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그 말 괜찮은데? 접속했다는 말.”
“임시 파티원 시험을 볼 일주일이 지나 버렸어.”
“아, 맞아. 그랬지. 미안해.”
바르샤가 멋쩍은 얼굴을 했다. 도아가 물었다.
“뭘 조사하고 있었던 거야?”
“음……. 안티 링 때문에. 그런데 여기는 어디야?”
“나스. 엘몬드 공작령으로 이동하는 중.”
바르샤는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바구니 속에서 둥실 떠올라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후후, 다들 이 몸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는군. 역시 모두에게 보여줘야―”
그가 옷고름을 잡는 순간 도아가 그의 손을 콱 잡고 말했다.
“외설스러운 짓을 하면 가만 안 둔다?”
“예술의 아름다움을 모르다니, 인생의 모든 것은 한때이나 예술은 영원하다네.”
“그건 옷 벗으며 할 말은 아닌 거 같네.”
도아가 포푸리 옆에 놓인 라벤더 화환을 하나 집어 들어 바르샤의 머리 위에 올려주었다.
“자. ‘아름다운 것에 아름다운 것을―’ 같은 게 생활 속 예술 아닐까.”
평범한 거, 평범한 거. 옷 벗는 거 말고.
도아의 말에 바르샤는 눈을 크게 뜨고는 어쩐지 수줍게 웃었다.
“그렇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뭐야? 돌아왔나?”
옆 가게에서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돌아온 로베른이 바르샤를 보고 눈을 찌푸렸다. 바르샤가 그를 본 후에 도아를 보았다.
“그럼, 리더. 파티를 등록하지 않겠나?”
“응?”
“날 버리고 오지 않은 걸 보면, 파티원으로 받아 주기로 한 거겠지?”
“아니, 파티원으로 안 받아도 버리고 오기는 좀 그렇지 않나?”
“그럼 나 탈락한 건가?”
“그건 아니지만.”
바르샤가 싱긋 웃었다.
“그렇다면 상관없지 않아? 일단 파티 등록을 하지.”
그때 쿠낙이 들고 온 아이스크림을 도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무슨 사고 쳤습니까?”
“사고라니.”
바르샤는 억울한 얼굴을 해 보였다. 쿠낙이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이 먼저 뭔가를 하자고 할 때는 사고를 친 후니까요. 도아 양에게 폐를 끼치는 건 용납 못 합니다.”
“사고라니. 일반인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고실험의 한 영역일 뿐이지. 애초에 약한 게 나쁜 거고―”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도아는 조심스럽게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맛보았다.
‘가격이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싼 거에 비하면 평범한 맛이네. 하긴 이 계절에 아이스크림이 나온다는 거 자체가, 뭐.’
거기에 재료도 하나같이 비싼 것들뿐이다.
‘현대였으면 라벤더밭을 배경으로 아이스크림 들고 사진이라도 찍을 텐데.’
힐끗 바라보니 베리는 신이 나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한 손에는 야무지게 해왕이의 몫까지 들고 있는데 해왕이도 무척 즐거워 보였다.
도아는 살짝 웃었다.
‘그래, 너네들이 즐거우면 됐지.’
도아가 아직도 투덕거리고 있는 바르샤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그래서, 파티 등록은 갑작스럽게 왜 하자는 건데?”
“불온한 반 마법단체를 조사하려고 하니, 나 혼자는 안 된다고 해서. 권력을 잡은 것들이 이 몸을 두려워하더라고―”
“안티 링 조사를 모험가 길드에서 반대했다고?”
도아가 의아해하며 묻자, 바르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길드뿐 아니라 링에서도 시끄럽게 굴어서 그 이야기를 마무리하느라 늦은 거야. 어쨌든 파티로 움직이면 조사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더군.”
“왜 반대하는데?”
“리더는 마법을 배웠지?”
“아주아주 기초 정도.”
“왜 배우다 말았지?”
도아는 엘리바스를 떠올렸다. 그녀가 요리를 선택하기는 했지만, 엘리바스에게 마법을 배울 시간은 충분했다.
실제도 그녀에게 어느 정도 마법을 가르친 것도 엘리바스고.
“스승님이 마법보다 요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도아의 말에 바르샤는 미소 지었다. 그건 그 나이 또래의 소년이 지을 수 있는 미소는 아니었다.
“리더는 분명 마법을 배우는 것보다 요리를 배우는 게 더 적성에 맞았겠지.”
“그런 거 같아.”
애초에 마법을 사용하려면 척추에 진을 새겨야 하는데, 그 고통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다.
검을 휘두르고 마법을 쓰는 마검사가 멋지게 들리기는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검을 휘두르고 맛있는 케이크를 한 판 굽는 게 도아는 더 행복했다.
“나도 그렇게 골라내려는 거야.”
바르샤가 도아를 바라보았다.
“애초부터 노력하면 ‘누구나’ 마법을 쓸 수 있다, 라는 전제가 틀렸어. 이제 마법은 선택된 자만 쓸 수 있게 될 거야. 그리고 이런 내 사고방식은 우매한 자들에게는 불온하게 들리겠지.”
음하고 도아는 아이스크림을 한입 가득 맛보고 물었다.
“안전해?”
바르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떤 의미지?”
“바르샤가 새로 만드는 방법이 지금 방식보다 더 안전한 거 아냐?”
오염돼서 폭주하는 화력발전소를 만드는 방법보다 더 안전한 거 아닐까.
바르샤는 잠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도아를 바라보았다.
도아는 ‘뭐가 불만이지?’ 했다가 ‘아아.’ 하고 얼른 말을 바꾸었다.
“새로운 방식으로 선택된 자들이 마법을 쓰면 일반인들도 그 덕에 조금쯤은 안전해지지 않을까……?”
되지도 않는 중2 같은 엘리트주의적 발언을 하려니 무척 어색했지만, 바르샤는 그 발언이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높으니 가능하면 안티 링을 조사하고 싶어. 협조해 주겠어?”
“뭐, 바르샤가 내 일에 협조해 주면 나도 협조해 주지.”
“비추는 샘 공략?”
“응.”
바르샤가 환하게 웃었다.
“애초에 거기 끼고 싶어서 나도 파티에 넣어달라고 한 거잖아. 좋아!”
❖ ❖ ❖
바르샤의 눈에 생기가 없다.
인형인 주제에 표정이 기가 막힐 정도로 풍부한 게 열받는다.
“B급 파티라니.”
바르샤가 웅얼거렸다.
“B급 파티라니. S급이 셋이나 되는데 B급이라니.”
도아가 뚱하니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파티는 등급이 가장 낮은 사람의 등급을 따라서 책정되는걸.”
나스에 있는 모험가 길드 지점장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봐도 S급이 셋이나 되는 파티의 등급이 B급이라는 게 말이 안 됐다.
하지만 규정은 규정이다.
예외를 둘 수는 없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도아는 파티 등급란에 별말 없이 ‘B’라고 적었다.
도아가 파티 이름을 적는 칸에서 멈췄다.
“그래서 파티 이름은 뭘로 할까?”
“B급 파티.”
로베른의 말에 도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기각.”
“마탑의 왕 어떤가?”
“기각.”
“위대한 아주르 나자크를 찬양하는―”
“기각.”
도아가 잉크가 종이 위로 떨어지지 않게 펜을 한쪽으로 치우고 말했다.
“저번 파티는 무슨 이름이었어?”
“마룡 때려잡기였나요?”
“마룡 패기 아니었나?”
“마룡 살해자인 줄 알았는데?”
“…….”
고인물 파티라서 이름을 저렇게 막 짓는 건가.
‘나도 그냥 비추는 샘 공략이라고 적을까? 아냐. 근데 이 이름 자체가 너무 소란을 불러일으킬 거 같아.’
파티 이름을 정해야 하다니, 이게 뭐람?
도아가 머리카락을 붙잡고 끙끙거리는 사이 뒤에 있던 일행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황제와 그 수하들 어떤가.”
“그딴 이름을 붙일 바에야 반역을 일으키겠습니다.”
“링 리더와 행복한 여행은?”
“네 놈이 행복한 여행을 해 봐야 인류가 손해 볼 거 같은 기분만 드는군.”
남은 심각하게 고민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쓸데없는 다툼이나 하고 있다.
조별 과제에서 조장이 되었는데, 조 이름을 지으라는 쓸데없는 과제를 받은 기분이 된 도아가 짜증 나서 말했다.
“자꾸 그러면 ‘도아와 떨거지들’이라고 짓는다?”
“좋습니다.”
“짐을 떨거지라고 부르는 그 패기가 마음에 드는군.”
“리더가 그런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 이거 이거 훌륭한걸?”
도아가 놀라 일행을 돌아보았다.
“뭐? 아, 잠깐! 폐하!”
도아가 내려놓은 펜을 집어 들어 로베른이 유려한 흘림체로 ‘도아와 떨거지들’이라고 이름을 작성한 후에 종이를 지점장 앞으로 밀었다.
“끝났네.”
“진짜 저 이름으로 하려고??”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아니, 그래도 저 이름은 좀? 나 엄청나게 욕먹는 거 아냐??”
“B급은 희한한 곳에서 소심하군. 자, 이러면 되겠지?”
로베른이 획을 추가했다.
‘모아와 떨거지들.’
“B급의 이름이 아니니까 괜찮지.”
“그런 문제야?! 누구 파티야 저게?!”
도아가 경악하건 말건,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지점장은 로베른의 손에서 종이를 얼른 받아 갔다.
쾅!
확인 도장이 찍혔다.
“등록되셨습니다. 일주일 안으로 모험가 길드 전산에 등록될 겁니다. 그러면 카드를 태그 하셨을 때 파티가 뜹니다.”
친절한 설명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도아는 넋이 나가 모험가 길드를 나왔다.
“어쨌든 파티 결성을 축하드립니다. 도아 양.”
“더아 님, 축하해요.”
“축하하네.”
“이제 정식 리더가 됐군. 축하해.”
“컹컹!”
“하아…….”
도아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름 같은 게 뭐가 중요하겠어. 중요한 건 내가 파티를 만들었다는 거지. 이걸로 퀘스트에 한 발자국 다가간 거라고 하자.’
도아는 마음을 추슬렀다.
라벤더 포푸리가 그래도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 ❖ ❖
[모아와 떨거지들]
파티의 이름을 보고 얀은 심각한 얼굴을 했다.
‘누군데?’
서류의 내용은 항상 보는 거였다.
4인 파티 등록.
파티명 : 모아와 떨거지들
파티 리더 : 김도아(B)
파티원 : 쿠낙 샌델(S)
파티원 : 로베른(S)
파티원 : 바르샤 오르카(S)
‘오타 났나?’
이름을 쓰다가 오타가 난 건지 다시 확인을 해 봤는데, 나스 지점장이 ‘모아’가 맞다고 했다.
‘뭔가를 모아오라는 뜻인가?’
얀은 고민했지만 도무지 정답을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급이 높아질수록 파티 이름을 적당히 막 짓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E급이나 F급 파티 쪽의 이름이 관록 있는 파티처럼 보였다.
그러니 이름 문제는 적당히 넘어가고, 얀은 툭툭 손가락으로 서류를 두들겼다. 예상치 못한 이름이 끼어있었다.
‘바르샤까지 합류했나.’
그가 정보를 내놓으라고 모험가 길드에 시끄럽게 굴기에 파티를 구해오면 정보를 주겠다고 답했다.
‘바르샤와 파티 짜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허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 파티라면 문제없나?’
얀은 가만히 파티 등록증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로 S급이 모인 파티가 다시 생길 줄은 몰랐다.
이쯤 되면 나라도 움직일 수 있을 만한 무력 집단이다.
애초에 S급은 몰려다니지 않는다.
여러 가지 항의가 모험가 길드를 향해 들어올지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도아 양이 여기저기 좋은 이미지를 뿌리고 다닌다는 거지.’
선량한 이미지만큼 모험가에게 소중한 게 또 있을까.
‘실적을 보면……. 조금 더 있다가 A급으로 올려드려야겠다.’
S급이랑 함께 다니면서 실적을 얻어먹었다는 험담도 듣고 있지만, 얀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처구니가 없었다.
S급이 그런 짓이나 하고 다닐 만큼 한가할 거 같은 건지.
그는 다시 명단을 보았다.
제 동생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게 어쩐지 뿌듯했다. 파티에 들지 못하고 솔로잉만 하다가 끝날 줄 알았는데.
요즘 그는 동생 자랑과 걱정에 바빴다. 이제 마검 문제에서 벗어났으니 마음껏 동생 이야기를 해도 된다.
‘나중에 아버지 성묘도 같이 가자고 해야지.’
얀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며칠 뒤 신문에 기사가 났다.
S급이 셋이나 들어간 파티가 만들어졌다는 기사였다.
그런데 기사마다 파티 명이 조금씩 달랐다.
모아와 떨거지들.
도아와 떨거지들.
이렇게 파티 이름이 두 개였다.
’모아와 떨거지들’이라는 이름을 듣고 몇몇 기자가 ‘파티 리더가 도아이니 오타겠지.’라고 생각하며 파티 이름을 고쳐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대체 뭐가 맞는 거냐며 웅성거렸지만, 어쨌든 이렇게까지 이목을 끈 B급 파티는 처음이었다.
S급이 셋이나 뭉치면 아무래도 각국의 시선 역시 그쪽으로 쏠리게 된다.
“미치광이 바르샤?”
“미치광이 바르샤가 합류했다고?”
“대체 이 파티는 뭘 하는 파티지?”
“게다가 어째서 B급이 파티 리더인 거야?”
“S급들이 왜 떨거지야?”
“그래서 모아야? 도아야?”
슈퍼루키 김도아 역시 유명인이었다.
A급 던전 솔로 공략
떨어지는 태양의 도시 공략
최근에는 미르카에서 벌어진 사건도 김도아와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고 있었다.
그녀가 용사의 유품인 실드메이든을 손에 넣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당연히 그녀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주목의 대상이었다.
[모아와 떨거지들, 프롱드로 향해.]
[도아와 떨거지들, 프롱드는 지나갈 뿐? 목적지는 후단?]
핫한 주제로 기사가 신나게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덕분이라고 할까.
도아는 이 세계에 와서 이렇게까지 곤란한 적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엘몬드 공작령으로 들어와서 얼마 되지 않아, 새하얀 마차를 타고 노부인이 도착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도아에게 말했다.
“아이고, 아가!”
“……누구세요?”
노부인의 눈은 흐려지기는 했지만 녹색이었다. 아주르 나자크다.
노부인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말했다.
“내가 네 할머니야. 외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