에 드셨나요?”
“물론이에요! 혹시 저는 조금 더 둘러보고 갈 수 있을까요?”
티하타는 눈치가 빨랐다.
“네, 그럼 전 먼저 아래쪽에 내려가 있을게요.”
재빠르게 자리를 비워준다.
도아는 적당한 지점에 오두막을 세웠다.
로베른과 쿠낙이 주변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귀찮은 일이 생길 거 같은데.”
“여러모로 편리하기도 하겠지만요.”
“뭐가 말이에요?”
도아의 질문에 로베른이 대답했다.
“마수의 흔적이 제법 보여.”
“동물의 흔적도 보입니다.”
“아, 따뜻한 물이 나오는 곳이라서 겨울철에 동물이 모이나 보다. 그리고 그 동물을 노린 육식동물과 마수도 나오는 건가.”
“아무래도 넘친 던전이 두 개나 더 있으니까요.”
“두 개 더 깨기는 귀찮은걸…….”
“B급은 깨기 전에 먼저 깨질 테니 일단 제 몸이나 걱정하는 게 좋겠군.”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어서 화가 난다.”
투덜거리고 도아는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댄버스 부인이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맞아 주었다.
“맞아. 댄버스 부인이 있지?”
그럼 이 근처는 걱정할 필요 없는 거 아닌가?
‘그들은 좋은 경험치였습니다.’
도아는 오두막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 방으로 들어갔다.
‘어디 보자, 포인트가……. 캬―!’
총 4800포인트가 도아의 손에 들어와 있었다.
저절로 춤사위가 나오는 숫자였다.
도아는 포인트 상점을 열었다.
ᅠ일단 도아가 가장 첫 번째로 고른 것은 당연히 ‘지하 저장고’였다.
‘2000포인트가 사라지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유통기한을 최소 5배 늘려준다니.
‘겨울을 지내려면 어차피 먹거리도 쌓아놔야 하고.’
아이템
지하 저장고를 만들었습니다!
“와.”
도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저장고가 생겼다는데 안 가볼 수가 없잖아?
오두막 밖으로 나가 살펴보니 뒤쪽에 지하실로 통하는 문이 생겨 있었다.
지하실 문을 여니 매끄러운 나무계단이 쭉 이어져 있었다.
“와―!”
도아는 허리춤에 있는 비상용 별조각 랜턴을 들어 올렸다.
생각보다 지하 저장고가 상당히 컸다.
10평 정도 되는 공간에 높이도 3m쯤이 되어 보였다.
벽에는 각종 선반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고, 한쪽에는 커다란 나무통이 쭉 놓여 있었다.
촘촘하게 짜인 선반에 꼭 맞는 바구니와 나무 상자도 보였다.
호사스러운 저장고였다.
햄이나 소시지를 걸어놓는 갈고리도 보였다.
겨울맞이를 하기 위해서 이곳을 가득 채워 넣는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도아는 다시 호다닥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거실에서 차를 마시던 쿠낙과 로베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두 번째는 중형 부엌!’
아이템
부엌을 중형 부엌으로 업그레이드합니다.
우당탕
밖에서 의자가 쓰러지는 소리가 나서 도아는 놀라 방 밖으로 나갔다.
무기를 빼든 두 사람이 부엌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아는 부엌을 바라보았다.
부엌의 크기는 예전에 비해서 두 배로 커져 있었다. 조리대도 깔끔하게 새로 짜 맞춰졌다.
“와아!”
도아의 탄성에 로베른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 B급이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뭘 하는지 미리 이야기를 해 주면 좋겠군.”
“오두막을 개조하고 계신 거라면 저희가 나가 있을까요?”
쿠낙의 질문에 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이제 내부 개축은…….”
중얼거리다가 도아가 ‘참’ 하고 물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어떻게 할 거예요?”
로베른이 검을 도로 집어넣으며 “뭘?” 하고 물었다. 도아가 힐끗 오두막 업그레이드 목록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람 수가 늘어나면 방을 늘리는 게 좋은가?
“우리 겨울 동안 활동 못 하니까, 그랑으로 돌아갈 건가요? 아니면…….”
두 사람이 뚝 움직임을 멈췄다.
쿠낙이 천천히 도아를 돌아보았다. 뭔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같아서 도아는 흠칫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금빛 눈동자가 어쩐지 굉장히 어두워졌다. 누가 각막 안쪽에 불을 껐다 켰다 하나요?
도아는 당황해서 말했다.
“두 사람은 어떻게 할 거냐고……. 둘 다 여기에 있을 수만은 없는 거 아닌가요? S급인 데다가. 쿠낙은 얀이랑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잖아요?”
마검과의 계약이 풀렸다.
당연히 형인 얀을 만나서 술회를 풀고 싶지 않을까?
도아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물론 함께 있어 줘도 좋지만…….”
“도아 양께서 싫으신 건 아니고요?”
‘이건 또 뭔 소리야.’
도아는 쿠낙을 바라보다가 로베른을 보았다.
폐하께서는 참 즐거운 광경을 본다는 듯 비딱하게 서서 웃고 있었다.
‘아오, 저 새끼도 성격 진짜.’
도아는 일단 이 자리에서 이 화제는 피하자고 생각했다.
언젠가 이야기를 해야겠다 했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그럼 쿠낙은 나랑 있고 싶어요?”
반대로 질문이 돌아오자 쿠낙이 살짝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도아 양께서 원하신다면요.”
“그럼 있어요. 폐하는? 어떻게 할 거야?”
“남녀 둘만 겨우내 한 오두막에 둘 수는 없지.”
“아. 그쪽은 생각도 못 했는데.”
“B급은 B급이니까.”
“근데 어차피 그게 그거 아닌가?”
남녀 둘이 한 오두막에 있는 거나, 남자 둘 여자 하나가 한 오두막에 있는 거나.
“B급은 모르겠지만 큰 차이가 있다네.”
“그렇다면야.”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아는 방3(500포인트)과 욕실2(500포인트)를 추가로 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개축할 테니까 나가 있을까?”
방이 늘어날 때는 구조가 아예 바뀌는 경우도 있으니 나가 있는 게 안전했다.
이렇게 두 개를 만들면 남은 포인트는 1000포인트였다.
‘다락방을 할까 했는데, 조금 아쉬운걸.’
아이템
세 번째 방을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욕실을 만들었습니다.
외관으로 봐도 오두막의 구조가 휙 바뀌었다.
포치도 더 길어졌다.
도아는 주르륵 목록을 올려 보았다.
‘또 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그때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있었다.
아이템
쾌적한 냉난방 시스템 / 1000점
▸ 축복받은 오두막은 기본적으로 단열이 좋지만, 그래도 혹한기에는 어쩔 수 없죠.
▸ 냉난방 시스템을 설치해 보세요!
▸ 용암 속에서도! 극지대 빙하 속에서도!
▸ 안락한 온습도를 보장합니다!
‘어머, 이건 사야 해!’
도아는 재빠르게 냉난방 시스템에 돈을 탈탈 털어 넣었다.
저번에 레―소소와 함께 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정말로 추웠는데, 오두막 안도 썰렁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바깥보다는 나았지만……. 있는 게 좋지.’
포인트를 전부 쓰고 나니 기분이 오히려 상쾌해졌다.
앞으로 또 모으면 되겠지.
“베리, 들어가 보자.”
도아의 말에 베리가 활짝 웃으며 도아의 손을 잡았다.
방이 3개에다가 부엌까지 커지면서 평수 자체가 크게 늘어난 느낌이었다.
이제는 오두막이 아니라 번듯한 목조주택이 되었다.
‘하지만 가구는 하나도 없네.’
후후후
도아는 웃음을 흘렸다.
“댄버스 부인. 가구 제작을 부탁해도 될까요?”
댄버스 부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도아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목재 더미를 가져왔거든요.”
보상으로 받은 오두막용 목재 더미를 오두막 바깥에 꺼내놓으니 양이 상당했다.
‘우와…….’
이런 게 내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단 말인가. 싶은 양이었다.
도아가 댄버스 부인에게 물었다.
“이거면 될까요?”
댄버스 부인이 싱긋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침대를 먼저 3개 더 만들어 주시고……. 옷장도 있으면 좋겠어요. 그 외에는 필요하겠다 싶은 걸로 채워 주세요.”
끄덕끄덕
댄버스 부인이 걱정 말라는 듯 우아한 미소와 함께 가볍게 무릎 절을 해 보였다.
“좋아.”
그럼 이제 오두막 준비는 대강 끝냈고.
도아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 식량을 쟁여볼까?”
❖ ❖ ❖
수송은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역시 공중 수송이 가장 신선하고 빨랐다.
게다가 해왕의 안장주머니 역시 이공간 주머니다.
무게에 큰 구애를 받지 않고 옮길 수 있었다.
양배추, 순무, 사과 같은 기본적인 저장 음식부터 커다란 훈제 햄, 소시지,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같은 것들도 옮겨졌다.
도아는 토마토로 토마토 페이스트를 잔뜩 만들어서 병조림해 놓았다.
쌀을 좋아하는 도아는 쌀도 한 가마니 들여놓았다.
돌설탕이며 각종 향신료와 조미료도 갖춰졌다.
술도 잊지 않았다.
잼도 종류별로 만들어서 선반에 가지런히 올려 두었다.
밀가루, 랄바 지방, 버터, 크림, 달걀 같은 것도 저장고로 옮겨졌다.
‘냉동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건 냉동하고.’
겨울 창고가 채워지는 걸 바라보며 즐거운 건 도아만이 아니었다.
베리는 “히야아아아…….” 하며 경이로운 걸 보듯 지하창고를 바라보았다.
그의 파란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가 살았던 동네에도 저장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크고 호화스러운 저장고는 없었다.
윤기가 반드르르 도는 햄이나 오동통한 소시지가 줄지어 걸린 모습을 보기만 해도 군침이 주르륵 흘렀다.
겨울을 이렇게 풍족하게 보내는 건 처음이었다.
그에게 겨울은 항상 견뎌야 하는 배고픈 때였다.
봄이나 여름, 가을에는 그래도 숲을 쏘다니며 풀뿌리라도 주워 먹지만 겨울은 아니다.
온 가족이 야금야금 식량을 파먹으며 견디는 시간이었다.
데이지와 함께 배고픔을 견디곤 했다.
겨울이 끝나기 전에 저장고가 텅 비는 일도 많았다.
동네 사람들의 호의로 살아가기 때문에 식량이 떨어지면 동네에서 가장 먼저 먹지 못하게 되는 건 베리와 데이지였다.
그랬는데, 올겨울 저장고를 보라.
커다란 통과 상자에 감자며 고구마 같은 것이 쌓여 있고, 고기도 이렇게나 많이!
굶주리지 않고 겨울을 보내는 건 어떤 기분일까.
동시에 데이지 걱정이 앞섰다.
‘데이지는 잘 지내고 있을까? 올겨울을 잘 견뎌낼까?’
차라리 애완용으로 팔려 갔으면.
그렇다면 적어도 푹신한 방석에서 굶을 일은 없을 텐데.
데이지는 귀여우니까.
‘괜찮을 거야. 무사할 거야!’
애써 마음을 달래며 베리는 후다닥 저장고를 나왔다.
도아 님이 해왕이에게 사과를 주고 있었다.
날이 쌀쌀해져서 도아 님은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도아 님……. 몸이 정말로 안 좋아지신 거 같아.’
딱 보기에도 핏기도 예전보다 없었고, 움직임도 느릿했다.
그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저 마검 놈이랑 관련된 일일 거야.’
거기서 나온 후로 쿠낙은 도아 님과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베리의 심증은 점점 더 굳어져 갔다.
만약 도아 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그건 생각만 해도 눈앞이 깜깜하고 발밑이 후들후들 떨려오는 일이었다.
그래서 베리는 쿠낙이 점점 더 싫어졌다.
베리는 쪼르르 달려가서 도아의 카디건 자락에 매달렸다.
도아가 웃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베리도 사과 먹을래? 엄청 맛있네. 여기 사과.”
“됴아 님, 아프디 마데여.(도아 님, 아프지 마세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은 왜 이렇게 다 발음이 안 좋을까.
많이 나아졌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좀 더 연습이 필요했다.
좀 더 제대로 한몫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응? 하하. 괜찮아. 괜찮아. 우리 베리에게 걱정을 너무 많이 끼쳤네.”
슥슥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은 좋지만, 그를 예전처럼 번쩍 안아 들지는 못했다.
베리가 말했다.
“뎌 약툐사가 델 거예요.(저 약초사가 될 거예요.)”
“응? 약초사?”
그가 눈을 부릅떴다.
“됴아 님이 맨날, 이케, 다티시니까요!(도아 님이 매번 이렇게 다치시니까요!)”
엄한 목소리로 하는 말에 도아는 작게 웃었다.
“약초사가 되는 게 쉽지 않은데.”
“끄래두 델 거예여!”
도아는 흐음 하고 베리를 바라보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래? 그러면 마침 잘됐네. 올 겨울 동안 [특훈]을 하도록 하지요.”
한국어 발음 그대로 말하니 베리가 갸웃하고 되물었다.
“툭쿤?”
“응, [특훈].”
“할게여!”
뭔지는 모르겠지만 할 것이다!
베리는 의욕에 가득 찼다. 그가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
“뎨가 더아 님을 꼬쳐두릴게여!(제가 도아 님을 고쳐드릴게요!)”
의욕이 만만하다.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크샤샤파의 제자가 된다면, 뭐 먹고사는 걱정은 없을 테고.
‘그래도 호신술은 기본적으로 가르쳐야지.’
도아가 고개를 드니 쿠낙이 마지막 짐을 안에 옮겨두는 게 보였다.
이제 낮에도 싸늘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비에나리에의 겨울은 빠르게 오나 보다.
도아가 살짝 베리의 등을 밀며 말했다.
“베리는 가서 댄버스 부인이랑 방 정리할래?”
“녜.”
씩씩하게 대답하고 베리가 오두막으로 달려 들어갔다.
도아가 쿠낙에게 다가가 말했다.
“쿠낙,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해요.”
드디어 이야기를 할 때가 왔다.
쿠낙은 잠시 도아를 바라보다가 “좋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도아는 그를 데리고 물통나무 사이를 걸었다.
가장 큰 물통나무 앞에 도착해서, 그 나무에 툭 기대고 도아가 쿠낙을 바라보았다.
쿠낙도 도아를 바라본다.
도아는 ‘흠’ 하고 입을 열었다.
“쿠낙.”
“네.”
도아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포문을 열었다.
“어때요? 친구가 목숨을 걸고 그쪽 계약을 깨 준 기분은?”
도아가 픽 웃으며 이어 물었다.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