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이세계로 오다. (3/289)



〈 3화 〉이세계로 오다.

“으읏..차!....아이고...무거워라..”

향이는 항아리를 들어내며 곡소리를 내었다.

그날은 어느 때와 같이 항아리에 우물물을 채우고 있었다.

마을과 좀 떨어진 우물이라 조금 거리가 있어 옮기기가 힘들지만, 매일 아침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어머니는 향이를 낳고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돈을 벌기위해 도시로 나갔지만 몇 개월이 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이제 막 16살 된 향이에게는 이런 환경이 힘들게 느껴졌지만, 항상 소일거리를 뛰며, 조금씩 돈을 모으고 있었다.

언젠간 인생의 변환점을 찾을  있지 않을까? 싶은 막연한 미래였지만, 향이는 밝고 부지런한 아이였다.

-부스럭. 부스럭-

“뭐..뭐지?”

그때 근처 수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 향이는 몸을 움츠려, 언제든지 달릴 수 있게 만들었다.

요즘 들어서 잠잠해지긴 했지만, 악귀(餓鬼)들이 돌아다닌다는 말이 많던 오평산의 근처라서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만약, 악귀들이 나타났다면, 어떻게든 마을로 달려가, 피해자가 생기기 전에  소식을 알려야 했다.

자칫하면 자신이 죽을 수 도 있다는 감정은 향이를 더욱 위축시키기에는 충분 했으나, 향이는 굳게 마음을 다잡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수풀에서 나오기시작하는 형체들.

“푸하...드디어 밖이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바깥이야? 이틀? 진짜....죽을  했어....”

“혀..형! 저기 사람이야! 사람!”

“뭐? 시발 빨리 달려!!”

그 수풀에서 나온 것은 꼬질꼬질한 행세를 한, 이상한 옷을 입은 남자와 마찬가지고 꼬질꼬질하고 이상한 천을 대충 몸에 감은 여자아이였다.

“어....안녕하세요?”

그런 두 사람에게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려 보이며 인사를 건네는 향이.

이게 향이와 그들의 첫 만남이였다.
______________

“꿀꺽...꿀꺽....푸하!!! 아 진짜 살겠다!”

“어후....진짜...물이 이렇게 맛있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다.”

숲에서 막 내려온 우리는 어떤 여자아이를 만나, 잠깐 그 아이의 집에서 쉬기로 정했다.

인적도 별로 없고, 정말 조선시대에서나 볼법한 초가집에서 사는 소녀의 집은 깊은 시골보다도 더 시골 같은 모습 이였다.
아직도 대한민국에 이런 집이 남아있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항아리에 물을 떠서, 그것도 머리에 이고자신의 집까지 가져오던 여자아이는 이게 뭐가 대수라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아했다.

“천천히 드세요. 그러다가 체할라.”

“아 진짜 고마워. 다행이 살았어.”

저건 빈말이 아니라 사실 이였다.

우리가 아까까지 있었던 숲은 사람이 다니지 않았는지 길이란 길은 보이지가 않았고,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물론  다리가 아니라 혁수의 다리였지만, 혁수의 전신이 한번 걸을  마다 엄청 흔들려서 망연하게 편하지는 않았다.

 뒤로도 해가 져서 노숙을 하기도 하고....

진짜 담배 안 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담배와 함께 있던 라이터가 아니었으면, 자다가  돌아갈 만 큼, 불 없이는 아주 추운 숲이었다.

이런 곳에서 흡연자의 장점을 발견 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먹을 것도 없고, 물도 못 마시던 우리에겐 이 물은 어떤 음료보다도 달게 느껴졌다.

“전 향 이라고 해요. 그런데,  분들은 어떤 연고로 오평산에 계셨던 것인가요?”

“오평산? 그 산 이름이오평산이야? 야. 넌 그런 산 이름 들어봤냐?”

“아니 처음 들어보는데?”

“뭐, 아무튼 원래는 내 소중한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 중이였는데  썅놈 새끼가 가드레일을 박고, 그 숲으로 떨어졌어.”

“드라이브? 가드레일? 그게 뭔가요?”

“아무튼, 근처에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지, 혹시 전화기는 어디 있어?”

“전화기는....또 뭐죠?”

이상하다. 아무리 한복 같은 옷을 입고, 깊은 시골 같은 집에서 산다지만, 이런 상식 같은 이야기를 모른다는 건 꽤나 큰 위화감이 들었다.

“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 아무리 이런 시골이라도, 전화기  대 정도는 있을 거 아냐?”

“무슨 소리인지 정말 모르겠어요..아까부터 처음 들어보는 소리만 하시는데...”

이게 무슨 질 나쁜 농담인가 싶어 향이를 바라보니 그녀의 표정에는 정말로 모른다는 듯이 의문감과 당혹감만이 보였다.

“혀..형. 여기 좀 이상해...여기로 오는 길에 죄다 논과 밭만 있고,  흔한 전봇대 한 개  봤어.”

“넌 또 무슨 개소리야?”

 자식은 또 뭔 소릴 하는 건지. 가뜩이나 땅덩어리 좁은 대한민국에 그런 곳이 있을 리가 없잖아?

“이..일단 여긴 어느 지역인데?”

“여긴 하림마을 이예요,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죠. 저희 집은 마을과도 좀 떨어져 있는 집이지요.”

“하림? 수도는 서울이잖아?”

“서울이요? 우리나라의 수도는 기연 인데요?”

하림, 기연, 현대시대의 상식을 모르는 사람.

나는 점점이 위화감의 이유를 점점 알아챌  같았다.

안돼.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순 없잖아.

“.....여기 마을은 어느쪽으로가면 나오지?”

“마을이라면 집을 나서서 오른쪽으로 가ㅁ....”

“혀..형! 어디가?!”

나는 향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집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갑작스럽게 달리니 몸들이 쑤시고, 옷들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뛰어갔다.

그렇게 신발마저 떨어져 나가, 이윽고 맨발이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을 보았다.

“자~쌉니다 싸요! 병아리 하나당 2은! 2은이면 닭 한 마리와, 달걀까지!”

“가래떡 4개에 8동! 조청에 찍어먹으면 아주 맛있는 가래떡이 왔어요!”

“엄마! 나 가래떡! 가래떡 사줘!”

“인석아! 집이나 가자. 돈이 어디 있다고 그러니?”

“또 감자잖아....나 떡 먹고 싶어...”

“에휴...이번만이다? 알았지?”

“감사합니다! 어머니!”

“그럴 때만 어머니지? 참...”

그곳은 마치 조선시대의 사극을 보는 듯  장터였다.

옷들은 죄다 한복을 입고 있으며, 이 상황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듯이 아무도 혼란스러워 하지 않았다.

카메라도 없으며, 감독도, 정말 현대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나 빼고 아무도 없었다.

“하아..하아...아니. 형! 갑자기 그렇게 뛰어...나가...면...여긴 어디야? 지금 사극 찍고 있는 건가?”

“두 분들! 이게 무슨...”

나의 행동을 보고 당황했는지, 두 사람도 나를 따라 그대로 뛰어온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향아. 이 나라의 이름은 뭐야?”

“예? 당연히 [한]이지요?”

“하하...미친.”

향이의 확인사살마저 듣고 나니, 기운이 쭉 빠져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나와 혁수는 죽어서 저승에 온 것도, 살아서 현대에 있는 것도 아니다. 과거로 온 것도 아니다.

다른 세계로 떨어진 것 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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