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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여행사 : S급 먹방대모험 패키지-87화 (96/100)

⊹ 87화 ⊹

‘우와, NPC 대사 같아.’

순간적으로 실례되는 생각을 해버렸다.

도아는 헛기침을 하고 물었다.

“대체 이 성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돌프는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구구절절 긴 이야기였지만, 축약하면 간단했다.

어느 날부터 도련님이 달라지셨다.

사람들은 ‘도련님이 어른스러워지셨네요.’ 하며 넘어갔다.

그런데 그 뒤로 성안의 사람들이 하나둘 실종되기 시작했다.

영주 부부도 이상해졌다.

돌프는 도련님이 수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영주의 후계자를 음해할 수는 없어서 넘어갔다.

‘높은 사람이 이상해지면 골치 아프네.’

도아는 고개를 기울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돌프는 고개를 흔들었다.

“점점 이상한 사람이 늘어갔습니다. 영주님 측근은 더욱이요……. 저는 도련님을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그리고 보고 말았습니다.”

“뭘?”

“도련님이 사람의 내장을 파먹는 장면을 말입니다…….”

도아는 눈을 깜박였다.

‘헐. 스플레터 호러는 나 안 되는데.’

도아 본인은 싹둑싹둑 마수를 자르는 주제에, 그런 연약한(?) 생각을 하며 말했다.

“그래서 여기 갇혀 있는 건가요? 나라면 들킨 순간 죽였을 거 같은데…….”

도아가 싹둑 하고 가위질을 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돌프가 허허 웃었다.

“저도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가두더군요.”

스윽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쿠낙이 발검해서 그의 목에 검날을 들이댔다.

“쿠낙?”

놀라 도아가 그를 돌아보자 쿠낙은 이리저리 검날을 움직였고, 돌프도 검날을 따라 침을 삼키며 고개를 움직였다.

“쿠낙, 좀 무례한데요.”

“멀쩡하게 여기 갇혀 있는 쪽이 수상하잖습니까?”

도아가 눈을 정화 모드로 돌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금색 테두리를 두르며 빛났다.

돌프가 흠칫했다.

도아는 샅샅이 그를 살펴보고 말했다.

“딱히 오염 같은 건 안 보여요.”

“마법에 걸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 이야기는 들어봐요.”

도아는 단서 추적으로 이 사람을 찾아왔기에 확신이 있었다.

“…….”

쿠낙이 검 끝을 내리자 돌프는 죽었다가 살아난 표정으로 턱을 어루만졌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그럼 도련님이 달라지신 게 언제쯤이지요?”

“두 달 전쯤입니다.”

“음……. 그 도련님이 가짜라면 진짜는 어디에 있을까요?”

“도련님께서 살아 계실까요……?”

돌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아는 이미 퀘스트 덕분에 답을 알지만 그걸 여기서 티 낼 수는 없으니 진중하게 말했다.

“모르지만 그래도 살아 있다는 걸 전제로 이야기를 이어 가지요.”

“그, 그렇지요. 그렇지요…….”

그는 실망한 기색이었다가 곧 고개를 흔들었다.

“도련님께서 두 달 전쯤 폐허의 마법사에 대해서 아는지 여쭤본 적이 있었습니다…….”

“폐허의 마법사요?”

“네, 여기서 북쪽으로 가면 당나귀산 산속에 허물어진 건물이 있는데, 거기에 대가를 받고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사가 산다는 괴담이지요. 동네 아이들이라면 다 아는 내용입니다. 저도 어릴 때 들은 적이 있지요.”

띠링띠링

마치 그 말이 맞다는 것처럼 단서 업데이트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도아가 이어 물었다.

“그리고 제 일행이 여기에 들어왔는데, 혹시 사람을 가둬둘 수 있는 공간도 있나요?”

“비밀감옥이 있기는 합니다만.”

“길을 알려주세요.”

도아의 말에 돌프는 성의 구조와 비밀통로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주요 인물들에 대한 정보도 받았다.

대충 이야기를 다 듣고 도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성안에 무시무시한 마수들이 돌아다니니 여기에 숨어 계시는 게 좋겠어요. 아니면 탈출을 시도해 보시겠어요?”

돌프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냥 여기 있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 식량이랑 물은 두고 갈게요. 포션도 한 알 같이 드리지요.”

이것저것 챙겨주고서 도아가 탑을 나서자 돌프가 그녀를 붙잡았다.

“다시 돌아오시는 거지요?”

도아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도아가 탑의 좁을 계단을 내려가며 말했다.

“일단 그 비밀감옥을 먼저 찾아봐요. 혹시 폐하가 거기에 갇혀 있을지도 모르고요.”

“괜찮지 않을까요?”

“괜찮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성이 이런 상황인데 반응이 없는 게 더 이상해요.”

“도아 양은…….”

“?”

갸웃하며 힐끗 돌아보자 쿠낙이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친절한 거 같습니다.”

도아가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하하 웃고 제 눈을 가리켰다.

“쿠낙이 할 이야기는 아니지 않아요?”

그녀 말에 쿠낙의 뺨이 더욱 달아올랐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그렇게 친절하면 안 됩니다.”

“네이, 네이.”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에이, 해도 괜찮아요. 쿠낙이 걱정해서 해 주는 말이라는 거 다 알아요.”

도아가 마지막 계단을 디디며 빙글 웃었다.

“그렇지만 내가 혼자라면, 누가 와 줬으면 좋겠거든요. 받고 싶은 대로 행하는 거죠. 라크샤샤가 알려준 거랍니다.”

“그 고양이족 약초사 말입니까?”

“네.”

“위대한 라크샤샤와 동명이었지요. 생김새도 비슷하고…….”

“그죠?”

헛기침하고 도아가 적당히 말을 돌렸다.

“그런데 쿠낙은 어떻게 생각해요? 인간 모습을 하고, 인간의 내장을 먹는 마수라……. 마법사가 변신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마법사는 아닌 거 아닐까요?”

“글쎄요. 레이스가 돌아다니는 걸로 봐서 언데드 계열이라면 인간을 먹겠지만……. 변신 능력이 있는 언데드라면…….”

그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리치(lich)일까요.”

“불사의 마법사라…….”

리치란 ‘스스로 언데드가 되는 길을 택한 인간’을 뜻한다.

보통 자신의 영혼을 어딘가에 담아두고 영혼이 담겨 있는 그 ‘영혼함’만 무사하다면 본체는 얼마든지 도로 살아난다.

보통 ‘스스로 언데드가 되는 길’을 가려면 상당한 마법 실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리치들은 대부분 마법사다.

“엄청 까다롭네.”

도아가 중얼거리자 쿠낙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게다가 몸을 오염에 노출 시키니 아무리 영혼을 분리한다고 해도 변질되기가 쉽거든요.”

“그렇겠죠.”

정신이 멀쩡한 리치 이야기 따위 들어본 적이 없다.

탑을 내려온 도아는 비밀통로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평소에는 안으로 당겨서 여는 문인데, 이걸 있는 힘껏 바깥으로 밀면 바닥의 통로가 드러나는 방식이었다.

좁은 입구를 내려오면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숨 막힐 거 같은 복도가 이어졌다.

중간중간 함정 갈림길이 나올 때면, 도아는 단서 추적을 켰다. 추적기능 덕분에 어려움 없이 길을 갈 수 있었다.

추적용 가이드라인이 누가 봐도 벽으로 보이는 곳으로 이어졌다.

도아는 살짝 벽을 두들겨 보았다.

건너편이 비어 있는 소리가 났다.

“쿠낙, 이거 밀어 볼게요.”

도아가 조심스럽게 한쪽 벽 끝을 밀자 빙글 벽이 회전했다. 복도 반대편 벽에 닿을 정도로 문이 제법 크게 돌았다.

‘우왁!’

어쩔 수 없이 도아는 통로를 통해 건너편으로 건너왔다.

첨벙

발밑이 물에 잠긴다.

사방이 깜깜했다. 공기가 무척 축축했다. 짙은 안개, 또는 구름 속에 들어와 있는 감각이었다.

‘게다가 공기가 달콤해, 뭐지……?’

도아는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 뭔지 몰라도 좋지 않은 거 같았다.

파지지직

도아의 머리띠가 다시금 떨리며 반응했다.

‘정신계 마법!’

도아가 휙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쿠낙, 들어오지 마…… 세요……. 라고 하기에는 늦었죠. 네에.”

도아는 검 손잡이를 붙잡았다.

쿠낙의 눈에 초점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가 언제 공격해 올까, 긴장하고 있는데 움직임이 없었다.

도아는 고개를 갸웃하고 조심스럽게 그에게로 다가가 보았다.

“쿠낙? 들려요?”

그녀가 휙휙 손을 그의 눈앞에 흔들어 보았지만 쿠낙은 반응이 없었다.

‘공격을 하는 건 아니고……. 자신의 꿈속에 빠지게 하는 정신계 마법인가?’

도아가 쿠낙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다가 말했다.

“쿠낙, 실례할게요. 정신계 마법에서 빠져나오는 기본 방법은 역시 외부에서 가하는 충격이라…….”

짜악―!!

도아가 그의 뺨을 후려쳤다. 입술이 터져버릴 정도의 일격이었는데도, 깨어나는 기미가 없었다.

“으아아아, 안 통하네. 진짜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사과를 연신 늘어놓고 도아는 제 머리띠를 만지작거렸다.

“바깥에서 자극을 주는 정도로는 안 깬다 이거지?”

쩡―!

쩌엉―!

그때 멀리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도아가 휙 시선을 돌렸다.

안개와 어둠 때문에 소리만 들리고 상대는 보이지 않았지만…….

도아는 쿠낙을 벽으로 밀어붙이며 마나를 회전시켰다.

빛 마나의 특징은 한순간에 최고속도로 마나를 돌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제로백이 0초인 셈이다.

도아는 두꺼운 빛의 방어막을 만들어냈고 동시에 푸른 화염이 어둠과 안개를 살랐다.

푸아아악―!

‘칫―!’

도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방어막이 녹아내리고 고열 때문에 바닥에 고여 있던 물이 전부 증발했다.

불이 사그라지는 순간, 도아는 방어막을 치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공기가 뜨거웠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그대로 폐가 익어 버릴 거 같았다.

쩡!

쩌엉―!

마나관에 마나가 달리는 회전음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고, 도아는 상대에게 뛰어들 듯 달려들었다.

양팔로 그를 꽉 끌어안으며 도아는 바닥에 쓰러졌다.

아니, 쓰러지려고 했다.

순간적으로 로베른은 도아의 멱살을 잡으며 그녀를 바닥으로 메다꽂았다.

“켁―!”

숨이 막혀왔지만 도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폐하! 나야!”

동시에 무릎으로 그의 복부를 올려 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는 데다 정신도 없을 텐데 로베른은 손으로 그녀의 무릎을 턱 막아냈다.

도아는 손으로 그를 치려다가 멈칫했다.

그녀의 뺨에 핏방울이 떨어졌다.

그의 입가에서 피가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푸른색 눈동자가 흐릿해졌다가 초점이 맞기를 반복했다.

마치 원시라 잘 안 보이는 사람처럼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에게 바싹 다가왔다.

도아는 침을 꼴깍 삼켰다.

“폐하,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혀 깨문 거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 줬으면 좋겠는데…….”

‘정신계 마법, 마법을 어떻게 깨더라? 내가 깨고 나오는 방법은 아는데 남의 걸 깨 주는 건 배운 적이 없는데……. 물리력 행사는 아까 실패했고.’

[이럴 수가 놀랍군요. 위대한 아라락의 마법에 저항하는 자가 있다니.]

“!!”

도아가 움찔하며 움직이려 했지만, 로베른이 그녀를 꽉 붙잡았다.

“아, 진짜! 폐하, 쫌! 이러고 있으면 그쪽이 그냥 방패밖에 안 되거든요?”

도아는 짜증을 내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상대는 예상외의 생물이었다.

“나는…… 갈치……?”

은백색의 길쭉한 생선인데 머리에는 초롱아귀처럼 초롱이 달려 있었다.

[이 몸은 위대한 아라락의 분신인 카르치라고 한답니다.]

“와, 진짜 갈치다……. 좀 크지만.”

길이가 최소 3m 정도는 되어 보였다. 그게 구불구불 허공에서 헤엄치는 동작을 하는 게 좀 징그러웠다.

‘생선보다는 뱀처럼 움직이네.’

[네년은 어떻게 멀쩡한 건지요? 마법도 쓰지 못하는 반푼이 같은데요.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건가요.]

‘와, 생선에게 무시당했다. 존댓말 하는데도 기분 나빠.’

도아의 손이 슬그머니 비도 쪽으로 향했다.

[어떤 고대 던전에서 아이템을 얻은 거지요?]

“가르쳐 주겠냐.”

도아의 말에 갈치, 아니 카르치가 [훗훗훗.] 하고 느끼하게 웃었다.

[역시 무식한 자는 말로 해서는 안 되는군요.]

“!!”

도아는 그대로 로베른을 붙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푝푝푝!

바닥에서 송곳 같은 것들이 솟구쳐 올랐다.

‘주문도 없이? 주문을 외우지 않는 마법이라고?’

도아는 구른 힘 그대로 몸을 벌떡 일으키며 로베른을 한 대 철썩 때렸다.

그의 입에서 피가 울컥 흘러나왔다.

“아, 진짜! 혀 깨물었네! 로베른, 정신 차려!”

속상해서 도아가 소리 질렀다.

[남 걱정해 줄 때가 아닐 텐데요.]

도아는 로베른을 놓으며 연속해서 이어지는 검은색 불덩이 공격을 피해냈다.

역시나 주문이 따로 없는 공격이다.

‘갈치 주제에 주문도 없이 마법을 쓴다고? 리치가 그 정도로 강한 마법사인 건가…….’

그때 머릿속에서 불이 반짝했다.

‘그렇구나!’

도아는 검을 꺼내 들었다.

마나를 빠르게 회전시키며, 검날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금색 칼날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도아는 이어지는 공격을 피해서 훌쩍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훗훗. 제 공격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몇몇 공격이 단순한 움직임을 가진 도아에게 명중했다.

피가 튀었다.

“그거, 잘났네!”

소리치며 도아는 천장을 있는 힘껏 베어냈다. 금색 빛줄기가 검은 공간을 가로질렀다.

누가 보면 엉뚱한 방향을 공격했겠다고 했겠지만, 카르치는 당황했다.

[아닛!]

새까만 공간이 일렁인다.

도아는 바닥으로 떨어지며 혀를 찼다.

‘조금 부족했는걸.’

그때 푸른색 불꽃이 그녀가 가른 틈 사이로 이어서 쏘아졌다.

새까만 공간이 순식간에 타들어 가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건 평범한 지하실이었다.

[으음, 이럴 수가. 반푼이가 둘이면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군요.]

카르치는 별로 당황하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도아가 그를 향해 검을 들이대자, 카르치가 말했다.

[이 계집은 방어구를 가지고 있다고 치고, 그쪽은 어떻게 마법에서 탈출한 거지요? 가장 행복한 꿈을 꾸게 해 주는 마법인데 말이지요.]

로베른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카르치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무래도 좋지요. 나중에 뇌를 열어서 꼭 알아내겠습니다.]

“내가 살려 보내줄 거 같아?”

도아의 말에 카르치는 히죽거렸다.

[저는 위대한 아라락의 분신. 제 죽음은 진정한 죽음이 아닙니다. 우매한 필멸자들이여.]

“헉, 나 필멸자라는 말 육성으로 처음 들어 봐.”

도아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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