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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여행사 : S급 먹방대모험 패키지-78화 (88/100)

⊹ 78화 ⊹

“헉, 폐하. 방금 봤어? 눈 와. 눈.”

“처음 보나?”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빨리 오는 거 아냐?”

“비에나리에의 산자락이니까.”

가장 북쪽에 있는 나라의 산골짜기.

“설마 B급은 이곳에 눈이 무시무시하게 내린다는 걸 모르고 여기에서 요양하겠답시고 자리 잡은 건 아니겠지.”

“…….”

“아니겠지.”

“그―으―게―.”

“아니겠지.”

“…… 온천으로 퉁치면 안될까?”

재빠르게 떠오른 변명을 내뱉자, 로베른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고 답했다.

“온천이면 요양으로 나쁘진 않지.”

“그럼 그런 거로 하자.”

도아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한 송이 내린다고 했더니 이제 제법 커다란 함박눈이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바닥에 흰 눈이 쌓여 간다.

“쿠낙이랑 베리는 괜찮을까요?”

“그리핀을 타고 갔으니 별 문제없을 거라네.”

“흠…….”

눈이 올 때 비행은 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악천후일 때는 비행해 본 적이 없네. 여러 가지 비행 장비도 갖추고 싶고. 겨울 동안 주문을 넣어놓고 봄 되면 찾아야겠다.’

점점 눈이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마중을 가야 하나? 근데 마중 가 봐야 소용없지 않나.’

고민하는데 해왕이가 바람을 일으켜 눈을 날리며 앞에 내려앉았다.

도아가 오두막 문을 열었다.

냉기가 확 몰려드는 게 느껴졌다.

“얼른 들어와요.”

도아가 재촉했지만, 쿠낙과 베리는 현관 포치 앞에서 눈을 털고 난 후에야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해왕이도 신나게 푸르르륵 눈을 털었다. 댄버스 부인이 슥슥 대걸레를 움직여 물 자국을 닦아냈다.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에요.”

“눈이 내리는 걸 보자마자 출발했는데, 순식간에 쏟아지더군요.”

도아가 아직 눈이 남아 있는 베리의 머리를 툭툭 털어주었다.

“잘 다녀왔어?”

“녜!”

뭐가 그렇게 즐거웠는지, 베리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수염이 쫑긋쫑긋 움직였다.

뭘 사러 다녀왔는지 재잘재잘 떠들 줄 알았는데, 베리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도아도 굳이 묻지 않고 말했다.

“들어가서 손 씻고 옷 갈아입어.”

“녜!”

쿠낙이 도아에게 편지를 한 뭉치 건네주었다.

“도아 양에게 온 편지입니다.”

“헉, 이렇게 많이요? 고마워요.”

하나씩 보니 모르는 이름도 있고, 아는 이름도 있었다.

일단 모르는 이름을 넘기고 아는 이름만 확인해도 양이 상당했다.

‘신기하네.’

여기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거 같은데, 제법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었다.

‘게다가 이 아날로그 감성.’

한 글자 한 글자 종이와 잉크로 적은 편지들의 필적은 각 사람을 떠올리게 해 주기 충분했다.

잉크의 미묘한 농담과 종이 질에 따른 번짐 차이가 기분 좋게 와 닿았다.

‘나도 라크샤샤에게 필체 교육받았지.’

배울 때는 귀찮아서 투덜거렸지만, 막상 이렇게 편지를 잔뜩 받으니 배우길 잘했다 싶다.

도아는 슬쩍 종이와 잉크 냄새를 빨아들였다.

‘좋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책을 읽는 게 그녀의 낙이었다.

괜히 입버릇처럼 클리셰 운운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아서 종이는 뭔가 새로웠다.

물론 엘몬드 공작에게서도 편지를 받았고, 그녀 자신도 쿠낙과 로베른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하지만 두 손 가득 담긴 편지 묶음은 새삼스럽게 ‘편지 말고는 주요 통신 장비가 없다’는 느낌을 강렬히 주었다.

‘생각보다 더 즐거운 요양이 될 거 같은걸.’

❖ ❖ ❖

“흐, 흐얍!”

소리를 지르며 달려든 베리는 그대로 도아의 발에 걸려 앞으로 나뒹굴었다.

“상대를 제대로 보고 덤벼야지. 다시.”

베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휙휙 눈을 털고 자그마한 목검을 꼭 쥐었다.

“야압!”

다시 기합을 지르며 달려들었고 이번에 도아는 휙 검을 피하며 베리의 등 뒤로 돌아가 등을 탁 쳤다.

베리가 다시 눈밭에 푹 얼굴을 묻듯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났다.

“호흡 조절하고.”

도아의 말에 베리가 자세를 잡으며 다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다시.”

도아의 말에 베리가 다시 덤벼들었다가 또 눈덩이가 되었다.

몇 번 더 베리의 공격을 받아 준 후에 도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더 할 수 있떠여!”

“아니, 집중력이 떨어졌어. 생각 없는 공격은 안 하는 것만 못해.”

도아의 말에 베리는 어깨를 늘어트렸다. 도아가 후아 하고 입김을 내뿜었다.

“괜찮아.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그리고 베리는 약초사가 될 거잖아?”

몸을 쓰는 거야 호신술 정도로 익혀놓으면 된다, 하고 도아가 베리를 토닥였다.

“들어가자.”

도아의 말에 베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뎌 명상하구 들어갈게여.”

“여기서? 안 추워?”

“개안아여.(괜찮아요.)”

베리의 말에 도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명상은 야외에서 하는 게 최고이기는 했다.

그녀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며 호들갑을 떨었다.

“와, 밖에 추워. 진짜 추워어.”

쿠낙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아 양이 몸도 좋지 않은데, 제가 대신 베리 군을 봐 드릴까요.”

“에취! 응, 하지만. 일단 내 제자니까. 잇취!”

다시 재채기를 하자 쿠낙이 말했다.

“가서 온천욕이라도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야겠어요.”

도아가 히죽 웃으며 쿠낙에게 물었다.

“쿠낙도 같이 들어갈래요?”

“사양하겠습니다.”

정중하게, 먹을 걸 거절하는 듯한 태도로 쿠낙이 단번에 거절했다.

도아는 댄버스 부인이 챙겨준 목욕 도구를 들고 온천으로 향했다.

오두막 주변은 댄버스 부인이 정리해서 괜찮지만, 댄버스 부인의 영역이 끝나면 바로 눈길이었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스레, 옅게 마나를 운용하며 걷는다.

아예 마나를 사용하지 않아도 문제라, 도아는 요즘 마나를 섬세하게 미량씩 사용하는 방식을 훈련하고 있었다.

눈 위를 미끄러지지도, 빠지지도 않고 우아하게 사뿐사뿐 걷는다.

‘운용을 잘하면 물 위도 걸을 수 있다는데.’

아직 시험해 본 적은 없었다.

물통나무 주변에는 눈이 녹아 있었다. 심지어 풀이 올라와 옅은 푸른빛이 도는 장소도 있다.

그 가운데 도아의 원터치 텐트가 펼쳐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입욕 물품과 갈아입을 옷, 그리고 화염석 난로가 놓여 있었다.

입욕용으로 만든 옷은 오버핏 티셔츠와 짧은 반바지였다.

아무리 그래도 야외에서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기는 그렇지 않은가?

특별한 원단으로 만들어져 젖지 않았다.

입욕용 옷으로 갈아입고 위에 도톰한 로브를 걸친 뒤 텐트를 나섰다.

도아는 여러 그루 서 있는 나무 중에서 가장 큰 나무를 골랐다.

안으로 들어가서 뿌리를 밟고 서서 로브를 벗은 후 나뭇가지에 걸쳐 두었다. 뜨거운 물 속으로 쏙 들어갔다.

“흐아아아―”

저절로 입 안에서 탄성이 나왔다. 오늘 물 온도는 딱 좋았다.

가장 큰 나무는 대여섯 명이 들어가서 앉아 있어도 될 만큼, 대중탕처럼 커다란 나무였다.

물 깊이도 꽤 깊어서 도아는 돌 몇 개를 탕 안에 의자 대신 넣어 두었다.

같은 물통나무라도 탕의 느낌이 달랐다. 가장 큰 이 나무는 물이 완전히 우윳빛을 띠고 있었다.

도아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몸속 깊이 따끈따끈해질 때까지 온천욕을 즐겼다.

덥다 싶을 때 일어나서 다시 원터치 텐트로 향한다. 이 짧은 시간 동안에는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았다. 텐트 안은 화염석 난로가 활활 타올라 따뜻했다.

텐트 안에서 다시 두툼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손발도 따뜻하게 하고 목도리까지 단단히 두르면 덥기까지 하다.

그 상태로 오두막까지 가볍게 돌아가면 댄버스 부인이 따뜻한 차를 내주었다.

‘그러고 보니 여긴 보온병이 없네. 어떻게 만들 방법이 없나. 보온병.’

있으면 참 편리할 텐데.

오두막 안은 냉난방 시스템 덕분에 따뜻했다. 도아는 겉옷을 벗고 베리에게 약초학을 가르쳤다.

그녀도 배운 걸 잊지 않기 위해서, 두꺼운 약초학 책을 펴놓고 여러모로 공부했다.

검술도 녹슬지 않게 하려면 매일매일 단련해야 했다.

마나관의 재정비를 위해 명상 시간을 늘리고, 기본자세와 체력을 위한 훈련도 멈추지 않았다.

로베른이나 쿠낙, 도아는 셋이서 서로 대련도 자주 했다.

로베른과 쿠낙이 도아를 상대로 대련할 때는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해야 했지만, 그것도 나름의 이점이 있었다.

대련할 때마다 도아는 혀를 내둘렀다.

‘천재 놈들.’

그녀는 백 년 수련했는데, 이쪽은 그러지도 않았으면서 그녀와 대등하게 겨룬다.

로베른과 쿠낙이 서로 싸우는 걸 보고 있으면 인간끼리 싸우는 것 같지도 않았다.

탕, 타타탕―

로베른 불꽃 특유의 마나관 울리는 소리와

쿠르릉

쿠낙의 마나관이 울리는 소리.

마검을 부숴 버리고 걱정했는데, 쿠낙에게 마나관과 마나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것도 전기 속성 마나였다.

‘그래서 눈이 금색인가.’

어둠 속을 가르는 한줄기 섬광.

쿠낙에게 잘 어울리는 마나 속성이었다.

도아는 로베른의 푸른 불꽃을 바라보다가 물은 적이 있었다.

“폐하, 혹시 내가 전에 던전 공략했을 때 썼던 푸른색 파이어 크리스털 기억나?”

“나고말고.”

“폐하는 그거 없이 비슷한 효과 낼 수 있는 거 아냐?”

로베른의 몸에 차곡차곡 담겨 있는 푸른색 불꽃을 분출하면 그 던전에 그런 타격을 가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있겠지.”

고민하지도 않고 로베른은 태연히 대답했다.

“…… 역시.”

도시 하나 정도 날려 버리는 건 일도 아닐 거 같다.

“왜? 아까운가?”

로베른의 물음에 도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래도 힘 다 써 버리고 탈진하는 것보다는 크리스털로 때우는 게 낫지.”

“탈진…… 할까?”

“엑.”

도아가 눈을 번쩍 떴다. 로베른이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잠깐, 진짜로? 그거 몇 번이나 쓸 수 있어?”

“남의 밑천은 털어보는 게 아니라네. B급.”

“크윽, 반박 못 해서 짜증 나.”

도아의 구시렁거림에도 로베른은 그저 웃을 뿐 똑바로 된 답은 하지 않았다.

도아가 나중에 쿠낙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쿠낙이 생각하고 답했다.

“저도 두세 번 정도는 날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폐하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물론, 서로 마나량을 속이는 일도 비일비재하지만. 저보다 못할 거란 생각은 안 드네요. 그 인간.”

싱긋 웃으며 ‘그 인간.’ 하고 덧붙이는 말에는 뼈가 있었지만, 도아는 그것보다 다른 말이 더 귀에 들어왔다.

“두세 번!”

도아는 기겁하고는 그 후로 더 열심히 명상 훈련에 돌입했다.

그녀도 아마 겨울이 끝나고 나면 두 번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녀가 130년 치 분량 마나를 써서 하는 일을, 이놈들은!

‘인간도 아냐. 이 인간들은.’

도아는 베리의 눈에는 도아도 똑같아 보인다는 걸 전혀 몰랐다.

애초에 모험가라는 직업 자체가 높은 단계로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수가 줄어든다.

B급 모험가만 되더라도 각 나라 기사단에서 제법 높은 연봉을 받으며 취직할 수 있었다.

물론, 모험가는 투잡 금지라서, 이직하려면 모험가를 그만둬야 하지만 말이다.

A급 모험가쯤 되면 어지간한 귀족 정도와 맞먹을 수도 있었다.

전 대륙의 귀족 수보다 A급 모험가 수가 훨씬 더 적다.

그럼 S급이면?

스스로는 황제니, 폐하니 하고 다녀도 다들 그러려니. 하는 수준이 된다.

도아는 곁에 이미 너무 높은 등급의 모험가들이 있어서 본인의 힘이 그리 실감 나지 않았다.

‘나 정도면 평범하지.’

같은, 남들이 들으면 입을 떡 벌릴 소리를 굳게 믿고 있었다.

“됴아 님.”

“응?”

“약이에요.”

베리가 컵 가득히 까만 액체를 담아왔다. 한약 비슷한 맛과 향이 났다.

“으으…….”

도아는 울상을 지었고, 베리는 짐짓 허리에 손을 얹었다.

“언능 드세여.”

“네에…….”

도아는 약은 단숨에 마셨다. 그녀가 다 마신 걸 확인한 베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도아 님이 약을 드실 때면 그도 제법 괜찮은 약초사가 된 기분이었다.

똑똑

정중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도아가 나서기도 전에 이미 쿠낙이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특급우편 서비스입니다.”

모자를 벗어 우편원이 싹싹하게 인사했다. 도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권했다.

“안에서 차 한잔하고 가세요.”

“그래도 될까요.”

언제나처럼 사양하지 않고 우편원은 안으로 들어섰다.

가방에서 편지와 신문 뭉치를 꺼낸 걸 쿠낙이 받아들었다.

댄버스 부인이 우유를 데우기 위해 법랑 냄비를 꺼내 들었다.

물은 언제나 화덕 위의 구리주전자에서 끓고 있었다.

설탕과 우유를 듬뿍 넣은 진한 밀크티를 두 잔 만들었다. 하나는 베리 전용 높은 의자에 앉은 베리 앞에 놓였고 하나는 우편원 앞에 놓였다.

우편부는 활짝 웃으며 머그잔을 들어 올렸다.

“여기 올라올 때마다 이 밀크티 생각이 난다니까요.”

도아가 편지를 분류하다가 웃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에요.”

“그나저나 집요정이라니. 유서 깊은 집안에 전해져온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요. 부럽네요.”

“어, 그래요?”

도아가 놀라 물었다. 댄버스 부인 말고도 다른 집요정이 있단 말인가?

우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냥 소문으로 들은 이야기이긴 하지만요. 실제로 봤다는 사람은 없어요.”

“그렇군요.”

‘신기하다’ 하고 도아는 편지 봉투를 바라보았다.

눈에 무척 띄는 고급스러운 편지 봉투였다. 게다가 엄청나게 두툼했다.

‘엘몬드 공작가에서 보낸 거네.’

그 외에는 얀에게서 한 통, 레―소소가 보낸 것 한 통, 산―다르크 가문에서도 다들 한 통씩 보내줬고, 심지어 냐냑세세에게서도 편지가 와 있었다.

그 외에도 팬레터 같은 편지나 의뢰 편지도 섞여 있었다.

“이 상자는 뭐죠?”

“엘몬드 공작가에서 보낸 상자예요.”

엽서 크기보다 조금 더 큰 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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