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프롤로그 (1/289)



〈 1화 〉프롤로그

“아....머리야..”

급작스러운 두통에 의식을 챙긴 나는 머리를 짚으며 눈을 떴다.

“....아..아아....시발?”

어? 뭔가 이상하다. 지금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분명 32살 먹은 아저씨의 목소리가 아니다.

간드럽고 높은 목소리. 마치 여자같은...

“어?! 어어?! 뭔데! 뭐냐고!”

섬뜩한 위하감을 느낀 나는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가녀리고 얇은 팔다리, 봉긋 솟아오른 가슴,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머리.

아무리 봐도 남자의 몸이 아닌, 여자의 몸이었다.

“꿈..꿈인가? 아야야...아픈데? 뭔데?”

혹시 꿈을 꾸고 있나 싶어 양 볼을 쌔게 꼬집어 봤지만, 얼얼한 고통만이 느껴져 왔다.

“후우..후우...침착..침착하고..여긴 어디야?”

혼란스러운 머리를 어떻게든 진정시키며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구름 한 점없는 푸른 하늘, 그 하늘을 감싸는  한 높게 자라있는 나무들, 이따금 씩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아무리 봐도 깊은 숲 한 가운데 였다.



내가 제 발로 이 숲에 들어와서기절  일은 없고, 기억 기억을 더듬어 본다.


분명 내 마지막 기억은...레스토랑에서 퇴근하고, 혁수. 그래! 혁수를 만나서 드라이브를...

“혁수!이 새끼 어디갔어?”

분명 마지막 기억까지 같이 있었던 친한 동생 혁수. 그 녀석은 어디 있지?

“아 저깄다! 야! 혁수! 일어나!”

혁수를 찾아 주위를 살피던 나는 바로 근처에서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혁수놈을 찾아 냈다.

“악! 이런 시발...”

벌떡 일어나 혁수에게 걸어가려다가 원래의 나를 감싸던 옷들이 지금 크기의 나를 덮지 못하고 스르륵 내려가 다리를 걸었다. 바닥에 얼굴 박을 뻔 했네..

그래서 난 결국 옷가지 들을 거의 들다싶이 해서 혁수에게 다가갔다.

아무리 사람이 없는 깊은 숲이라지만 알몸으로 달려가는 건 내 머릿속 남아있는 수치심이 가로막았다.

“야! 야아!! 죽었냐?”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걸 보면 죽지는 않고 정신을 잃은 것 같다.

“이새꺄! 일어나!”

“어..어억!”

흐느적거리는 혁수의 뺨을 한 대 갈기니깐 번쩍하고 눈을 떳다.

“하...넌 진짜..”

“누..누구세요?”

생각해보면참 재수없는 날이었다.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발가락을 찧질 않나, 담배를 피다가 불에 손을 데이지 않나.
그래. 거기까지는 괜찮아. 에이 ㅈ같네 하면서 넘길 수도 있는 일이니깐.

“어 어억!  그러세요?!”

난 혁수의 멱살을 두 손으로 단단하게 쥐었다. 본 모습보다 한참 작은 손은 덩치  성인 남성의 멱살을 잡는 것도 힘든 것 같다.

근데. 이건 아니지.

“이 씨발아! 어떻게 차가 한 대도 안 지나가는 고속도로에서 코너링하다가 가드레일을 처박고 절벽에 떨어지냐??”

그것도 내 애마를!


나는 다시 번 강하게 혁수. 이 썅놈의 새끼의 뺨을 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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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강준...형? 형 맞아?..요?”

“그럼 누군데?”

“아니이...아무리 그래도 내가 아는 형은 수염난 아재인데 갑자기  여자애가 형이라고 하면 누구나...”

“닥쳐. 자연스럽게  내리지 마. 이마빡에 담배 빵 놓기 전에.”

“형 맞네..”

나에게 여러 차례 뺨을 얻어맞은 혁수 놈은 퉁퉁 부은 얼굴을 한 채로 엎드려뻗쳐를 하며 중얼거렸다.

 녀석은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후배였다.

기분전환 하자며 드라이브 하자고 했을 때, 자기가 운전 하겠다고 한 것을 뜯어 말렸어야 했는데...


“콜록! 콜록! 하...시바꺼.. 폐가 완전 새것이 됐네..”

항상 하던 담배맛이 쓰고 매운 맛이 돼버리긴 했지만 뭐...금방 익숙해질 것이다.

“이참에 끊지 그래? 가뜩이나 셰프라는 사람이 담배나 피고...억!”

“너는 잘! 나서! 니! 차도! 아닌! 내! 차를! 가드레일에! 박냐?”

괜히 구시렁거리던 혁수놈의 대갈통을 이미 헐렁해서 신기도 힘든 구두로 수차례 갈겼다.

가뜩이나 이 몸뚱아리가 ㅈ같은데 기름을 붓고 있네.

“악! 아! 진짜 아파! 잘못했어!”

“웃지? 어? 아주 씨발 뒤져봐라!”

그렇게 한 창 난동을 피운 후, 우리는 이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근데...우리어떻게  거야, 형?”

“나도 몰라....현실이라면, 분명 개 박살 난 차에서 더 박살 난 몸뚱아리에서 깨어나던지, 아니면 죽던지 했을 텐데..아니 씨발 나는 왜 이딴 모습으로 변한 거야? 이거 꿈인가?”

가뜩이나 짜증난데 저 녀석은 본 모습 그대로라서 더 짜증난다. 32살 처먹은 아저씨가 꼬마 여자애로 변했는데.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녀석이 미친것이겠지.

“아무리 봐도…. 꿈은 아닌 것 같아.”


“그럼...우린 뒤져서 저승에 온거냐?”

“저..저승?”

“.....그렇게 높은 곳에서 꼬라박았는데 살아있는 게 신기한 거 아냐?”

내 말에 동공이 흔들리며 놀라는 혁수덕에 나마저 점점 이성을 잃어갈 것 같다.

“혀..혀엉..우리..흐윽..진짜 죽은거야?”


혁수가 거의 울음을 터뜨려 버릴 것 만 같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가..진짜 죽어 버린 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저승이 아니라면 이렇게 사지 멀쩡하게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아이고오!!! 씨이바알! 흐윽... 아직 못해본 요리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저..히끅...개새끼 때문에 뒤져버렸어어!!”

결국 참다 참다 터져버린 울화통에 빼액 소리를 질렀다.

시발. 이렇게 뒤질 거였으면 적금깨고 해외여행이나 다녀올걸.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고, 미친 듯이 징징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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